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하이호에서 위수로 가는 당번고도는, 차마고도(茶馬古道)와 같은 절벽의 낭떠러지 길은 아니지만 도로 옆의 산들이 거의 직각으로 서 있어 협곡이 깊고 길다. 가면 갈수록 도시의 세속적인 삶으로부터 벗어나 황량하면서도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동시에 경험한다.
바옌카라산맥(巴顔喀拉山脈) 초입에 있는 ‘초원의 첫째 마을(草原第一鎭)’은 허카진(河卡镇, 3246m). 동부 티베트로 가는 방향으로는 사실상 마지막 마을이다. 바옌카라산맥을 넘기 위해서 숨고르기도 필요하고 도로상태 등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정보도 필요하기 때문에 잠시 머문다. 마을 한가운데로 대로가 있어 대형차량들이 수시 왕래한다.
마을은 여기저기 새집을 짓느라 시끌벅적하다. 젊은이들은 할 일이 없고 아이들은 마땅히 놀 곳이 없어 모두 마을 상가주변을 배회하면서 이방인들이 들고 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 다 헤진 양복에 상표스티커까지 붙어 있는 선글라스를 쓴 할아버지, 오토바이를 탄 라마승, 구걸하는 사람들. 뭐하나 정비된 것 없이 마을은 좌충우돌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말이나 소를 팔아서 장만한 오토바이를 타고 폼을 잡는 사람도 종종 볼 수 있다. 길은 말없이 문명을 실어 나르고, 사람은 시나브로 변해 가는 것이다. 말을 타고 양을 몰던 이들이 초원이 아니라 문명이 밀려드는 길에서 새 삶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문명의 이기가 신기한 것은 비단 어른뿐만이 아니다. 콧물이 고속도로처럼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이 우리 일행을 구경하기 시작한다. 언제 씻었는지 짐작조차 안 되는 떠꺼머리총각, 그리고 라마승까지.처음엔 쭈뼛쭈뼛하던 사람들이 이내 움찔하는 특유의 미소로 다가온다.
아이들에겐 사탕을 나눠주고 총각과 라마승에게는 함께 찍은 사진을 찍어 보여주고.
세상에! 아직까지도 사진을 찍으면 혼을 빼앗긴다는 미신을 믿는 이들에게 자신들의 혼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자 까르르 웃고 떠드는 지경에 이른다. 생전 자기의 모습을 본 적이 없던 그들에게 디지털 카메라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물건이 됐다.
중국은 티베트사람에게도 서부대개발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겠다고 하지만 요원해 보인다. 이 조그마한 허카진 마을에도 한족들이 대부분 상권을 장악하고, 특별히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는 티베트인들은 여전히 피지배자로서의 처참한 현실에 봉착해 있는 듯하다.
어차피 자기들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야 하는 도로와 전기와 오토바이 정도. 그것을 혜택이라고 하기에는 겸연쩍지 않은가?
마을의 어린이들은 유목생활을 접고 정착했지만 마땅히 뛰어 놀 장소도 없고 놀이도 없다. 오히려 초원을 잃고 말을 잃고 자연을 잃은 것은 아닐는지.
청해호분지(靑海湖盆地) 남단을 지나 위수 방향으로 달리자 하얀 눈을 뒤집어 쓴 바옌카라산맥이 다가온다. 산맥을 넘어야 오늘 잠을 잘 수 있는 마둬에 도착한다.
칭하이호수의 남쪽엔 잘 알려지지 않은 실크로드가 하나 더 있다. 마둬(瑪多)와 위수(玉樹)를 거쳐 라싸에 이르는 길이다. 바로 당나라 문성공주가 티베트로 시집갔던 길이기도 하다. 문성공주의 묘가 있다는 위수로 길을 잡는다.
해발 3천900m가 넘는 허카산을 넘고 또 해발 4천 미터대의 고개를 몇 개나 오르고 내려가기를 반복해서야 지긋지긋한 바옌카라산맥을 벗어날 수 있었다.
작은 현소재지인 마둬는 시닝에서 약 500km 떨어진 곳이다. 이곳은 황하발원지와 주요 지류 웨이슈웨이(渭水)를 찾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티베트(藏族) 언어로 ‘황하(黃河)의 발원지’라는 뜻의 마둬(瑪多)는 칭하이성(靑海省) 궈뤄(果洛)티베트자치주의 북서부 고지대에 있는 산골마을이다.
10개 부락에 2000여 가구가 사는 읍 단위 도시로 보면 된다. 이곳에도 이주한 한족이 약 30% 정도 차지하고 있다. 야크(Yak), 면양, 동충하초, 칭커(쌀보리) 등이 풍부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인근에 황하발원지가 있어 관광객이 찾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황하는 칭하이성(靑海省), 바옌카라산맥(巴顔喀拉山脈)의 야허라다쩌산(雅合拉達澤山, 5442m)에서 발원하는 웨구쫑리에취(約古宗列渠)와 칼리취(卡日曲) 합수(合水)가 원류다. 이 물이 씽쇼해(星宿海)와 얼링호(鄂陵湖), 짤링호(札陵湖)를 거쳐 하류 지역으로 흐른다.
인근의 담수호인 둥거춰나(冬格措納)호수 역시 유명한 곳으로 현지 티베트 사람들에게 '신들의 호수(神湖)'로 일컬어지고 있다. 푸른 호수와 어우러진 초원은 이미 천국이다. 발원지 주변의 환경이 개선되면서 보호종인 산양, 검은목두루미 등 많은 야생동물들이 목격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 마둬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서 도착한 마둬는 아직도 20세기다. 우리 시골마을 여인숙 같은 초대소를 찾아서 여장을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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