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기상, 7시 식사, 8시 출발이라는 인솔자의 어제 밤 이야기와는 상관없이 전 식구가 5시에 기상했습니다. 물론 원용이는 4시에 일어났지요. 시차에
적응이 안된 모습입니다. 덕분에 6시도 안되어 우리 식구는 출발준비가 다 끝난 상태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바티칸과 로마 시내관광입니다. 이 여행이 아쉬운 점은 이탈리아 전체 일주 프로그램인데도 불구하고 로마에서의 실제 일정이 하루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인근 숙소에서는 3박을 하지만 실제 로마시내구경은 하루밖에 없어 아쉬움을 더해줍니다. 그래도 오늘이 그 하루에 해당하는 날입니다. 열심히 구경해야지요. 나중에 다시 오게 되면 그때는 로마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내도록 할 겁니다. 로마시내로 가는 고속도로는 출근시간과 겹쳐서인지 꽉 막혀 있습니다. 마치 우리 서울의 러시아워와 같은 모습입니다. 버스 차창 밖으로 이탈리아의 전원 풍경이 보이는데 사방이 평지입니다. 우리 나라는 사방에 산이 보이는데 이 곳은 평지입니다. 그래서 이탈리아가 고대 로마시대부터 농업국으로 시작된 모양입니다. 물론 나중에 지중해의 패권국이 되면서 농업에서 상업으로 산업의 중심이 넘어갔지만... 우리의 첫번째 도착지는 바티칸입니다. 바티칸은 또한 세계 4대 종교의 하나인 로마가톨릭의 최고 제사장인 로마교황이 거주하고 집무를 보고 미사를 집전하는 곳입니다. 즉 교황이 살고 있는 곳이지요. 또한 로마가톨릭의 총본산인 성 베드로 대성당이 있는 이 곳, 바티칸은 이탈리아가 아니면서도 로마시내에 자리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도 주 바티칸 대사관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지요. 바티칸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큰 나라입니다. 유럽과 남미대륙을 교황 혼자서 주무를 수 있는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또한 전세계에서 들어오는 교회로의 수입이 얼마이겠습니까?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부자는 교황청일 겁니다. 이곳, 바티칸의 대표적인 구경거리는 3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 바티칸의 갖가지 명화와 조각들, 그리고 다양한 유물들을 전시한 바티칸 미술관, 둘째, 근대 르네상스 시기의 저 유명한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벽화로 유명한 시스티나 성당, 셋째, 바로 세계 4대 성당으로 꼽히고, 로마가톨릭의 총본산이랄 수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 - 이탈리아어로는 산피에트로 대성당이라고 합니다. - 입니다. 오늘의 구경 순서는 방금 전 제가 나열한 순서로 보게 됩니다. 여름에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 몇 백 미터, 몇 킬로미터를 줄을 서서 들어간다는데 겨울이라서 인지 줄은 전혀 서지 않고 바로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행운이지요. 겨울이 돌아다니기에는 춥고 해도 짧아 안 좋지만 이런 유명 관광지나 박물관, 미술관들을 다니기에는 너무 좋은 계절인 것 같습니다. |
<바티칸의 솔방울정원에서>
<팔각정원에 있는 라오콘 상>
입구를 지나면 바로 솔방울정원이라 부르는 사방이 성당 건물 회랑으로 둘러싸인 넓은 정원이 나옵니다. 미술관은 이 회랑 속에 있습니다. 바티칸 미술관에는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갖가지 조각품이나 중세 이후의 그림, 조각 등 다양한 전시품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시 이름값을 합니다. 팔각정원이라는 곳에 전시돼 있는 고대의 조각품들 중 단연 인기가 있고 뛰어난 작품들이 "라오콘상", "아폴로상", "페르세우스상" 입니다. 그 중 "라오콘상"은 호머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트로이전쟁에서 트로이로 목마를 들여오는 것을 반대했던 트로이의 제사장인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을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이 뱀을 보내 죽이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조각상입니다. 기원전 150 ~ 5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리스 로도스섬의 조각가 3명이 만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라오콘상은 라오콘과 자식들이 뱀에게 목이 졸려 죽으려는 모습에서 그 고통과 격노를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전율을 느끼도록 보여줍니다. 중세 이후의 작품들이 사실적이기보다는 종교적이고 추상화하는 것에 비하면 그리스 로마 시대의 헬레니즘 문화는 사실적이고 인간적인 것에 초점을 맞춰 그리거나 제작된다는 사실을 이 대리석 조각상에서 알 수 있습니다. 솟구쳐 나오는 근육과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고통 등의 표현이 그 자리에 사람들의 시선과 발걸음을 멈추어 놓게 합니다. 다른 조각상인 한 손에 메두사의 머리를, 다른 손에 칼을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상이나 부드러운 근육과 온화한 인상을 풍기는 아폴로상도 인기는 있지만 단연 라오콘이 돋보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확실하게 할 것은 제 2 저자입니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에도 제 2 저자를 누구로 할 것인가 하고 논란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 쓰고 있는 이 여행기의 제 2 저자에 대한 부분도 확실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지적재산권문제가 생기지 않을 테니까요. 먼저, 조각상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제가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제 1 저자임은 분명한 사실이구요...감상에 대한 부분은 아이들의 엄마이자 저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평생의 동반자인 인간 돋보기 박여사의 몫이 큽니다. 그래서 제 2 저자는 박여사에게 주려고 합니다. 하나만 더 부연하면 이번 여행은 여행사에서 주관하므로 박여사의 역할이 지난 미국여행과 같이 크지 않습니다. 즉, 인간 돋보기가 필요 없다는 말이지요. <바티칸 미술관 내부, 사진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대리석 조각상들이 있는 곳을 지나면 미술관건물 안으로 들어가 건물 내부에 전시돼 있는 엄청난 유물들과 조각상, 그림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 로마시대 것을 제외하고는 대개가 성화나 기독교와 관계된 것들입니다. 하긴 유럽에서 기독교와 관계되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건 바로 그리스, 로마시대의 것들이거나 아니면 다른 곳에서 가지고 온 것들이지요. 17세기 이후부터의 작품들이 유럽 자체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작품들을 천천히 보면서 우리는 두 번째 구경거리가 있는 시스티나 성당으로 접어들어갑니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벽화, "천지창조", 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 다른 곳들은 비디오 촬영과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은 채 사진을 찍을 수 있었지만 시스티나 성당의 핵심인 예배당에서는 철저히 금지돼 있습니다. 세계적인 대 조각가, 이탈리아가 낳은 예술의 천재,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이 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럼 그런 유명한 작품을 길이길이 보존하기 위함일까요? 아닙니다. 이유는 전혀 다릅니다. 또한 너무나 간단합니다. 그림보존을 위한 것이 아니고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이 두 그림이 훼손될 대로 훼손되어 1982년 복원을 했는데 일본의 한 방송사의 후원으로 최신 기법을 사용하여 9년간 복원을 했다고 합니다. 무상으로 말입니다. 대신 복원의 조건이 그 두 그림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가지는 것으로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방송사가 지적재산권을 소유하게 된 거라는 군요. 하여간 대단한 일본입니다. 돈도 많고...이런 곳에 까지 Money를 대어 자신들의 복원기술을 뽐내고 그걸 통해 많은 돈도 벌어들이는 사람들입니다. 예배당에 들어서면 갑자기 사람들이 엄청나게 모여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흘러 다녔는데 여기서는 다들 앉아 있거나 가만히 서있습니다. 그리고 조명도 약간은 어둡습니다. 그러나 하늘을 쳐다보는 순간 저도 그런 장면은 처음 겪었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마디로 엄청납니다. 하늘에 있는 천장 전체를 뒤덮고 있는 그림이 단 한 사람이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원래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으로 전혀 생소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는데 완성될 때까지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고 혼자서 머리를 들고 4년간 그렸다고 하니 그림의 완성도나 감상을 떠나 그 웅장함과 거대함에 치를 떨게 합니다. 그것을 완성한 미켈란젤로의 고집과 예술적 감각도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약 40미터 가까이나 되는 높은 천장임에도 밑에서 올려다보면 선명하게 보입니다. 특히나 우리에게 잘 알려진 1982년 스필버그 감독 제작의 영화 "E.T."에서 ET와 주인공이 손가락 끝으로 서로를 교감하던 모습은 바로 이 "천지창조"에 나오는 아담과 하나님의 손가락 끝 교감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천지창조" 중에서 아담과 하나님이 교감을 이루는 장면, 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이 작품에서 하나님은 엄숙하고 무서운 존재가 아닌 온화한 모습으로 그려 당시 교황이 감탄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다시 고개를 숙여 뒷면으로 시선을 돌리면 또 하나의 거대한 벽면 벽화인 "최후의 심판"이 보입니다. 뒤쪽 벽면 전체를 뒤덮은 " 최후의 심판"은 원래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헬레니즘 방식으로 옷을 모두 벗은 나체로 그렸다는데 당시 교회와 교황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텼다는 군요. 결국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덧칠을 해서 옷을 입혔지만... 교황 클레멘스 7세의 명으로 그리게 되었다는데 단테의 "신곡"에서 영향을 받은 듯 천국, 연옥, 지옥의 3단계로 나누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모든 모습을 391명으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특히 중앙의 예수는 그동안 그려졌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 즉 수염도 없고 근엄하고 인간에게 벌을 주는 근육질의 남성적인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쌀쌀맞게 대하던 당시 추기경을 지옥의 세계에 당나귀의 귀를 한 얼굴모습으로 그려 넣어 더 한층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당시 그 추기경은 작품이 공개되고 나서 - 미켈란젤로는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는 아무에게도, 심지어 교황까지도 보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 추기경은 당시 미사에서 앞쪽 오른쪽에 앉아 있었는데 바로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부분이 자기 자리의 바로 코 앞에 있었던 겁니다. - 자신의 얼굴을 바꿔달라고 요구했으나 미켈란젤로가 들어주질 않자 교황에게 간청을 했다고 하지요. 하지만 교황은 다음과 같은 걸작의 한마디로 거절했다고 합니다. "천국과 연옥에 대한 것은 내 소관이지만 지옥의 세계는 내 소관이 아니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벽화, "최후의 심판", 사진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이 곳 시스티나 예배당은 대단한 곳입니다. 위의 두 가지, 미켈란젤로의 그림 외에도 당시 유명한 화가인 보티첼리나 다른 화가의 걸작 벽화도 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예배당 가운데로 가서 자세히 보려는 순간 너무나도 아쉬운 풍경이 제 눈에 들어 옵니다. 다름 아닌 로마 현지 가이드의 손짓입니다. 나가자는 손짓 말입니다. 아니 다른 곳에서는 15분씩 시간을 주고는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이곳에서는 5분밖에 시간을 주지 않고 나가자니 세상에 말이 됩니까? 그래도 어떡합니까? 패키지로 왔으니 따를 수 밖에요. 그래서 싫으면 개인적으로 여행을 다녀야 하는 겁니다. 다음에 유럽으로 올 때는 무조건 우리끼리 와서 볼 만큼 보고 지나갈 곳은 지나가고 해야지요. 어쨌거나 시스티나 성당은 아쉬움만 남긴 채 뒤로 하고 떠나갑니다. 저에게는 새로운 감동을 주었고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또 다른 여행의 흥미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곳입니다. 이렇게 해서 오전 일정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이탈리아 현지에서 먹는 현지식 점심입니다. 본토 스파게티와 닭, 샐러드 등으로 먹는 점심입니다. 바티칸 근처의 식당에서 말입니다. 식당으로 걸어가는 도중 저 멀리 하드리아누스의 황제묘, 즉 영묘가 있는 곳이 보입니다. 주위를 성벽으로 둘러치고 그 바깥은 해자(물길)가 둘러 있는 요새와 같은 곳입니다. 12세기부터는 바티칸을 방어하는 목적의 요새로 변해 산탄젤로(성 안젤로, 거룩한 천사)성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점심식사 후 다시 바티칸으로 가서 성 베드로 대성당(산피에트로 대성당)과 성 베드로 광장(산피에트로 광장)을 볼 예정입니다. 이탈리아는 대리석에 관한 한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나라입니다. 기본적으로 땅속에 대리석이 풍부하여 조금만 파도 나오는 게 대리석입니다. 그래서 각종 건물이나 다리 등을 고대부터 대리석으로 만들어 왔습니다. 덕분에 고대로부터의 유적, 유물들이 그나마 많이 남아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돌이 많지 않고 있어도 사용하기가 불편한 화강암들뿐이고 또한 주위에 산이 많고 나무가 많아 나무는 흔했던 터라 옛날부터 나무로 건축을 많이 했지요. 덕분에 수 천년 동안 불에 타고 남은 것은 겨우 얼마 안 되는 돌로 된 석탑 등만 남아 있습니다. 대신 이탈리아는 나무가 많지 않습니다. 우리나 중국과 같이 거대한 건축재료로 쓰이는 나무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산이 많지 않고 구릉지대가 많아서입니다. 점심을 먹고 - 본토 스파게티라고 다를 줄 알았는데 오히려 한국식 스파게티 더 맛있습니다. 왜냐하면 이탈리아는 날씨가 더운 나라여서 사람들이 음식을 짜게 먹어 스파게티도 상당히 짭니다. - 우리가 얼마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타계 시에 많이 보았던 성 베드로 대성당과 성 베드로 광장으로 향합니다. 성 베드로 광장은 거대한 대리석 기둥들과 대리석으로 된 건물들로 둘러싸인 넓디 넓은 둥근 광장입니다. 주위에 나무는 없고 오로지 대리석으로 꾸며진 곳이지요. 바닥까지도 돌로 이루어진 곳입니다. 이곳 로마의 특징이 일반 도로들은 거의 대부분 돌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대 로마시대 때부터 로마인들, 특히 로마군의 특징은 자신들이 점령한 지역에까지 도로를 개설한다는 점입니다. 말과 마차들이 빠르고 쉽게 다닐 수 있도록 돌이나 자갈을 이용하여 평평한 도로를, 요즘으로 얘기하면 고속도로를 놓는다는 겁니다. 그리하여 군수품들이나 지원체계를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지요. 그러한 로마식 가도 덕분에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의 곳곳에까지 도로가 놓이게 되고 또한 국제적인 무역과 상업이 발달하게 되었지요. 현재 서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이 사용하는 간선도로의 대부분도 이 로마가도를 확장하거나 새로 보수하여 만든 것들입니다. 또 한가지, 로마제국 당시의 주요 군사기지가 있었던 곳들이 현재 서유럽의 주요 도시가 되었다는 사실도 있습니다. 스위스의 제네바, 베른, 쮜리히, 이탈리아의 밀라노, 베로나, 프랑스의 리용, 독일의 쾰른, 본 등이 대표적인 도시들입니다. 군사기지가 도시화한 것입니다. 이 로마가도를 통해 서기 1세기 ~ 2세기까지의 약 200년 동안 "Pax Romana"의 시대가 도래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Pax라는 용어가 쓰인 세계적인 제국은 모두 네 나라가 있습니다. 그 중 첫번째 제국이 바로 로마제국입니다. 두번째는 바로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와 가장 많은 인구를 거느리며 동서양간의 국제적인 무역과 교류를 활성화시킨 13 ~ 14세기의 "Pax Mongolica" (몽고제국) 입니다. 세번째가 17 ~ 20세기 초까지의 "Pax Britanica" (대영제국) 입니다. 마지막으로 20세기 중반 이후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Pax Americana (미국) 입니다. 베드로는 예수의 12제자 중 하나이며 스스로 자원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죽은 성인이자 로마가톨릭의 초대교황, 즉 1대 교황입니다. 그리하여 그를 기려서 만든 성당이 바로 성 베드로 대성당입니다. 성 베드로 성당은 여름철에는 최소한 1시간에서 3시간씩 서서 기다리다가 들어가야 한답니다. 그러나 역시나 우리 가족은 여행에 관한 한 운수 대통한 가족입니다. 여유롭게 천천히 걸어 들어가 역시 여유롭게 천천히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전해지는 얘기에 의하면 로마제국 초창기 네로 황제 시기에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처형된 후 그의 유해를 누군가가 바티칸 언덕에 묻어두었고 그 자리에 자그마한 베드로 성당이 지어졌습니다. 그러다 4세기 초 기독교를 공인하고 진흥시킨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바로 이곳에 바실리카식의 성 베드로 성당을 다시 지었습니다. 후에 베드로의 무덤으로 짐작되는 무덤이 발굴되어 발굴된 유해를 현재 베드로 성당 내부에 안치하여 전시하고 있습니다. - 현재까지도 베드로라고 짐작만 할 뿐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16세기 초 교황 율리우스 2세 -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벽화를 미켈란젤로에게 명하여 그리게 한 교황입니다. - 의 명령으로 새롭게 증축하게 되어 전체적인 성당의 실제 공사는 120년이 지난 17세기 중반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설계 및 총감독만도 브라만테, 라파옐로, 안토니오, 미켈란젤로, 마데르노 등으로 이어지며 여러 수십 명이 담당하게 됩니다. 베드로 성당은 건물외관부터가 거대하고 웅장합니다. 마치 그리스시대의 신전과도 같으면서도 중앙에 솟은 커다란 아름다운 돔은 미켈란젤로 건축의 백미라 불리고 있습니다. |
<성 베드로 대성당의 전면 모습>
성당 안은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크고 작은 제단만 무려 44개에 달한다는 규모만이 아니고 내부의 둥근 각종 기둥들, 온갖 벽면에 그려지거나 장식된 벽화와 조각상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합니다. 역시나 천장부터 바닥까지 모두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성당 내부에 있는 수많은 걸작 조각상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것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입니다. 성모마리아가 순교하여 죽은 예수를 끌어안고 있는 이 대리석 조각상은 아마도 꼭 보셔야 할 겁니다. 그 밖에도 수많은 조각 작품들이 있고 성당 중앙 제단 바로 밑에 베드로의 유해를 모신 곳도 있고 교황들의 미이라도 있습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확실히 성당이라는 곳이 종교의식을 위한 장소라서 그런지 몰라도 성당 내부는 상당히 어둡습니다. 어두운 정도가 아니라 컴컴한 정도입니다. 그래도 볼 수 있는 것은 다 볼 수 있도록 자연 채광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창문들이 배치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밝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약간은 어두컴컴해야 신비감도 생기고 엄숙함도 더 생기며 그 속에서 이런 거대한 돔형식의 대리석으로 공간을 조성함으로써 음향까지도 울리게 되어 더욱 사람들이 그 속에서 종교에 대한 권위를 가지게 되나 봅니다. 국내에서도 성당이 그런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하도록 설계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미있는 사실이지요. 제가 듣기로 중세시대 건축의 백미인 고딕양식도 한마디로 표현하면 뾰족한 첨탑과 세로로 기다랗고 몇 개 안 되는 창문을 꼽을 수 있지요.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내부가 더욱 어둡고 무서운 분위기가 형성되어 교인들이 그 안에서 교회에 대한 충성과 존경심이 우러나도록 하나 봅니다. 성 베드로 성당은 그 높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내부에서 올려다보면 저 높은 천정 위가 돔으로 구성되어 보이고 - 중앙 제단 위의 가장 큰 돔의 높이가 137m입니다. - 그 돔은 단순하게 만든 것이라기보다는 갖가지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타원형 돔도 있고... |
<성당 내부 자연채광과 어우러지는 조각상>
<성 베드로 광장에서 바라본 성당 전경>
여기서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가이드나 인솔자가 하도 우리에게 도둑이나 소매치기가 많다고 하여 - 이 성당내부에도 집시들이 들어와 소매치기를 한다고 합니다. - 우리는 돌아다니면서 주위 사람들을 흘끔흘끔 쳐다보며 혹시 집시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기도 했지요. 정말 웃음만 나옵니다. 혼자서 허름한 옷을 입고 어슬렁어슬렁 다니는 키 큰 남자가 집시 아닌가 하면서 말입니다. 사실 로마교황이 살고 로마가톨릭의 중심이라는 엄숙하고 근엄한 성당에까지 와서 사람들을 소매치기인양 의심해야 한다는 세상의 현실이 우습지요. 우리나라로 말하면 경주 불국사나 서울의 조계사 등에서 소매치기를 당한다는 사실인데 말입니다. 하긴 알 수 없는 일이죠. 조계사에서 폭력집단끼리 싸움도 하니까 말이죠. 그만큼 종교계가 권위를 잃은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거대한 성당 내부를 뒤로 하고 성당 바깥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이 베드로 성당은 문이 5개가 있다는데 그 중 하나는 25년에 한번씩 열린다고 합니다. 또한 광장에서 바라보면 오른쪽 성당 뒤쪽으로 교황이 선출될 때 흰 연기나 검은 연기가 나오는 굴뚝도 보이고 평시 교황이 집무하는 방도 오른쪽으로 있습니다. 거기서 일요일은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기도 한답니다. <성 베드로 광장> 세상에서 가장 작지만 가장 큰 나라, 바티칸! 오늘의 바티칸 방문은 끝입니다. 시간이 부족하여 아쉬운 점도 많지만... |
출처 : 드라이빙 해외여행
글쓴이 : ctypa 원글보기
메모 :
'*세계로 가는 뚜벅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5부 2005년 12월 22일 목요일 돌아오라! 소렌토로 로마 -> 폼페이 -> 소렌토 -> 나폴리 -> 로마 (0) | 2006.05.17 |
---|---|
[스크랩] 4부 2005년 12월 21일 수요일 왔노라! 보았노라! 찍었노라! 로마 (0) | 2006.05.17 |
[스크랩] 2부 2005년 12월 20일 화요일 루비콘강을 건너며... 서울 -> 암스테르담 -> 로마 (0) | 2006.05.17 |
이탈리아 (Italy) 여행기 3편 - 북부 (0) | 2006.05.16 |
이탈리아 (Italy) 여행기 2편 - 로마 (0) | 2006.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