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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에너지가 미래다]1. 세계는 자원 전쟁중

국제 원유값이 배럴당 80달러 선에 육박하며 100달러선마저 위협하고 있다. 최근 중남미 일부 국가의 자원 국유화 바람은 세계적인 자원확보 전쟁의 서막이나 다름없다. 천연자원은 단순한 가격이나 수요·공급 차원을 넘어 미래 국가안보와 생존권이 걸린 ‘무기’로 부상하고 있다. 세계 주요국 정상들이 직접 해외로 나가 자원외교를 벌이는 것도 에너지 확보 없이는 국가 미래가 없다는 방증이다. 경향신문은 2개월여의 외국 현지 취재와 전문가 분석을 통해 세계 각국의 자원 확보전과 우리의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5회에 걸쳐 싣는다.
지난달 18일 카자흐스탄 아티라우에서 석유를 실은 열차가 러시아 아스트라한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인근에 유전지대가 밀집한 아티라우는 카자흐스탄의 다른 지역과 러시아 곳곳으로 석유를 실어나르는 철로가 시 외곽을 둘러싸고 있다. /박경은기자

카스피해 연안에 자리잡은 카자흐스탄 서북부의 작은 도시 아티라우. 비행기 1대가 겨우 뜨고 내리는 작은 공항을 빠져 나오자 강한 바람을 타고 누런 흙먼지가 얼굴 위로 쏟아진다. 낙타떼와 멀리서 움직이는 흑갈색의 석유수송열차를 제외하고는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건 온통 끝없이 메마른 땅뿐이다. 그렇게 20여분을 달렸을까. 비로소 3~4층짜리 건물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석유의 수도 아티라우=카스피해로 흐르는 우랄강이 좌우를 가르는 인구 25만명의 도시 아티라우. 철갑상어를 잡는 어부들이 모여 살던 이곳엔 카자흐스탄 최대 국영석유회사인 카즈무나이가스를 비롯해 쉘, 엑손모빌, 쉐브론텍사코, ENI, BP, 토털, 렙솔 등 세계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모여 있다. 구소련 붕괴 이후 석유의 바다라는 카스피해가 서방국가에 개방되면서 이곳은 세계에서 ‘돈’과 ‘야망’이 몰려드는 코스모폴리탄 도시로 변했다.

-‘석유 도시’ 아티라우 외제車 즐비-

카자흐스탄 원유 하루 생산량의 21%를 차지하는 대형 유전 텡기즈를 옆에 끼고 있는 아티라우 중심부에는 카스피해 석유 개발의 상징격인 텡기즈셰브로일 본사가 자리잡고 있다. 1993년 서방기업 중 최초로 카자흐스탄에 진출한 쉐브론 텍사코와 카자흐스탄 정부가 합작해 만든 회사다. 99년 세계 최대인 매장량 1백억배럴짜리 카샤간 유전이 발견되면서 카스피해는 일약 세계의 석유 중심지로 떠올랐고 아티라우에는 ‘석유의 수도’라는 별명이 붙었다.

미국 에너지 정보청의 평가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의 석유 확인 매장량은 3백96억배럴로 세계 8위. 특히 자원의 보고인 카스피해 일대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육박하는 2천4백억배럴의 원유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몇 년 전만해도 구소련제 모스코비치, 지글리 택시 일색이던 아티라우의 도로는 이제 외제 고급차가 즐비하다.

아티라우의 석유개발 100주년을 기념해 우랄강변에 세워진 이탈리아계 렌크호텔은 “수도꼭지에도 금장식이 돼 있다”는 소문이 나 있을 정도로 비싸지만 밀려드는 비즈니스맨들 때문에 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이곳에서 40년을 살았다는 고려인협회장 마리아 니콜라예브나씨는 “10년 전부터 외국 회사들이 들어오면서 2~3년 전부터는 도시 모습도 본격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몰려 오는 중국=아티라우엔 최근 중국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알마티에서 아티라우로 향하는 비행기에도 절반이 중국인이었을 정도다. 카자흐스탄 북서부 지역 악토베는 사실상 중국땅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중국 국영 석유회사인 CNPC가 9억배럴 규모의 켄키악·자나졸 유전을 확보해 석유생산을 하고 있다.

-中야심에 印가세 가격경쟁 부채질-

요즘 카자흐스탄에서 중국은 ‘악명’이 자자하다. 지난해에는 카자흐스탄 중부의 대형 유전을 보유하고 있는 페트로카자흐스탄을 42억달러에 인수해 경쟁업체를 경악케 했다. 석유메이저 회사들은 “중국이 물을 흐리고 있다”면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카스피해에 접한 항구도시 악타우 인근의 카라잔바스 유전만 해도 그렇다. 2003년 우리나라 석유공사가 한때 지분 매입을 검토했지만 8억달러에 이르는 가격 때문에 망설였던 곳을 중국이 20억달러에 덥석 사들였다. 또 카스피해의 다르칸유전 운영권도 스페인 렙솔이 차지하는가 싶었지만 결국 높은 값을 부른 CNPC 쪽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뿐만 아니다. 카자흐스탄 동부와 국경이 맞붙은 중국은 카자흐스탄 중부 아타수에서 중국 서부 알라산카우 사이를 연결하는 998㎞의 송유관을 지난해 완공했다. 카자흐스탄 중부 쿵콜 유전에서 생산돼 송유관을 타고 중국으로 넘어온 원유는 중국 신장지역 정유공장에서 정제된다.

중국의 야심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미 북서부 악토베 인근의 켄키악, 자나졸 유전지대와 카스피해에 접한 아티라우까지 연결된 467㎞의 송유관을 통해 석유를 서방으로 수출하고 있는 중국은 켄키악에서 아타수까지 연결되는 송유관 건설을 추진 중이다. 최근엔 인도 국영석유회사인 onGO도 가세해 가격경쟁을 부채질하고 있다.

〈아티라우·악토베(카자흐스탄)|박경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