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의 문화 빌게이츠의 재산을 모두 1
달러짜리 지폐로 바꿔서 운반하려면 보잉 점보제트기 300대가 필요하다고 한다. 모든 미국인에게 골고루 나눠준다면 1인당 137달러씩 돌아간다고
하며, 집을 산다면 알래스카, 와이오밍, 사우스다코타, 노스다코타 등 4개 주의 가정집을 모조리 사들일 수 있다고 한다. 워낙 재산이 많아
사람들이 피부로 느낄 수 없어 미국의 한 연구원이 알기 쉽게 풀어 쓴 빌게이츠의 재산시계에 나오는 분석이다. '벌면서 쓰고,
쓰면서 벌겠다'는 철학을 가진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부자 빌게이츠의 재산은 약 50조원 규모다. 그는 이 가운데 절반인 25조원을 기부금으로
내놨다. 그의 아내와 함께 벌어서 재미보는 만큼 지속적으로 미국과 세계에 환원하고 있다.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기부금을 내놓으면 명예를
얻고 사람들에게 존경받기 때문이다. 강철 왕 앤드루 카네기부터 시작된 미국 기업인들의 기부문화는 이제 하나의 역사가 되어가고
있다. 부자로 돈 끌어안고 죽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의식과 함께 기부에 대한 존경의 문화가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기부하고 사회에
공헌하면 후하게 대접해주는 것이 미국사회다.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밴더빌트 등 수많은 미국 대학들이 돈을 기부해서 학교를
새운 주인공의 이름을 존중하고 후세까지 기리고 있다. 조지 소로스, 워런 버핏, 테드 터너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인들 역시 엄청난 돈을
기부하면서 나름대로 존경을 받고 있다. 지난 100년 동안 미국의 부자들은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우리 옛 말을
실천해왔다. 우리는 어떤가. 여름철 태풍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가면 매스컴이 나서서 요란스럽게 모금행사를 벌이거나 연말
불우이웃 돕기 성금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가끔 바느질해서 모는 돈 모두를 대학에 기부하고 양로원으로 들어가는 노인들을 대서특필하는 정도다.
아니면 온 나라가 목을 조여서 억지로 받아 낸 듯한 삼성의 8000억 사회 환원이 최근의 사례다. 우리는 돈을 기부할만한 부자가 없어서일까?
문제는 바로 존경의 문화가 부족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명예롭게 대접받기를 원한다.
특히 부자들의 경우 정도가 심하다. 오래 동안 가깝게 지내온 한 기업인의 얘기다. 자기 아들이 미국 대학에 진학중인데 그 학교에서 기부금 요청이
왔단다. 대학 총장이 직접 친필 편지와 함께 학교 설명을 해줄테니 부부가 함께 방문해 달라며 호텔 예약과 1등석 항공티켓을 동봉해 정중하게
초청해와 거절할 수가 없었고 그 방문이 인연이 돼 적지 않은 돈을 그 학교에 기부하게 되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그 대학은 졸업식마다 초청을
하고 재학생들에게 연설할 기회를 주고 각종 배려와 존경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하면 더 내고싶은 것이 자신의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반면에
국내 어느 재단에서 기부금 요청이 왔는데 조건은 돈만 내고 집행방법이나 처리절차에는 간섭하지 말고 빠져 달라고 해 몹시 섭섭했다고
한다. 깍아 내리고 헐뜯고 잘되면 배 아픈 게 우리 문화라고 자조하지 말고 존경의 문화가 뿌리내리도록 다같이 노력해야 한다.
정치인이나 언론이나 시민운동가들이 따뜻하고 훈훈한 이야기보다 뒷다리 잡고 싸움 붙이는 스토리를 재미있어 하는 한 존경의 문화로 가는 길은 긴
세월이 걸린다. 아마추어들이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프로나 전문가가 뒷전으로 밀려나는 현실에서 부자들은 할 말을 아끼고 은둔을 택한다. 나눔의
문화를 이해하고 만들어 나갈 수 없도록 만들면서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기만 하면 답이 안 나온다. 건강한 기부문화를 원하면 서로를 존경하는 저변의
문화코드가 형성돼야 한다. 10년 후 이건희 국제공항, 구본무 대학교, 정몽구 박물관, 최태원 건강재단이 만들어지도록 지금부터 부자들을 건전하게
감시하면서 아울러 존경의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가냐 한다.
- 김경한 이코노리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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