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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와 나

[헬로! 티베트 9편] 거룩한 장례식, 천장(天葬)을 보다

"죽음은 반드시 오지만 그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 모인것은 흩어지기 마련이고,

일어난 것은 가라앉으리니 태어남의 마지막은 죽음이 되리라." -달라이 라마-

 

죽음은 곧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이것이 바로 전생, 금생, 내생의 삼세윤회(三世輪廻)와 환생(還生)이다.

티베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돌로 쌓은 탑에 시신을 안치하는 탑장(塔葬)을 하거나 불에 태우는 화장(火葬), 물속에 묻는 수장(水葬), 새의 먹이로 주는 천장(天葬. 또는 鳥葬이라고도 한다)을 한다.

티베트인은 시신이 남김없이 잘 썩어야 제대로 환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시신의 살과 뼈를 발라 독수리의 먹이가 되게 하는 천장은 시신을 깨끗하게 처리할 수 있고 육신을 온전히 자연으로 돌려보낸다는 의미가 있다.

더구나 티베트 불교는 현세에서 선행을 베풀면 부유한 집안에서 환생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에 기꺼이 자신의 육신을 독수리에게 보시한다. 그것이 천장이다. 천여 년 동안 질곡의 삶을 살아 온 티베트인들이 그런 내세를 기대하는 것은 전혀 과한 것이 아니다. 우리 일행은 간절한 그들의 믿음을 목도하고 싶어서 무척이나 안달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고소증이 끈질지게 괴롭히던 이른 아침. 칭하이성(靑海省) 체육국 직원들이 호들갑이다. 여러 차례 티베트의 전통장례식인 천장(天葬)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가능할 수도 있다는 희소식. 그러나 확답은 할 수 없으니 천장이 예정돼 있는 곳이 있으니 무조건 가보자는 것이다.

더 재고 말 것도 없이 일행은 급히 천장대를 찾아 나섰다.

 

칭하이성 위수지역의 천장대

사원 입구에 들어서니 인적은 없고 산등성이에 있는 타루초와 룽다가 세찬 바람에 파르라니 떨면서 내는 소리가 싸하게 긴장으로 다가 온다. 그러나 사원 정문 모퉁이를 돌아서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순례자들이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하고, 어울리지 않게 몽골식 간이천막이 쭉 늘어선 장터에는 록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장사판을 벌이고 있었다. 동네의 작은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보기 힘들다는 천장을 이런 곳에서 할리 만무하다. 틀렸구나 싶었는데 그 넓은 사원 여기저기를 뒤지던 칭하이성 체육국 직원이 고꾸라질 듯 달려와서 천장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린다. 급히 차를 돌려 야트막한 언덕길에 올라서자 멀리 산중턱에서 얼핏 봐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천장을 집도하는 라마승

체육국 직원의 안내대로 살금살금 다가가 조심스레 카메라부터 들었다. 어느 것을 어떻게 찍을까 망설이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뭐라 큰소리를 치더니 대뜸 카메라 앞을 가로 막는다. 찍지 말라는 것. 알고 보니 오늘 천장을 하는 이의 동생이었다.

외국인들에게는 끔찍하지만 가장 독특한 장례의식인 천장이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티베트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성한 장례식에 낯선 외국인들이 참관하는 것을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참관 기회가 되더라도 망자의 가족에게 허락을 받는 것이 기본 예의였다. 어렵게 수소문해서 얻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욕심에 제동을 건 것이다. 망자에 대한 예의를 벗어난 일 같아 어찌나 민망하던지.

다행히 체육국 직원이 사정을 얘기하니, 망자가 좋은 곳으로 갈 수 있게 부조(扶助)를 하는 것으로 중재를 했다. 부조의 내용인즉, 소의 간과 콩팥을 사서 독수리에게 보시를 해달란다. 그래야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순간 어안이 벙벙하다. 갑자기 어디 가서 소의 간과 콩팥을 구한단 말인가. 다행히 장기를 사는 대신 부의금을 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러는 사이 천장은 계속되고 있었다.

 

천장대와 천장의 상징인 독수리떼

천장(天葬, sky burial)은 흔히 '조장(鳥葬, (bird burial)'이라고도 하는데, 죽은 시신을 토막 내거나 살을 찢어 새가 먹기 쉽게 만들어 육신은 독수리에게 공양하고 남은 뼈는 추스려 화장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장례식을 주도하는 라마승을 '돔덴(domden)'이라고 하는데 죽은 자의 육신을 해체하기도 하지만 죽은 자의 명복을 빌고 다른 세상에서 더 나은 생을 살기를 축원한다.

이 끔찍한 조장은 왜 하는 것일까? 서역고원에서 사람이 죽으면 딱딱한 땅을 파서 묻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화장을 할 땔감도 부족한 유목민에게 장례는 쉽지 않은 일.

더구나 고정된 무덤이 의미가 없는 유목생활 등 척박한 환경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티베트 사람들은 육신은 새들에게 공양하고 나머지 뼈 중 일부만 화장을 하는 그들만의 장례식을 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행위는 윤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티베트 사람들은 죽음 뒤에 있는 또 다른 세상에 육신이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영혼만 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라마승 2명이 집도하는 장례현장에는 피 냄새를 맡은 수백 마리의 독수리 떼가 하객처럼 지켜보고 있었다.

우선 커다란 통나무 도마 같은 원목대 2개가 놓여 있고 그 옆에 흰 천으로 감싼 시신이 놓여 있다. 집도하는 라마승과 유가족이 애도하는 장례식은 엄숙하면서도 덤덤한 분위기다.

라마승의 집전은, 육신을 떠난 영혼이 사후세계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내용의 ‘티베트 사자(死者)의 서(書)-Bardo Todrol Chenmo’를 읽어주며 영혼을 달래는 것.

장례의식이 모두 끝나자 마른 침을 삼키기도 전에 천장을 주도하는 돔덴(domden, 천장사)이 익숙한 솜씨로 시신의 일부를 떼어내 도마 위에 올려놓고 토막 내서 독수리에게 나눠준다.

침을 꿀꺽 삼키며 기다리던 독수리들이 마침내 그들의 영혼을 하늘에 전하기 위해 바쁘게 시신을 향해 날아간다.

장기들은 뚝뚝 끊어서 던져 주고, 마지막으로 남은 두개골은 도끼로 쪼개 뇌수를 준 뒤 뼈는 잘게 부셔서 한 점 남김없이 독수리에게 나눠 주는 것으로 천장이 끝이 났다.
환생을 꿈꾸는 죽은 자의 영혼을 독수리가 물고 하늘로 훠얼 날아오른다.

한참은 멍했다. 참관했던 대부분의 외지인들은 끔찍하고 혐오스럽다고 하고. 장기 덩어리를 독수리 떼에게 던져 주는 모습도, 마지막으로 두개골이 커다란 해머에 산산이 부서지는 모습은 생전 처음 보는 이에게 분명 충격적이고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뒤통수를 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었다. 생각해 보니 문화상대주의라는 거창한 표현이 아니더라도 티베트인들이 가장 존귀하게 여기는 장례문화인 천장을 외지인은 그대로 인정하면 될 일이었다. 아주 간단한 문제였던 셈이다.

그들에게 죽음이란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갈아입는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헌 것을 남기지 않아야 망자가 원하는 새로운 신분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 그들의 얼굴에서 엷은 미소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