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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sthetics of they

니는 마 부반장해라!

니는 마 부반장 해라.....!

 

그 순간,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의 영혼은 처참하게 찢겨나갔다.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은 아니었어도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의 나는 예절 바르고 상냥한 어린이었다. 늘 활력에 차 있었고 어디서든 조잘대기를 잘해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책읽기도 좋아했다. 학교 도서부원으로 활동하면서 온갖 동화책을 섭렵한 덕분에 친구들에게 옛날 이야기도 곧 잘 해주던 똘똘한 아이였다. 학교 청소시간에는 타고난 봉사정신이 있어서인지 아무리 친구들이 장난을 치고 제 몫을 하지 않아도 묵묵히 교실청소를 하는 착한 아이이기도 했다. 비록 입선은 못했지만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자주 해주던 습관으로 교내웅변대회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니 친구들 대부분이 나를 좋아하였고 특히 여자 아이들이 상당히 나를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5학년 2학기로 접어드는 어느 날, 선생님이 반장선거를 하겠다고 공지를 했다. 사실 성적이 좋지 못한 아이들이나 집안이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반장이 남의 일이던 시절이었다. 나의 성적은 석차는 매겨지지 않았으나 평균점수로 볼 때 반에서 겨우 10등 정도를 맴도는 처지였다. 우리 집은 대부분 세들어 사는 동네에서 집 가진 사람들 중의 하나기는 했지만 잘 사는 축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형제가 많은 집안인 만큼 제때에 공납급이나 육성회비를 내기에도 빠듯하던 형편이었다.

 

반장....! 솔직히 나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나로서는 언감생심 접근하기 힘든 감투였다. 그리고 친구들이 나를 좋아하기는 했어도 반장을 시켜줄 만큼 많은 비중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분당장쯤이라면 몰라도 반장같은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반장 선거일에도 나는 내 이름이 후보로 거명되는 것에 의아스러웠다. 나와 둘도 없이 친한 단짝이던 이인억이라는 친구가 나를 반장에 추천했다. 나는 그 친구가 나하고 친하다는 사실 이외에 나를 반장으로 추천하는 이유조차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얼떨결에 그에 대한 보답인양 거꾸로 그 친구를 반장 후보로 추천했다. 추천하고 보니 인억이는 얼굴도 잘 생겼고 말씨도 부드럽고 공부도 상위권에 있는 친구라서 어느 모로 보나 반장으로 손색이 없는 아이처럼 보였다. 그리고 일학기에 반장을 하던 친구가 다시 후보로 추천되었다. 그 친구는 반장이나 부반장 경력이 몇 번이나 있던 친구였다. 나는 비록 우리 둘이 같이 후보에 올랐어도 절대로 그 친구의 상대가 못될 줄 알았다.

 

간단한 반장 정견 발표가 있었다. '저는 반장이 되면 우리반을 활기 있고 깨끗한 반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충 이런 식의 틀에 박힌 정견 발표가 있었다. 나도 얼떨결에 그 비슷한 발언을 유세랍시고 했다. 그런  다음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일제히 눈을 감았다. 반장선거는 눈을 감고 거수하는 것으로 간단히 진행되었다.

 

제일 먼저 전임 반장이 지목되었다.

 

"OOO이 반장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 손 들어라 !"

선생님은 잠깐 동안 수를 세었고 칠판에 수를 적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인억이 지목되었고 다시 거수를 하고 수를 적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실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무어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으로 내 이름이 불려졌다. 그리고 거수가 되는 순간에 아이들이 감탄하는 소리가 군데 군데서 들려왔다.

 

눈을 뜬 나는 깜짝 놀랐다. 반장선거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 나의 예측과는 달리 내가 나머지 두 친구를 합쳐놓은 것보다 더 많은 거수를 받은 것이 아닌가?  내가  일방적인 지지를 얻어 반장이 된 것이었다. 나는 뜻밖의 상황에 일순간 혼란스러웠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두방망질 치며 갑자기 흥분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반장이라니....세상에 이런 일이 다 생기는구나....!!

 

나는 한 껏 상기되어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이제 선생님이 나에게 당선 소감을 말해보라고 할 차례이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답답했다. 반장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하였으니 당선사례에 대해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속으로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생각해 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선생님을 자꾸 쳐다보았다.

 

그런데 선생님의 얼굴에 무언가 이상한 기류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다. 선생님이 반장 당선 소감을 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자꾸 뜸을 들이고 있었다. 선생님의 얼굴은 내가 보기에는 이상하리 만큼 붉어져 있었고 무엇인가 매우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나의 당선 사례를 들으려는 말 대신에 내가 반장이 된 것보다 더 천만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자, 야들아 표는 근여이가 제일 많이 받았는데....반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이다....그라이까네 선샘이 잘 생각하고 난 뒤에 내일 반장을 발표하꾸나....알았제....?"

 

나는 내 귀가 의심스러웠다. 내가 반장이 된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 내 가슴속에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반장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와짝 쳐들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반장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엉뚱한 소리를 하다니....! 그렇다면 처음부터 반장 선거를 하지 말든가 후보에서 탈락을 시켰어야 하는 것이 옳았지 않은가?

 

나는 반장 선거 이후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 갔는지 기억을 할 수 없었다. 무언지 모를 억울함 같은 것이 온통 머리속을 짓누르고 있어서 수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종회를 하고 청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책가방을 마루에 내려 놓고 나니 갑자기 너무나 억울하고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니....!

 

어머니가 외출하셨는지 집안이 조용했다. 나는 책가방을 던져두고 토끼풀 망태기를 들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토끼풀을 베는 것에 마음이 갈 턱이 없었다. 나는 근처 반월성에 올라가 이래저래 생각을 가다듬었다. 선생님이 왜 반장발표를 하지 않았을까?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반장으로서 무엇이 모자라기에 선생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해가 다 넘어가도록 성마루에 앉아 나의 모자람을 찾아 해맸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일 아침에 등교하면 선생님이 나를 반장으로 선포할 것이라는 희망도 조금씩 해보았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내손에 쥐어진 낫이 근처의 풀밭은 온통 짓찧어놓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께서 부엌에 불을 때면서 어디를 갔다오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대답 대신에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내.... 반장 대므 안대나....?"

어머니는 계속 불 때는 데만 신경을 쓰시는 듯 내 물음에 건성으로 대답했다.

"반장하므 머하노.... 공부나 쫌 바다 해라.....!"

나는 학교에서의 일을 이야기하려다가 공부나 좀 열심히 해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순간적으로 멈칫하고 말을 닫아버렸다. 공부.....! 지난 달 성적표에 평균 점수가 처음으로 85점을 내려가서 어머니께 야단을 맞은 기억이 났다. 그래도 85점은 넘어야지 이게 뭐냐던 어머니 말씀과 도장을 찍어주시면서 '이래가지고 냉자 육사(육군사관학교) 가겠나 ?'고 하시던 아버지 말씀이 귀에 쟁-하게 울리는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나의 가느다란 기대와는 달리 선생님은 반장선거 결과에 대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 나는 수시로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려고 했지만 선생님은 나와 한 번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4교시가 지날 즈음 교실 창밖에 아주머니 한 사람이 와서 서성거리는 것이 보였다. 친구들이 지난 학기 반장이던 OOO의 엄마가 왔다고 수군거렸다. 선생님이 밖으로 나갔다.

 

나는 왜 OOO의 어머니가 학교에 왔는지 대번에 알 수가 있었다. 선생님이 OOO의 어머니를 맞아 교실을 나가는 순간부터 마음 속이 걷잡을 수 없이 요동쳤다. 학교를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내가 한 일은 고작 도시락을 먹지 않은 일과 수돗가에 가서 세수를 하는 정도에서 끝이 났다. 친구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는 싫었던 것이다.

 

그날  방과 후에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렀다. 나는 선생님이 나를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 앞에 서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지못해 선생님 책상 앞에 섰다.

 

"근여이 니 반장 잘 할 수 있겠나?"

마침내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 예, 할 수 있니더...!"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니 ,언제 반장 한번 이라도 해 밨나?"

"못해밨는데요..."

"그라믄서 5학년 반장을 우째 할라카노....!?"

"......!"

"니, 전교화랑회에 몬 가밨제 ?"

전교화랑회는 5학년 이상 반장 부반장들이 모여 매주 자치활동을 하기 위해 여는 회의였다. 

"예...."

"전교화랑회에 나오는 아들이  얼매나 공부 잘하는 아-들인 줄 모리제?"

나는 선생님의 질문이 길어질수록 점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내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왈칵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있는 힘껏 참아냈다.

"니, OOO이 보다 공부 잘하나?"

".......!!" 

"OOO이는 반장도 여러번 했고 공부도 잘하는 아-다. 가를 반장 시키고 니는 마 부반장해라...!"

 

니는 마 부반장해라...., 니는 마 부반장 해라...., 니는 마 부반장 해라.....!!

머리속에서 어찔어찔한 환청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앙연히 고개를 쳐들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공부는 저도 열심히 하겠심더 ! 친구들이 저를 반장으로 뽑았는데 왜 제가 부반장을 해야 ..." 

나는 말끝을 맺을 수 없었다. 너무 격해진 심정으로 숨만 헐떡거려 질 뿐이었다. 선생님이 엄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

"이누무 자슥, 선샘이 다 생각이 있으이 하는 소리지....니는 반장하기 전에 공부부터 더 잘해야 댄다...! 반장할라믄 공부도 마이 몬하는데 그 성적 가지고 반장하믄 성적만 더 떨어진다. 안글라?"

 

나는 더 이상 선생님 앞에 서 있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미 예견한 일이고 이미 충분히 그려본 상황이 닥쳐왔을 뿐이었다. 5학년짜리 아이가 선생님앞에서 부대낄 수 있는 한계는 너무나 미약하고 허술했다. 그리고 내가 해야 될 대답은 이미 분명히 나와 있었다.

" 선샘 마음대로 하이소....!!"

나는 어떻게 교실을 빠져 나왔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돌아간 텅빈 운동장은 마치 내 마음처럼 허전하기만 했다. 선생님께 좀 더 강하게 내 의지를 말하지 못한 것이 뒤늦게 후회가 되었다. 그러나 교실로 되둘아가기에는 이미 발걸음이 너무 무거워져 있었다.

 

집으로 갈 생각이 들지 않은 발걸음은 어느새 반월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성마루로 올라갔다. 성마루에는 소나무가 몇 그루 서있었다. 소나무 밑에서 학교 쪽으로 눈길을 주다가 갑자기 복받쳐 오르는 설움에 나는 목을 놓아 울고 말았다. 아주 제대로 울었다. 이틀 동안 가슴 속에 쌓였던 모든 설움을 다 토해내기라도 하려는 듯 있는 힘을 다해 울었다.

 

반장하므 머하노 공부나 바다 해라....,이래가지고 육사 가갠나...? 아버지 어머니 말씀이 떠오르자 더 서러워졌다. 니는 부반장이나 해라.....서러웠다. 니는 부반장이나 해라....숨통이 터질 듯했다. 니는 부반장이나 해라...목소리를 더 키워서 울었다. 선생님의 윽박지르는 소리가 환청처럼 머리속을 웽웽거리며 싸돌아다녔다.

 

그날 이후 나는 학교에서 청소도 하지 않았고, 선생님이 억지로 씌어준 부반장이라는 감투를 믿고 약한 친구들과 여자아이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수시로 아이들과 싸움을 했고 공부와 담을 쌓기 시작했다. 전교화랑회 따위에 나갈 편안한 마음이 생길 턱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갑자기 말수가 줄었고 선생님을 보는 눈길이 항상 증오스러웠다. 선생님이 바르다고 하는 일은 무조건 바르지 않다고 믿는 못된 송아지가 되었다. 그렇게 한 아이가 갑작스럽게 성격이 변하고 악동이 되어가는 것을 주위의 어른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 이 이야기는 제가 5학년 때 겪은 실화입니다. 선생님의 역할과 교육의 중요함을 피력하고 싶어 이 글을 써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