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 라 떼뜨 산장(refuge de Tré la Tête, 1970m)은 트레커들의 그늘막 역할도 하지만
생명수 같은 역할도 한다.
오늘 코스 중에 유일하게 물을 먹고 채울 수 있는 곳이다.
알프스의 맑고 정갈한 천연빙수를 무료로 마음껏 먹을 수 있는 행운은 트레커들에게는 축복인 셈이다.
광명의 이재흥 선배도 틈만 나면 병아리 물 먹듯이 한모금씩 먹고 간다.
하긴 나도 몇번을 먹었는지 모른다. 알프스 빙하 물은 시원하다 못해 진저리가 날 정도지만
그 물이 식도로 넘어갈 때 왠지 특별한 무엇을 먹은 듯 불끈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이다.ㅎㅎㅎ
알프스는 자유롭다. 그리고 또 자유롭다.
산행에 지친 트레커들이 짐들을 풀어 놓고 어딘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과 함께 이 산장을 방문한 배낭과 스틱도 산장 벽 뒤에서 따뜻한 오수를 즐기고 있다.
역시 성은숙 여사님의 꼼꼼함이란...
모두가 초행길이라 가끔은 우리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지 모를 경우가 종종 있었다.
기억을 정확히 하고자 남들이 쉴 때도 지명과 주변 상황을 메모하고 있다.
무릎이 안좋다는 전재현 사장님이 모처럼 명랑한 휴식을 하고 있다.
좋은 사람과의 산행은 그래서 좋은 것이다. 아픔도 있고 피곤함도 덜고, 그리고 행복해지기도 하고...
멀리 설산과 빙하가 휴식이 끝나면 가 볼 곳이다.
언덕 위를 살짝 갔다 온 광명의 송덕엽 선배가 눈을 크게 뜨고 "야, 멋있다. 가봐야겠는데"한다.
일부는 가지 않고 산장주변에서 더 쉬려던 계획을 접는다.
갔다가 다시 올 길이라 배낭은 놓고 가기로 한다.
밍기적 거리던 사람들도 모두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사진으로 보기에는 완만해 보이지만 저길도 사실 숨가쁘기는 마찬가지.
조금씩 다가가자 빙하도 보이고, 골짜기의 위용이 슬슬 실체를 드러낸다.
사실 우리는 이것이 비오나세이 빙하(Glacier des Bionnassay)인 줄 알았었다.
하지만 이것은 트레 라 떼뜨 빙하(Glacier des Tré la Tête) 하단부이다.
빙하가 작은 것 같지만 지도를 확인해 보니 사진 왼쪽의 산에 가려진 상단부가 훨씬 크고,
사진에 보이는 하단부도 흙먼지에 가려져 있지만 모두 빙하가 맞다.
그 밑으로는 빙하 녹은 물소리가 굉음 수준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알프스의 빙하군도 몇 년전에 비해 많이 후퇴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긴 트레 라 떼뜨 빙하(Glacier des Tré la Tête)처럼 山群의 안쪽에 위치하고 비교적 좁은 계곡의 빙하는 아직도 그 꼬리가 길지만 山群의 바깥쪽에 위치한 빙하의 꼬리는 거의 반이 잘려
보기에도 안좋게 된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내가 촬영하는 동안 트라이포드를 책임지고 날라주고, 촬영 중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묵묵히
나의 안전을 지켜주는 이재흥 선배의 배려는 나중에야 이 사진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감사~
트레 라 떼뜨 빙하(Glacier des Tré la Tête)를 보는 것을 끝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달콤한 낭 보랑 산장(chalet de Nant Borrand)에 도착 할 수 있다.
아쉬움을 대신하고자 샤모니 가이드인 파트리샤와 기념사진을 찍는다.
사진 오른쪽에 희미하게 보이는 오솔길까지 내려가야 한다.
그 위로 삐쭉 솟은 산이 내일 가야 할 봉노므 콜(Col du Bonhomme).
아, 한숨이 절로 난다.
몽블랑 산군은 경사가 급하기 때문에 오르는 것도 힘이 들지만 내려가는 것도 힘이 든다.
2시간 여를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지그재그하여 내려 간다.
날씨도 조금 흐려지기 시작하여 몽블랑산군도 안개에 갇히기 시작한다.
이럴 때나 저럴 때나 표정 변화없이 묵묵히 길을 안내하고 앞장 서는 이는 샤모니가이드의 리더
베르나뎃뜨.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안심을 시켜준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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