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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에너지가 미래다]2. ‘무자원 산유국’ 꿈 일군다

기회의 땅이라는 카자흐스탄에 우리나라가 첫발을 디딘 것은 2002년이다. 1990년대 중반 세계 메이저사의 진출이 본격화됐고 99년 1백억배럴 규모의 카샤간 유전이 발견되면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는 ‘지각생’이나 마찬가지다. 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자원개발은 강건너 불구경이나 마찬가지였다. 늦은 출발에 대한 대가는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하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카자흐스탄 아다광구에서 이달중 시추공을 뚫기 위해 대기중인 시추기. 지난해 석유공사와 LG상사가 공동으로 지분을 확고한 아다광구는 원유 1억6천만배럴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황무지에서 일구는 꿈=카자흐스탄 최대도시 알마티에서 비행기로 3시간 남짓 떨어진 악토베. 이곳에서 다시 남쪽으로 4시간 정도를 달려가면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십자가 모양의 송전탑, 절굿공이처럼 끄덕대는 펌프가 지평선 끝까지 늘어서 다소 몽환적인 분위기까지 풍긴다. 중국이 석유를 퍼올리고 있는 켄키악 유전지대다.

이곳을 지나면서 펼쳐지는 길은 온통 흙투성이다. 겨우내 꽁꽁 얼었다가 4월 들어서야 비로소 녹기 시작했기 때문에 흙더미가 끈적한 엿가락처럼 바퀴에 달라붙는다. 힘좋기로 소문난 도요타 랜드크루저지만 조금만 속도를 내도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 뒤뚱거린다. 30분쯤 지났을까. 차가 닿은 곳은 티미르스키라는 지역의 벌판이다.

-매장량 10억배럴 추정-

이곳은 지난해 한국석유공사와 LG상사가 공동으로 지분을 확보해 시추를 준비하고 있는 아다광구. 2,600㎢에 이르는 전체 광구에서 석유공사가 이달 중 본격적으로 뚫기로 한 시추공 1곳이 최근 정해졌다. 한 시추공을 뚫는 데만 수천만달러가 드는 유전개발의 어려움은 단지 돈뿐만이 아니다. 광구를 확보하는 것도 어렵지만 이후에도 어려움이 겹겹으로 쌓여있다.

석유공사 김요한 과장은 “이곳은 육상유전지대이기 때문에 시추 승인을 받기까지 지주들이나 인근 마을 주민들과 지난한 협상과정을 거쳐야 했다”고 설명했다.

온갖 서류를 갖춰 정부의 인·허가를 받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주변 정리’를 마치고 나면 기술적인 어려움이 본격적으로 기다리고 있다.

그 넓은 지역에서 정확한 시추공을 선정하는 것은 각종 첨단장비와 오랫동안 축적된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시추할 때도 수천m씩 파내려가기 때문에 방향이 조금만 달라도 결과는 엉뚱해진다.

아다광구에는 1억6천만배럴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가 연간 수입하는 총 원유가 8억배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은 양이 아니다. 이달 중 시추가 시작돼 한달 정도 지나면 유전의 존재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석유공사는 유전 발견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아다광구는 시작일 뿐이다. ‘대박’의 기대를 키우는 곳은 2004년 3월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카스피해 잠빌광구다. 잠빌광구는 최근 30년 동안 발견된 최대유전인 카샤간유전 바로 옆에 있는 광구로 추정 매장량은 10억배럴에 이른다.

우리측 지분이 27%이므로 단순 계산할 경우 2억7천만배럴이 우리 몫이다. 유가를 50달러로 계산할 때 13조5천억원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다음달이면 본계약을 맺고 늦어도 내년이면 본격적인 탐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다음달 본계약 맺어-

잠빌광구에는 석유공사와 SK(주), 삼성물산, LG상사, 대성산업 등 5개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하고 있다. 2002년 3월 컨소시엄을 구성해 진출한지 4년 만이다. 의지할 데 없던 ‘맨땅’ 카자흐스탄에서 잠빌광구를 확보하는 데는 주재원들의 피말리는 노력도 노력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방문(2004년 9월)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활발한 추가 투자=석유공사는 서부 텡기즈 유전과 가까운 지역에 있는 주반탐 광구를 비롯해 아티라우와 악토베 인근 지역에서 나오고 있는 신규 광구 매입에 관심을 갖고 있다. 독자적으로 진출한 세림제지는 아다광구 북쪽에 자리잡은 웨스트보조바, 사크라마바스 광구에서 시추작업을 진행중이다. 아직 구체적인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위험률은 높지 않다는 것이 현지의 평가다.

SK(주)도 지난해 초 지사를 개설하고 신규 광구 개발을 위해 뛰고 있다. 황인구 지사장은 “서북부 지역의 육상유전 지분 매입을 검토중”이라면서 “올 하반기쯤이면 계획이 구체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진출과 투자가 늘었지만 아직 성공을 장담하기는 이르다. 세계적인 메이저업체인 프랑스 토탈, 스페인의 렙솔도 진출한 지는 오래됐지만 성공적이라고 할 만한 뾰족한 프로젝트가 없는 실정이다.

유전개발 자체도 힘든 일이지만 카자흐스탄 정부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움직임도 걱정거리다.

99년 카자흐스탄에 진출한 루마니아와 오스트리아 합작 석유회사 타즈불라트의 보리스 무잔스키 부사장은 “미개발 유전을 과대 포장해 외국업체에 무리한 부담을 요구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고 있다”면서 “물론 기회가 많긴 하지만 철저한 조사와 리스크관리는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악토베·알마티(카자흐스탄)|글·사진=박경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