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똥배’란 말이 있다. 불과 수 십년 전만 해도
농사에 쓸 거름을 얻으러 여수, 돌산도로 똥을 거두러 다녔던 남해 배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남해 사람들의 근면함과 억척스러움을 상징하는
말이다.
남해 주민들은 그들을 이토록 억세게 만든 척박한 환경의 이 땅을 ‘보물섬’이라 부른다. 살기엔 팍팍해도 그 풍광의 아름다움은 어디에도 견줄
데가 없다고 자부하면서.
남해를 대표하는 산은 금산(錦山). 비단을 두른 듯 아름답다는 산이다. 꼭대기에 걸려있는 보리암은 양양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와
더불어 전국 3대 관음 도량으로 손꼽히는 곳으로 기도발 잘 받기로 유명한 암자다. 상사바위, 장군암, 쌍홍문 등 38경으로 대표되는 기암들은
금산의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특히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상주 해수욕장과 수많은 섬들이 뿜어내는 한려수도 절경이 일품이다. 금산은 복곡 매표소에서 보리암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 길과 상주 해수욕장에서 오르는 두 가지 코스가 있다.
그 중 승용차가 중턱까지 오를 수 있는 복국 매표소는 나이 드신 분들에게 특히 인기다.
1973년 일찍이 남해대교가 놓이면서 반육지가 됐다고 하지만 남해는 분명 섬이다.
그 ‘섬’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해안 도로 일주다. 지족을 출발해 물건항과 미조항을 잇는 물미 해안 도로는 남해의
수려한 풍광의 바다를 만나게 해 주는 길로 다양한 절경을 만나게 된다. 창선교 밑을 흐르는 지족 해협에는 V자형 나무 말뚝이 여기저기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남해의 자랑인 죽방렴이다.
빠른 물살이 드나드는 물목에 참나무 말뚝을 박고 대나무발로 그물을 쳐둔 뒤 죽방에 들어 온 물고기가 물이 빠져 갇혔을 때 건져 올리는 원시
어업 기구다. 죽방에 걸려온 멸치 등 물고기는 그물로 거둔 것과 달리 비늘 등이 손상되지 않고 맛이 뛰어나다고 한다.
인근 주민들은 가천 다랑이논과 함께 이 죽방렴을 ‘남해의 살아있는 자존심’이라고도 한다. 역사를 고스란히 품어낸 의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날 좋은 때, 낙조 무렵이면 죽방렴 너머로 떨어지는 햇덩이가 잊지 못 할 광경을 연출한다.
1.5㎞의 방풍림으로 해안을 둘러싼 물건 방조 어부림
뒤편에는 독일 마을이 있다. 1960년대 외화 벌이를 떠났던 서독 광부, 간호사들이 국내로 돌아 와 정착하며 여생을 보내는 곳. 하얀 벽과 빨간
지붕으로 통일된 집들이 이국적이다.
남해 최담단 항인 미조항에서는 싱싱한 회를 맛볼 수 있다. 특히 공주식당(055-867-6728) 등에서 맛볼 수 있는 멸치회나 갈치회가
유명하다. 막걸리로 씻어내 비린내가 없고 매콤하게 버무려져 입맛을 돋운다.
남면과 서면을 돌아나가는 서쪽 해안 도로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어머니의 자궁 같은 포근한 앵강만을 끼고 돌아 다랭이 마을을 지나면 향촌
몽돌해안과 사촌해수욕장을 만날 수 있다. 해안 절경도 감탄을 자아내지만 길가에 늘어선 낮은 봉우리들을 뒤덮을 듯한 붉은 황토밭도 시선을 잡아
끈다. 다랑이논이라도 만들 듯 알뜰하게 일궈낸 경지다. 붉은 털모자를 뒤집어 쓴 듯한 생김새가 정겹다.
구미숲을 지나면 남해스포츠 파크. 한겨울 축구 야구 등 국내 운동 선수들이 동계훈련 오는 장소다. 남해대교가 서 있는 해협은 이 충무공이
장렬한 최후를 맞은 노량이다. 남해대교 인근 관음포에는 충무공의 시신을 처음 모셨던 전몰 유허(遺墟)가 있다. 충무공의 유해는 이 곳에서 3개월
가량 모셔졌다가 뭍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당시의 가묘가 지금도 남아 있다.
남해=이성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