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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바꾼 대역사] 페루
리마
식민지의 恨 서린 '콜로니얼 도시'의 효시
에스파냐 정복자 피사로가 약탈 목적으로 건설
바둑판형 시가지에 대형 성당 세워
페루의 수도 리마는 태평양을 끼고 발달한 인구 800만명의 도시다. 페루 인구가 2500만명 정도이니 그 3분의 1이 리마에 사는 셈이다. 리마에는 두 개의 축이 있다. 하나는 센트로(Centro)라 부르는 구(舊)시가지이고 다른 하나는 신(新)시가지이자 해변휴양지인 미라플로레스 지구다. 구시가지가 중후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중세유럽을 떠올리게 한다면 미라플로레스는 산뜻한 느낌을 주는 미국식 현대도시를 보는 듯하다.
리마는 남아메리카 고유의 역사와 문명과는 관계없는 도시다. 굳이 그걸 보겠다면 희미한 조명 아래 전시되고 있는 유물을 간직한 박물관으로 가야 한다. 다시 말해 리마는 ‘고대문명의 탈출구’로 건설됐다. 그것도 오랫동안 그 땅에 살아왔던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힘으로 그 땅을 빼앗은 자들이 그곳의 찬란했던 문명보다는 그곳을 장식했던 황금을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리마의 탄생에는 이런 비극이 숨어 있다.
○ 보물 뺏고 목숨까지 빼앗아
한때 유럽에 불었던 바람이 엘도라도(El Dorado)였다. 그들이 생각한 황금의 땅 엘도라도는 남아메리카 어디였다. 그때 페루에 나타난 정복자는 에스파냐 트루히요 출신의 프란시스코 피사로(1478~1541)였다. 그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진 못했으나 야망과 용기, 그리고 기민함에선 누구 못지 않았다. 중년을 갓 넘긴 1520년, 피사로는 자기보다 두어 살 연상인 에르난데스 코르테스가 멕시코의 아스테카 제국을 정복하는 것을 보고는, 멕시코 남쪽에도 그와 맞먹는 대제국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파나마에서 에르난도 데 루케라는 신부와 디에고 데 알마그로라는 군인과 손을 잡게 되자 그는 곧 자신의 꿈을 행동으로 옮겼다. 1531년 1월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휘하에는 배 3척, 병사 18명, 말 27필이 고작이었다.
이들 정복자들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모리꾼이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오직 황금뿐이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피사로는 안데스 산록의 카하마르카란 곳에서 잉카의 왕 아타왈파(당시 아우 우아스카르를 피해 이곳에 머물렀다)를 사로잡고는 가진 보물을 죄다 챙겼다. 목숨만 살려달라는 절규도 뒤로 한 채 보물을 손에 넣자 목을 날려버리는 잔인함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 다음 쿠스코로 달려갔다.
유명한 태양신전(코리칸차)에선 많은 신관과 성처녀들이 봉사하고 있고 신전 본당 내부는 온통 황금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떠오르는 빛을 받는 아침이면 장관을 연출했다. 그는 그런 것에는 아랑곳없이 황금으로 장식된 신전 겸 왕궁인 코리칸차에서 귀한 황금을 모두 떼어내고는 그 모두를 파괴했다. 그 자리에 대신 성당을 세웠다. 그게 지금도 남아있는 산토도밍고 대성당이다.
쿠스코는 잉카제국의 오랜 왕도였던 곳이라 피사로는 언제 원주민들이 들고 일어날지 몰라 노심초사했다. 그런 데다 쿠스코는 내륙 깊숙한 곳에 위치한 해발 3500m 고지라 본국과의 연락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그는 태평양 연안에다 신도시를 건설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야만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페루에서 챙긴 황금과 보물을 본국으로 실어나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신도시가 완공되자 그는 1535년 1월 6일 그곳을 식민국가 페루의 수도로 삼았다. 그날은 크리스마스로부터 12일째 되는 주현절(예수가 태어난 지 12일째 되는 날로 그가 동방의 세 박사에게 나타난 날)이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 도시 주변에 흐르는 강 이름 따
리마란 이름은 도시 주위로 흐르는 리마크(Rimac)강에서 따온 것이지만 신도시는 유럽의 식민 지배자들이 세운 남아메리카 최초의 콜로니얼(Colonial) 도시였다. 콜로니얼 도시란 식민 지배자가 식민지에 자기네 도시구조와 건축양식을 동원해 건설한 것으로 식민지배의 효율성 제고가 그 목적이었다. 그들은 이런 도시 외에도 그들의 언어와 종교도 그 땅에 심었다.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를 굽어보고 있는 거대한 예수상도 그런 목적에서 태어났는데 이런 예수상은
쿠스코에도 세워졌다. 이 모두는 민족정신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결국은 철저히 지배하기 위한 도구로
쓰였다.
리마의 시가지는 바둑판처럼 격자형을 이루고 그 중심엔 에스파냐의 식민도시가 그러하듯 타원형 구조의 아르마스 광장이 들어섰다. 광장에서 가장 높은 곳이자 중심에 자리잡은 산토도밍고 대성당 주위에는 총독 관저와 관청, 그리고 크고 작은 성당과 수도원 등이 배치됐다. 건축양식은 당시 에스파냐를 지배했던 바로크와 신고전양식이 채택됐는데 로마보다 더 가톨릭 신앙심에 불탔던 에스파냐(스페인 사람들은 15세기 말 이슬람 지배에서 벗어난 것은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했다)의 식민지답게 대성당은 거대하고 중후했다. 피사로가 직접 주춧돌을 놓았을 만큼 그는 대성당의 건축에 애착을 보였다. 마치 자신이 곧 그곳에 묻히리라는 것을 예감하기라도 한 듯이. 그의 유해는 대성당 입구 한쪽에 놓인 유리관 속에 안치돼 있다. 그 뒤 몇 차례의 대지진을 견뎌낸 대성당에서 그는 지금도 그렇게 누워 있다.
○ 욕심 지나쳐… 부하에 살해당해
그런데 식민지배를 받은 페루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지금까지 그의 유해를 이처럼 고이 간직하고 있는 걸까? 대성당 맞은편에는 말 탄 모습의 동상까지 서 있다. 왜 그런 걸까? 우리는 역사를 청산한다며 일제의 총독부 청사 건물까지 허물었는데.
피사로는 리마를 건설한 다음부터는 동료이자 부하였던 알마그로와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전리품의 분배가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피사로는 페루에서 나온 황금을 가차없이 모두 녹여 5분의 1은 에스파냐 왕실에 보내고 나머지는 자신이 챙겼다. 부하들에게도 나누어주었다고는 하지만 그의 욕심이 너무 지나쳤다. 이 일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부하들은 피사로의 몸에 비수를 꽂고 말았다.
피사로는 이렇게 비명횡사했지만 리마는 급성장을 계속했다. 페루에서 황금이, 남미 내륙국가 볼리비아의 포토시란 곳에서 은이 무진장 발굴됐기 때문이다. 덕분에 에스파냐는 무적함대를 거느릴 수 있었다. 이후 에스파냐는 페루뿐 아니라 멕시코와 쿠바, 과테말라, 에콰도르, 콜롬비아 등에 수많은 콜로니얼 도시를 건설했다. 그 중 상당수는 지금 세계문화유산 리스트에 올라있다. 당시의 역사를 보여준다는 이유로.
특히 유명한 것으로는 에스파냐 스타일의 도시를 그대로 빼닮은 멕시코의 푸에블라와 오아하카, 카리브 지역의 해적을 소탕하여 본국과의 항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건설한 쿠바의 아바나 성채와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 에스파냐 식민지 경영의 전초기지 제1호였던 도미니카공화국의 산토도밍고, 1543년부터 약 200년간 중앙아메리카 식민지 전체의 수도 역할을 했던 과테말라의 안티과 등을 꼽을 수 있다. 그곳은 어김없이 격자형 도시였고 그 중심엔 아르마스 광장이 있었으며 산토도밍고 성당과 총독부 청사와 관청이 자리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콜로니얼 도시가 아메리카 대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프리카에도, 아시아에도 있다. 아프리카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각각 건설했고 아시아에는 포르투갈과 영국, 에스파냐가 건설했는데, 에스파냐가 건설한 대표적인 아시아 콜로니얼 도시로는 필리핀의 비간(Vigan)이 있다. 미국이 이곳을 차지하기 전까지 에스파냐가 지배했기 때문인데 이 또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콜로니얼 도시는 16세기 이후 전개된 식민지 지배 시대가 남긴 부끄러운 부(負)의 유산임에 틀림없다.
[자료출처: 주간조선(권삼윤 역사여행가)] <자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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