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불로 선물거래 시작, 현재는 수천만불 주물러 "사람의 인생을 좋은 쪽으로 바꾸고 긍정적인 삶을 살게 하는 것. 이게 제 삶의 철학입니다." 옥수수 밀 콩 금 등의 무역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사업가 폴 김(47)씨. 그가 지난 1992년부터 기부한 돈만 수백만 달러다. 그리고 앞으로 10년동안 10억달러를 기부하겠다는 포부다. 그때쯤이면 한국판 '워렌 버핏'과 다름 없다. 그는 'International Bridges to Justice' 등 비영리단체에 수십만달러를 기부했고 북한의 굶주린 아이들에게 40만 달러 상당의 식량을 제공했으며 중국 고아 등 가정형편이 어려운 세계 각국 어린이들에게도 장학금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미주지역 교육자들에게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해 제대로 알리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재단 'KAFE'의 세미나 개최비용 1만 달러를 선뜻 내놓기도 했다. "돈을 버는 것은 일종의 게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나서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리고 기부를 시작했고요. 세상 곳곳을 둘러보니 꼭 돈이 필요한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가 쓴 '성공신화' 8살 때 미네소타로 이민 온 김씨는 81년 노스웨스턴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세계 최대 곡물회사중 하나인 '카길'에 트레이더로 입사했다. 8년간 '곡물'을 훤히 익힌 그는 89년 회사를 떠나 단돈 5000달러로 선물 거래를 시작 지금은 건당 수 천만달러의 거래를 취급하고 있다. 2001년에는 시카고에 선물거래 회사 '라살레사'를 설립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또 아시아인 최초로 '시카고 선물거래소'의 멤버가 되어 선물 거래도 주도하고 있다. 라살레사의 펀드는 시카고 선물거래소의 대표 펀드중 하나라 지난 5년간 연 평균 수익률은 20%에 달한다. 현재 뉴포트비치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라살레사를 포함 또다른 선물 거래 회사 'mISFIT 파이낸셜 그룹'을 경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프로덕션 회사 '이애프터(eAfter)'까지 설립했다. "고등학교까지 풋볼 선수로 활약했는데 작은 체구 때문에 풋볼 명문 학교에서는 입학 제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를 악물고 공부했죠. 그런 오기와 승부욕 용기 열정 등이 사업 성공으로 이어진거죠." ◈이제 한인 여성 사업가를 키운다! 김씨의 다음 목표는 한인 여성을 글로벌 CEO로 육성하는 것. 실제로 그는 '이애프터'사를 통해 여성 인재를 발굴하는 '소피(가제)'라는 리얼리티쇼를 제작할 계획이다. 김씨는 리얼리티쇼 내의 프리젠테이션 테스트 담력훈련 영어테스트 등 다양한 심사과정을 거쳐 한 명을 선발 mISFIT사 한국 지사장으로 임명할 예정이다. "한국을 방문하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 바로 한인 여성의 우수성입니다. 세계적인 리더로의 능력과 잠재력이 충분한데도 사회여건상 그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조만간 한국을 방문 SBS 등 한국 방송국과 이번 프로그램에 대해 상의할 예정입니다." 중앙일보 미주판/박상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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