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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임파서블 3>(Mission: Impossible 3)에서 여전히 늙지 않은 이단 헌트(톰
크루즈)는 부하와 부인을 구하기 위해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한다. 베를린, 바티칸, 상하이를 종횡무진 오가면서 헌트 교관은 시종일관 부하
사랑과 부인 사랑에 목숨을 건다.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그와 그의 팀은 전 세계의 어떤 목표라도 잡아낼 수 있고, 어떤 음성과 얼굴이라도 만들어낼 수 있다. 심지어 죽었다가 살아나기까지 한다.
"근데, '토끼발'이 뭐예여?" 이 대사 한 마디에 이 영화의 이데올로기가 압축되어 있다. 헌트는 자기가 찾아야 될 것의 '정체'가 뭔지도 모른 채 죽을 고생을 하며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죽였던 것이다. 단지 그는 자신의 사랑스런 아내가 죽지 않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헌트는 멋지고, 잘생기고, 똑똑하고, 근육 남에다, 부하와 아내를 위해 목숨을 걸기까지 한다. 이렇게 '완벽한' 사람이지만, 단 한 가지 그에게 없는 것이 있다. '성찰'이다. 내가 얻어야 할 '토끼발'은 과연 무엇일까? 그 장치를 구하기 위해 이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도덕적으로 올바른가? 내 아내의 목숨은 나와 내 팀원, 그리고 내 주위에 깔린 '토끼발' 지킴이들의 목숨을 모두 희생시켜도 될 정도인가?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제3세계 사람들을 죽이고 '토끼발'을 찾아냄으로써 내가, 혹은 내 조국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 내 아내는 세계와도 바꿀 수 없는가? 등등. 그를 보면, 나치의 하수인들 모습이 겹쳐진다. 아이히만, 괴벨스, 괴링 등등. 이들은 자기 가족을 사랑하고, 애인과 죽음까지 가며, 음악을 아끼고, 철학책을 읽고, 미술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이 멋진 남자들이 최악의 전범이자 인류 최대의 살인자가 된 단 하나의 이유는 이미 한나 아렌트가 잘 간파했듯이 '성찰'이 없는 것이었다.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대로 자신은 그것을 최대한 효율적이고 성공적으로 실행하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히만·괴벨스·괴링과 헌트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전자가 목적을 위해서는 가족까지 장렬히 희생시킬 각오가 되어 있을 정도로 '거대 사고'에 갇혀 있었던 반면, 후자는 가족을 위해서는 목적까지도 장렬히 알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을 정도로 '미시 사고'에 갇혀 있었던 데 있다. 헌트는 '외부 없는 제국'인 미국의 현재와 정확히 포개진다. 9·11 테러 이후 아무런 증거도 없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초토화시킨 조지 W. 부시와 그의 수하들이 초토화 이후에 했던 행동을 상기해 보라. 인류의 고도 아프가니스탄을 사막으로 만든 후 "근데, '오사마'는 어디 있지?", 유프라테스의 문명국 이라크를 피로 물들인 후 "근데, '공격용 무기'는 없네. 어디간 거지?"라는 식이 아닐까? 최첨단 무기로 지구상 어떤 나라도 즉시에 철기시대로 되돌릴 수 있는 이 가공할 괴물들에게는 '성찰'이 없다. 사각의 링이라면 재미라도 있으련만, 이들의 무대는 전 세계라서 무서울 따름이다. 여러분은 미 해병대가 이라크 하디타라는 작은 마을에서 자행한 민간인 학살사건을 알고 있는가? 지난해 11월경 미 해병대가 이 마을을 순찰하는 도중 매설된 폭탄이 터져 해병대 병사 한 명이 사망하자, 격분한 동료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갓난아이, 소년, 여자, 휠체어에 탄 노인들까지 무려 25명 정도를 무자비하게 학살했다가 상부에는 '저항세력과의 교전 중 피해'였다고 은폐, 보고한 사건이다. 동료의 죽음에 격분하는 이 순수한(?) 청년들의 마음은 부하의 죽음과 인질이 된 아내를 위해 분노하는 헌트와 같고, 그 결과 이라크 민간인들을 '처형'한 해병대원들의 행동은 아내를 살리기 위해 '토끼발'을 찾아 헤매면서 그 주변의 모든 경호원들을 눈 깜짝 않고 죽여 버린 후 '멋지게' 탈출하는 헌트와 똑같다. 미군과 헌트, 모두 자신의 동료나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지만, 바로 그것을 위해서 주변의 타자들은 모두 죽일 수도 있다.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는 나라 하나를 박살내 버릴 수도 있는 이 무자비한 미국과 헌트의 모습을 좀 더 정교하게 보려면 조지 클루니 주연의 <시리아나>를 감상하거나 노엄 촘스키와 하워드 진을 읽어 보라. 전쟁 뿐만은 아니다. WTO, IMF, NAFTA나 FTA라는 이름의 협정과 규약들은 모두 '자유경쟁'을 표방하면서 부시의 지지층인 대기업의 시장을 전 세계로 확장하려는 전략일 따름이다. 그 세련되고 멋진 '자유' 협정들이 얼마나 많은 '부자유'와 '절망'과 '도산'을 양산하는지…. 우리는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봤고, 그리고 앞으로는 한국에서도 끔찍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미션 임파서블 3>와 같은 영화는 그 영화를 즐기는 전 세계의 관객들이 이단 헌트의 동선을 따르고, 이단 헌트의 감정에 이입되도록 만든다. 문화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 텍스트를 해석하기 때문에 텍스트의 이데올로기가 무조건 그대로 관철되지는 않는다. 다만, 국제관계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경제적 갈등과 모순들은 문화 텍스트 속에 하나의 '징후'로 남아있다. 영화를 보는 최고의 '재미'는 바로 여기서 나온다. 물론, 이 영화의 경우는 혐오스러운 씁쓸함이기는 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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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배꾸마당 밟는 소리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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