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edia Forum

두 방송 저널리즘 : PD저널리즘, 기자 저널리즘

원용진(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1. 긴장 속의 저널리즘

방송 저널리즘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여러 학자들은 신문 저널리즘을 모델로 삼았다고 주장하거나 추정하고 있다. 초기에 방송이 신문을 읽어주거나 ‘자세한 소식은 신문을 참조하라’라는 멘트를 내보기도 했으니 그 주장은 가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신문 저널리즘이 방송의 원형(archetype) 지위를 누린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방송 기술의 발전, 텔레비전의 대중적 보급 등으로 인해 방송 저널리즘은 상대적 자율성을 만끽하며 자신만의 저널리즘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이 같은 원형으로부터의 이탈은 저널리즘 전반에 대한 혼동을 낳게 된다. 방송 저널리즘의 성공은 과거 원형이었던 인쇄 저널리즘의 여러 원칙들에 긴장을 제공한 것이다. 스타 저널리스트의 이미지 활용, 피처 기사화된 경성 뉴스, 영상을 통한 본격적인 설득, 다큐멘터리 기법을 활용한 심층 보도 등은 시청자의 눈길을 끌면서 새로운 저널리즘으로 정착해갔다. 특히 영상을 무기로 한 방송 저널리즘은 현장성, 사실성으로 시청자들에게 소구하면서 혼종적인 심층 저널리즘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방송 저널리즘의 발전 과정에서 사회와의 소통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을 듯하다. 방송 저널리즘은 후발 저널리즘 형식으로서 새로움을 강조해야 했다. 즉, 신문 저널리즘과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시청률이라는 강박으로 인해 시청자에 소구할 수 있는 양식들을 늘 실험하고 펼치는 융통성을 지녀야 했다. 심지어는 방송 자체 내 ‘희한한 한 쌍’으로 동거하고 있는 오락 프로그램이 갖는 가벼움을 씻어내는 해독제 역할도 수행해야 했다.2) 이렇듯 지속적으로 사회와 소통해온 방송 저널리즘은 오랜 전통의 신문 저널리즘 원칙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신문 저널리즘이 오랫동안 유지해오던 - 전문직성(professionalism)을 기술적으로 변형시킨 - 객관성이나 공평성 등을 위협하는 저널리즘 원칙을 제안한 것이 그 구체적인 예로 들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 같은 징후가 꾸준히 있어왔다. 가장 두드러진 국면은 2003년에 있었던 탄핵 보도였다. 탄핵 보도와 그를 둘러싼 담론들은 사회적 관심을 끌었을 뿐만 아니라, 학술적으로도 방송 저널리즘 점검, 저널리즘 전반에 대한 대대적 성찰을 요청하였다. 방송 저널리즘 일각에서 제기된 전통적 저널리즘에 대한 반발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우선, 현상 유지를 야기할 수 있는 저널리즘 관행에 대한 지적을 들 수 있다. 기존의 정치 엘리트들을 주요 취재원으로 삼으며 변치 않은 구조 내에서 객관 보도를 하는 것은 현상 유지를 원하는 기득권 세력의 이해를 대변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는 지적이다. 저널리즘은 사실 전달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 변화를 위한 비판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둘째로, 객관 보도를 하기 위해 강조되었던 사실의 단순한 전달을 통해서는 보도의 정확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보도의 정확성이란, 사실성뿐만 아니라 심층성과 사회성을 확보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정 사건의 경과와 제반 영역, 역사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심층성과 사회성을 담지 않는 한 보도는 온전하게 정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시 말해, 저널리즘은 더 이상 사실의 단순 나열로 그쳐서는 안 됨을 강조한 것이다. 대신, 입체적인 자료 구성과 배경 제공을 통해 독자 혹은 시청자가 사건에 대한 통찰력을 갖도록 도와주어야 함을 주장했다.  

이 같은 입장, 주장에 대해서는 더 많은 학술적 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주장이 저널리즘에 대한 새로운 자극이 되고 있음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객관 보도 저널리즘의 피상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들이 마련되어야 함은 저널리즘 전체의 소명처럼 보인다. 신문 산업의 위기,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인터넷 저널리즘, 인터넷 포털 서비스로 인한 정보 소통의 파편화 등을 맞이하면서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방송저널리즘으로 벌어지고 있는 저널리즘에 대한 논의들은 상당한 의의가 있다 하겠다. 특히, 방송 저널리즘 내에서도 균열과 긴장을 제공하는 PD 저널리즘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는 더더욱 가치가 있다. 긴 역사를 갖지 않았지만 한국에서의 PD 저널리즘은 뉴스와 함께 방송 저널리즘의 양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방송 내에서는 기자 방송 저널리즘과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방송 외적으로는 인쇄 저널리즘과 경쟁 혹은 논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PD 저널리즘은 원형 이탈의 정점에 서있다 하겠다. 

PD 저널리즘이 저널리즘 전반에 긴장을 제공한 것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시사 다큐멘터리를 둘러싸고 사실 중심의 객관 보도를 강조한 기자들과 이야기 전달을 강조한 다큐멘터리 PD들 간의 긴장은 1960년대 미국의 뉴스 보도국에서도 존재했다.3) 당시 기자들은 PD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빼앗아간다는 불만을 펼치기도 했다.4) 저널리즘적 관습이 인접한 사회제도와의 관계에서 잉태되고 조직의 원리로 자리잡게 된다는 점에서 보면, 어떤 형식의 저널리즘이 이념형에 더 가까운 것인지를 규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된 관습을 두고 제작의 원리 혹은 현장 이론이라고 받들며 진리의 영역으로 구겨 넣었을 공산이 크다.5) 저널리즘에 관한 진리는 늘 수정, 변형, 개선될 여지가 있는 셈이다. 인터넷 신문이 등장하면서 부상한 시민기자제도, 시민적 저널리즘 작성 등이 그 적절한 예라 하겠다. 그런 점에서 늦게 시작했지만 자신이 규범으로 삼았던 저널리즘적 원형에 도전하는 PD 저널리즘, 그리고 그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기자 저널리즘 간의 관계를 살펴봄은 의미 있는 일이다. 

2. 방송 저널리즘의 분화

PD 저널리즘이 방송 저널리즘에서 강세를 보이는 것은 매우 한국적인 현상이다. 본격적인 다큐멘터리를 제외한 심층취재물, 시사 보도물의 경우 외국에서는 주로 기자들이 제작하는 데 비해, 한국의 경우 심층취재가 PD들의 전유물처럼 받아들여지는 독특한 방송문화를 지니고 있다. ‘매일 매일을 기록한다’라는 뜻을 지닌 ‘저널리즘’은 어원상 기자를 그 주체로 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심층 보도 프로그램을 PD들이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PD 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영역까지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대체로 PD 저널리즘의 시작을 1990년 MBC 의 등장으로 본다.6) 이어 1991년 SBS의 개막과 함께 <그것이 알고 싶다>가 등장하였고, 폐지되었던 KBS의 <추적 60분>이 되살아나 이른바 PD 저널리즘에 의한 심층취재물들이 주요 장르를 이루었다. 

이러한 PD 저널리즘이 형성된 데는 한국적 조건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볼 수가 있다. 우선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사회변혁 운동 차원에서 노조를 중심으로 한 방송 민주화 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1990년대 초 민주화가 빠른 속도로 진전되면서, 방송 PD들은 권위주의 정권하의 제도권 언론으로서의 과거에 대한 자기반성으로 사회문제에 대한 고발의 의미를 지닌 시사고발 프로그램, 시사 다큐멘터리 및 심층 보도 프로그램들을 정기적으로 제작, 방송하기 시작했다.7) PD 저널리즘이 기존 방송 저널리즘과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부패의 폭로, 약자의 아픔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변화는 당시 사회적 욕구와도 무관하지 않다. 오랫동안 언론으로부터 사회가 보호받지 못했다는 사회적 불만이 팽배해 있었고,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노조 운동은 이에 대해 응답할 도덕적 책무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시사보도 저널리즘이 1960년대 인권 운동 등을 기점으로 정점에 올랐던 예를 보더라도 한국 사회의 민주화 요청은 PD 저널리즘의 중요한 발판이 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PD들의 영역 확보도 한 PD 저널리즘이 활성화되는 데 일정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방송 저널리즘 영역의 기자 독점에 반발해 PD들은 새롭게 저널리즘 영역을 확보하고자 했다. PD들의 경우 출입처가 없음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자유로움과 편집과 구성 등과 같은 영상 문법과 현장 자료수집에의 수월성 등을 내세워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고픈 욕망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앞에서 설명한 사회의 민주화 요청에 대한 답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사회의 부패 고리, 개선점 등을 추적하고 그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심층적인 취재가 필요한데, 기존의 기자 저널리즘의 경우 짧은 시간 내에 사실 중심으로 사건의 개요만을 전달하는 데 그치고 있어 PD 저널리즘이라는 영역의 개발로 그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한몫 했으리라 짐작된다. 이어 PD 조직이 전통적으로 지녀왔던 조직 문화가 제작에 반영되어 PD 저널리즘이라는 독특한 영역을 확보하게 되었다. 

PD 저널리즘의 시작이 단순히 방송사 내의 영역 구분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조건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기존 방송 저널리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요청인 사회 정의 구현에 더 민감해야 하고, 정당성 회복이라는 과제 탓에 사회 정의나 민주화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야 했다. 이 같은 사회적 요청과 PD들의 반응에 따라 저널리즘의 가치, 소재의 선택, 저널리즘적 표현 방식, 사회적 효과에 대한 기대 등에 긴장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또한 PD들이 내놓을 수 있는 수월성을 기반으로 한 저널리즘이었기에 기존 방송 저널리즘과는 사뭇 다른 저널리즘적 성과물을 내놓기에 이른다.

3. 두 저널리즘8)  

한국 방송이 가진 독특한 저널리즘 형식인 PD 저널리즘이 갖는 사회, 방송과 연관된 의미는 매우 크다 하겠다. PD 저널리즘이 구축한 시사고발 프로그램, 심층취재 프로그램은 한국 사회의 투명성이나 건강함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촉발된 PD 저널리즘은 이후 심층취재 역사물로까지 이어져 역사적 사실들을 재 발굴하거나 폭로해 역사에 대한 사회적 재인식을 유도하기도 했다. 방송 내적으로 보더라도 PD 저널리즘이 일반적 저널리즘을 보완할 수 있는 장르로 자리잡았다는 점을 주요 의의로 삼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중적 소재로 그 장르에 대한 시청 패턴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장르 리터러시를 제공한 셈인데, 이는 시사고발 프로그램이나 심층취재 프로그램이 일정 시청자군을 형성해 지속적인 편성을 가능하게 하였고, 시청자들도 그 장르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PD 저널리즘이 기자 저널리즘에 긴장을 제공했다는 점도 주요 의의로 들 수 있다. 뉴스 중심의 기자 저널리즘도 이어 심층취재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고정 편성하고 있다. 기자들에 의한 전문 분야 심층취재인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을 구상하게 된 것도 그 같은 긴장과 무관하지 않다. 아직 PD 저널리즘의 제작 방식이나 형식, 소재 등에 대해서는 이견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기자 저널리즘은 PD들이 드러내는 방송 저널리즘적 장점들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는 편이다.9) 그런 면에서 PD 저널리즘을 원형으로부터의 이탈이거나 저널리즘의 오염으로 폄하하는 일은 생산적이지 않다. 오히려 PD 저널리즘이 한국의 기존 저널리즘을 지속적으로 문제의 영역으로 밀어넣는 동력이 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PD 저널리즘의 저널리즘에 대한 기여 가능성을 점검해보기 위해서는 현재 제작이 이뤄지고 있는 프로그램, 제작 방식 등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비슷한 포맷으로 기자들이 맡고 있는 심층취재 프로그램과 제작 방식과의 비교 분석도 요청된다. 현재 3개 지상파 방송사들은 공통적으로 PD와 기자들이 제작하는 시사고발 프로그램, 심층취재 프로그램을 편성 제작하고 있다.10) KBS의 <추적 60분>, <취재파일 4321>, MBC의 , <시사매거진 2580>,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뉴스 추적> 등이 그것이다. 세 방송사 공히 PD들이 만드는 프로그램들은 주로 심층취재에 기반한 시사고발 프로그램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에 비해 기자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은 시사고발적 내용을 담기도 하지만 고발 외적인 새로운 현상, 발굴된 역사적 사실 등도 많아 시사고발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심층취재 프로그램으로 규정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기자와 PD들이 각기 제작해내는 이 프로그램들은 상당한 외형적 차이를 드러낸다. PD들의 프로그램이 한 주제로 프로그램을 엮어가는 데 비해 기자들의 프로그램은 공통적으로 3~4개의 주제를 담고 있다. 후술하겠지만, 이외에도 형식, 제작 방식, 관점, 취재 방식 등에서 많은 차이를 드러낸다. 심층취재를 기반으로 한다는 공통점을 상쇄시킬 만큼의 많은 차이점들에 대한 분석은 두 저널리즘 간의 긴장, 두 조직 문화 간 차이를 논의하는 데 긴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협조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산적 제안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글에서는 인류학자인 고프만이 일상을 무대 위 행위와 무대 뒤 행위로 나누어 설명한 것에 기반해 두 저널리즘 간 차이를 드러내고자 한다. 즉, 브라운관에 나타나는 무대 위 차이를 기술하고, 그 차이가 무대 뒤의 행위, 관습에 의한 것임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1) 무대 위의 두 저널리즘


심층취재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제작 당사자들은 우선 둘의 비교를 호흡의 비유로부터 시작한다.11) 기자들은 짧은 호흡으로 승부를 하는 데 비해 PD들은 긴 호흡으로 작품에 몰두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호흡 차는 심층취재 프로그램의 길이 차로 드러난다. 3개 지상파 방송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은 공통적으로 1개의 주제로 그날의 방송을 이끌어간다. 그에 비해 기자들은 3개의 독립적인 작은 주제로 그날의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이 같은 호흡 차이는 기자들이 1분 20초 정도의 뉴스 제작에 익숙해 있고, PD들의 경우 그보다는 긴 프로그램 제작 경험이 많은 데서도 기인하지만 서로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저널리즘에 대한 견해차에서도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짧은 호흡에 익숙해 있거나, 강조하는 기자 저널리즘에서는 핵심 전달을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논리적 정황으로 보아 사건의 핵심이 무엇인지들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기자들은 현장 영상보다는 자신의 핵심 설명에 대한 논리성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영상보다는 자신의 원고, 자신의 내레이션에 더 많은 비중을 준다. 그에 비해 PD들의 경우 사건의 핵심보다는 사건의 정황, 배경, 뒷이야기에 관심을 갖는다.12) 지속적으로 그를 드러낼 수 있는 영상을 모으고, 그런 뒤에 영상에 맞춘 자신의 내레이션을 정리해가는 경향이 있다. 이 둘의 차이를 원고 중심과 영상 중심으로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영상과 관련해서만 보면 기자들이 연역적 영상 활용을 하는 데 비해 PD들은 귀납적 영상 활용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영상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제작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PD들의 진술이 빈번한 데 비해 기자들의 경우 원고가 사실을 중심으로 논리적으로 적힌다면 영상 유무는 관건이 아니라고 진술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원고 중심 대 현장 영상 중심, 연역적 영상 활용 대 귀납적 영상 활용 등의 차이는 자기 반영성과 관련된 차이로 이어지기도 한다. PD들의 경우 현장, 현장 영상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그 현장을 찾았고, 샅샅이 뒤졌다는 사실을 강조하게 된다. 그런 탓에 제작자 스스로가 프로그램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직접 인터뷰를 하는 장면, 현장을 찾는 모습, 이야기를 골똘히 듣는 장면들이 그것이다. 그에 비해 기자들은 자신이 현장을 파악했다는 전능한 시점을 드러낼 뿐 자신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그곳에 있었고 열심히 뒤졌으므로’ 진실이라는 PD적 주장과 ‘그곳을 사실 중심으로 논리적으로 파악했으므로’ 진실이라는 기자적 주장의 차이가 두드러지는 것이다. 가끔 두 저널리즘을 두고 감성적 소구(PD) 대 논리적 소구(기자)로 구분하는 노력들도 그를 기반으로 차이를 강조한 것이라 여겨진다.13) 

자기반영성이 드러남과 그렇지 않음은 프로그램을 두고 자신의 시각이라고 여기는 경향과 보편적 기자의 시각이라고 여기는 경향 차이로 이어진다. 보편적 기자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는 기자 저널리즘에서는 새로움이라는 뉴스 가치를 존중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 탓에 기자들의 심층취재 프로그램에서 오히려 연성 소재가 더 많이 드러나기도 한다. 새로운 소재에 대한 강박이 그런 결과를 낳기도 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PD 저널리즘에서는 보편적 시각보다는 자신들의 시각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을 프로그램에서 드러내고, 새로운 시각을 강조하게 된다. 이미 있었던 일들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할 수 있음을 강조하기도 한다. 자신의 시각임을 전제하므로 많은 영상들과 시각자료, 증언으로 자신들의 시각을 뒷받침하고자 한다. 당연히 PD들의 작품은 긴 길이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능하고 객관적인 시각임을 전제로 핵심과 요체를 전달한다고 자신하는 기자들의 경우 짧은 길이로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물론 PD 저널리즘 계열에 포함될 수 있는 프로그램 간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어쩌면 하나로 묶을 수 없을 만큼 큰 외형적 차이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14) 기자들이 만든 심층취재물의 경우도 방송사 간 차이가 있을 것이다. PD 저널리즘, 기자 저널리즘 내부 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 과잉 단순화라는 비판을 예상하면서도 - <표 1>과 같이 차이점을 부각시킨 것은 각 저널리즘간 의 아비투스(habitus)를 구하고자 한 탓이다. 아비투스는 구조적 성향이 반복 각인되어 개인이나 개인의 취향, 제작물 등에 드러나는 성좌(星座, constellation)적 경향을 의미한다. 아비투스는 사회적 구조, 조건 등을 수용하면서 생기는 성과물로 볼 수 있기에 아비투스를 통해 역으로 성과물이 형성되는 구조적 환경, 그 과정상에 펼쳐 있는 패턴, 코드 등을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15) 외형상의 차이를 분석한 것을 종합하면 기자 저널리즘은 대체로 과학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에 비해 PD 저널리즘은 문예적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이 같은 성향 차이 평가는 같은 수준에서 우열을 따진 결과는 아니다. 과학적인 것이 문예적인 것에 비해 더 낫다거나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말이다. 우열의 문제가 아닌 특성의 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2) 무대 뒤의 두 저널리즘

과학적・문예적 아비투스 차이는 기자들과 PD들이 소속해 있는 조직문화, 구성원들과의 관계 형성, 전통과의 대화, 그리고 그 안에 녹아 있는 코드 등에 의해 비롯된다. 핵심적인 내용만을 간결하게 전달하는 기자들은 소통을 그렇게 해야 한다는 훈련을 받았거나 그와 같은 조직 강령(혹은 코드)을 체화했거나, 그러지 않았을 때 받는 벌칙을 염두에 두고 있음에 틀림없다. 긴 호흡으로 제작을 하는 PD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무대 위에 드러나는 차이는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작용 탓에 빚어지는 것들이다. 무대 위에 해당하는 프로그램에서는 결코 드러내지 않는 무대 뒤 현상들을 살펴봄으로써 아비투스 차이, 그 이유는 더욱 명료해질 수 있다. 

PD 저널리즘이 가능하게 된 조건을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사회의 민주화 요청과 방송사의 민주화 요청이 한데 맞물려 있음을 지적한 바 있었는데, 사실 이 같은 배경은 PD 저널리즘이 진취적 성향을 띠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 같은 조건하에서 시작된 새로운 저널리즘은 먼저 과거의 저널리즘과 차별성을 담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브라운관이라는 무대에 등장하는 공연자인 기자들과 무대 위 행위가 다르다는 평가를 받기 원했을 것이다. 그들이 지닌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기자들과는 상당히 차별 나는 배역을 자임했다고 볼 수 있다. 약자와 강자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활용하되 약자 편에 서서 보도를 하는 일16)은 객관성, 균형성을 내세운 기자 저널리즘과는 차별을 둘 수 있는 방법이 되었다. PD 저널리즘이 인권이나 복지에 대한 소재를 가장 빈번하게 택했다는 지적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하면 쉽게 수긍이 간다.   

사회 민주화, 조직 민주화에 힘입어 시작된 PD 저널리즘이 진보적 성향을 띠면서 약자의 편에 서는 태도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조직 내의 개인 PD들의 위상과도 연관성이 있다. PD들의 경우 책임 프로듀서의 감독을 받지만 그 관계는 기자들이 데스크와 유지하는 관계에 비추어보면 느슨한 편이다. 문예적 아비투스와 과학적 아비투스 간 차이는 이 같은 조직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PD 조직은 도제적 관계를 통해 제작 방식이 전해지기도 하지만 개인 PD들의 자율성은 높은 편이며, 개성에 대한 조직의 인내 정도도 큰 편이다. 이 같은 조직 문화에 비해 기자 조직은 데스크의 역할에 긍정적인 평가를 보낼 뿐만 아니라 기자적 입장 유지를 위해 게이트키핑을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문예적 아비투스는 작가적 창작 분위기를 지닌 조직에서 비롯되고, 과학적 아비투스는 조직 내 균형을 강조하고, 조직 내 사다리의 효율성을 인정하는 조직 문화로부터 형성된 것이라 하겠다.17) 기자들은 자신들이 제작한 프로그램이 보도국 조직 내의 프로그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에 비해 PD의 경우 자신을 작품의 작가로 인식하면서 작품이 익명성에 빠지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있었다.  

조직에 더 방점을 두는 쪽과 개인에 더 방점을 두는 쪽 간의 차이는 프로그램 제작에 임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PD들의 경우 프로그램에 대한 총체적 지휘에 대한 강박을 갖는다. 프로그램의 제안, 구성, 촬영, 내레이션, 편집에 이르기까지 분절적 작업을 조율하고 모든 작업에 참여한다. 그에 비하면 심층취재 기자들이 경우도 뉴스 제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분업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영상은 카메라 기자가 책임지고, 원고는 자신이 책임지는 형태로 인식하는 것이다. 데스크와 상의할 경우에도 원고 중심의 상의에 치중한다. 그로 인해 영상으로 줄 수 있는 시각적 흥미, 즐거움, 호기심 등은 제외되며 음성 메시지를 더 강조하는 음성중심주의(logocentrism)가 형성된다. PD들이 영상 장면들을 편집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에 음향・효과 등을 입히는 등의 노력을 벌이는 것도 개인 작품, 작가로서의 자아 정체성 등과 관련이 있다. 간혹 논란이 되는 시각의 문제, 주의 주장 등의 문예적 아비투스도 영상 꾸밈, 편집, 몽타주 등을 통한 개성 드러내기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출입처와 정보원에 의존적인 기자들의 조직 문화는 매일 뉴스를 생산해야 하는 조직적 요청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매일 뉴스를 제공하는 출입처가 없다면 마감시간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지닌 기자 조직들은 자신들의 뉴스 제작 업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심층취재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기자들의 경우 출입처를 중심으로 심층취재를 하는 것이 아닌 총체적 취재를 행해야 한다. 조직 관행에 익숙해 있던 기자들은 출입처 없는 심층취재를 고통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기자들이 협상할 수 있는 것은 핵심 고리 찾기와 요약하기 정도가 될 것이다. 그에 비해 출입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PD들은 사건의 맥을 잡는 노력보다는 관계된 모든 것을 훑는 노고를 펼친다. 여러 취재원을 접하고, 비교하고, 평소 취재원 지위를 갖지 못한 곳까 찾아가면서 영상으로 진실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 같은 제작 패턴의 반복으로 핵심을 강조하고, 연역적 영상을 만들어내는 기자 저널리즘과 현장을 중요시하고 귀납적 영상을 만들어내는 아비투스가 형성된다. 또한, 기자들의 경우 출입처를 통해 늘 새로운 뉴스를 접해왔던 터라 새로운 소재에 집착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 그에 비해 PD들은 전에 다루었던 내용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시각으로 새롭게 취재하면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듯했다.




  
1일 단위, 주 단위 혹은 일정 기간 단위로 작품을 생산해야 하는 방송 조직은 어떤 경우에도 제작과 관련된 체제를 갖추고 있다. 방송 저널리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정도에 있어서 기자 저널리즘과 PD 저널리즘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기자 저널리즘의 경우 자신이 가진 객관성이나 균형성이 보편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강박을 보임으로써 한결 조직체제 의존적이었다. 게이트키핑을 긍정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 분업을 강조하는 점, 전체 프로그램에서의 균형을 고려한다는 점, 익명성을 강조한다는 점 등이 그 증거라 하겠다. 그에 비해 PD 저널리즘은 제작자를 총체성을 구성하고, 드러낼 수 있는 개인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었다. 기자 저널리즘에 비해 훨씬 약한 강도로 조직체제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 같은 조직 문화의 차이, 조직 문화가 갖는 사회적 책무에 대한 인식 차이 등으로 인해 프로그램 아비투스가 형성되었고, 이어 아비투스가 다시 조직 문화로 되먹임 치는 순환 고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4. 두 저널리즘의 조우
  
방송 현장에서의 제작 방식 등을 제작 이론으로 일컫는 경우가 많다. 다큐멘터리 제작론, 방송 제작론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조직 문화와 관련된 관습을 진리의 영역으로 승화시키는 담론적 노력에 해당한다. 다큐멘터리의 ABC라며 후발 주자들에게 강조함은 그것을 진리의 영역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지만, 고프만의 분석에 따르면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일을 숨기고 각본에 따를 것을 강요하는 것에 해당한다. 무대 뒤에서 준비된 대로 무대 위 행위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인지시키는 대신 무대 뒤는 덜 중요하고 앞서 무대 위에서 벌어진 대로 따라 할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는 저널리즘적 행위가 수정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불식시키는 것과도 통한다. 

저널리즘적 행위는 수정, 개선, 변형의 대상이다. 그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의 영역이 아니다. 터크만은 기든스의 사회학을 빌려 예술과 과학의 행위를 두고 대화를 촉진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한-달라 보이지만-같은 종류의 작업임을 강조한다.18) 저널리즘적 작업을 설명하면서 그가 예술과 과학의 상동성을 강조한 것은 방송 저널리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분석했던 과학적 아비투스와 문예적 아비투스 간의 조우, 체제 중심적 작업관행과 개인 중심적 작업관행 간의 대화를 위한 실마리를 풀어주는 작업으로도 읽힐 수 있다. 이미지, 상징을 통한 극적 자극을 주는 문예적 아비투스를 배격할 필요는 없으며, 개성을 강조하는 듯한 1인칭적 시점을 객관성을 이유로 외면할 수 없다. 뉴스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고 말하지만 뉴스에서 선택한 사실조차 이미 전 이론적 해석에 기초한 것일 수 있다면 상상에 기반한 재해석, 재범주화 작업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기도 하다.19) 

학계의 우려와는 달리 꾸준히 사회와의 소통 끈을 놓치지 않는 방송 저널리즘에서는 두 저널리즘 간 조우를 시도해왔다. 보도 제작국에 PD가 파견되거나, PD와 기자가 공동제작을 하거나, PD가 뉴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등의 시도를 거듭해왔다. 지금까지의 시도는 긍정적인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갈라진 다음 서로 조우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더욱 절감하고 있기도 하다. 만약 저널리즘적 행위가 진리의 범주에 들지 않고 수정, 개선, 변형의 대상임을 공감한다면 그와 같은 조우는 상당한 준비 이후 다시 시도될 필요가 있다. 공평함과 공정함 간의 간극, 전달과 주장 간의 간극20), logocentrism과 icon-centrismr 간의 간극, 실험과 관습 간의 간극들을 줄이는 노력과 자신들의 조직 문화가 효율성을 강조한 각본임을 인식하는 노력을 경주한다면 두 저널리즘은 언제나 평행선상에만 서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긴장과 균열을 제공하고 있는 새로운 저널리즘을 이탈로 파악하지 않고 새 동력으로 인식하자는 권유도 이 같은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참고문헌]

고희일. 《조직관성이 소재 선택에 미친 영향 연구 - PD 저널리즘과 기자 저널리즘의 비교를 중심으로》,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학위논문, 2005.
김연식・윤영철・오소현. 《PD 저널리즘에 대한 인식과 제작관행》, 한국언론    학회 발표글, 2005.
문화방송 PD수첩팀 편. 《PD 수첩과 프로듀서 저널리즘》, 나남, 2000.
윤호진. 《PD 저널리즘의 성과와 과제 : 채널별 편성 현황 및 주요 프로그램 담론 분석》,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2005년 6월 보고서.
이종수. 《TV 리얼리티: 다큐멘터리, 뉴스, 리얼리티 쇼의 현실구성》, 한나래 출판사, 2004.
D. Altheid & R. Snow(1979). Media Logic, Beverly Hills, CA, London: Sage.                 
E. Barnouw(1982). Tube of Plenty: The Evolution of American Televis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M. Curtin(1993). “Packing Reality: The Influence of Fictional Forms on the Early Development of Television Documentary”, Journalism             Monographs, No. 137.
E. Goffman. 《자아표현과 일상관리: 연극적 사회분석론》(The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Life, 1959)(김병서 역), 견문사, 1987.
G. Tuchman.《메이킹 뉴스: 현대사회와 현실의 재구성 연구》(Making News)(박흥수 역), 나남출판사, 1995.


-----------------------------------------------------------------------------------

[각주]

1) 자료를 수집해준 미디어문화연구소의 방희경 씨와 논문 자료의 활용을 허락한 KBS의 고희일 씨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2) 이종수, , 한나래 출판사, 2004

3) M. Curtin, “Packing Reality : The Influence of Fictional Forms on the Early Development of Television Documentary”, Journalism Monographs, No. 137, 1993.

4) E. Barnouw, Tube of Plenty : The Evolution of American Television, New York : Oxford University Press, 1982.

5) D. Altheid & R. Snow, Media Logic, Beverly Hills, CA, London : Sage, 1979.

6) 엄밀하게 말하면, 방송 프로듀서들이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64년 TBC의 사회고발 프로그램이었던 <카메라의 눈>이었다. 이어 1965년 KBS의 <카메라 초점>과 MBC의 가 이와 유사한 형식의 프로그램으로 등장하였다. 1970년대 군부독재로 특징 지워지는 정치적 상황에서는 고발 프로그램 제작이 이루어지기 힘들었다. 1980년대에 들어 <다큐멘터리 80>, <월요기획>, <레이더 11> 등이 등장하였으나, 정부 시책과 관련된 사안 중심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1983년 <60Minutes>를 모델로 한 KBS의 <추적 60분>이 편성되어 본격 고발 프로그램으로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추적 60분>은 프로듀서들이 직접 사건 현장을 찾아 취재한 첫번째 본격 시사고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 또한 많은 경우 계도성 고발, 정부 시책 관련 고발 등으로 선정성과 비정치성으로 지탄을 받기도 했다. 고희일, <조직관성이 소재 선택에 미친 영향 연구 - PD 저널리즘과 기자 저널리즘의 비교를 중심으로>, 2005,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학위논문 참조.

7) MBC PD 수첩팀 편, , 2000, 나남.

8) 이하에 제시되는 자료는 고희일, <조직관성이 소재 선택에 미친 영향연구 - PD 저널리즘과 기자저널리즘의 비교를 중심으로>, 서강대 언론대학원 학위 논문의 인터뷰 자료에서 발췌된 부분이 많음을 밝힌다.

9) 고희일, 앞의 논문, 부록 참조.

10) 이외에도 KBS의 <일요스페셜>?<생방송 시사투나잇>, MBC의 <그것이 알고 싶다>?, SBS의 <생방송 세븐 데이즈> 등의 심층취재 프로그램들이 있다. 

11) 고희일, 앞의 논문, 44쪽 인터뷰.

12) 앞의 논문, 45쪽 인터뷰.

13) 기자들의 경우 lead-in과 lead-out에 talking head로 등장하는 모습도 빈번한데, 이 또한 논리 강조의 뉴스 제작기법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에 비하면 PD들의 자기반영적 등장은 talking head가 아닌 탐정적 정체성에 가깝다. 게이 터크만, 《메이킹 뉴스 : 현대사회와 현실의 재구성 연구》(박흥수 역), 나남출판사, 1995 참조

14) 윤호진, ,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2005년 6월 보고서.

15) 어빙 고프만, 《자아표현과 인상관리 : 연극적 사회분석론》(The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Life, 1959)(김병서 역), 견문사, 1987 참조.

16) 윤호진, 앞의 보고서 참조.

17) 고희일이 인터뷰한 PD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프로그램이라는 작가적 정신이 투철함을 드러낸 데 비해 기자들은 데스크와의 협상물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고희일, 앞의 논문 참조.

18) 게이 터크만, 앞의 책, 273~278쪽.

19) 역사적 사실조차 역사적 해석에 기반한 자료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기야말로 가장 주관적인 창작작업임을 강조하는 신역사주의 운동도 이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20) 김연식.윤영철.오소현, 2005, , 한국언론학회 발표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