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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와 나

[헬로! 티베트 7편] 티베트로 가는 길

웨이하이를 출발하여 3일 만에 도착한 칭하이성의 성도 시닝(西寧). 이름만 들어도 시원한 느낌이 나는 도시다.

분지에 형성된 도시로, 티베트족(藏族), 회족(回族), 몽골족(蒙古族), 만주족(滿洲族) 등 35개의 소수민족이 한족(漢族)과 함께 사는 인종 전시장이다. 이 땅의 주인이 그만큼 많이 바뀌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요즘은 칭하이⇔티베트 길을 다니는 외국여행객들의 출발지로 변모했다. 버려진 골짜기에 자리한 역사만큼 우울했던 시닝이 요즘 한창 활기를 띠고 있다.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고층건물과 대형 슈퍼마켓, 아파트들이 들어서며 제법 대도시의 형태를 갖추었고, 예외 없이 파고드는 현대화의 바람 때문인지 이 고원의 사람들도 세련되고 여유로워 보인다.

 

시닝 전시탑에서 본 전경

 

우리나라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이 시닝에 우리의 관심을 끌만한 이야기가 있다.

당나라가 변방을 경계할 목적으로 건설한 시닝은 군사요새이자 무역중심지였다.

이곳을 당나라 서부의 국경을 지키는 요새도시로 건설한 인물이 다름 아닌 백제(百濟)의 유장(遺將) 흑치상지(黑齒常之)라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는 본래 백제의 장군이었다. 백제가 망하자 백제 부흥운동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당나라에 투항, 당나라의 장수로 살면서 수많은 전투에서 빛나는 전공(戰功)을 세운다.

토번국(지금의 티베트)과 국경을 맞댄 당나라(唐)는 서기 699년 장수 설인귀(薛仁貴)를 앞세워 토번(吐藩, 티베트)을 토벌하려했으나 오히려 칭하이(靑海)의 대비천(大非川)에서 10만 대군이 전멸을 당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후 수차례 전투에서도 대패하자 측천무후가 발탁한 흑치상지장군이 토번국과 전투에서 연전연승하는 전공을 세워 하원도경략부사(河源道經略副使)로 중용되었다. 하원도(河源道)는 지금의 칭하이성이니 그는 즉 칭하이성 총사령관이었던 셈이다.

흑치상지 장군 재임 7년 동안 토번은 감히 당의 서쪽 변경을 침략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칭하이성(靑海省)의 성도 시닝(西寧)을 찾은 것은 티베트로 가기 위함이다. 시닝은 티베트로 가는 스타트 포인트다.

티베트고원으로 들어가거나, 신장성으로 넘어가는 실크로드 남로(南路)의 관문이기도 했다.

지금은 란칭(蘭靑:란저우⇔칭하이)철도와 칭짱(靑藏)철도가 지나며 티베트 라싸(拉薩)에 이르는 칭짱꽁루(靑藏公路)의 기점이다. 그래서 불원천리 이곳을 찾은 이유다.
첫 목적지는 마둬(瑪多). 해발 4천200m의 고원지대다. 해발 2천300m 정도인 시닝보다 무려 1천900m가 높은 곳이어서 고산증이 걱정된다.

시닝에서 차이다무분지(柴達木盆地) 남단에 있는 거얼무(格尔木)를 통해 티베트로 가는 것이 보통이다. 거얼무는, 20세기 후반에 개발된 신흥도시로, 지금은 칭짱고원에서 교통과 공업의 중심지로서, 시닝과 라싸에 이어지는 제3의 도시다. 새로이 개통된 칭짱철도, 칭짱꽁루도 이곳을 지난다.

우리는 좀 더 티베트의 내밀한 곳을 보고 싶어서 칭하이호 남단 길따라 동부 내륙지역인 위수, 참도(昌都-티베트의 동쪽 끝 지역)로 가는 길을 잡았다.

 

황하의 상류지역. 사진 뒤에 보이는 바옌카라산맥에서 발원한다

 

시닝(西寧)에서 국도를 따라 30분 정도 달려 시내를 벗어난다. 들판에는 이미 추수를 끝낸 볏단들이 곱게 서있고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비는 해발 3천 미터 높이의 유목지역으로 넘어서자마자 눈으로 변한다.

이렇게 높은 고지대에서는 변화무상한 날씨변화를 차라리 즐길 수밖에 없다.

가끔 야크나 양떼들이 도로를 점령하고 있어 시간을 지체하기도 하지만 광활한 초원지대의 아름다움에 탄성이 흘러나온다.

르웨(日月)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시닝과 라싸를 잇는 칭짱꽁루(靑藏公路)를 타고 시닝에서 170킬로미터를 가면 황위엔현(湟源縣)에 닿는다.

황위엔현은 고원의 유목민과 칭하이(靑海) 지방의 티베트 족을 이어주던 연결지로서 사통팔달의 요충지였다. 칭하이성에서 티베트로 가는 길목이라 ‘海藏咽喉’ 즉, 칭하이와 티베트의 목구멍과 같은 곳이란 뜻처럼, 토번과 당나라시대 때 길인 당번고도가 시작되는 역사 깊은 길이 시작된다.

시닝에서 라싸 가는 길

 

이곳에서 길이 갈린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티베트 땅에 들어서게 된다.

라싸로 가는 길은 두 가지다.

차량이나 칭짱열차를 이용하여, 칭짱꽁루(315번 국도)를 타고 가는 방법과 칭하이호 남단을 지나는 214번 국도(위수 ⇨ 참도 ⇨ 윈난)를 통해 가는 방법이다.

우리 일행은 조금 더 내밀하고 원초적인 티베트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바옌카라산맥(巴顔喀拉山脈)을 넘어 위수로 가는 길을 택했다.

바로 당번고도(唐蕃古道-당나라 수도였던 시안에서 티베트의 라싸(拉萨)까지, ​그리고 라싸(拉萨)에서 네팔이나 인도로 향하는 길을 말함)다. 시안에서 라싸에 이르는 3천여 킬로미터, 멀고도 험한 길이며, 1300여년 전, 당의 문성공주가 티베트의 왕 송첸감포에게로 시집간 눈물의 혼례길이기도 하다.

티베트로 가는 초입의 르웨산 고개에서는 도로가 이미 눈으로 얼어붙었다. 본격적인 탐사가 시작되면서 들떴던 마음이 일순 긴장으로 바뀐다. 출발부터 시험 당하는 기분이다. 주위는 온통 눈밭. 평소에도 만년설이던 봉우리마다 새 옷을 갈아입느라 바쁘고 서서히 물들어 가는 백양나무 노란 단풍이 유별나다.

가끔 도로를 점령하는 양떼와 야크떼를 피하며 광활한 초원방목지대를 달릴 때면 대자연에 압도되어 탄성만 지른다. 초원 여기저기에 노니는 야생조랑말과 황양(黃羊)들. 중국의 야생보호종이라는 수식어보다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사는 이 자연의 주인이라는 사실이 부러웠기 때문이리라.

 

칭하이성에서 만난 유목민

그러나 환상도 잠시, 칭하이성 서북쪽 치렌산맥(祁連山脈-쿤룬산맥의 동쪽에서 분리되어 나온 난산산맥의 일부로 칭하이성과 간쑤성(甘肅省)의 경계에 있다)과 남쪽의 바옌카라산맥(巴顔喀拉山脈-‘풍요롭고 검다’는 뜻) 사이에 위치한 청해호분지(靑海湖盆地)에 올라선다. 밤낮의 온도차가 아주 큰 건조지역으로 증발량이 워낙 많아서 물은 짠물이 되고, 흙은 소금층이 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 오지 중에 오지다.

칭하이호에서 위수로 가는 당번고도는, 차마고도(茶馬古道)와 같은 절벽의 낭떠러지 길은 아니지만 도로 옆의 산들이 거의 직각으로 서 있어 협곡이 깊고 길다. 가면 갈수록 도시의 세속적인 삶으로부터 벗어나 황량하면서도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동시에 경험한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티베트 땅에 들어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