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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위에 서면

인천 자유공원1-홍예문, 장마가 끝난 후에

 

자유공원이 자리잡고 있는 웃터골 오포산 기슭을 넘어가려면 「홍예문(虹霓門)」을

지나야 한다. 홍예문은 강제개항 이후 일본이 각국 조계와 축현역, 만석동 일대를

잇기 위해 화강암을 높이 쌓아 통로를 무지개처럼 둥글게 만든 뒤 붙여진 이름이다.

 

홍예문은 한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불렸다. 홍예문(무지개문) 또는 홍여문(무지개돌문),

홍여문(虹轝門·무지개수레문) 등이 그 것이다. 하지만 모두 「무지개처럼 된 돌문」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일본인들이 이 문을 「아나몽(穴門)」이라 부른 것에 비하면 돌문조차도

아름답게 바라보는 우리 선조들의 마음씨를 엿볼 수 있다.

인천개항후 한세기기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홍예문은 예전과 다름없이 인천인들의 애환과

역사를 지켜보며 묵묵히 서 있다.



 

홍예문 바로 오른쪽에 난 샛길인데 이 길을 따라  곧바로 200m 쯤 가면 내동 성공회성당이 나온다.

영국 해군 종군 신분 고 요한 주교 등 선교 동역자 6명이 인천항에 첫발을 내딛어 1890년 9월 29일

성당을 건축한 후 선교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02년에는 한 때 러시아 영사관으로,

1904년에는 성공회 신학원으로 1956년까지 운영되었으며, 당초 건물은 6.25 전쟁 시 소실되었으나

1956년 6월 23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 형태는 지붕의 목조트러스를 제외하고, 외벽과 주요부재는 화강암으로 견고하게 쌓아올린

중세풍의 석조이나 한국의 전통적인 목구조 처마양식을 가미하였으며 창호 및 벽체 부분의 처리가

뛰어나다. 작지만 비교적 아기자기하고 아름답다.

 

왼쪽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면, 1883년 일본 조계(組界)를 시작으로 1884년 청국 조계(組界)가

설정되는 경계지역으로 자유공원으로 연결되는 계단과 조경이 마련된 공간이 나온다.

 

사진 오른쪽이 인성여중학교. 1952년 개교한 기독교 계통의 학교로 인천에서는 비교적 유명한 학교.

인성여고도 같은 계열인데 일반인들에게는 농구부로 잘 알려진 학교.

전 여자농구 국가대표인 정은순(33), 유영주씨(33) 등이 인성여고 27회 졸업생이다.

 

 

자유공원 광장과 인천항 모습.

장마의 여파로 오랜만에 해를 보여준 날씨는 습기때문인지 인천항을 뿌옇게 덮고 있다. 

 

지금은 별 특색이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개항시기와 일제시대때 건축된 인천우체국 건물과

제물포 구락부, 58은행 인천 지점 등 유적들이 군데군데 있다.

이런 것들이 인천이 역사의 불모지가 아님을 웅변하고 있다.

 

 

자유공원 광장에 있는 매점.

예전보다 깨끗해지고 상품도 다양해졌다. 그많던 비둘기는 다 어디갔는지 모르지만

지붕위에 있는 몇마리가 자유공원을 지키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