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라(pang la, 해발5200m)고개에서 본 히말라야 산맥. 화창한 날씨에 숨긴 없이 전신의 신비를
드러낸 초모랑마를 중심으로 이름모를 수많은 고봉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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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모랑마를 가기 위해 여행객들이 꼭 거쳐가는 전통 티베트 인 거주지 다시쭝 마을에 설치된
초모랑마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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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공로상에 위치한
라체(拉孜)는 그리 크지 않은 시골마을이지만 여행자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교통의 요지다. 신산 카일라스나 구게왕국 등 아리루트로 여행할 때 이
곳을 지나고, 초모랑마, 네팔방향으로 갈 때도 경유해야 하는 곳이다. 라체 역시 도로 공사가 한창이었고 그 길을 통해 들어오는 문명과 세계인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현재와 과거가 혼재하는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초모랑마(珠穆朗瑪 에베레스트의 중국식 이름,해발 8,848m)
베이스캠프를 향하는 길. 추수가 끝난 농경지에 말쑥하게 들어 선 낫가리가 겨울을 준비하듯 정결한 느낌을 주고 있다.
라체에서 출발한
탐험대는 라체 분기점을 지나면서 계속 오르막길을 오르게 된다. 그러나 이내 공사구간과 부딪치게 된다. 바로 우리가 목적하는 뉴 팅그리로 가는
우정공로 확장,포장공사란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원래는 올드 팅그리로 가려했으나 다음 일정상 시간을 아끼려 선택했던 것인데 가는 날이 장날이
됐다. 결국 4시간 여만에 빠져나오니 바로 우정공로에서 가장 높은 고개인 가쵸라 고개다. 바람이 어찌나 세차던지 몇몇 대원들은 나올 엄두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고개마루에 설치된 ‘초모랑마 자연보호구’라는 입간판을 보자 살며시 입꼬리가 찢어진다. 그러나 2008년도 베이징 올림픽에 맞춰
시행되는 공사는 우리의 목적지인 빠이바까지 몽땅 뒤집어 놓았고, 천신만고 끝에 숙소에 도착하니 밤 10시다.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일찍
잠자리에 든다. 내일 맞게 될 초모랑마 장관과 난관이 두루 엄습하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영하의 날씨 속에 옷을 겹겹이 껴입고
초모랑마를 향해 길을 나선다. 빠이바를 빠져 나와 루루허(魯魯河)를 따라 우정공로를 6킬로미터쯤 달리자 검문소가 나온다. 이 지역은 인도,
파키스탄과 영토분쟁을 하고 있는 지역이라 특히 까다로운 검문을 한다고 한다. 일일이 여권과 탑승자를 대조해 보더니 통과 사인이 떨어졌다. 네팔과
초모랑마 베이스 캠프가 갈라지는 삼거리를 지나자 드디어 초모랑마 자연보호구 산기슭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4킬로미터 쯤 달리면 작은 마을
체(che)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초모랑마 지역으로 들어가는 입장료를 내야 한다. 드디어 거대한 산등성이를 향해 구절양장 같은 꼬부랑길을
오른다. 가면 갈수록 밑으로는 숨어있던 산들이 첩첩산중 거대한 산군(山群)으로 드러나 초모랑마 자연보호구의 광대함을 드러내고, 위로는 하늘을
찌를 듯이 비탈이 가팔라진다. 드디어 도착한 팡라(pang la, 해발5200m)고개. 히말라야 산맥군을 감상하기 가장 좋은 지점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장대한 히말라야 산맥이 압도하듯 펼쳐져 있다. 형형색색의 타르쵸와 돌탑 사이로 보이는 히말라야의 거봉들. 화창한 날씨에 숨김없이 전신의
신비를 드러낸 초모랑마를 중심으로 좌측으로는 마칼루와 로체, 우측으로는 초오유 등 해발 8000미터급의 자이언트 봉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다. 선택 받지 못하면 볼 수 없다는 초모랑마와 히말라야의 거봉들이 티끌 하나 없이 마치 나신을 보여주듯 활짝 열어 둔 것이다. 너무나
깨끗하고 너무나 눈이 부셔 오히려 보는 이가 부끄러울 정도다.
내려가는 길은 노장산 72고개보다 더 길고, 더 꼬부라지고 더 심오하다.
돌고 돌아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꼬부랑길을 내려서니, 이제는 세월의 풍파에 스러진 토성의 흔적이 뚜렷한 한 역사를 목격하게 된다. 그것이 어느
시절 어떤 역사인지 모르지만, 문명의 이기를 이용해 오는 현재도 오지 중에 오지라는 이곳에 그 옛날 역사(力事)를 이루었던 인간의 위대함에 그저
경이를 표할 뿐이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마차나 인원이 꽉차야만 출발하는 상업용 짚차를 타야하지만 한국에서 온
특별한 탐험대라는 이유로 초모랑마 베이스 캠프까지 진입을 한 탐험대 차량과
베이스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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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재촉해 닿은 곳은
‘초모랑마 자연보호구’ 통제소 입구. 여기서부터는 외지차량은 일체 출입이 안 되는 통제지역이다. 통제소에서 운영하는 소형버스로 모두 갈아타야
했으나 탐험대와 동행한 중국국제체육여유공사 이원 총경리가 “한국의 탐험대는 국가의 허가 하에 움직이는 외빈들”이라는 이유를 들어 통과할 수 있게
힘을 써주었다. 드디어 탐험대 차량이 초모랑마 자연보호구에 미끄러지듯 들어 선다. 히말라야 고원지대라고는 믿기 어려운 초원지대가 펼쳐지다가 이내
바닥을 드러낸 강바닥 같은 길을 지그재그로 피해 다니며 고도를 높인다. 사실은 초모랑마의 빙하 중 가장 거대하다는 룽부 빙하 하류를 지나고 있는
것이다. 무려 길이가 20킬로미터가 넘고 너비가 1.4킬로미터에 이르는 룽부 빙하는 여름에는 만년설의 눈과 얼음이 녹아 강이 되는 곳. 그러나
겨울 초입에 들어선 히말라야는 실개천 하나만을 남겨 두었을 뿐이었다. 드디어 베이스캠프가 빤히 보이는 룽부사원에 도착했다.
초모랑마의
북쪽 산기슭 비탈진 곳에 위치한 룽부사원은,해발 5,030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사찰이자 여관이며 우체국이기도 한 특별한 곳이다. 비교적
최근인 1902년에 중건된 사찰로 한때는 500명에 이르는 승려가 있었던 사원으로 이 일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라마승과 비구승을 합쳐 수 십명에 불과하게 됐다고 한다. 사원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초모랑마를 배경으로 환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관광 비수기를 맞은 사원은 쥐 죽은 듯 조용히 히말라야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우체국에서 기념엽서를 보내고자 했던 탐험대의
바람도 물거품이 되었다.
룽부사원에서 초모랑마 베이스캠프까지는 약 8킬로미터. 길은 비교적 잘 닦여 있으나 걸어서는 2~3시간이 걸리는
길이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마차나 인원이 꽉차야만 출발하는 상업용 짚차를 타야하지만 한국에서 온 특별한 탐험대라는 점과 이원 총경리의
백(?)이 합쳐져 베이스캠프까지 탐험대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는 배려를 받았다. 취재팀 입장이야 당나귀가 끄는 수레를 타보고 싶었으나 간헐적으로
밀려드는 히말라야의 강풍을 맛본 다음에는 생각이 싹 달라졌다. 드디어 한국산 차를 타고 초모랑마 베이스캠프에 처음 올라 가는 진기록을 세운다.
여러 개의 천막이 쳐진 베이스캠프에서 사람들이 나와 우리 일행을 신기한 듯 반겨주었다.
'초모랑마 자연보호구’통제소 입구. 여기서부터는 자연보호를 위해 제한된 차량 이외에는 일체 출입이 안되는
지역이다. | |
입구에서부터 파리떼처럼 붙기 시작한
호객꾼을 헤치고 가장 전망이 좋은 언덕으로 오른다. 급경사를 50여 미터를 오르자 갑자기 훅하고 밀려드는 세찬 바람과 한기에 흠칫 놀란다.
전망대 꼭대기에는 몇 개의 돌무덤과 타르쵸, 그리고 ‘초모랑마 자연보호구’라는 돌비석이 바람에 시달리고 있다. 바람이 어찌나 센지 사람이
밀리거나 잔돌이 날아다닐 정도다. 눈을 들어보니 팡라고개에서 느꼈던 초모랑마의 장대함이 갑자기 고압적이고 위압적으로 바로 눈앞에 서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숨이 콱 막히는 감동이다. 해가 기울면서 기상이 나빠진 초모랑마는 짙은 구름이 내려 앉기 시작한다.
어렵게 풍요의 여신
초모랑마를 만나러 온 탐험대에게 부끄러운 듯 자태를 감추기 시작한 것이다. 찬바람에 얼어버린 손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일진광풍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끝내 두터운 구름을 벗겨낼 수 없었다. 100여 킬로미터의 산길과 고산증세의 어지러움도 참고 참으며 여기까지 온 것은 히말라야와
초모랑마를 두 눈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여신은 아주 짧은 상면을 허용했지만 한순간 그의 찬란한 자태를 볼 수 있었던 순간만큼은
눈물겹도록 행복하였다. 인간과 자연이 만난 아름다움의 극치를 온 몸으로 느낀 한순간. 오, 초모랑마여! /글·사진=백민섭 경인지역 새방송 창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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