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대문화는
동으로는 한반도, 서로는 유럽까지 영향을 끼쳤다. 일국의 문화가 아시아와 유럽을 관통하는 데에는 문명교류를 위한 인간의 의지와 도전이 있었으며,
그것은 마침내 지구상에서 가장 험난한 대지에 길을 뚫었다. 2000년을 넘게 동양과 서양의 가교로 문화와 경제를 이어왔으며, 수천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치열한 삶의 터전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 곧 실크로드다. 한중자동차문화교류협회(www.newsilkroad.or.kr)는 올해
7월12일부터 8월16일까지 한달여가 넘는 기간동안 자동차를 타고 서부 극지를 달리는 ‘제1회 티베트 포토 챌린지’ 행사를 갖는다. 인천에서
출발해 중국대륙의 중원을 가로 질러 만년 설산 티베트고원과 죽음의 땅 타클라마칸 사막을 거쳐 청해성에 이르는 2만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긴 탐험
여정의 일부 구간을 미리 가 본다.<편집자>
구게왕국
황토산
2만Km 중국 서부 극지를 자동차로 가다
누쟝산, 자연이 설계한 72개 꼬부랑길 동쪽엔 췌얼산, 서쪽에는 티베트 국경에 접한
골짜기 마을 더거. 아주 드물게 찾아오는 여행자나 트럭 운전수를 제외하면 세상과의 교류가 거의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초라한 동네다. 광활한
지평선을 향해 탐험대는 쏜살같이 달린다. 티베트인들의 집이 작은 돌 성곽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야크들이 어슬렁거리며 서리 내린 풀을 뜯고
있고 차 소리에 놀란 양떼는 깡총 뛰어 달아난다. 군데군데 진행 중인 도로공사로 13킬로미터 구간을 통과하는데 무려 11시간이 걸려
도착한 스촨성과 윈난성 그리고 티베트가 만나는 교통요지 창두.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란창쟝(메콩강의 중국식 이름)의 거센 물결이
인상적이다. 천장북로를 달려 왔던 탐험대는 창두에서 천장남로로 갈아타기로 했다. 리오체를 지나 나취, 라싸로 이어지는 천장북로는 지난 여름
수해로 유실된 도로와 사태가 난 곳이 많아 통행을 할 수 없다는 것. 빵다, 라오그, 빠이를 통해 라싸로 가는 남로를 선택한다. 빵다
대초원을 몇 시간이나 달려서 도착한 빵다 삼거리. 교통의 요지답게 적지 않은 식당과 차량 수리점 그리고 가수(加水)라고 쓰여 있는 간이 물장수가
보인다. 고갯길이 하도 많은 중국에서는 대형화물차들이 고개를 오르기 전 탱크에 물을 채워,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 과열된 브레이크에 물을 뿌려
식히는 것이 일상적이다. 삼거리를 지나 오르기 시작한 이에라산은 해발 4천615미터로 오르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고개를 넘어서면 커브길이 많기로
유명한 누쟝산 72고개 꼬부랑길이 기다리고 있다. ‘가르릉 가르릉’. 탐험대 차량은 희박한 산소 때문에 완전연소를 시키지 못하고
천식환자처럼 쿨럭거린다. 마침내 도착한 고갯마루에 서면 탄성과 함께 한숨이 탁 쉬어진다. 실타래를 사려 놓은 것처럼 배배꼬여 있는 꼬부랑길이
표고차 800미터에 이르는 곳까지 길을 내어 놓은 것이다. 계단식 논밭과 어우러진 티베트식 집들이 그림처럼 비탈에 서있다. 노면상태는 비교적
좋으나 밀가루같은 비포장도로의 먼지는 탐험대 일행을 한참이나 붙잡고 놓아 주질 않는다.
72고개
누쟝대협곡
오체투지, 신을 만나러 가는 길은
행복하다! 누쟝 스케치를 마치고 막 떠나려고 할 때, 멀리 점 같은 움직임이 보였다. 일어났다 엎드리고 다시
일어났다 엎드리는 행동을 반복하는 바로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자였다. 라싸로 가다보면 수도 없이 볼 수 있다던 순례자를 처음 만난 것. 세 걸음을
걷고 합장한 후 온 몸을 땅에 던져 신심을 던지는 순례자들. 머리와 두 손과 두 발을 땅에 짚어 가장 겸손한 자세로 몸을 낮춰 신을 만난다는
오체투지. 차가 지날 때마다 밀가루를 뒤집어쓰듯 먼지를 흠뻑 맞으면서도 멈춤이 없이 오체투지를 해오던 순례자들을 마침내 대면하게 됐다.
새까만 얼굴에 땀과 흙에 뒤범벅이 된 얼굴이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순례자들. 낯선 사람들의 접근에 다소 경직되어 보이던 얼굴이 우리 신분을
밝히자 이내 밝게 웃는다. 나취에서 왔다는 3명의 남자는 야팔(52), 웬지자(37), 자파(33). 이들은 한마을에 사는 이웃사촌들로 벌써
8개월째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조캉사원을 간다는 이들은 하루에 겨우 5~8 킬로미터 정도 걷지만 라싸에 가겠다는 의지가 대단해 보였다.
왜 라싸에 가느냐는 우문을 던졌더니 조금 망설이던 자파가 “라싸에 가서 빌 것이 너무 많다”고 간단한 대답 뿐이다. 그 빌 것이 궁금해 몇 번을
되물었으나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한다는 소망까지만 더 들었을 뿐 그것이 끝이었다. 앞으로 3개월쯤 뒤면 라싸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이들은
탐험대가 준 생수병을 연신 흔들어 보이며 감사의 뜻을 전하고 또 길을 떠난다.
그러나 누쟝에서 라싸까지의 거리는 1천200킬로미터. 8개월
동안 왔다는 낙추에서 누쟝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멀다. 더구나 늦가을을 넘어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것까지 고려하면 빨라야 내년 초나 되어야 그들의
여정이 끝날 것이다. 그것도 모르는 채 순례자들의 오체투지는 계속되고. 그들이 이 겨울을 무사히 넘겨 안전하게 라싸에 당도할 수 있기를 기원할
뿐이다.
에베레스트, 너무 투명해 보는 이가 눈부시구나! 우정공로상에 위치한 라체는 그리
크지 않은 시골마을이지만 여행자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교통요지다. 신산 카일라스나 구게왕국 등 아리루트로 여행할 때 이곳을 지나고,
초모랑마(에베레스트의 중국식 이름, 해발 8,848미터), 네팔 방향으로 갈 때도 경유해야 하는 곳이다. 다음날 아침, 영하의 날씨 속에
옷을 겹겹이 껴입고 초모랑마를 향해 길을 나섰다. 거대한 산등성이를 향해 구절양장 같은 꼬부랑길을 오른다. 가면 갈수록
밑으로는 숨어있던 산들이 첩첩산중 거대한 산군으로 드러나 초모랑마 자연보호구의 광대함을 드러내고, 위로는 하늘을 찌를 듯이 비탈이 가팔라진다.
드디어 도착한 팡라(해발5200미터)고개. 히말라야 산맥군을 감상하기 가장 좋은 지점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장대한 히말라야 산맥이 압도하듯 눈앞에
펼쳐져 있다. 형형색색의 타르쵸와 돌탑 사이로 보이는 히말라야의 거봉들. 화창한 날씨에 숨김없이 전신의 신비를 드러낸 초모랑마를 중심으로
좌측으로는 마칼루와 로체, 우측으로는 초오유 등 해발 8,000미터급의 자이언트 봉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다. 선택 받지 못하면 볼
수 없다는 초모랑마와 히말라야의 거봉들이 티끌 하나 없이 마치 나신을 보여주듯 활짝 열어 둔 것이다. 너무나 깨끗하고 너무나 눈이 부셔 오히려
보는 이가 부끄러울 정도다. 내려가는 길은 누쟝산 72고개보다 더 길고, 더 꼬부라지고 더 심오하다. 돌고 돌아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꼬부랑길을 내려서니, 이제는 세월의 풍파에 스러진 토성의 흔적이 뚜렷한 역사를 목격하게 된다. 그것이 어느 시절 어떤 역사인지 모르지만, 문명의
이기를 이용해 오지 중에 오지라는 이곳에 역사를 이루었던 인간의 위대함에 그저 경이를 표할 뿐이다. 초모랑마 자연보호구 통제소 입구.
여기서부터는 자연보호를 위해 제한된 차량 이외에는 일체 출입이 안되는 지역이다. 급경사를 50여 미터 오르자 갑자기 훅하고 밀려드는 세찬 바람과
한기에 흠칫 놀란다. 전망대 꼭대기에는 몇 개의 돌무덤과 타르쵸, 그리고 초모랑마 자연보호구라는 돌비석이 바람에 시달리고 있다. 눈을 들어보니
팡라고개에서 느꼈던 초모랑마의 장대함이 갑자기 고압적이고 위압적으로 눈앞에 서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숨이 콱 막히는 감동이다. 해가 기울면서
기상이 나빠진 초모랑마는 짙은 구름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팡라고개에서 본 히말라야 산맥군
어렵게 풍요의 여신 초모랑마를 만나러 온 탐험대에게 부끄러운
듯 자태를 감추기 시작한 것이다. 찬바람에 얼어버린 손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일진광풍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끝내 두터운 구름을 벗겨낼 수 없었다.
100여 킬로미터의 산길과 고산증세의 어지러움도 참고 참으며 여기까지 온 것은 히말라야와 초모랑마를 두 눈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여신은 아주 짧은 상면을 허용했지만 한순간 그의 찬란한 자태를 볼 수 있었던 순간만큼은 눈물겹도록 행복했다. 인간과 자연이 만난 아름다움의
극치를 온 몸으로 느낀 한순간. 오, 초모랑마여!
에베레스트
요술부리듯 나타난
거대한 협곡 속 구게왕국
전설의 왕국 구게왕국을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자다현
시내. 멀리 그 유명한 자다토림이 병풍처럼 있다. 수트레이 강변에 위치한 자다현은 아리지구에서는 가장 낮은 마을로 해발 고도가 약
3,500미터 정도. 겨울 입구에 들어선 수트레이 강의 한 쪽은 짙은 회색의 진흙 절벽이다. 마치 사열을 준비하는 병사들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각기 다른 수만의 불상 같기도 하다. 이런 것들이 자다현을 완전히 포위한 형국이다. 밤늦게 사투를 벌여 자다에 들어온 터라 칠흑 같은 어둠이
전부였는데, 새벽 어스름에 요술을 부리듯 그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자다토림이다. 어둠을 뚫고 구게왕국의
입구라는 자부랑마을로 향한다. 황막한 산길을 돌아 점점 협곡 밑으로 내려가니 먼동과 함께 언뜻 수트레이 강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강폭은
어림잡아 5,6백 미터에 이르나 갈수기 때문인지 실뱀 같이 가느다란 물줄기가 전부다. 그 마른 강 양 옆으로는 거대한 토림이 버티고 서있는데
수천 수만년의 침식작용이 빚어낸 장관이다. 마치 그랜드 케니언으로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바로 ‘달의 계곡’이라는 다와쫑이다. 달이 뜨면
환상의 성(城)이 나타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이 지역을 전설속의 이상향 ‘샹그릴라’라고 믿어 온 사람도 많다. 구게왕국을
가기 위해서는 이 계곡을 지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 마른 개천을 따라 한참을 가자 계곡사이 멀리에 설핏 유적지가 눈에 들었다. 협곡과 험한
산길 그리고 하천으로 바리케이트를 친 요새 같은 왕국에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수트레이 강이 발 아래 흐르고 그랜드 케니언 같은 대협곡을
보초 세워 놓은 두 개의 계곡 사이에 수직으로 300미터나 되는 황토산 위에 왕국이 있었다. 벌어진 입을 다물기도 전에 탐험대의 발길이
바빠진다. 아직 해뜨기 전이라 가장 감상하기 좋은 포인트를 찾기 위해서다. 계곡 사이를 지나 건너편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사진으로만
보아온 백묘와 홍묘 그리고 산꼭대기의 여름궁전이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당긴다. 이외에 불탑과 성벽, 망루와 사찰 등 300여채의 가옥과
300여개의 동굴이 황토산을 벌집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건축물이 지붕이 없는 등 온전한 모양을 갖춘 것이 거의 없고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수세기 동안 망각의 세월과 티베트 어디를 가나 악령처럼 거론되는 문화혁명의 광풍이 이곳에까지 미쳤던 것이다. 서서히
아침햇살이 왕국의 머리 꼭대기에 다다른다. 암갈색 황토산이 황금빛으로 바뀌기 시작하자, 천여년이나 침묵하고 있던 역사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아! 그 아름다운 자태란. 폐허가 된 왕국의 전설이 바람결에 전해지자 우린 벅찬 감격을 누르며 천 년의 시간 속으로 몰입해
들어간다. 구게왕국은 원래 토번왕조의 후예가 10세기에 건설한 지방정권이었다. 한때 세력이 강성했을 때는 서쪽으로 캐쉬미르 일대와 지금의
파키스탄 일부 지역까지 통치권이 미쳤다고 한다. 그처럼 화려하던 구게왕국이 어떻게 연기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구게왕국의 화려했던 옛 모습은 미루어 짐작해 볼 수는 있다. 지금은 세월의 상흔으로 폐허처럼 보이지만, 17세기 초 멸망할 때까지
600년 동안 창성했던 왕국의 영화는 무상한 역사와 세월의 풍상에도 그 기품을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니석 무더기만이 지금도
천년, 만년 왕국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듯 쌓여 있다. 다시 돌아보아도 왕국 앞으로 펼쳐진 거대한 성벽과 도열한 병사 같은 협곡이 있고, 거대한
강이 흐르고, 깊은 골짜기 위에 요새처럼 세워진 구게왕국이 멸망하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쉽지 않다. 도대체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
척박한 땅에 불국토를 만들고 삶의 의지를 개척했던 구게왕국 사람들도 세월의 무상함에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왕조는 사라지고 유적 유물만이
남아 찬란했던 왕국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탐험대는 왕국의 이야기를 다 듣지 못하고 행장을 꾸려 다시 길을 떠난다. 수많은
고개와 개울을 넘고 건너서 다시 광야를 온종일 헤맨 끝에 찾게 될 또 다른 샹그릴라를 향해서.
자다토림
글 백민섭(전 경인방송 PD, 현 경인지역 새방송사
설립준비위 지원처장) 사진제공 한중자동차문화교류협회(월간사진 200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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