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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바꾼 건축] 영국
아이언브리지
○ 인류가 처음 만든 ‘쇠다리’
건축가 토머스 프리처드가 아이디어 내… 석탄산지에 세운 산업혁명의 상징물
‘아이언브리지(Ironbridge)’는 ‘철교’라는 뜻의 보통명사다. 그렇지만 아이언브리지는 세계 유산 리스트(1986년 지정)에 당당히 이름이 올려져 있다. 세계 최초로 철로 만든 다리, 즉 철교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가 지금은 고유명사가 돼버렸다. 그 후로 수많은 철교가 놓여졌지만 원조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이처럼 특수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다리가 놓여진 작은 마을도 그에 따라 ‘아이언브리지 고지(Gorge·계곡)’로 바뀌었다. 제철기술이 가져온 변화가 얼마나 컸던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언브리지 고지의 원래 이름은 콜브룩데일(Coalbrookdale). 말 그대로 석탄산지라 철 제련의 최적지였다. 코크스 노(爐)가 이곳에서 세계 최초로 가동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철제 바퀴, 철로, 기선, 증기기관차 등 대량수송과 관련된 최고의 발명품이 잇따라 탄생되면서 아이언브리지 고지는 자연스레 산업혁명의 요람이 됐다.
철기 시대는 기원전 15세기경 히타이트인(지금의 터키 고원이 근거지)에 의해 열렸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도구로서의 기능에 한정됐다. 기계의 발명과 그에 따른 기술혁신까지를 아우르는 철기문화는 18세기 영국에서 싹튼 산업혁명의 소산이다. 그러므로 아이언브리지는 산업혁명의 성공을 알리는 상징적인 구조물이자 쾌거라 할 수 있다.
아이언브리지 고지는 영국 제일의 공업도시인 버밍엄에서 그리 멀지 않다. 철교는 그곳에 흐르는 세번(Severn)강 위에 놓여졌다. 당시 폭 20여m의 세번강은 유럽에서 두 번째로 물동량이 많은 하천이었는데, 그곳에 철교를 세우겠다고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건축가 토머스 프리처드였다. 영국 의회가 그의 제안을 통과시키자 에이브러햄 더비 3세가 재정 후원자로 나섰다.
더비 3세의 조부 더비 1세는 저유황 코크스 노를 개발한 데 이어 코크스 용광로를 만든 사람이며, 더비 2세는 증기기관을 발명하는 등 영국에 제철의 역사를 일으킨 사람이었다. 더비 3세는 제철 70년의 역사를 통해 축적된 기술과 경험, 철강과 부(3200파운드를 쾌척)를 총동원하여 아이언브리지를 건설했다.
○ 화가들의 단골 모델로 등장
아이언브리지는 전형적인 아치형이라 다리 아래가 반구 모양을 하고 있으며, 상판의 중앙은 위로 솟아 약간 볼록하다. 여기에 노출된 철제 프레임의 정연한 구조가 더해져 아주 세련돼 보인다. 그 아래로 배라도 지나가면 한 폭의 풍경화가 된다. 화가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가만두지 않았다. 조지프 말러드 터너(1775~1851)와 콘스터블(1776~1837) 등의 예에서 보듯 영국 사람들은 여느 유럽인보다도 풍경화에 조예가 깊다고 하지 않던가. 이름깨나 날리는 화가들이 찾아와 철교의 모습을 자신의 화폭에 담았던 것이다. 더비 3세 또한 예술성 높은 이 철교를 세운 공로로 영국왕립예술협회로부터 금메달을 수여받았다.
아이언브리지는 전형적인 아치형이라 다리 아래가 반구 모양을 하고 있으며, 상판의 중앙은 위로 솟아 약간 볼록하다. 여기에 노출된 철제 프레임의 정연한 구조가 더해져 아주 세련돼 보인다. 그 아래로 배라도 지나가면 한 폭의 풍경화가 된다. 화가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가만두지 않았다. 조지프 말러드 터너(1775~1851)와 콘스터블(1776~1837) 등의 예에서 보듯 영국 사람들은 여느 유럽인보다도 풍경화에 조예가 깊다고 하지 않던가. 이름깨나 날리는 화가들이 찾아와 철교의 모습을 자신의 화폭에 담았던 것이다. 더비 3세 또한 예술성 높은 이 철교를 세운 공로로 영국왕립예술협회로부터 금메달을 수여받았다.
지금 철교 입구에는 이런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1777년 11월에 착공하여 1779년 5월에 완공하다. 시공자는 에이브러햄 더비 3세와 콜브룩데일사(社), 설계는 토머스 프리처드가 맡았다. 소요된 철강은 378톤, 다리 길이(철제부분)는 30.68m….” 아이언브리지는 더 이상 산업도시가 아니다. 당시의 모습은 이 철교와 강 박물관, 도자기 박물관 그리고 블리스트 힐이란 곳에 마련된 ‘산업혁명 민속촌’ 등에 남아 영광스런 옛날을 들려주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맑은 공기를 숨쉬며 역사의 한순간을 즐길 수 있다.
전체 길이가 42.7m인 아이언브리지는 교량 건설의 역사에 획기적 전기를 제공했다. 교량은 강이나 바다, 계곡과 같은 자연 지리적 장애를 극복하여 인간의 활동영역을 넓히고 신속한 이동을 가능케 하는 구조물이다. 그 구조와 형태는 사용되는 재료와 기술에 따라 달라지는데, 가장 원시적인 형태는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징검다리였다. 그 후로 나무다리, 돌다리, 철교, 콘크리트다리 등으로 발전해왔다.
공공토목 분야의 선구자 로마는 돌다리 건설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아피아 가도와 님(Nime, 프랑스), 세고비아(Segovia, 스페인) 등지에 남아 있는 수도교(水道橋)가 그 좋은 물증이다. 그 중에서도 수도교는 대개 2층 또는 3층 구조로 지어졌을 정도로 그들의 기술은 탁월했다. 중국인도 곳곳에 돌다리를 남겼다. 대개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교다. 이렇게 볼 때, 로마가 기능을 중시했다면 중국은 미학을 우선했다고 할 수 있다. 남송의 왕도 항저우(抗州)의 시후(西湖) 한가운데 놓인 17공교(孔橋)는 시인·묵객이 즐겨 화제로 삼았던 대상이었다.
아름다운 석교는 중국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센강 위의 퐁네프 다리와 알렉산더 2세교, 아비뇽의 다리, 피렌체의 폰테 베키오, 베네치아의 리알토 다리, 프라하의 카를 대교 등 중세에 세워진 유럽의 돌다리도 그에 뒤지지 않았다. 중세는 모든 게 느리게 작동했던 느림보 시대라 기능보다는 미학이 우선했던 것이다.
따라서 돌다리는 큰 강이나 바다를 이어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게 산업혁명의 성과로 얻어진 철교였다. 한마디로 철이라 하지만 탄소 함유량에 따라 주철(cast iron)과 강철(steel)로 나뉘어진다. 탄소 3%대의 함유량을 가진 주철은 용융점이 낮아 강도에 문제가 있었지만 다루기 쉽다는 이유로 초기에는 주철이 사용됐다. 아직 강철의 제련법이 발명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언브리지는 당연히 주철교였다.
아이언브리지의 등장은 유럽 각국에 주철교의 건설에 불을 질렀다. 그에 따라 18세기가 다 가기 전에 영국, 프랑스, 독일 등지에 다수의 주철교가 세워졌다. 그건 다시 강철교의 등장을 앞당기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1%대의 탄소 함유량을 가진 강철은 강하면서도 탄력성이 있다.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까지 큰 역할을 했던 주철이 제1차 산업혁명의 촉매자였다면 강철은 제2차 산업혁명을 이끈 일등공신이었다. 강철의 등장은 경제혁명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세계 최대의 강철생산국인 미국을 세계 제일의 부국으로 격상시켰다. ‘미국의 시대’가 강철왕 카네기와 자동차의 메카 디트로이트로 상징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아무튼 18세기의 산업혁명은 토목공학에도 커다란 변혁을 초래했다. 그때까지 공학기술의 대명사였던 토목공학(civil engineering)이 기계·전기·토목공학 등으로 분화되기 시작했고, 1818년에는 런던에 토목공학학회(ICE:Insititute of Civil Engineering)가 설립됐다. 창설자는 교량 건설자로 유명한 토머스 텔포트였다.
○ 자동차 등장으로 교량건설 가속화
ICE도 아이언브리지처럼 보통명사를 그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영국이란 말은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세계 최초의 토목공학학회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학회의 본부가 영국 정치의 중심지인 다우닝가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총리실과 재무부 건물과는 지척이다. 그렇다면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이란 대규모 토목공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로마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강철은 그후 고강도 강재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철근 콘크리트까지 개발되자 긴 다리와 공중에 매달린 듯한 현수교가 세워졌다. 큰 강이나 해협 정도는 거뜬히 건널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1845년 부다페스트에 설치된 202m의 케텐브루크, 보스포러스해협 위에 놓여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는 이스탄불의 현수교, 뉴욕의 브루클린다리, 샌프란스시코만에 건설된 1280m 길이의 금문교, 1991m의 고베 소재 아카시카이교 등이 그 좋은 예다.
20세기 중반에 접어들어 본격적인 자동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교량 건설 또한 가속화됐다. 이제는 교량 없이는 현대문명이 유지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교량의 밑바닥에 강철이 있는 한, 세계 최초의 철교 아이언브리지의 역사적 의의는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자료출처: 주간조선(권삼윤 역사여행가)] <자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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