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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a trekking

[스크랩] 10-샤모니에서 알프스 트레킹

 

  

                            블레방트 능선에서 바라 본 몽블랑과 보송빙하

 

      네바는  이 년전 한번 와 본 경험이 있어 낯설지 않았다. 샤모니로 가는 기차는 오비브역에서 타게 된다. 아침 일찍 기차를 타야 하므로 미리 역까지 답사도 할 겸 몽블랑 거리로 나왔다. 변함없이 사람은 많고 호숫가의 놀이 기구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잘도 돌고 있다.
 역은 생각보다 멀어 30분이나 걸렸다. 지도상으로는 15분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는데 미리 가보지 않았다면 아침에 허둥댈 뻔했다. 성수기인 여름에는 운행 편 수도 많았고, 중간에 세 번씩이나 갈아타지 않고 St.Lapayet역에서 한번만 갈아타면 바로 샤모니까지 가는 기차도 있었다. 시간표를 보니 서둘렀으면 오늘 제네바에 묵지 않고 바로 샤모니로 갈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좀 아싑기도 했다.

 

    랜 기차여행으로 싸인 피곤은  침대에서 미적거리게 했고  결국은 기차시간 5분 전에야 땀을 뻘뻘 흘리며 역에 도착하였다.
 라파예트역에서 기차를 갈아 타자 오른쪽 차창으로 몽블랑에서 흘러 내리는 거대한 보쏭 빙하는 알프스의 대자연에 순식간에 빠져들게 한다.

    드디어 스톡홀름에서 이틀만에 알프스의 최고봉이 있는  등반의 중심지 샤모니(1035m)에 도착한 것이다. 흰 산과 침봉이 에워싸고 있는 등반의 메카 샤모니!  이름만으로도 가슴 설레게 하는 곳, 지금 그곳에 나는 온 것이다.  잘 꾸려진 배낭에는 자일과 피켈이 빛나고 비브람(동계 등반용 신발)을 신은 등산가들로 역과 거리는 넘쳐 흐르고 나는 어디에서 나오는 힘인지 불근불끈 생기가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한국등반대와 친숙한 '티티네 집'의 정식 이름은 샤모니아드 호텔이었다. 4명이 사용하는 침실에 다행히도 마지막 손님으로 체크인 할 수 있었다. 샤모니는 여름 한 철동안 세계 각지에서 거의 10만명이 찾아오는 이름 난 관광지로 숙소를 잡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거실에는 온통 한국 등반대가 다녀갔음을 보여주는 포스터와 기념패들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하이킹코스를 알아보기 위해 찾아간 안내소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한참을 기다려도 접근이 불가능하였다. 서양사람들은 차례가 되면 남 상관없이 자기의 볼일을  만족하게 끝까지 알아보는 것이 권리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 처지부터 생각하다 보니 뒤에 사람이 많이 서서 기다리면 급한 불만 끄고 뒷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마음이 편하다. 합리성과 인정이 잘 조화되면 가장 이상적이겠는데…


    알프스 하이킹 지도를 하나 사 무작정 몽블랑이 건너다 보이는 산사면을 따라 걸어 보았다. 그 길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은 '블레방트'로 가는 길이다.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Mont Blanc, 4807m)과 보쏭빙하 첨봉 에규 디 미디(Aigu du Midi, 3842m)를 왼편에 두고 걷는 오른편 사면에는 산 딸기가 한없이 열려있다. 친구가 되어 같이 올라가던, 이탈리아에서 온 단체 팀은 힘들다며 되돌아가고 나는 산 딸기를 친구 삼아 환상적인 파노라마를 즐기며 걷는다.


   중간에 나타난 메레트(1562m)에는 동물원과 넓은 잔디밭이 있었다. 나는 계속 Brevent봉(2525m)으로 올라가는 길로 접어 들었다. 나이 드신 어른들이 경쾌한 발걸음으로 내려 오신다. 그들은 나이 때문에 어른 흉내를 내야 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늦어져 중간에 돌아서야 했다.  오후 내내 1000m에 위치한 빙하의 협곡 샤모니마을과 5000m을 바라보는 몽블랑의 산군(山群)을  멀찍이 떨어져 한 곳에서, 한 눈으로, 한 가슴에 담았다는 것만으로 만족해 하고, 정상을 밟지 않아도 흡족해 한다면, 안일한 만족이라고 할까?


    내려가는 길이 지겹도록 계속되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한참을 올라갔나 보다. 샤모니에서보다 오히려 한 정거장 전인 Les Bosson지역으로 내려가는 사람도 많고 올라오는 사람도 많다.그래서 하산코스를 바꾸어 Les Gallened지역으로 내려오니 연습 암장에서 남녀노소 가릴 것없이 록크라이밍(Rock climing)을 즐기고 있다.


    한참을 앉아 바라다 보니 나의 옛 시절이 생각났다. 주말이면 무엇에 이끌리듯 배낭을 꾸려 오르던 인수봉 자락!  내 젊은 날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던 인수봉은 지금도 나의 설레임의 대상이다. 단지 변한 것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다 보고만 있다는 것!
 금방 나타날 것이라 생각한 샤모니는 한참 후에야 우체국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게 되었고 곧 이어 등산 장비점이 죽 늘어서 있는게 보였다. 자일과 아이젠과 피켈과 헴머와 그리고 배낭들… 샤모니의 중심에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흡족하다.

   티티네 집에는 알프스의 3대 북벽 중 하나인 그랑조라스(Grandes Jorasses, 4208m)를 오르기  위해  전주 산악회의 등반대가 와 있었다.
 3대 북벽은 그랑조라스 이외에 인터라켄에서 오를 수 있는 아이거(Eiger), 그리고 체르마트에서 바라다 보이는 피라미드 모양의 마터호른(Marterhorn)을 일컫는 것이다. 알프스에서 몽블랑(4807m)이 고도로는 제일 높지만 등반의 난이도는 3대북벽이 가장 어려운 코스로 알려져 있다.

 

    젊음을 오직 산과 함께 하면서 마지막으로  꿈꾸었던 아이거 등반을 끝내 성공하지 못한 산 선배가 생각났다. 그렇게 어렵게 느껴졌던 북 벽도 이제 간단하게 짐 꾸리고 와 조용히 성공하고 돌아간다. 이제 우리에게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등반은 가치를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북벽은 오랜 동안 많은 사람에게  환상의 바위와 얼음으로 존재했었지만 지금은 스스로의 성취감을 위하여 오르는 도전장이며 충분히 극복되어질 수 있는 자기 극복의 시험대인 것이다.

 

                 알프스의 설원


    몽블랑을 향해 오르는  에규 디 미디(Aigu du Midi, 3842m)행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서는 미리 예약을 하든지 아니면 새벽부터 나와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자연에 설치된 인공조형물은 편리함을 주기는 하지만 언제나 사람이 붐벼 내 적성에는 맞지 않았으므로 그 유명한 케이블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관심권 밖에 밀려나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발디딜 틈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어 아우성을 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일찌감치 그들 속에서 나의 자리를 찾아보겠다는 투지는 사라지고 차라리 좀 한산하다는 이탈리아 쪽 쿠루메이유에서 올라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쿠르메이유행 버스 타는 곳은 점심 시간이라 문이 닫혔고 버스 시간도 어중간해 다음으로 밀렸다.

 

   획은 변경되어  산상호수 Lac Brac을 가보기로 했다. 굳이 한 곳을 고집하는 것은 샤모니에서는 바보나 하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고 싶은 곳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었다.
 Ensa(국립 스키학교)앞의 넓은 광장에는 5일마다 선다는 샤모니 장이 열리고 곰팡이 핀 치즈, 집에서 만든 각종 햄, 소세지, 바케트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관광객을 위한 임시 장터가 아니라 산골에 사는 이 지역 주민들에게  부식을 공급해주는 중요한 시장인 것이다.금방 리프트를 타는 곳이 나타날 줄 알았는데 땡볕에  가도가도(?) 도대체 나타나질 않아 지름길을 찾아가겠다고 들어간 길이 오히려 더 돌게 된 것 같다.


    40여분을 걸어 도착하니 리프트를 타는 곳은 La Plaz라는 다른 마을이었다. 마을 하나를 걸어서 온 것이다. 사람 많은 안내소에서 기다리며 물어보는 것도 힘들어 지도를 보며 혼자 찾아가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긴다.
리프트는 중간의 La Fregere역(1877m)에서 갈아타고 Index역(2595m)까지 오르게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Fregere에서 내려 바로 락블랑으로 올라가기도 한다. 종점 Index에 내려서면 잔설이 남아 있는 허허벌판에 바람만 쌩쌩 불어 알프스의 찬 바람을 실감나게 한다.

 
   눈을 밟으며 락블랑으로 향했다. 빙하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샤모니의 협곡 건너편에는  메르데 빙하 위로 드류봉(Aigu du Dru, 3754m)이 솟아 있는 환상의 길을 옆으로 하고 걷게 된다. 알프스의 야생화는 빠질세라 아름다움의 자리에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그런 길을 2시간 30분을 걸어  도착한 락블랑(Lac Blanc, 2352m)에는 두 개의 큰 빙하호와 산장이 있다. 호수 맞은편에 솟아 있는 산 위로 자일을 어깨에 두르고 오르는 등산가가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보이곤 한다.


    호수 주위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눈 산을 시녀처럼 드리운 락 불랑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4시쯤 구름이 몰려와 삽시간에 모든 것을 구름 속으로 감춘다.  당황하는 사람들의 부산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고 잠시 후 구름이 걷히자 사람들은 언제 빠져나갔는지 거짓말처럼 호수 주변에서 사라져 버리고 자연의 평화로움과 조용함만 남게 되었다. 그렇게 한 번씩 사람 청소를 하나보다. 올라갈 때는 보지 못했지만 1시간 걸려 바로 내려온 Fregere역에도 큰 산장이 있다.
 Plaz마을에서 Arve강을 따라 샤모니로 내려오니 금방이다. 아르브강은 폭은 좁지만 빙하 녹은 물이 거칠게 흐르며 여름의 열기를 식힌다.

 

    늘은 그랑드 조라스를 보러 가는 날!  메르데 빙하가 있는 몽텐블로행 기차를 타러 갔다. 가파른 산사면에 메르데 빙하의 옆을 따라  인간의 편리를 위해 억지로 설치된 철로를 따라 운행되고 있는 기차를 타고 역에 도착하면  메르데빙하의 건너편에는 드류 북벽이 칼날같이 솟아있고 저 멀리 아스라히 그랑조라스가 건너다 보인다.


    빙하에서 내려오는 등산가들도 꽤 많았다. 고생스러웠는지 옷차림은 지저분하고 얼굴은 초췌해 보였지만 환한게 빛나는 그들이 부럽기만 했다. 그들이 바라던, 산 위에 올라 맛보았을 희열을 생각하며…  메르데 빙하를 올라서 몽블랑이 있는 북쪽으로 난 산길은 Nord Terrace라 불려지며 어제 걸었던 반대편의 락블랑 산능이 협곡에 들어선 샤모니 마을을 밑에 떨구고 오른편으로 펼쳐진다.


     메르데 빙하에서 몽블랑쪽으로 가기 위해 올라야 하는 Signal로 가는 경사면을 1시간 힘겹게 올라서 뒤돌아 보니 드류북벽이 바로 손아래 잡힌다. 저 멀리 그랑조라스도 보이긴 하나 햇빛의 반사광으로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아 좀 아쉬웠다.  그 다음부터는 경사가 밋밋한 산길을 콧노래를 부르며 갈 수 있지만 수목한계선을 벗어난 능선 길은 나무하나 보이지 않는다. 한낮의 햇볕은 너무 뜨거워 일사병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미련하게 그 햇볕을 감당하며 산을 오르는 사람은 나 말고 한 명이 더 있었다. 미처 점심 준비도 못해왔는데 중간에 쉼터 도 한 곳 없었다.


    1시간 정도를 그렇게 가면 산장과 케이블카를 탈 수 있는 길과 마을로 바로 내려가는 길로 갈라지게 된다. 나는 고꾸라질 듯 가파른 지그재그의 길을 두 시간동안 허겁지겁 내려왔다. 식당에 앉아 내가 미련스럽게(?) 올랐던 산을 바라보며  배를 두드리며 저녁을 먹었다.


    샤모니는 일요일도 없다. 여름은 내내 열기로 가득 차 있나 보다. 거리에는 장비를 갖춘 산악인이 등반을 마치고 마른 목을 맥주로 적시고 있다. 눈에 검게 탄 얼굴과 부르턴 입술, 후줄근한  차림새이지만 그의 눈은 뚫을 듯한 시선으로 흰 산을 향하고 있다.  저녁에는 한줄기 소나기가 시원하게 쏟아지고 창으로 알프스가 물안개에 젖어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오늘은 어쩐지 투숙한 사람도 적어 조용하기만 하다.


    비를 뿌리고 난 후의 깨끗한 산은 더욱 신성한 모습으로 저 멀리 나타나고 샤모니를 떠나야 하는 나를 더욱 아쉽게 만든다. 알프스로 내려오니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 욕심만 앞선다.
 석회암의 암봉이 300Km에 걸쳐 장미의 화원을 이루는 동부 알프스의 '돌로미테'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감동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해 준 오스트리아의 '티롤'도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 산이 그 산일진대 굳이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나는 아직도 여행의 풋나기라 어쩔수 없는 것인가! 그저 마음만 바쁘게 움직인다. 어차피 돌아가는 비행기를 비엔나에서 타야하므로 가는 도중에 돌로미테와 티롤을 들를 수 있는 계획을 무리하게 짜 보았다.

 

  

 

 

 

출처 : 진샘의 산과 여행이야기
글쓴이 : chomor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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