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획 연재

[스크랩] [역사를 바꾼 대역사 ⑧] 시베리아 횡단철도

보다 많은 파주시 고양시(일산)지역 재테크정보는→ 일산 부동산은행으로...
 
▒ [역사를 바꾼 대역사] 시베리아 횡단철도
 

○ 동토(凍土)를 깨운 대동맥 9446㎞
“7박8일 쉬지 않고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이제 꿈의 여행을 즐기세요.”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한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무수한 자작나무 숲과 끝없이 펼쳐진 침엽수림, 그리고 광활한 스텝지대를 통과하면서 9446㎞를 7박8일 동안 쉬지 않고 달린다. 그러다 겨울이 되면 이 모든 것은 흰 눈을 뒤집어쓴 수빙으로 바뀐다. 열차는 시베리아의 장관인 바이칼호를 지나 이르쿠츠크, 라마교의 흔적이 있는 울란우데를 지나 끝없이 서쪽으로 달려간다. 열차는 거기서 노보시비르스크, 도스토예프스키의 유형지로 유명한 옴스크, 시베리아의 마지막 역인 스베르들로프스크 등 58개 역을 지나 7일째가 되는 날 종점인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블 역에 도착한다. 장장 7박8일간의 대장정이다.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고자 하는 사람은 ‘붉은 화살호’를 타고 여행을 계속하면 된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해 여행하려는 관광객은 ‘러시아호’의 4인1실 침대차에 몸을 싣고 차량당 2명씩 배치된 역무원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만족해야 한다. 서비스가 형편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 길밖에 달리 선택이 없다는 것뿐이다. 열차는 상행과 하행, 모두 매일 출발한다. 식사는 식당차에서 해결할 수 있다. 전구간을 달린다면 바뀌는 시간대만도 8개나 된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단일 철도 시스템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이자 북유럽과 동유럽, 서유럽 그리고 동아시아를 잇는 세계 최대의 물류 동맥이다. 이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시작은 얼지 않는 항구를 확보하겠다는 정복의 꿈을 담고 있었다.

러시아는 대륙국가다. 엄청난 규모의 영토를 거느렸으나 주위엔 얼지 않는, 괜찮은 항구가 그리 많지 않았다. 북극과 가까운 탓이었다. 18세기 초 피터 대제는 오랫동안 왕도 역할을 해왔던 모스크바를 버리고 발트해 연안의 네바강 하구에다 새로운 수도를 건설했다. ‘유럽으로 난 창’이란 별명이 붙은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그것이었다. 그로부터 150여년이 지나자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720만달러에 미국에 팔아 넘겼다. 그리고 1858년에 하바로프스크를, 1860년엔 밍크 사냥 기지였던 블라디보스토크를 태평양 연안에 대규모 함대가 정박할 수 있는 항구로 개발했다.

다음 과제는 국토의 동쪽 끝과 서쪽 끝을 잇는 철로를 부설하는 일이었다. 이미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와의 사이에는 철도가 부설(1842~1851)되었으니 이번에는 모스크바에서 태평양까지만 연결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러시아의 교통부가 설립(1865)된 직후인 1867년에 나왔으나 재원 부족으로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러다 농노해방 군주인 알렉산더 3세가 1891년 마침내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Trans-Siberian Railroad) 건설을 명했다. 양쪽 끝에서 각기 공사를 시작하여 중간에서 만나는 방법을 취했다. 이 기간 중인 1896년 서울에선 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몸을 옮기는 아관파천이 일어났으니 당시 러시아 제국의 힘은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막강했다.

드디어 1905년 알렉산더 3세의 뒤를 이은 전제군주 니콜라이 2세가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장장 9297㎞에 이르는 TSR를 완공했다. 물론 단선이었고 만주를 지나는 형국이었다(이를 모두 수용하여 최종 완성된 해는 1916년). 공사가 채 마무리 되기 전 러일전쟁이 일어나 차질이 빚어지긴 했으나 결국 해냈다. 바로 이 기간(1895~1905) 사이에 횡단철도의 부설로 러시아 철도는 두 배로 늘어났다. 러시아는 또 국토를 효율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함과 동시에 만주와 중국, 한국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일본과의 연결고리를 확보했다.

○ 전철화 서둘렀지만 2002년에 겨우 끝내
이 공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는 우선 재무장관으로 재정 안정, 중공업 발전, 금본위제 확립 등 철도건설에 힘을 보탰던 위테를 꼽을 수 있다. 그 다음은 일본 작가 시바 료타로가 자신의 대표작 ‘언덕 위의 구름’에서 그를 일러 “러시아의 앞길을 연 사람”이라고 했던 철도장관 일코프다. 여기에 한 사람을 더 보탠다면 멜리니코프 정도다. 그는 광궤철로(1524㎜)를 주장했던 토목기사로 수많은 교량과 역사를 설계했다. 철로 건설에는 측량과 지도 제작이란 작업도 매우 중요한데 러시아는 멜리니코프 같은 인재가 있어 그걸 쉽게 해낼 수 있었다.

TSR의 개통으로 시베리아 모피 생산이 크게 늘어났고, 철로를 따라 해방된 농민의 유입이 촉진됐으며, 금은ㆍ철강ㆍ석탄 광산이 속속 개발돼 잠자는 땅인 시베리아를 깨우는 전기를 제공했다. 러시아는 ‘태평양으로 난 창’을 마련하면서 아시아 국가로 등장하게 됐다. 나아가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는 500여개의 철도 지선을 구축했으며 전통 경제체제에서 근대경제로의 이행도 이루었다. 지금에 와선 전체 인구의 5분의 1이 TSR 주변도시를 중심으로 살고 있으며, 경제의 70% 이상을 이 TSR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만큼 일찍부터 전철화를 서둘렀으나 2002년에야 모두 끝났다.

전문가들은 철도를 이렇게 정의한다. ‘육상 교통기관으로서 일정한 부지를 점유하고 레일, 침목, 도상으로 구성되는 궤도에서 기계적ㆍ전기적 동력을 이용하는 차량을 운전하여 여객이나 하물을 운반하는 것’이라고. 그러므로 제일 중요한 것은 레일이다. 육중한 기관차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날씨에 관계없이 언제나 안정적으로 떠받칠 수 있는 강한 레일. 두 가닥의 선로로 이루어져 늘 평행선으로만 달리는 레일은 1600년경 독일에서 등장한 목제를 시초로 하여 선철, 강철로 그 재료가 발전돼왔으며 그 위를 달리는 열차는 1765년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에서 출발하여 그후 기계 동력 방식, 전기 동력 방식으로 진화했다.

철도의 역사에 방아쇠를 당긴 나라는 산업혁명의 종주국인 영국이다. 1825년 조지 스티븐슨이 시승객과 석탄을 탑재한 로코모션호 35량을 이끌고 시속 16㎞로 달렸다. 미국(1830), 프랑스(1832), 독일(1835), 러시아(1837)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소국 기니가 1848년에 철도를 갖게 됐다는 점은 놀랍다. 중국은 1883년, 한국은 1899년에야 철도가 부설됐다. 그것도 제국주의자들에 의해서.

○ 미국 발전에 큰 영향 끼친 것도 철도
철도의 시작은 영국이었으나 지금 세계 철도대국은 미국이다. 그 중심축은 다름 아닌 센트럴 퍼시픽과 유니온 퍼시픽을 연결한 대륙횡단철도. 미국 역사학자 스티븐 앰브로스는 ‘대륙횡단철도’란 저서에서 “미국의 건국과 발전 과정에서 남북전쟁보다 대륙횡단철도가 더 큰 역할을 했다”고 했는데, 실제로도 그 영향력은 대단했다. 미국의 역사가 시작된 동부와 개척지인 서부를 같은 시간대, 같은 공간대의 삶으로 이어주었을 뿐 아니라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해주었으며, 나아가 미국을 태평양국가로 발돋움시켰기 때문이다. 대륙횡단철도 건설을 성공케 한 데는 두 가지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하나는 노다지의 발견이다. 밤새 물살에 떠밀려온 사금(砂金)은 서부가 버려진 땅이 아님을 일깨워주었고 그에 따라 수많은 사람이 서부로, 서부로 밀려들었다. 골드러시! 이를 위해 건설된 게 바로 대륙횡단철도였던 것이다.

그 덕분에 캘리포니아는 1850년 미국의 31번째 주가 됐고,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가 발전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인부들이 작업복 바지로 즐겨 입었던 청바지가 미국의 상징으로 등장했고, 철도 건설 인부로 동원된 중국인 구리(苦力)의 보금자리이자 상권인 차이나타운이 탄생됐다. 또 하나는 미국 철강산업의 고속 성장이다. 서부에서 새로운 철광이 발견된 데다 펜실베이니아 철도국 직원이었던 카네기가 1865년에 들어 제철산업에 집중 투자한 지 얼마 안돼 철교, 레일, 기관차를 제작하는 회사를 설립했다. 1875년엔 미국 최대의 제철소를 소유하게 됐고, 이어서 코크스 제조 시설과 탄광, 철광, 철도 사업에도 손을 대 미국의 공업 발전을 이끌었다. 그의 사업적 성공이 없었다면 대륙횡단철도 건설도 그만큼 늦어졌을 것이다.

세계는 이제 고속철도 시대로 접어들었다. 시속 200㎞ 이상을 달리는 고속철도는 최첨단 기술의 총아로서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 한국이 이를 선도하고 있다. 1970년 개통된 고속도로가 남한을 1일 생활권으로 만들었다면 2004년 4월 개통된 KTX는 반나절 생활권으로 단축시켰다. 한국은 남북한 철도 연결 사업을 통해 TSR와 연결하는 ‘철의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만일 이게 성사된다면 부산에서 중부유럽까지 배로 40일이 걸리는 수송기간이 15일로 단축돼 우리는 동북아 물류 중심국가로 부상할 수 있다.
 
[자료출처: 주간조선(권삼윤 역사여행가)] <자료정리: 부동산은행>

 
출처 : 블로그 > 고양시[일산]부동산(오피스텔.원룸.상가) | 글쓴이 : 일산 부동산은행 [원문보기]
 
출처 : 고양시[일산]부동산(오피스텔.원룸.상가)
글쓴이 : 일산 부동산은행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