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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와 나

중국 서부 극지를 가다-18. 카일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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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출고시간 :2006-02-28 오후 8:13:10
URL : http://www.itimes.co.kr/News/Default.aspx?id=view&classCode=F01&seq=242651
영원히 패하지 않는 聖湖
김진국기자
freebird@
중국 서부극지를 가다 -18. 카일라스 산
귀호(鬼湖) 락사스 탈 호수. 어둠의 호수요 선에 대항하는 악마의 호수 언덕에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많은 돌무덤과 카닥이 걸려 있다.
 밤새 험하디 험한 길을 달려 온 탐험대에게 푸랑은 너무 초라하고 형편이 없었다. 히말라야 산맥 바로 밑에 위치한 푸랑호텔은 가장 묵을만한 곳이라 했지만 난방도 시원찮고, 화장실은 물론 세면장도 없어 겨우 보온병의 뜨거운 물로 밤새 언 몸을 녹여야했다. 문도 안 연 식당을 두드려 멀건 쌀죽 한 그릇을 마시듯 하고 길을 나선다. 오늘 가야 할 길도 만만치가 않다. 구게왕국이 있는 자다(札達)까지 하루 종일 해발 4600~5200미터 사이를 오르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마음이 급했으나 밤새 악전고투하며 지났던 악몽 같은 돌밭 길을 되짚어 나오자, 어젯밤 살짝 얼굴만 비추었던 히말라야 산맥이 장대한 아름다움을 펼쳐 놓고 있었다. 어쩜 신은 그토록 아름다운 대지를 만들어 놓았는지 너무 눈이 부셔 제대로 쳐다볼 수 없는 신성함에 모두 압도된다.
천상에서 내려온 다섯 명의 선녀가 변하여 히말라야의 봉우리가 되었는데, 그 중 재물을 관장하는 관영선녀가 변한 것이라는 굴라만다타 봉(일명 나무나니, 7728미터).

 히말라야 산맥이 시야에서 멀어지다가 사라지는 능선을 넘자마자 이번에는 카일라스 산의 신성한 자태가 첫 눈에 든다. 힌두교와 불교 그리고 인도의 자이나교, 티베트의 토착종교인 뵌교 이 네 개 종교가 모두 신성한 산으로 여기는 바로 그 산이다. 해발 6714미터로 그리 크지 않은 카일라스가 유독 주목 받고 성스러운 산으로 숭배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카일라스 앞으로는 히말라야 뒤로는 쿤룬산맥으로 둘러 싸여 있고, 서쪽으로는 카라코람 힌두쿠시 동쪽으로는 스촨성과 윈난의 험준한 산으로 둘러져 있는데, 그 안에 호수의 연꽃처럼 검은 카일라스 산이 자리하고 있다. 카일라스는 피라미드처럼 네 면이 있는데 각 면마다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 각기 다른 네 개의 강들이 시작된다고 한다. 북쪽으로는 인더스 강이 시작되고 서쪽으로는 수트레이 강이, 동쪽으로는 얄룽창포 강이 발원하여 뱅골만으로 흘러가면서 티베트와 인도의 젖줄이 된다. 남쪽으로는 카날리 강이 나서 갠지스 강이 되었다. 이처럼 네 개의 강이 발원하고 수많은 호수를 만들어 척박한 티베트고원과 인도를 적셔 줌으로써 생명을 잉태시키는 근원이기 때문에 더욱 숭배 받는지도 모를 일이다.
 카일라스는 산의 생김새와 신화만으로 신성함의 전부라고 할 수 없다고 한다. 카일라스의 순례자들은 산의 중심부로 다가가면 휘몰아치는 듯한 강한 충동을 받는데 형언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카일라스는 실제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점이 더욱 신비한 것이리라.
 우리 탐험대는 그 신비한 무엇을 느껴보기 위해 카일라스의 베이스 캠프 역할을 하는 다르첸 마을에 갈 것을 요구했으나 한순간에 일장춘몽이 되었다. 허가사항에 다르첸이 포함이 안 되었다는 것. 겨울에 순례객도 거의 없고, 괜찮은 숙박시설이 없어 중앙정부의 담당관이 임의로 뺐다는 것이다. 아니 카일라스는 보라 하면서 정작 접근할 수 있는 포인트에는 못 가게 하는 경우가 어디 있냐고 항변했으나 오직 허가사항을 준수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감독관 앞에서는 속수무책. 달리 방도가 없이 화만 실컷 내고 탐험대차량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카일라스 앞 동남쪽으로 커다란 호수가 두 개있다. 두 개의 호수는 달과 해를 상징하는데 이 두 호수의 물은 모두 카일라스에서 시작된다. 하늘의 아름다운 푸른빛과 히말라야 설산의 하얀빛을 고스란히 담은 호수는 티베트에서만 볼 수 있는 자연 유산이다. 수억 년 전 히말라야가 융기되면서 생긴 티베트의 호수들은 성스러운 성지로서 영혼의 안식처일 뿐 아니라 어머니의 젖처럼 티베트 사람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생명수이기도 한 것. 마나사로바와 락샤스탈도 예외가 아니다.
 탐험대 차량은 히말라야 산맥의 분수령인 굴라만다타 봉(일명 나무나니, 7728미터) 기슭에 어렵게 올라서니 바로 아래 ‘달의 호수’라는 귀호(鬼湖) 락사스 탈 호수가 펼쳐져 있다. 하늘에 낮고도 넓게 떠있는 구름이 그대로 호수에 내려 앉아 있어, 어둠의 호수요 선에 대항하는 악마의 호수라는 명성에 걸 맞는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살아 있는 것이 전혀 없는, 정지된 화면 같은 차가운 아름다움이 오히려 슬픔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왜 이 아름다운 호수가 어둠을 대변하는 호수가 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상한 것은 그럼에도 호수가 잘 보이는 언덕에는 수많은 돌무덤과 카닥들이 걸려 무엇인가를 기원하고 있었다.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 호수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락사스 탈 호수 북쪽 끝으로 난 길을 따라 언덕에 올라서니 이번에는 ‘해의 호수’라는 성호(聖湖) 마나사로바가 보인다. 해발 4560미터, 둘레가 110킬로미터가 넘는 엄청난 규모가 호수라 부르기에는 웬지 겸연쩍다. 귀호 락사스 탈과는 불과 2~3킬로미터의 지근거리에 위치한 마나사로바는 티베트의 신성시되는 수많은 호수 중에서도 가장 신성시 여기는 성호 중의 성호다.
 성산 카일라스가 하늘을 의미한다면 마나사로바는 땅을 의미한다. 카일라스가 우주의 아버지라면 마나사로바는 우주의 어머니인 셈이다. 그래서 호수는 낭만적인 신화와 아름다운 전설을 많이 가지고 있다. 11세기쯤 티베트에서 가장 유명한 불교수행자였던 밀라래빠와 토착종교인 뵌교의 실력자 나뤄번충과의 불분논전(佛芬論戰)의 장이 바로 마나사로바 호수였다. 결국 불교의 밀라래빠가 승리하여 세력을 장악하고 티베트 고원을 불국토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불분논전 이후 마나사로바는 ‘영원히 패하지 않는 진리의 호수’라는 뜻을 지닌 호수로 신격화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불교 신도들은 호수를 돌거나 목욕을 하면 각종 망상과 번뇌, 죄업을 씻어 낼 수 있고 그 물을 마시면 만병을 물리쳐 건강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이러한 까닭에 마나사로바 호수는 일 년 내내 국내외의 무수한 신도와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마나사로바와 카일라스의 신성함이 합쳐져 아리 지역에 오지 않으면 안 되는 이중의 유혹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성산과 성호의 아름다움과 신비에 빠져 갈 길을 잊어 버리고 있던 탐험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조금 늦은 시간. 다음 예정지인 구게왕국을 가기 위해 바가초원을 달리기 시작한다. 마나사로바도 락사스 탈도, 그리고 성산 카일라스도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아리(阿里)와 자다가 갈리는 분기점에 선다. 아리방향은 평탄한 초원을 달리는 길인데 반해 자다방향은 첩첩이 겹친 산이 떡하니 버티고 서있다.
 5천미터급 산을 도대체 몇 개나 오르락내리락 했는지 셀 수도 없다. 하늘 끝까지 왔다 싶다가도 다시 초원을 지나 산굽이를 다시 돌고 돌아 산을 넘어가기를 여러 차례 반복한다. 자다로 향하는 탐험대원들은 거의 초죽음 상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고위험도 훨씬 높아졌다. 고개길을 내려오던 중 탐험대 차량 중에 타이어가 이탈하는 사고가 났다. 돌이 많은 험로를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다보니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던 것. 천만다행으로 차가 전복되거나 절벽길이 아니어서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리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산길을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선택한 지름길은, 주먹만한 돌들이 널린 비포장 길로 추락위험과 차량파손의 이중고를 감내해야하는 코스.
 여러 차례의 타이어 펑크와 자잘한 사고를 이겨내며 자다로 향한다. 구게왕국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탐험대원들을 시험하고 있었다.
어느 시골마을에서 잠시 휴식하고 있는 탐험대원들.비포장 산길을 하루에도 수백 킬로미터씩 달리는 탐험대원들도 어느덧 지쳐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