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극장가에서는 축구 다큐멘터리 한 편이 조촐하게 관객을 맞았다. 신생 축구단 인천 유나이티드의 기적 같은 성공담을 다룬 이 영화는 상투적인 인간승리담이 아니라 축구장의 땀방울과 눈물 한 방울까지 포착함으로써 자욱한 포연에 쌓인 우리 인생의 멋진 비유를 시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임유철의 축구 다큐멘터리 <비상>을 보며 희한한 체험을 했다. 창단 2년차 구단으로서 첫 해에는 하위권을 맴돌았지만 두 번째 해에 놀랍게도 전후기 통합 준우승이라는 굉장한 성공을 거둔 인천 유나이티드 축구단의 모습을 기록한 이 다큐멘터리는 임유철이라는 비디오 저널리스트 출신의 감독이 수년 동안 축구장과 라커룸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찍어낸 노력의 결정체다. 시사회를 통해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굉장한 물건이 나왔다는 소문이 흘러나왔지만 그때까지 보지 못한 필자는 제작사에서 보내준 비디오테이프로 이 영화를 먼저 접하게 됐다. 어떤 사정 때문이었는지 그쪽에서 보내준 비디오테이프 화면에는 사운드가 담겨 있지 않았다. 사운드가 없는 상태에서 끝까지 영화를 봤는데도 꽤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대충 짐작할 수 있는 등장인물들의 말들이 상상되면서 오히려 박진감이 더 생기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임유철 감독은 <비상>은 꼭 사운드가 있어야 한다고, 내레이션도 중요하다고 필자에게 말했다. 다시 정상적인 상태로 이 영화를 두 번째 감상했다. 감독의 말대로 축구장에서 생생하게 기록된 사운드 효과는 굉장했다. 선수들의 관절이 부딪치는 소리가 관객의 몸에 통증을 안겨줬다.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들의 맥박 하나, 욕설 한 마디까지 전해지는 듯한 현장감이 살아나면서 승리를 위해 헌신하는 인천 유나이티드 축구선수들의 투혼이라는 것, 활자로 전달될 수 없는 그 정신세계의 투쟁력이라는 것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내레이션은 상투적이었다. 이 영화에 쓰인 내레이션은 텔레비전에서 남용되는 포맷을 별 생각 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사운드 없이 본 영화에 대해 품었던 온갖 상상의 나래가 맥없이 상투적인 인간승리담으로 갇힐 위험성에 안절부절 못하게 됐다. 이 영화의 내레이션의 톤을 따른다면 2005년 인천 유나이티드가 챔피언 결정전에서 준우승에 그치는 것은 격이 맞지 않는다. 내레이션은 현실의 무한히 벌려져 있는 틈, 그 속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인간들의 장엄한 투쟁기를 불굴의 인간승리담으로 자꾸 미화하려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의 스타도 없고 다른 구단에서 쫓겨난 선수들이 주축이 된 이 팀이 어찌어찌하여 성실한 지략가인 장외룡 감독의 지휘 아래 천하를 통일한다는 구도가 감동적이고 극적이다.
그러나 이 소재는 동시에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숱한 인간승리담의 변형처럼 보일 위험도 있다. 감동을 상투적인 틀로 구겨 넣으면 이 몇 년 동안의 취재 끝에 거둔 대단한 성과가 틀에 박힌 감동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아슬아슬하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깔리는 내레이션은 사족처럼 영상으로 이미 충분히 설명된 감동을 중언부언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현실은 내레이션보다 훨씬 더 극적이지 않은 대신 진실하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인천 유나이티드 팀은 챔피언 결정전에서 이기지 못한다. 1차전에서 그들은 울산 현대 팀의 이천수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1대 5로 대패한다. 2차전에서 다시 도전하지만 아쉬운 2대 1 승리로 끝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건 할리우드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극적 효과다. 현실은 여기까지에서 끝난다. 가난한 구단에서 노력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한계의 끝을 본 느낌이었다. 최상의 준비를 했지만 넘을 수 없는 선에서 좌초하는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모습은 자신들의 패배를 장엄하게 견디는 것만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축구를 축구 그 자체로 즐기는 단초가 그 마지막 화면에서 살아남는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스포츠 문화의 관습과는 달리 이 영화가 연출상으로 붙잡고 있었던 과정의 아름다움을 끝까지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축구의 기적, 인생의 마술
임유철은 원래 이 다큐멘터리를 처음부터 인천 유나이티드 팀의 챔피언 결정전 도전기로 기획하지 않았다. 그는 모 영화사에서 이장수 감독의 전기영화를 만드는 기획의 일환으로 극영화와 동시에 착수된 이장수 다큐멘터리로 이 영화를 찍었다. 찍다 보니까 그는 남들보다 자유롭게 축구장의 라커룸을 드나들 수 있게 됐고 그 과정에서 인천 유나이티드 팀의 모습이 훨씬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다큐멘터리의 기획을 바꿨다. 그 과정에는 물론 인천 유나이티드 팀의 환골탈태라는 극적 계기가 있었다. 이 팀은 창단 첫 해에 외국인 감독을 영입했으나 이런저런 불협화음을 내며 시즌 도중에 감독이 경질되는 사태를 맞았다. 선장이 없게 된 팀을 수석코치인 장외룡 감독이 이끌게 됐다. 영화는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장외룡은 국가대표 풀백으로 뛰며 비교적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냈으나 아무래도 당대의 스타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한 경력을 지닌 선수 출신 감독이다. 대우 로얄즈에서 감독 대행으로 준우승까지 이끌었으나 무슨 영문인지 재계약에 실패하고 일본에서 다시 코칭 스탭 경험을 쌓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인천 유나이티드에서도 그는 예정보다 일찍 감독에 입문해 여러 악조건에 부딪힌 팀을 이끌게 된다.
<비상>은 장외룡을 꼭짓점으로 한때 바닥으로 추락했으나 다시 올라서는 선수단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장외룡은 선수 시절 공격수로 대학팀에 스카우트됐으나 쟁쟁한 선배들의 그늘에 가려 수비수로 전향해 성공한 경험이 있다. 그는 직선으로 갈 수 없으면 돌아갈 수 있는 운명에 순응할 수 있는 인물이지만 남들보다 더 강인하게 그 운명을 새로 개척하는 유형의 인물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그려지는 감독으로서 그의 모습은 학구적이고 선수들과 함께하며 군림하기보다는 자상하게 챙겨주는 성품이다. 지도자로서 한국적인 전형으로 꼽히는 카리스마가 거의 없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는 새로운 유형의 리더십을 지닌 인물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보이는 챔피언 결정전에서 그는 팀이 1대 5로 대패하는데도 선수들을 책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5대 0 감독으로 만들어주지 않아서 고맙다고 모자를 벗어 선수들에게 90도로 공손하게 인사한다. 그리고 다시 출발할 수 있는 발판을 그 한 골로 마련했으니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한다. 패배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선수들은 굳은 표정으로 감독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다.
장외룡이라는 지략가가 위기에 처한 팀을 어떻게 끌어올리는가가 이 영화의 주된 관전 포인트라면 이 영화는 장외룡을 축구에 헌신하는 성자처럼 그려내고 있다. 그는 가족도 없는 듯 보이고 매 순간 축구만을 생각한다. 어떤 순간에도 그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올 때는 없다. 챔피언 결정전에서 그는 자신의 선수들이 상대팀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에 나가떨어질 때마다 “우승은 준단 말이야. 주는데, 축구는 제대로 하잔 말이야. 관중들이 이렇게 보고 있는데 너무 하잖아 이거”라며 상대 선수들에게 소리 지른다. 그랬던 그가 2차전을 앞두고는 빠른 울산 선수들을 잡기 위해 나름대로 반칙성이 교묘하게 섞인 태클의 요령을 지도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승부의 세계에서 때로 페어플레이 정신만으로는 지탱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이 장면은 웅변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이것은 인천 유나이티드 팀의 절대적인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취재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카메라가 좀 더 돌진해야 할 순간에 멈칫하고 마는 그런 순간이 있다. 이를테면 울산 현대에게 0대 3으로 지고 있던 전반전이 끝나고 인천 유나이티드 팀의 라커룸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한때 촉망받는 미드필더였으나 부진했다가 광주 상무를 제대한 후 인천 팀과 계약을 맺으려는 서동원 선수는 에이전트를 보내 인천의 안종복 단장과 계약 협상을 하게 한다. 선수로서 제값을 받고 싶은 욕망과 경영논리를 앞세우는 구단주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그 협상자리에서 카메라는 논의가 본격화될 즈음 방에서 물러난다. 이런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또는 장외룡 감독이 2005년 시즌을 준비하면서 선수들에게 제시했던 7승 3무 2패의 성적이 기적처럼 맞아떨어지는 과정에서 도대체 왜 어떤 전술적 준비로 상대팀을 맞았기에 그런 마술이 실현되는 것인가에 관해 영화는 속 시원히 답을 보여주지 않는다.
막간의 땀을 응시하는 카메라
임유철의 카메라는 겸손하게 선수단의 고통을 함께 겪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iTV, MBC, KBS 등에서 여러 편의 방송다큐를 연출해온 그는 유들유들하게 취재대상과 밀착해 들어가는 그런 성품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신 그는 선수들의 삶에 최대한의 공감을 갖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입장으로 따라다녔을 것이다. 열악한 시민구단의 사정상 전용구장이 없어 1시간 30분의 연습을 위해 경기도 가평까지 3시간을 버스로 이동하거나 해외 전지훈련 길에서 저가 항공티켓을 끊은 탓에 공항에서 9시간 넘게 노숙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화면 등은 프로 스포츠 선수라는 허명 하에 가려진 고단한 노동자들의 삶의 실상이 드러난다. 이 선수단의 주장 임중용과 선수단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김학철이 전에 몸담았던 구단에서 헌신짝 버려지듯 방출당한 사연을 말해주는 대목에서도 물건처럼 용도 폐기되는 프로선수들의 가혹한 운명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이들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몸뚱어리로 해내는 것뿐이다.
물리치료실에서 성한 데가 없는 몸을 마사지로 달래면서 이들은 운동장에 나서면 육체의 극한까지 치닫는 고통을 겪으며 뼈가 부서져라 뛴다. 적어도 <비상>은 그 처절한 몸짓을 따라잡는 데 최대한의 성실성을 보인다. 마지막 챔피언 결정전을 앞두고 치러지는 부산 아이콘스와의 플레이오프 전에서 주장 임중용이 과로로 일시적인 실명 상태에 처해 있는데도 무리해서 출장을 하는 대목에선, 삶이 절대절명의 고통과의 싸움이라는 이 영화의 보이지 않는 큰 주제를 향해 영화가 거칠게 내달리는 것 같다. 임중용은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가운데 오로지 감으로 상대 공격수들과 몸을 부딪치며 운동장에서 싸운다. 싸운다라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 이 축구에 아름다움은 없다. 기술과 팀워크로 상대를 제압하는 대신 기로써 상대에게 맞서 누가 먼저 기선을 제압하고 끝까지 밀어붙이느냐는 정글의 혈육전 같은 축구장의 긴장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 와중에 장외룡의 전략이 드문드문 드러난다. 축구의 묘미는 이렇게 거친 운동이 실은 세심하게 약속되고 훈련된 팀워크와 개인전술 없이는 승리할 수 없는 스포츠라는 데 있다. 장외룡의 지시 아래 경기 전날 연습한 코너킥의 세트플레이가 그대로 들어맞는 순간 장외룡은 벤치에서 좋아 펄쩍펄쩍 뛴다. 이런 장면들을 더 많이 잡아냈더라면, 벤치와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들 간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관점에서 경기 장면을 연출했더라면, 경기장 바깥에서 선수들의 경기력을 끌어내기 위해 어떤 변증법적 밀고 당기기가 벌어지는지를 조금만 더 뻔뻔스럽게 입회해 잡아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비상>은 갖게 한다. 아울러 정당한 그들의 노력이 보수로 응당 대접받지 못하는 기형적인 한국 프로축구의 현실이 텔레비전 중계 카메라로 잡아내지 못하는 그들 삶의 막간에서 더 풍부하게 조망됐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비상>은 한국 최초로 축구 다큐멘터리를 완성해낸 임유철의 노력만큼에 값하는 상당한 성취를 이뤄냈다. 이 영화는 노력한 만큼 이뤄낸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비록 챔피언이 되진 못했지만 진정한 챔피언으로 대접받아야 한다는 상투적인 내레이션이 가리키는 것 이상의 감동을 준다. 이것은 자신들의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대드는 인간들의 이야기다. 아울러 그 운명으로부터 끝내 최상의 보상은 받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운명을 장엄하게 견디는 인간들의 이야기다. 축구장은 그런 그들의 장엄함을 가장 처절하게 드러내야 하는 전투장이다. 이곳에서 축구를 즐기는 법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또 그러기엔 그들이 처한 조건이 너무 가혹했다. 부상으로 성한 데 없는 몸을 이끌고 그들은 진통제를 먹으며 운동장에서 또 몸을 혹사하며 달릴 것이다. <비상>은 시지푸스의 신화처럼 좌절하지 않는 인간들의 불굴의 투쟁정신을 그려낸다. 동시에 그 몸들의 거친 부딪침 속에는 너무나 섬세하고 결이 풍부한 영혼들의 외침이 가려져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 영화에서 선수들의 땀과 피와 호흡 소리는 어떤 오케스트라의 화음보다 극적이다. 그건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의 삶의 고통을 웅변하는 현실적 화음이다. 아직 보지 못한 많은 이들에게 이 영화를 권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 비단 축구 다큐멘터리일 뿐만 아니라 삶의 투쟁전선에 나선 사람들을 위한, 거칠면서도 시정어린 따뜻한 위로를 건네기 때문이다. 감독 장외룡과 선수들은 삶의 극한에 내몰린 순교자 같다. 그건 우리들의 긍정할 만한 자화상처럼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