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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르 드 몽블랑

뚜르 드 몽블랑 (TOUR DU MONT BLANC)10- 3일차(낭 보랑 산장)

 

 샤모니 가이드가 말한 시간보다는 조금 더 걸었다.

다만 무릎에 무리가 올 때 쯤, 꽤 큰 폭포에서 즉, Combe Noire에 도착했다.

 이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를 두고 그냥 갈 수 없는 일.

광명의 여대장 성은숙 여사와 한때 히말라야를 주름 잡았던 전문 알피니스트 남대장님이

시원하게 한 컷 남긴다.

 산악계의 원로분들도 내리막 길에 시달린 다리를 식히고 계신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분들도 계신다.

한 때 산에 미쳐 종횡무진하던 광명의 이재흥 선배나 남극까지 다녀오신 열혈 한만수 경기도산악연맹부회장께서도 땀이 식어 오싹해질 때까지 그늘에서 꼼짝을 안하신다.

 하긴 저 꼭대기에서 2시간 여를 미끄러지듯  휩쓸려 내려왔으니 무릎은 물론 하체가 전반적으로

열 받아 있음은 사실아니던가. 

트레 라 떼뜨 빙하(Glacier de Tré la Tête) 물소리를 뒤로 하고 숙소로 향한다.

 해발 1,459m에 위치한 낭보랑 산장(chalet de Nant Borrand)에 도착.

 프랑스의 전통 샬레식으로 지어진 이 산장은 1842년에 지어진 유서 깊은 곳이다.

산장주인은, 옛날에는 건물이 3동으로 지금보다 훨씬 컸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부속건물들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지고 지금 산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건물은 당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었다.

 화분이 걸린 이중창과 가옥의 3면의  바깥벽을 따라 길게 연장되어 지어진 베란다는 나무와 고유의 문양으로

만들어 품격과 분위기를 더해 준다.

 내부는 사실 비좁다. 이것이 8인형 도미토리다. 물론 자연과 벗하는데 무슨 호의호식을 기대하겠는가?

하긴 이마저도 오래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잘 수 없을 정도다.

알프스를 둘러 싼 유럽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북한산가듯이 뚜르 드 몽블랑을 한다.

트레커들은 사계절 넘치고 숙소는 한정되어 있고...

트레킹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이런 환경까지 고민해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되는 구조다.

알프스에는 인위적으로 커다란 호텔 등의 숙박시설을 만들지 않았다.

편의시설을 만들기보다 가능하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전하는 것을 더 큰 가치로 여기는 문화 탓일 것이다.

 신발을 벗으니 세상 날아갈 것 같은 행복감이 밀려든다.

하루종일 등산화에 갇힌 발은 조금 부은 듯도 하고 , 서늘한 알프스의 바람이 스치자 찌리리~하기도 하다.

 

 한왕용대장의 발도 남상익대장의 발도 모두 구름 위를 떠다니듯 낭보랑 산장 주변에서 깊은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렇게 자연과 함께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이, 가운데 방에서는 급하게 소주 한잔씩 돌리고 있다.

날짜는 점점 앞으로 가고, 소주는 점점 떨어지고... 소주는 프랑스 와인보다 귀하고 품귀현상이다.

정고문께서 마지막 남은 소주병을 뜯어 일순배하던 순간인데 모두 행복해 한다.

물론 나도 그 행복에 동참했음은 물론이다.

 밖에서는 광명의 이재흥 선배가 결국은 산장 주인으로부터 집에서 담궜다는 야생화술을 한병 얻어냈다.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한왕용대장을 소개하자. 깜짝 놀란 주인이 방문사례로 술을 한병 내놓은 것이다.

알프스에서 나는 야생화를 이용해서 만든 술이라는 말에 모두 한잔씩 들어본다.

보드카를 사용한 술이라 기본적으로 독했지만 향긋하고 뒷맛이 괜찮다.

 가이드 중에 한명인 파트리샤 고르비예의 남편이 방문을 했다.

전통가옥인 샬레를 설계하고 만드는 사람이라는데 핸섬하고 친절하다.

아내의 새등산화가 발에 맞지 않아 고생하자 샤모니에서 신발을 가져 온 것이다.

조금은 무뚝뚝한 파트리샤도 함박웃음을 짓는다.

 이 여자, 베르나뎃뜨 쥬쿨롱비예.

40대인 이 아주머니 밖에서 텐크치고 혼자 자겠다고 준비 중이다.

이 깊은 산속에서 혼자 춥지 않겠느냐 했더니, 씩 웃으며 걱정하지 말란다.

 씻고 닦고 짐정리하고...그 사이 예의 와인전문가 김종선사장께서 다양한 시음테스트를 거쳐 통과한

로컬 와인이 오늘 저녁식탁에 올라왔다.

와인은 생각보다 싸지 않다. 한병에 30~35유로(1euro=약 1,800원)한다.

그래서 먹고 취할 수 없다.

 조금 느끼하고 뻑뻑한 프랑스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려면 와인이 그저 윤활유가 될 수 밖에 없다.

식사시간도 무르익어 가고.

 멀리 샤모니쪽 하늘부터 불게 물든 밤도 무르익어 간다.

요즘 유럽은 밤 10시 쯤 되어야 캄캄해진다. 하절기에 그만큼 해가 늦게 떨어진다.

어스름이 확 밀려오자 몽블랑에 머물던 한기도 스물스물 산아래로 내려 온다.

1인용 텐트에서 혼자 자겠다던 가이드 베르나뎃뜨가 걱정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