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면, 이제는 고민이 뒤따른다. 필자 개인적으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대해 부정적인 리뷰를 두어 차례 썼다가, 전국적으로 욕을 먹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에 필자에게도 부족한 면은 많았다. 전국적으로 욕먹을 것을 알았다면, 오류가 없도록 더 확실하게 준비해서 더 신랄하게 썼을지도 모른다. 9명이 이쪽 길로 간다면, 저쪽 길로 갈 1명도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사실 필자는 그 '1명'의 목소리를 끌어내고 싶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듯한 이야기 아닌가? 필자 개인적으로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사토 슈호의 만화 <헬로우 블랙잭>을 떠올렸다. 풋내기 인턴의 병원체험기를 그리는 <헬로우 블랙잭>은 9∼13편에서 '신경정신과'를 소재로 잡았다. '정신병동 내에서의 두 남녀의 사랑'에 대해 <헬로우 블랙잭>는 작품의 성격에 맞게 대단히 진지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가볍고 재치있게 묘사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물론 그 '시도'는 대부분 일본의 명랑만화나 엽기 스타일의 만화에서 빌려온 것들이 상당하다. '일순'역으로 출연하는 정지훈(비)의 외모도 그렇다. 그의 외모는 만화적이다. 일본의 명랑만화를 보면, 그림같이 잘 생긴 외모가 아님에도 독특한 매력을 선보이면서 중심에 서는 캐릭터들이 있다. 정지훈의 외모는 바로 그런 스타일이다. 박찬욱 감독 역시 그의 '청춘 이미지'가 가장 필요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박찬욱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추천으로 <20세기 소년>을 읽었다는 발언을 한 적도 있는데, 그에 대한 감상은 정지훈의 캐릭터 '일순'에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일순'은 정신병동 내에서도 발품팔기 바쁜 주변머리 넓은 주인공이지만, 한편으로는 박찬욱 감독의 '감상평'까지 대신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반면에, '영군'역을 맡은 임수정의 캐릭터는 일본만화와 TV 코미디 프로가 혼합돼 다소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다시 한번 일본만화를 생각해보자. 순정만화의 여주인공들은 늘 심각하다. 자신만의 세상, 그리고 온갖 오해와 상처 속에서 늘 우울하다는 것을 기억해보자. 그녀들이 바뀌는 것은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나 그녀만을 위해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정신병동'이라는 설정이기 때문에, 다소 특별한 요소가 추가될 필요가 있었을 듯하다. '영군'의 캐릭터는 순정만화 여주인공의 색깔에, 오래전에 <오늘은 좋은 날>이라는 코미디프로에서 '울엄마'라는 코너에 출연했던 개그우먼 김효진의 당시 이미지와 스타일을 입힌 것 같다. 엽기만화 특유의 코드를 따르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박찬욱 영화의 전반적인 색깔은 '모범생'에 가깝다. 이것저것 열심히 공부해 보여주면서 '최고'의 성과는 거두지 못해도, 늘 주목받을만한 호응을 얻는 '노력형 모범생'이다. 하지만 '노력형 모범생'에게도 부작용은 있다. '노력형 모범생'이 옆에 있으면 다소 피곤한 면이 있다. 독자 여러분들도 학창시절에 쉬는 시간 1분 남겨두고 선생님께 질문해 쉬는 시간을 잡아먹는 친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노력형 모범생'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임에도 억지로 이것저것 공부하면서 과민반응을 보이는 일면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늘 그린 이미지를 느낀다. 많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올드보이>의 필요 이상의 잔혹함처럼 필요 이상의 것을 남발하는 면이 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도 그런 면에서 아쉽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전반적으로 혼란스럽다. <친절한 금자씨>와 마찬가지로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한 나머지, 정리가 잘되지 않는다. 장면은 여전히 테크닉이 넘치며, 일본만화의 색채를 받아들이면서 재치도 비교적 맛깔스럽지만, 지나치게 어수선하다. 박찬욱 감독은 확실히 '이야기꾼'은 아닌 것 같다. 진정한 이야기꾼은 많은 이야기를 같이하면서도 탁월한 수습 능력까지 보여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필자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늘 비판적인 가장 큰 이유다. 물론 박 감독 자신도 "관객의 대다수는 이해하기 힘들더라도 평소 하기 힘들었던 내용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지만, 그런 화법은 이미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한번 보여줬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내용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아니라, '화법이 혼란스러워' 힘들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임수정의 연기가 그 이전보다 훨씬 더 집중력이 좋아졌고, 정지훈 역시 예상치 못했던 매끄러운 연기를 보여줬다는 점은 분명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박찬욱 감독의 많은 요구를 적극적으로 소화했다는 점을 가장 높이 평가하고 싶다.
개봉 첫날 영화를 감상한 관객들의 반응은 '물음표'인 듯하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임에도 혹평도 만만치 않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일본의 장르만화 코드'는 불특정다수의 대중이 받아들이기에는 무리한 측면이 있다. '적응이 안돼'라고 혹평하는 관객도 있으며, 앞서 지적한 '정리가 안되는 화법'까지 지적하는 관객도 있다. 박찬욱 감독은 "절반은 실험적으로 절반은 의식해서 친절해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했는데, 아쉬움을 느끼는 관객이 역시 더 많은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멋지다 마사루>나 <아즈망가 대왕>을 '능가하지 못한 아쉬움'을 이 작품을 통해 해소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작품들에 손대지 않았음이 현명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만화는 상상력과 재치의 집결체다. '노력형 모범생'이 이해하지 못하는 코드가 많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를 막론하고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는 장르가 바로 만화 장르다. 박찬욱 감독의 다음 작품은 <박쥐>다. 역시 상상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가 될 것 같다. 그의 다음 영화는 그의 아쉬운 상상력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필자도 그의 영화를 보며 손가락을 높이 치켜세울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바라는 관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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