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자동차 가족여행기 18 : 물의 도시, 베네치아(2)
2005년 7월 30일(토)
두깔레를 나와 미로 같은 베네치아 거리를
표지판만 보고 찾아 다닌다.
리알토 다리를 보고, 베네치아 생활상을 잘 보여 준다는
‘레쪼니꼬 궁전’으로 향한다.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거리 이름들을 확인해 가며
레쪼니꼬 궁전으로 가는 길은 그리 쉽지는 않다.
작은 운하 주위엔 더위에 지친 젊은 배낭 여행객들이
웃통을 벗고 누워 자기도 하고, 다리 계단에 앉아 있기도 한다.
관광객들이 주로 다니는 큰 길을 벗어나면 좁디좁은 골목길에
인적이라고는 없는 괴괴한 거리들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다.
이불이며 양탄자를 널어놓은 베란다.
가끔 휙 나타났다 사라지는 집시 남자. 큼큼한 냄새...
혼자서는 위험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 절대 다닐 수 없을 것 같은
좁은 미로를 네 명이라는 가족의 힘으로 씩씩하게 걸어간다.
물론 그 가족의 힘엔 오늘따라 베네치아도 싫고 더위도 싫다고
투덜대고 한숨 쉬는 아들도 들어 있다.
정말 요즘 아이들은 참을성이 없다.
조금만 더워도, 조금만 힘들어도 참지도 못하고, 참으려고도 안 한다.
투덜대는 아들에게 니가 효도관광 온거냐고, 유람하러 온 어른이냐고,
힘든 가운데 참을성도 키우고
마음의 힘도 키워야 할 거 아니냐고 야단을 친다.
즐겁고 편하고 시원한 여행을 원하는 요즘 아들에게
힘든 속에서 뭔가를 얻으라는 구세대 엄마가 화를 낸다.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않는 것 같아,
이 여행을 아이들 교육을 위해 계획했다는 생각과 명분이
허망해지는 순간이다.
이럴 때는... 엄마 노릇이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 노릇이 이런 것인 줄 알았으면,
섣불리 그렇게 쉽게 엄마가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텐데.
어른들은 모성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지 말고
부모됨의 힘겨움과 헛됨에 대해 적나라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예비 엄마들에게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결혼을 했으니 당연히 아기를 낳으라는 이야기 뿐.
이렇게 쓰디쓴 엄마됨의 힘겨움에 대해선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아니, 참, 아니다.
나의 엄마, 많은 엄마들이 속 썩이는 딸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너도 꼭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봐라.”
아, 그 말에 담긴 회한과 후회와 고뇌를 어떤 딸이 알 수 있었으랴.
사람들은 전대 사람들이 겪은 희로애락을 똑같이 겪어간다.
문명은 발전해 가나, 인간 삶의 본질은
삼천년 전이나 삼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
스스로 겪어봐야 알아차리는 이 인생의 쓰디쓴 맛을 이야기해 준대야
절감할 수 있는 현자도 사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쨋거나 이 힘겨운 엄마는 오늘도 아들을 야단치며
베네치아의 거리를 걸어 마침내 레쪼니꼬 궁전에 도착한다.
겉보기엔 작지만, 3층까지 가재도구, 프레스코화,
베네치아 화파의 그림들이 빼곡이 들어찬 알찬 박물관이다.
우리 가족은 이 박물관을 매우 사랑했다.
여행 중 박물관에서 그림 보는 것이 제일 지루하고 싫다던 아들도
이 박물관을 사랑했다.
우리는 그림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고,
걸려있는 영어 설명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고
방 하나 하나를 아까운 듯이 천천히, 천천히 보아 나갔다.
보름이 다 되어 가는 여행 중 이렇게 사랑을 받은 박물관은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 하나.
밖의 열기에 비해 궁 안이 너무나 시원했다.
방마다 빵빵한 에어컨이 나오니
아이들과 나는 이곳에서 나가기가 싫은 것이었다.
베네치아의 살인적 햇볕과 더위가, 우리가 이 궁을 나가는 순간
우리의 온몸을 휘덮을 테니까. 그렇다고 숙소는 나은가?
숙소 역시 캐러밴이니 지금쯤 한낮의 더위를 한껏 흡수해 찜질방 일테고,
숙소 앞에 탁자와 의자를 내놓는대야 바람 한 점 없고 독한 모기떼들이
우리 가여운 살들을 향해 몰려들 테니까
우리는 여기서 나가는 것이 싫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최고의 박물관 애호가인 체 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그림 하나 하나를 어루만지듯이 바라본다.
다리가 아프면 방에 하나씩 마련된 의자에 앉아
앞에 걸려 있는 그림들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본다.
사실은 바라보는 체 하며, 힘든 다리 근육들이 희열에 떨며
쉬는 것을 마음껏 즐기는 것이다.
로마에 가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대체로 현재까지는
이탈리아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다.
남편은 카드 사용이 안 되고, 모든 것을 현금으로,
그것도 거금을 받는 이곳 관광체계로 인해,
나는 나를 특히 좋아하는 모기떼와 멋진 이탈리아 남자는 없고
바글대는 관광객과 수많은 거지들이 들끓는 거리로 인해,
아이들은 찌는 듯한 더위와 종일 걷는 피곤함으로 인해 말이다.
수많은 이탈리아 애호가들이 반박하겠지만
어쨌든 현재까지의 이탈리아는.. 흠... 별로...
하지만, 내일 모레 그리고 그 다음날..
이탈리아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 것인지가 궁금하다.
아주 많이.
이 궁금함과 호기심이 내일 새벽 일어나 밥을 하고 짐을 싸게 할 것이다.
자! 밥 많이 먹고 또 나가 보자.
무슨 일이 있을지, 어떤 것이 있을지,
한번 또 만나보자꾸나.
<리알토 다리>
<리알토 다리 근처의 어느 가게에서>
<무더위를 잠시 식혀준 레쪼니꼬 궁전 박물관에서>
<레쪼니꼬 궁전에서 바라본 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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