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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문화시장

대중문화시장인가? 투전판인가?
[김승수의 자본·권력·미디어] 2006 한국 문화산업의 빛과 그늘
2006년 06월 11일 (일) 23:14:37 김승수 교수

문화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영화, 방송, 게임, 출판 등 한국 10대 문화산업의 규모가 50조원이고, 종사자도 45만 명가량 된다고 한다. 인터넷, 휴대폰 등 40조원 규모의 정보통신서비스까지 합치면 전체 대중문화시장의 규모는 90조원쯤 된다.

이것이 대부분 내수용 서비스인 점을 고려하면 국민 1인당 18만 7500원을 부담한 셈이다. 대중문화산업은 진공청소기처럼 더 많은 돈을 빨아들이기 위해 무료방송은 유료방송으로 바꾸고, 새로운 매체와 서비스를 속속 시장에 내놓았다. 돈, 권력, 명예, 인기, 이런 것들이 대중문화시장이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온갖 것들이 시장에 진입하여 더 많은 돈을 벌겠다고 하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이 모습은 일제치하인 1930년대에 금광을 찾겠다고 집 팔고 논 팔아 전국 곳곳을 헤매고, 땅을 파헤치는 것과 비슷하다.

   
  ▲ 대중문화산업의 주력 노동자라 할 수 있는 작가, 스탭, 프로그래머, 애니메이터들 대부분은 최저생활비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다. 사진은 지난 2003년 11월 범애니메이션업계가 국산 창작만화의 확대 편성을 요구하며 KBS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대중문화산업의 과잉 생산은 문화생산력주의와 허영이 바탕에 깔려있다. 국가 문화생산력(National Cultural Productivity)이란, 문화를 사적 소유와 거래 그리고 이윤 추구의 대상으로 보고 투자함으로써 문화시장을 형성하고, 국내 총생산을 자극한다는 개념이다. 문화의 경제적 기능을 강조하는 문화생산력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규제가 고삐가 풀린 상태에서 문화와 자본의 결합은 문화시장을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아사리판'으로 변질시켰다.

돈 벌이 목적의 게임, 스포츠, 유료채널은 오래 전부터 공급 과잉이다. 다른 부문과 과잉 생산 추제가 뚜렷하다. 이런 문화 분야를 보면 경쟁, 이윤, 효율성, 마케팅과 같은 시장 논리만이 횡행할 뿐 우리 삶을 진정으로 윤택하게 만드는 것들은 보기도 어렵다. 대중문화시장은 규모의 경제에 얽매이고, 자기 잇속만 챙기다 보니 문화와는 동떨어진 것들이 대중문화라는 상표를 달고 국민 주머니를 터는 흉물스런 모습을 보인다. 사람들의 삶에 기본적인 탁아, 의료, 교육, 주택 문제를 해소하는 데 들어갈 재원이 태부족인 판에 대중문화시장까지 국민 경제를 잠식해 들어가니 안타까울 뿐이다.

사회와 국민에게 바른 정보, 더 다양한 문화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윤의 논리가 대중문화시장을 지배한다. 사회적으로 필수적이고, 유용한 서비스나 콘텐츠를 만들어도 돈이 안 되면 그만이다. 이렇게 대중문화시장은 정보와 문화를 교류하는 곳이 아니라 투전판으로 변질된 것이다. 간단히 말해, 한국대중문화시장은 사상의 자유시장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 이곳은 투기의 자유시장이며, 독점의 횡포가 판치는 영역이며, 천박한 자본 검열의 시장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사람답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격려하는 문화, 물건이나 자본 또는 권력이 사람을 앞서지 않도록 하는 가치를 많이 만들 수 있는 사회와 민족이 살아남는다. 이것이 문화 가치력이다. 세계 사람들은 미국 헐리웃의 문화 생산력은 경탄하지만 그 안에 흐르는 문화 가치력에 대해서는 냉소한다.

지금 한국 문화산업의 상황도 그렇다. 몇 개 부자 기업과 호사스런 연예인을 더 부유하게 만드는 데 혈안인 대중문화시장은 국민에게 큰 부담이다. 대중문화시장에서 대다수 국민들은 돈과 시간을 쓰는 기계에 불과하다. 대중문화산업의 주력 노동자라 할 수 있는 작가, 스탭, 프로그래머, 애니메이터들 대부분은 최저생활비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다. 이들은 문화산업 자본을 위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지만 정작 자기들 손에는 몇 푼 쥐지 못하고 소외를 당한다.

대중문화산업의 스타, 엘리트 중독은 중증이다.

그러다 보니 대중문화산업의 관심은 온통 국내외 스타나 행사에 쏠린다. 신문의 3단 기사, 방송 뉴스의 단신이면 족할 미국의 대중 스타 미쉘 위나 하인즈 워드 관련 소식이 한국 매체를 도배질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비롯해 우리 민족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가 산적하지만  방송사는 이를 외면하고, 월드컵 축구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 이들은 3채널 동시에 같은 경기를 중계방송하면서 방송 시간을 물 쓰듯 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시청자의 혼을 빼서라도 돈을 벌고야 말겠다는 심산이다. 월드컵이 끝나면 방송사마다 100억 원가량의 이익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무리한 행태에 대하여 국민의 불만이 폭발직전이다.

자본주의는 생산을 못해서 쓰러진 경우도 있지만 과잉 생산을 하다가 쓰러지는 경우가 더 많다. 대중문화 시장도 과잉생산-과잉 투자의 위험이 보인다. 정부, 국회, 학계 그리고 시민단체는 대중문화시장의 과잉 성장과 투기화에 경각심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 월드컵축구가 그렇고, 거기에 참여해 혹시 16강, 이참에 4강까지 하면서 시청자를 유혹하는 중계방송이 투기가 아니면 무엇인가? 영화산업이야말로 투전판으로 변질된 것은 아닌가? 대중문화시장은 공공성, 공익성, 문화주권 같은 것은 살아남기 어렵고, 경쟁과 이윤 그리고 효율성의 가치가 난무하다. 이것이 자본 독재가 아니면 무엇인가? 이런 늪에서 만든 콘텐츠를 진정 문화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대중문화산업은 언제까지 자본의 노예를 자처하면서 선량한 국민의 주머니와 감성을 공격할 것인가? 또 언제쯤 대중문화시장에서 투기가 사라지고, 문화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 대중문화자본의 도우미를 자처하는 국가는 언제 국민의 도우미가 될 것인가? 한국대중문화시장은 돈 많은 사람들의 투기판이 아니며, 연예인, 스포츠 스타의 놀이터도 아니다. 이곳은 문화를 교류하고 창달하는 사람의 공간이어야 한다. 대중문화시장은 돈도 필요하겠지만 더 시급한 것은 바른 정신, 올바른 가치의 복원이다. 학계도 특히 대중문화산업의 생산력주의에 편향하지 말고, 문화다운 문화, 사람에게 유용한 문화를 구현하는 문화가치론에도 적절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승수 교수(전북대·신문방송학)는 한양대 신문학과를 거쳐, 서울대 신문학과 석사와 영국 래스터 대학 언론학 박사과정을 마쳤고, KBS 책임연구원·방송개혁위원회 실행위원·EBS 시청자위원·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저서로는 한국언론산업론(나남, 1995), 매체경제분석(커뮤니케이션북스, 1997), 디지털 제국주의(나남, 2000), 매체소유연구(언노련, 2002), 디지털방송의 정치경제학(언노련, 2003), 언론산업의 정치경제학(개마고원, 2004) 등이 있다.

출처 : 시선 그리고 느낌
글쓴이 : 시선00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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