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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와 나

중국 서부 극지를 가다-자다 토림19(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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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출고시간 :2006-03-07 오후 7:47:40
URL : http://www.itimes.co.kr/News/Default.aspx?id=view&classCode=407&seq=243399
새벽 어스름에 요술부리 듯 거대한 자태 드러낸 협곡
김진국기자
freebird@
중국 서부극지를 가다 - 19.자다토림
전설의 왕국 구게 왕국을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자다현 시내. 멀리 그 유명한 자다 토림이 병풍처럼 있다.
 수트레이 강변에 위치한 자다현(札達縣)은 아리(阿里)지구에서는 가장 낮은 마을로 해발 고도가 약 3500미터 정도. 겨울 입구에 들어선 수트레이 강은 거의 말라버렸으나 한 쪽은 짙은 회색의 진흙 절벽이다. 마치 사열을 준비하는 병사들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각기 다른 수만의 불상 같기도 하다. 이런 것들이 자다현을 완전히 포위한 형국이다. 밤늦게 사투를 벌여 자다에 들어 온 터라 칠흑 같은 어둠이 전부였던 것 같은 자다가, 새벽 어스름에 요술을 부리듯 그 거대한 웅자를 드러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자다 토림’이다.
 탐험대는 지난밤 정말 죽을힘을 다하고서야 자다로 들어 올 수 있었다. 가장 난코스는, 길이라고 할 수도 없는 악명 높은 아이라(해발 5600m)고개. 티베트의 수많은 고개 중에서도 가장 높고 험하다는 고개다. ‘할머니 고개’라는 별명처럼 그야말로 구절양장인데 차가 마주 오면 비켜설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길을 밤새 어둠을 뿌리치고 나온 것이다. 샹그릴라와 같다는 구게 왕국이 아니었다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여정이었다. 덕분에 탐험대 차량이 2대나 심각하게 고장이 난 상태. 결국 쌍용 자동차팀은 일정을 포기, 차량정비를 하기로 하고 나머지 대원만이 구게 왕국을 가기로 했다.
세월의 상흔으로 폐허처럼 보이지만,600년 동안 창성했던
구게 왕국의 영화는 무상한 역사와 세월의 풍상에도 기품을
잃치 않았다.

 어둠을 뚫고 구게 왕국의 입구라는 자부랑(札布讓)마을로 향한다. 자다현에서 약 2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황막한 산길을 돌아 점점 협곡 밑으로 내려가니 먼동과 함께 언뜻 수트레이 강 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강폭은 어림잡아 5,6백 미터에 이르나 갈수기 때문인지 실뱀 같이 가느다란 물줄기가 전부다. 그 마른 강 양 옆으로는 거대한 토림(土林)이 버티고 서있는데 수천 수 만년의 침식작용이 빚어낸 장관이다. 마치 그랜드 케니언으로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바로 ‘달의 계곡’이라는 다와쫑이다. 달이 뜨면 환상의 성(城)이 나타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지역을 전설속의 이상향, ‘샹그릴라’라고 믿어 온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계곡을 따라 깊이 들어 갈수록 경치는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구게 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계곡을 지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 마른 강이라고는 하지만 곳곳에 개천을 지나고 돌밭을 지나야만 한다. 갈수기 때만이라도 구게 왕국을 볼 수 있는 것은 수트레이 강의 특별한 배려인 셈이다. 강바닥에 위치한 오아시스 같은 마을 자부랑을 지난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인적은 없고 굴뚝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연기가 몇 개 하늘에 뻗치고 있다. 구게 왕국은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약 1킬로미터 남짓 어느 산꼭대기에 있을 것이다. 수트레이 강 협곡이 하도 넓고 깊어 지나쳐 버리기가 십상이라는 가이드 말에 눈에 힘을 주어 살펴 나갔다. 마른 개천을 따라 한참을 가자 계곡사이 멀리에 설핏 유적지가 눈에 들었다.
 협곡과 험한 산길, 그리고 하천으로 바리케이트를 친 요새 같은 왕국에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구게왕국
 중국에서 조차 제일 먼저 중점 문화재 보호 지역으로 지정 받은 유적지이다. 수트레이 강이 발 아래 흐르고 그랜드 케니언 같은 대협곡을 보초 세워 놓은 두 개의 계곡 사이에 수직으로 300미터나 되는 황토산 위에 왕국이 있었다. 벌어진 입을 다물기도 전에 탐험대의 발길이 바빠진다. 채 해뜨기 전이라 가장 감상하기 좋은 포인트를 찾기 위해 서다. 계곡을 사이를 지나 건너편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팸프릿 사진으로만 눈에 익혀왔던 백묘(白廟)와 홍묘(紅廟),그리고 산꼭대기의 여름궁전이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 당긴다. 이 외에도 불탑과 성벽,망루와 사찰 등 300 여 채의 가옥과 300 여 개의 동굴이 황토 산을 벌집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건축물이 지붕이 없는 등 온전한 모양을 갖춘 것이 거의 없고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수세기 동안 망각의 세월과 티베트 어디를 가나 악령처럼 거론되는 문화혁명의 광풍이 이곳에까지 미쳤던 것이다.
 서서히 아침 햇살이 왕국의 머리 꼭대기에 다다른다. 암갈색 황토 산이 황금빛으로 바뀌기 시작하자 천 여 년이나 침묵하고 있던 역사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아! 그 아름다운 자태란….
 폐허가 된 왕국의 전설이 바람결에 전해지자 우린 벅찬 감격을 누르며 천 년의 시간 속으로 몰입해 들어간다. 구게 왕국은 원래 토번 왕조의 후예가 10세기에 건설한 지방정권이었다고 한다. 토번의 마지막 왕인 랑다마(朗達瑪)가 피살된 후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랑다마의 손자 지더니마(吉德尼瑪)가 아리지역에 새로운 왕국을 건설했는데, 후에 세 아들이 아리지역을 나눠가지면서 세운 왕국이 라다크 왕국, 푸랑 왕국, 구게 왕국이었다. 그 중 구게 왕국은, 한때 세력이 강성했을 때는 서쪽으로 캐쉬미르 일대와 지금의 파키스탄 일부 지역까지 통치권이 미쳤다고 한다. 그처럼 화려하던 구게 왕국이 어떻게 연기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다만 1635년 라다크 왕국이 구게 왕국을 멸망시킨 다음 철저히 파괴하여 사라졌다고 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라고 한다. 구게 왕국의 화려했던 옛 모습은 미루어 짐작해 볼 수는 있다. 지금은 세월의 상흔으로 폐허처럼 보이지만, 17세기 초 멸망할 때까지 600년 동안 창성했던 왕국의 영화는 무상한 역사와 세월의 풍상에도 그 기품을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출에 비친 구게 왕국의 신비를 감상하고 다시 계곡을 넘어 왕국 유적지에 들어가려 했으나, 보수공사 중이라 일부만 관람이 되고 촬영은 일체 불가라 한다. 결국 탄트라 불교인 밀교의 진수가 고스란히 보존된 벽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수세기 동안 어두운 동굴 속에 간직한 밀교의 전통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왕국의 이모저모를 둘러본다. 적군을 막아주던 성벽도 대부분 무너지고, 군데군데 토굴들도 많이 파손되어 그 옛날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추측해 볼 뿐 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마니석 무더기만이 지금도 천 년 만년 왕국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듯 쌓여 있다. 다시 돌아보아도 왕국 앞으로 펼쳐진 거대한 성벽과 도열한 병사 같은 협곡이 있고, 거대한 강이 흐르고, 깊은 골짜기 위에 요새처럼 세워진 구게 왕국이 멸망하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쉽지 않다.
 도대체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 척박한 땅에 불국토를 만들고 삶의 의지를 개척했던 구게 왕국 사람들도 세월의 무상함에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왕조는 사라지고 유적 유물만이 남아 찬란했던 왕국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 했다.
 탐험대는 왕국의 이야기를 다 듣지 못하고 행장을 꾸려 다시 길을 떠난다. 새벽부터 달려 온 ‘다와쫑’의 비경은, 이제 되짚어 나가야 하는 악명 높은 길이 된 것이다. 천 년의 폐허 구게 왕국과 ‘달의 계곡’ 다와쫑을 벗어나 고갯마루에 서자 저 멀리 토림을 병풍 삼은 자다현이 오아시스처럼 보이고, 계곡 아래로는 수트레이 강이 실뱀처럼 비늘을 반짝이고 있다.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 일. 잊지 않기 위해 다시 한번 눈에 넣어 둔다. 그리고 탐험대는 서쪽으로 길을 잡아 나간다. 수많은 고개와 개울을 넘고 건너서 다시 광야를 온종일 헤맨 끝에 찾게 될 또 다른 샹그릴라를 향해서.<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