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낭만의 베니스
“물의 도시, 베네치아! 그곳에서 나는 몇 번이나 다리를
건넜던가?”
베네치아를 둘러 본 날 나의 기행노트에는 그렇게 단 한 줄만이 적혀있다. 380개가 넘는 다리로 이어진 수상도시에 대한
감탄인지, 다리(橋)를 건너느라 다리(脚)가 아파서 한숨을 쉬었던 건지 모를 야릇한 한마디. 베네치아의 추억은 모두 운하 밑으로 사라진 것일까.
곤돌리엘레의 낭만적인 민요 한 소절도, 유리를 불던 어느 유리 세공의 입김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나 보았을 법한 신비스런
가면도…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기억을 되찾기 위해 노를 저어 운하 밑을 더듬어 본다. 배가 지나면서 갈라놓은 그 바다 틈에서 축제와 낭만,
예술의 도시에 대한 추억이 조금씩 떠오른다.
바다와 교감하는 도시
베네치아는 종착역 산타루치아(S.Lucia)역에서
시작된다. 자유의 다리(Ponte della Liberta)를 건너 종착역으로 들어오는 길, 이 길을 지나면 자못 기분이 묘해진다.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기대와 설렘, 그것이 유배의 혹은 휴양의 느낌이건 간에 새로운 공간으로의 진입으로 마음은 한껏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역전을
나서자마자 느껴지는 항구 도시 특유의 생동감과 눈앞에 펼쳐지는 진풍경에 절로 발걸음이 멈춰진다.
물 위에 두둥실 떠 있는 배들.
사람들이 열을 지어 작은 배에 오르는 풍경. 그리고 바다, 바다, 바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베네치아에는 자동차가 없다. 개펄에 나무를 박고
땅을 돋우어 118개의 섬과 함수호를 다리로 연결한 수상도시인지라 교통수단은 모두 수상용이다. 관광객들에게 제일 잘 알려진 것은 단연
곤돌라(Gondola).
곤돌라는 베네치아의 상징이요,
낭만의 결정체이다. 검정 턱시도
를 빼 입은 늘씬한 신사의 이미지
가 떠올려지는 곤돌라는 밑바닥이
평평하고 폭이 좁아서 좁은 운하
곳곳을 누비고 다니기에 적당하
다.
저녁 어스름이 질 무렵 나지막하
게 울려 퍼지는 곤돌리엘레
(Gondolielle)의 칸소네 한 구절,
여행의 감흥을 돋우는 데 이보다
더 훌륭한 묘약이
있을까.
노선번호를 달고 운항하는 ‘바포레토’
그러나
여행의 진미는 현지인의 생활을 체험해 보는 것일 테다. 여느 도시의 버스 기능을 하는 대중교통수단은 바포레토(Vaporetto). 노선번호를
달고 운항하는 이 배는, 특히 출근 시간에 타면 아주 활기찬 항구 도시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바포레토 1번은 관광코스를 죽 훑어주는
‘모범코스’. 산타루치아역을 출발해 카도로(Ca’d’Oro)를 비롯, 유명한 다리인 리알토(Rialto)와 운하 연안에 위치한 갖가지 궁을 지나
산마르코 광장에 들러 이웃한 섬인 리도에까지 이르는 코스다.
산타루치아역 앞에서 승선을 하면 시중심을 역S자로 관통하는 대운하를
따라간다. 바닷물과 건물 외벽이 바로 맞닿아 있어 이 도시는 이방인으로 하여금 독특한 인상을 준다. 비록 조수로 인해 침식이 진행되고 있지만
대운하 주변은 중세 교역의 중심지로 번창하였던 베네치아의 부흥기를 떠올리게 한다.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의
독자적인 고딕 건물이 열을 잇고, 건물들의 아치가 파도 치듯 이어져 도시가 춤을 추는 듯하다.
‘유리’- 베네치아의 또 다른
얼굴
시가지로 들어서면 베네치아는 또 다른 얼굴로 여행객을 맞이한다. 차도가 없어 비좁은 길은 굽이굽이 미로처럼 펼쳐진다. 금세
작은 다리가 나오기도 하고 어느 때엔 왔던 곳을 다시 지나기도 한다. 이렇게 골목을 헤매다 보면 덜컥! 바다와 대면하기도 한다. 막다른 골목에
높다란 담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검푸른 바다가 있는 곳, 이곳이 베네치아이다.
아기자기한 상점이 밀집해 있는 리알토 주변에는
베네치아 유리로 만든 액세서리를 비롯, 주로 여성들의 눈길을 붙잡는 아이템이 많다. 색색의 유리를 일정 길이로 잘라서 납작하게 압축해 놓은 듯한
이 제품은 앙증맞기도 하면서도 자세히 보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다. 유리를 세공하는 한 노인이 영화에서 본 것처럼 녹은 유리를 불대에 올려놓고
입으로 부는 장면은 참 인상적이다. 또한 색감과 디테일이 뛰어나 예술로 여겨지는 유리 세공작업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노천카페서 만끽하는 삶의 여유
베네치아의 중심은
산마르코
(S.Marco). 산마르코 광장, 바실
리카,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이 있는 이곳은 관람객이
끊이질 않는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
물인 바실리카와 두칼레 궁전은 각
기 8세기와 14세기에 지어졌다.
입구 정면에 금빛 찬란한 모자이크
가 돋보이는 바실리카와 백색과 분홍의 대리석으로 덮여 있는 두칼레
궁전은 고색창연하기 보다는 화려하다. 마치 은퇴했지만 그 화려함을 잃지 않은 여배우 같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전성기를 나타내는
화려한 비잔틴 돔과 이슬람 첨탑에 노을이 비치면 산마르코 광장은 새로운 활기를 되찾는다. 주변에 있는 노천 까페에 커피 한 잔만으로도 삶의
여유를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붐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곳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비둘기 떼. 바닥 가득 모여있는 비둘기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 어느 순간엔 머리며 어깨, 팔, 다리에 줄을 잇기도 해, 간혹 낯선 이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베네치아에는 도시적
특색 외에도 널리 알려진 국제적 행사로 외지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대표적인 행사로 베니스 영화제, 격년으로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그리고
이맘 때 즈음이면 벌어지는 가면 축제를 들 수 있다. 매년 9월 초순 리도 섬 해안에서 펼쳐지는 베니스 영화제는 국제영화제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는 행사로 우리나라에선 ‘씨받이’의 강수연이 여우주연상을 타기도 했다.
축제가 있는 예술의 도시
사순절
기간 전에 열리는 가면 축제는 가면 속에 얼굴을 묻고 마음껏 즐기는 연희의 한 마당이다. 어느 새 중세 귀족이 된 것만 같은 가면을 쓰고,
그들과 어울리게 되면 현지인의 거리 문화를 몸소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세계 3대 비엔날레 중의 하나인 베니스 비엔날레는 어느 해
백남준이란 비디오 아티스트를 우리 옆에 성큼 다가오게 했다. 이때 비록 백남준 작가는 독일 대표였지만, 그만의 독특한 비디오 아트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베네치아는 상업 뿐만 아니라 예술의 도시로 더욱 깊게 각인돼 있다.
13세기 동서교역의 3대 거점으로 꺼지지
않는 부의 영예를 안았던 공화국. 여전히 바닷바람과 어우러진 뱃사공의 함성을 들을 수 있지만 이곳은 낭만과 예술, 축제의 도시로서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모으고 있다. 이것은 비단 지형적 특성 때문이 아닐 것이다. 어느 골목에서 마주쳤던 곤돌라를 만드는 장인. 300개의 나무조각을
3개월여에 걸쳐 건조시키고 다듬어 만드는 곤돌라의 장인처럼 오랜 세월 그들 내부에 깊게 동화돼 나타난 것이리라.
아마도 대문호
세익스피어가 다시 태어난다면 ‘베니스의 상인’이 아닌 베니스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쓰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며 또다시 400개나
되는 다리를 다리를 팔아 걷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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