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30일 아마도 세계 방송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만한 일이 영국에서 있었습니다. 영국 공영방송 BBC가 신청한 ‘새로운 온 디맨드 서비스(new on-demand service) ’에 대해, BBC트러스트가 최종적으로 승인을 내준 것입니다.(BBC트러스트는 영국의 시청자를 대표하여 BBC 경영과 정책을 감독하는 기구입니다.) 저는 BBC트러스트의 이번 결정에 앞서 나름대로 비상한 관심을 갖고 BBC가 준비하는 온 디맨드 서비스를 주목해왔습니다. 인터넷을 이용한 ‘주문형서비스’는 흔한 것이지만, BBC가 머지않아 내놓을 주문형서비스는 향후 시장에서 상당히 파괴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부터 시간이 나는 대로 BBC의 뉴미디어 정책과 관련해 제가 아는 대로 정리해 글을 올리고자 합니다. BBC 온디맨드 서비스의 내용을 설명하기에 앞서, BBC의 뉴미디어 전략을 진두지휘하는 마크 톰슨 총괄 사장과 애슐리 하이필드 미래미디어/기술 부문 이사가 BBC트러스트의 결정에 대해 밝힌 성명의 내용을 인용할까 합니다. BBC트러스트의 승인에 대한 이 두 사람의 반응은 ‘호들갑’에 가깝습니다. 그 만큼 학수고대했던 결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결정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새로운 온디맨드 서비스 제안이야말로 BBC의 ‘창조적 미래’ 계획의 핵심이기 때문이다.”(마크 톰슨) (‘창조적 미래’는 BBC가 2006년4월25일 발표한 오는 2012년까지의 미래 비전으로, BBC는 이 비전을 통해 ‘비욘드 브로드캐스트’를 주창했습니다.) “우리는 기술과 시청자들의 기대에 있어서 일찍이 예측하지 못했던 수준의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시청습관이 선형(linear)에서 주문형(on-demand)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이번 결정은 BBC가 이 세상에서의 영향력과 관련성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것이다.”(애슐리 하이필드) 그렇다면, 도대체 BBC가 제안한 ‘새로운 온디맨드 서비스’는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BBC의 TV와 라이오 채널을 통해 방송되는 콘텐츠를 영국에서 무료로 광고 없이 인터넷으로 다운로드받아 PC로 즐길 수 있게 해주겠다는 계획입니다.(영국 밖에서는 돈을 내야 합니다.) 국가로부터 할양받은 주파수를 이용한 실시간 방송서비스는 기본이고, 인터넷을 통한 다운로드서비스를 BBC의 전 프로그램으로 확장하겠다는 것이니, 이는 방송서비스 분야에서 실로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KBC가 “이제 KBS TV와 라디오프로그램을 인터넷에서 무료로 다운로드받아 언제든지 아무 때나 시청하도록 하겠습니다”고 선언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방송에서의 ‘편성’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며, 국민들은 굳이 TV가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공영방송의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BBC트러스트의 이번 승인 결정은 예고됐던 일입니다. BBC트러스트는 지난 1월31일 BBC가 BBC아이플레이어(BBC iPlyer)라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새로운 주문형 서비스에 대해 잠정적으로 승인을 결정했습니다. (사실 이 뉴스는 방송역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대목이지만, 국내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군요). 이와 관련하여 BBC는 일찍이 3년 전부터 BBC 아이플레이어를 개발하면서 ‘다운로드방식의 온디맨드 서비스’를 준비해왔습니다. BBCiPlayer는 http://www.vimeo.com/clip:176866 에서 구경하시기 바랍니다. 당초 BBC가 BBC트러스트에 신청했던 온디맨드 서비스는 다음의 4가지입니다. 1.방영 후 1주일 동안 TV프로그램을 인터넷으로 볼 수 있게 한다. 2.인터넷으로도 동시에 방송한다.(생방송을 스트리밍함) 3.인터넷에 제공하는 오디오에는 DRM을 적용하지 않는다. 4.방영 후 1주일 동안 TV프로그램을 케이블로 볼 수 있게 한다. 위 4가지 중에서 3가지는 BBC홈페이지(bbc.co.uk)를 통해 제공될 비디오와 오디오 프로그램을 BBC iPlayer라는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으로 시청하는 것과 관계된 것입니다. BBC트러스트는 BBC의 이 같은 온디맨드 서비스 계획을 승인함에 앞서, 시장에 미칠 파급력(the Market Impact Assessment)과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도(Public Value Assessment)를 측정한 뒤, BBC 신청을 일부 수정하여 승인을 하였습니다. BBC트러스트가 수정해 승인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Seven-day TV catch-up over the internet
Simulcast TV over the internet
Non-digital rights management 이 같은 BBC트러스트의 조건부 승인에 대해, 마크 톰슨 총괄 사장은 일부 섭섭함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클래식 음악의 경우 다운로드받아 들을 수 있게 해도 시장에 미칠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주장입니다만, 음반업계도 먹고 살아야하는 점을 감안하면 BBC의 욕심이 끝이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찌되었든, 이제 BBC는 더 이상 방송사라고 지칭하기가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일부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영국 국민들은 BBC 프로그램을 언제든지 인터넷으로 보고 들을 수 있게 됨으로써, 굳이 BBC를 보기 위해 TV앞에 앉아있을 이유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비욘드 브로드캐스트’를 외치면서,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장치(Anytime, Anywhere, Any Device)'로 BBC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게 하겠다는 창조적 미래 전략이 이제 비로소 실현의 단계에 들어선 것입니다. BBCi플레이어는 DRM 적용과 관련한 기술적 과제(플랫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애플, 리눅스 버전도 만들어야 하는 과제)만 해결되면, 곧바로 bbc.co.uk 사이트를 통해 선을 보일 것입니다. BBC는 BBCi플레이어를 통해 BBC 시청행태의 혁명적 변화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방송사(BBC)가 틀어주는 대로 편성시간에 맞춰 TV와 라디오를 시청하게 했던 전통적 미디어 서비스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시청자 본위의 ‘넌리니어(비선형, non-linear)’의 주문형 서비스 시대를 열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애슐리 하이필드가 제시한 BBC 뉴미디어 전략의 요체 ‘Distribute or Die'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하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소개하겠습니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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