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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와 나

중국 서부 극지를 가다-17. 아리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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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출고시간 :2006-02-21 오후 7:29:36
URL : http://www.itimes.co.kr/News/Default.aspx?id=view&classCode=407&seq=241851
눈의 보배··· 새야, 너는 아니? 끝이 어딘지 모를 미지의 세계를
중국 서부극지를 가다 -17. 아리루트
해발 6714미터로 1년 내내 흰눈으로 덮혀있다. 산의 형상이 피라미드 모양을 하고 있는데 티베트어로 '눈의 보배'라는 뜻을 지닌 카일라스.불교 신자들이 수미산으로 여기는 바로 그 산이다.
 아리(阿里)루트는 티베트를 여행하는 루트 중에서도 험하기로 소문이난 코스.
 아리의 평균해발 고도가 4500미터에 이르러 티베트에서도 가장 높은 지역일 뿐 아니라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이 구간은 험난하고 지루하고 끝이 어딘지 모를 미지의 세계이자 가장 신비한 곳이라 알려져 있다. 우리 탐험대처럼 모험을 작정하고 신비로움을 찾아 나선 이들에게는 그만큼 적당한 곳이기도 하다. 아리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 두 군데 있다. 자다현(札達縣)의 구게왕국(古格王國)과 푸랑(普蘭)의 신산(神山) 카일라스, 성호(聖湖)마나사로바가 바로 그것이다. 아리사람들에 의하면 “자다와 푸랑에 가보지 않은 것은 아리를 와 보지 않은 것과 같다”는 것이다.
 중바(仲巴)에서 서둘러 푸랑을 향해 출발했다. 아침 7시30분이지만 베이징표준시를 기준으로 하면 2시간 쯤 빠른 시간이다. 아직 여명이 남아 있고 그래서 식당 문을 연 곳도 없어 아침을 거른 채 간다. 어제도 그 험하고 험한 길을 달려 밤 늦게 중바에 도착했을 때도 예약됐다는 빈관은 아직 공사 중이라 할 수 없이 우리나라 시골 여인숙보다도 못한 초대소에서 겨우 새우잠을 잤을 뿐이다. 이런 식의 홀대가 사흘째였다. 현광민 탐험대장은 화가 날 때로 났고, 그래서 아침부터 베이징의 중국국제여유국 담당자와 설전이 벌어졌다. 라싸 이후 호텔 예약과 식사문제 등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부분을 해결하기는커녕, 관련 경비는 십 원 짜리 한 잎도 손해 보지 않고 챙기는 몰염치가 괘씸했던 터였다. 덕분에 여로에 지친 탐험대원들이 벌써 사흘째 목욕은 물론 세면조차 곤란한 초대소에서 지내 온 터라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결국 이원 총경리가 잘못을 시인하고 향후 최대한 성의를 다하겠다는 선에서 마무리가 됐다.
 푸랑 가는 길 역시 대규모 공사구간이 널려있어 운행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해발고도는 점점 높아져 4500미터에 이른다.
 
사막의 선술집 같은 고원지대 마을 '훠얼'. 할 일 없는 사내들이 큰 길가에 나와 포켓볼을 치고 있다.

  강한 자외선을 동반한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히터를 틀어 놓은 상태라 자꾸 졸음이 온다. 운전자들을 깨우기 위해 각 차마다 저마다의 비법으로 졸음을 쫓기에 난리가 났다. 그러는 사이 3호차의 뒷바퀴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벌써 3번째다. 외부온도가 영하 4도. 교체작업도 수월치 않다. 고산증세와 추위에 떨며 겨우 교체해서 출발한다.
 남부 티베트의 시가체 지역과 아리 지역을 가르는 마유교(馬攸橋)를 지나 아리 지역으로 들어선다. 아리는 남쪽으로는 히말라야 산맥을 사이에 두고 네팔, 인도와 이웃하고 북쪽으로는 쿤룬산맥(崑崙山脈)을 넘어 신장(新疆)지역으로 통한다. 이렇다보니 공안들의 검문도 점점 까다로워진다. 마유교 공안검사참에서는 통행자들의 여권과 통행허가서를 꼼꼼히 체크한다. 국경이 인접한 지역으로 대부분이 군사보호지역이라고 한다. 군사보호지역? 이젠 탐험대도 군사보호지역이라는 말에도 긴장은 커녕 별무반응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북부지역에 휴전선이 있으니까 조치원쯤부터 군사보호지역이라는 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황당한 겁을 줘놓고 그걸 곧이 곧대로 지키는 것이다. 보통 250킬로미터 촬영금지, 어떤 때는 600킬로미터 촬영금지다. 비포장 산길을 수 백 킬로미터나 통제를 해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심지어는 소변을 보는 것도 허락 받지 않았다고 싸운 적이 있다. 그런 이유로 중국 감독관과 탐험대 사이에 적잖은 앙금이 있는 상태. 한번 제대로 걸리면 가만 안두겠다는 심산이었다.
 얄룽창포 강의 근원인 마췐하를 거슬러 서쪽으로 달리다보니 해발 5216미터의 마유무라산(馬攸木拉山)이 보인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아리의 오지에 접어 든 셈이다. 오른쪽으로 캉디스 산맥이 길게 늘어서 있지만 대부분은 야트막한 구릉지대와 초원지대가 펼쳐져 있다. 해발 4000미터가 넘는 고원지대에서 보는 이채로운 광경이다. 노랗게 물든 초원지대 멀리에는 유목민으로 보이는 무리들이 점처럼 보이고, 가끔은 십여 호 쯤 되는 유목민 정착마을이 드문드문 보인다. 여느 티베트 부락과 별반 차이는 없지만 신축토담집들이 많고 “교육‘을 강조하는 표어들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어 이 황량한 초원에까지 미치는 중국정부의 강력한 교육정책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도로는 비포장이지만 지반공사를 대충한 듯 도로는 비교적 널찍하고 평탄해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빨래판처럼 가로로 촘촘히 파인 홈들로 인해 소음과 진동이 장난이 아니다. 소음과 진동을 피하려면 시속 70킬로미터 이상으로 박차고 달려야 한다. 대초원의 여유를 느낄 사이 없이 긴장의 연속이다.
 햇살은 강렬하고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달리는 탐험대에게 또 다시 졸음이라는 적이 쳐들어 온다. 설상가상 이번에는 2호차가 사고가 났다. 울컹하면서 땅바닥을 들이 받은 연료탱크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다행히 심하지는 않지만 기름이 새고 있어 여차하면 차량자체를 후송 보내야 하는 경우도 올 수 있는 상황. 사방 200킬로미터가 넘는 이 오지에서 탐험대 차량이 운행불능 상태가 된다면 탐험은 그것으로 끝이 날판이다. 달리 방도가 없어 기름이 새는 만큼 보충하면서 가기로 한다. 하지만 이 고원지대에서 여유분의 기름을 구할 수 있는 주유소가 있을 리 만무하다. 중국 감독관과 상의한 끝에 코스를 조금 바꿔 마을을 찾아 나섰다. 겨우 찾은 마을이 훠얼향. 마치 텍사스 사막 한가운데 있는 허름한 선술집들이 모여 있는 그런 마을이다. 그런 마을에 연료탱크 균열을 고칠 수 있는 카센터가 있을 리 없다. 할 수 없이 균열부위를 씹던 껌으로 임시조치하고 기름을 보충하는 방법으로 다음 목적지까지 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이원 총경리가 군부대에 통사정을 해서 얼마간의 유류를 얻어 주고 다음 경유지인 푸랑 공안국에 연락하여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티베트 사람은 고개마다 사원마다 작은
돌탑을 쌓아 소원을 빌고 공덕을 쌓는다.

캉디스 산맥을 따라 200여 킬로미터를 달리자 멀리 신산(神山) 카일라스와 성호(聖湖) 마나사로바가 보인다. 그러나 벌써 날이 저물기 시작해 그 아름다움을 음미할 여유가 없다. 해 떨어지기 전에 산길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207번 도로를 따라 곧바로 푸랑으로 향한다. 푸랑은 히말라야 산맥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중국과 인도,네팔 3개국의 경계선상에 있는 도시다. 따라서 예로부터 티베트 서부의 대외무역을 담당하던 중요한 교역지이자 민간교류를 하던 통로였다. 지금도 네팔이나 인도에서 중국으로 통하는 제 1급 관문이다. 때문에 오래전부터 외국순례자와 상인들이 이 푸랑을 통했고,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티베트의 주요국제통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더구나 신산 ‘카일라스’와 성호 ‘마나사로바’가 있어 특히 순례자와 야행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밤길을 달려 푸랑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지옥길이 따로 없다. 해는 져서 캄캄한데 길은 급경사요 온통 커다란 자갈길이다. 이미 여러차례 돌과 흙더미에 받쳐 고생한 경험이 있는 탐험대원들은 한껏 움츠러들 수 밖에 없다. 연료탱크에 금이 간 2호차를 천신만고 끝에 겨우 여기까지 끌고 왔는데...아무리 둘러봐도 사위에 빛 한점 없는 비탈길을 얇은 얼음을 밟듯 살금살금, 아슬아슬 내려간다. 그렇게 50여 킬로미터를 달려 도착한 푸랑. 흰두건을 두른 듯한 히말라야 산맥의 영봉만이 새벽 달빛에 살짝 얼굴을 드러냈을 뿐, 푸랑은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탐험대를 맞이한다./글.사진=백민섭 경인지역 새방송 창준위 지원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