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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Forum

아직 못다한 한 뼘의 이야기-황인뢰

아직 못다한 한 뼘의 이야기

황인뢰와 <한뼘 드라마>

2004.01.29 / 신기주 기자 

한 뼘도 안 되는 드라마가 화제다. 평일 자정 무렵 슬며시 안방으로 찾아오는 5분짜리 <한뼘 드라마>는 극적 구성보다는 간결한 설정과 섬세한 영상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눈길이 가는 또 하나의 이유는 연출을 맡은 황인뢰 PD다. 그는 90년대 초 화제의 베스트극장과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의 미니시리즈로 한때 작가 프로듀서로서 이름을 높였다. <꽃을 든 남자>라는 영화의 실패 이후 한동안 황인뢰 PD가 <한뼘 드라마>를 들고 나타난 까닭은 무엇일까. 그의 못다한 한 뼘의 이야기.

젊은 여인이 잠에서 깨어난다. 여기가 어딜까. 여인은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 낯익은 침대, 낯익은 벽지, 여기는 그녀의 방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낯설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간밤에, 그녀는 악마와 천사를 만났었다. 그들은 분명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었다. 꿈이었을까. 여자는 기지개를 켠다. 정말 꿈이었을까?

“딱!” 어디선가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난다. 황인뢰 PD다. 그는 종종 ‘컷’ 대신 손가락을 튕긴다. 꽤 오랜 습관이다. 하지만 오늘 따라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여자가 잠에서 깨는 이 장면만 벌써 네 번째 NG가 났다. 방송에서도 촌각을 다투는 드라마, 하루에 11쪽 분량의 시나리오를 모두 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황PD는 또다시 간다. 대사가 꼬인 것도 아니다. 아예 대사조차 없는 장면이었다. 여배우의 연기도 틀림이 없었다. 오랫동안 연극으로 다져진 여주인공 장영남의 연기는 몸 동작 하나하나까지 또렷하다. 카메라 뒤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황PD가 그녀에게 다가간다. 모두가 황PD만 쳐다본다. 그런데 그는, 아무 말 없이 침대 위에 놓여 있던 책 한 권을 집어 들더니 살며시 거꾸로 돌려놓는다. 잠시 뒤 다시 촬영이 시작된다. “딱!” 이번엔 오케이 사인이다.

돌아온 전설의 작가 프로듀서

MBC의 <한뼘 드라마>는 모두가 잠들었을 자정 무렵 불현듯 안방을 찾아온다. 아는 사람만 안다. 그러나 우연한 마주침도 잠깐이다. 드라마는 5분이 안 돼 끝나 버린다. 무슨 이야기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어찌 보면 시 같다. 범상한 드라마처럼 보이지 않는 정갈한 화면도 눈길을 끈다. 대사도 많지 않다. 때론 무성 영화처럼 주인공은 묵묵히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다. 애인이 떠나 버린 빈집을 찾아와 냉장고를 청소하기도 하고, 하염없이 지하철 역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한다. 어느 날인가는 한 소녀가 헤어진 애인에게 준 카메라를 돌려받기 위해 ‘물품회수관리공단’이란 곳을 찾았다. 그러나 일주일에 네 번, 그것도 자정 무렵에 아주 잠깐씩 나눠서 방송되는 이 한 뼘도 안 되는 드라마를 꼬박꼬박 찾아보기란 불가능하다. 그저 신기해 하며 스치듯 잠깐 만날 뿐이다.

하지만 가끔은 드라마에서 낯익은 이름 하나와 마주치게 된다. <한뼘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는 황인뢰 PD는 전설 같은 존재다. 한국영화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던 80~90년대 초 대중 문화계에서 지금의 영화와 같은 역할을 했던 건 베스트셀러 극장과 미니시리즈였다. 황인뢰 PD는 그 선두 주자였다. 그는 이른바 ‘작가 프로듀서’의 대명사였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황인뢰 PD의 대표작인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1990), <고개 숙인 남자>(1991), <창밖에는 태양이 빛났다>(1993)을 기억한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등장했던 세 여성의 모습은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서간 설정이었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방송 드라마가 운명에 힘없이 휘둘리는 멜로드라마의 터울을 벗어 던진 건 그때가 처음이었고,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황인뢰 PD를 작가 프로듀서로 불리게 만든 건 이야기보다는 영상이었다. 그가 만들어낸 영상은 그 때까지 TV화면에서는 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가 대표적이었다. 붕어빵 찍어내듯 하는 방송 드라마의 전형적인 카메라 워킹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화면은 섬세하게 직조됐다. 여백의 미가 돋보였다. 빛을 자르고 비추는 황인뢰 PD의 감각은 잠재돼 있는 시청자들의 ‘영화적인 감수성’을 자극했다. 그가 한참 주력했던 베스트극장은 90분 분량의 황인뢰표 영화였다. 극장처럼 어두컴컴한 심야 시간대 많은 이들이 아직 극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TV영화를 봤다. 누구나 영상만 봐도 황인뢰의 체취를 맡을 수 있었던 것이다.

황PD가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시기는 영화뿐만 아니라 아직 새로운 영상 문화가 자체가 국내에 뿌리를 채 내리기 전이었다. 대다수의 영화는 기술적으로든 내용면에서든 60, 70년대의 통속적인 희비극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88년 올림픽 이후 대중의 문화적 욕구는 깨어나고 있었다. 80년대의 군사 정권이 끝나 가던 무렵 이들 드라마들은 이제 막 깨어나기 시작했던 대중의 문화적인 욕구를 손쉽게 흡수할 수 있었다. 이른바 ‘드라마 왕국’으로 불렸던 MBC 드라마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그중에서도 황인뢰 PD는 독보적이었다. 황인뢰 PD는 “아직 영화가 미처 자리를 잡기 전에 잠시 드라마가 그 자리를 대신했던 시기”라고 말한다. 황인뢰 PD와 함께 90년대 중반까지 MBC드라마를 이끌었던 이가 바로 김종학 PD였다. 섬세하고 세련된 영상에 주력하는 황인뢰 PD와 달리 김종학 PD는 <모래시계>에서 알 수 있듯이 힘 있고 굵직한 이야기를 선보였다. 둘은 쌍두마차와도 같았다. 그들은 폭발적인 시청률과 더불어 관객들이 영화적인 심미안을 갖도록 자극했다. 황인뢰 PD는 2000년대 들어 영화에서 만개한 새로운 영상 문화의 선구자 중 한 명이었다.

우연한 마주침 같은 드라마

화면을 지그시 바라본다. 악마와 여자가 테이블 앞에 앉아 있다. 대화가 오간다. “오늘이 제 마지막 날인가요?” “그래요.” “그럼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죠?” 다시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들린다. 황 PD다. “잠깐 옆으로 들 자리를 움직여봐요. 그렇지. 이제 화면이 제대로 나뉘나?”

모니터에 비쳐진 화면은 거실과 부엌을 연결하는 큰 문틀이 두 개로 나뉘어져 있다. 한쪽에는 악마가, 다른 한쪽에는 여자가 앉아 있다. <한뼘 드라마>의 제11화 <내 생애 마지막 날>은 조금은 판타지적이지만 사실 조금 밋밋한 구조의 이야기다. 악마와 천사가 차례로 나타나 여인에게 마지막 날에 무엇을 할지 묻는다. 지금까지 <한뼘 드라마>에 종종 등장했던 소재다. 그런데 황PD는 평범한 이야기를 아주 특별하게 찍고 있다. 자꾸 화면을 나누고 이곳저곳에 여백을 준다. 어떤 때는 연기보다는 배경을 더 많이 고민한다. “처음에는 영상 스토리처럼 만들고 싶었죠. 대사는 거의 없고, 심지어 소리조차 전혀 없는, 무성 드라마라고 할까?” 11월 방송됐던 첫 번째 에피소드 <그녀의 냉장고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그랬다. 영화배우 지진희를 캐스팅한 첫 회분에서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대사는 단 두 마디뿐이다. 대신 지진희는 잠자코 냉장고 안을 뒤져서는 그 안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맛본다. 그렇게 월요일에 5분, 화요일에 5분, 수요일과 목요일에 5분씩 방송된 뒤 모두 20분 길이의 한 뼘 드라마는 끝이 났다. 소리도, 화면도 온통 여백투성이였고, 방송 시간보다도 드라마가 흘린 이상한 여운이 남아 있는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휴머니즘을 강조한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무슨 이야기를 할지는 나로서는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느낌이 소중했죠. 내가 만드는 그림이 전해줄 수 있는 느낌이 온전해야만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러자면 길이가 문제였는데, 자정 무렵의 심야 시간대에 토막 이야기를 부담 없이 보여 주자면 한 뼘의 형식이 필요했던 거죠.” 황 PD로서는 10년 전과는 많이 달라진 시청자들에 대한 고민도 없지 않았다. “평소에 베스트극장 같은 단막극에서는 할 수 없었던 느낌을 중시하는 소품 이야기들을 갖고 있었어요.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드라마 형식에 맞추자면 자리가 없었거든요. 게다가 요즘은 베스트극장조차 러닝 타임이 자꾸만 줄어드는 추세죠. 편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와 달리 이제 시청자들은 한 시간 넘는 드라마를 찬찬히 보려 하지 않아요. 그러다 짧은 소품 드라마에 도전해보기로 했죠. 단지 영상과 짧은 이야기가 전해 주는 느낌만으로 만들어지는 드라마 말이죠.”

문화 월간지 <페이퍼>의 편집장이기도 한 황경신 작가를 끌어들인 건 바로 느낌 때문이었다. 황경신 작가가 썼던 단편소설들이 초기 몇 편의 원작이 됐다. 동화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황인뢰 감독은 대본에 충실하면서도 능숙하게 영상을 빚어내죠. 하지만 어딘지 집요한 구석도 있어요. 남들이 못 잡아내는 미묘한 차이를 지적하곤 해요. 화면 속에 비쳐지는 장미꽃이 몇 송이인지까지 세세하게 고려하니까요.” 황경신 작가와 그가 함께하고 있는 작가 집단 '스토리밴드'는 잡다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 판타스틱하기도 하고 쓸쓸하거나 때로는 따사롭기도 하다. 하지만 짧은 이야기탓에 정밀하기보단 처음부터 빈틈이 많다. 황인뢰PD는 거기에 옷을 입히는 걸 즐긴다. “이야기는 30대인 작가들이 더 잘하죠. 소재도 무궁무진하고, 세상도 제대로 보죠. 난 거기에 살을 붙여요. 내 색깔을 입히죠.”

<한뼘 드라마>는 좀 더 분방해지고 싶은 황인뢰 PD의 노력이다. 영화의 기운에 밀려 이제 TV의 베스트극장 같은 단막극은 인기가 높지 않다. 작가 프로듀서의 시대도 지나갔다. 더 이상 드라마에서 작가의 감수성을 찾는 관객은 많지 않다. 천편일률적인 드라마가 늘어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한뼘 드라마>는 철 지난 작가 프로듀서가 생각해낸 일종의 돌파구다. 과거 베스트극장에서 그가 장편영화를 찍었다면, 지금 그는 매주 단편영화를 찍고 있는 셈이다. “작고 가벼운 이야기죠. 심야 시간대 중에서도 시청률의 사각 지대라는 12시 30분 무렵이고. 설사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다음 회를 기다리게 만들 수 있다 하더라도 5분짜리 드라마를 찾아본다는 건 말도 안 되요. 대신 드라마에 잔잔한 느낌을 담죠. 그리고는 보는 사람들이 우연히 마주치길 기다려요. 느긋하게. 바삐 가는 일상에서 여운을 얻을 수 있게 말이죠. 그게 드라마가 영화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죠. 드라마는 일상적이니까. 우연한 만남이 가능한 매체니까요.”

고개 숙인 남자

사실 그도 영화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황인뢰 PD가 기억하는 영화는 ‘좌절’이다. 97년 개봉했던 그의 유일한 영화 연출 작품인 <꽃을 든 남자>는 흥행과 비평에서 처참한 실패를 가져다주었다. 황인뢰 PD로서는 일생일대의 좌절이었다. 90년대 중반을 넘어서고 문민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 역시 영화에 대한 욕심을 갖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는 77년 MBC에 입사할 때부터 영화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그땐 영화일 해서 먹고살 자신이 없었죠. 그래서 방송국을 선택했던 거였어요.” 20년 만에 꿈을 이룰 기회였다. 마침 MBC가 영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는 자원했고 MBC도 마다하지 않았다. 만들면 족족 대박을 터뜨리는 작가 프로듀서가 믿음직해 보인 건 당연하다. 그러나 멜로를 선택한 게 화근이었다. 부산으로 흘러 들어온 시나리오 작가와 술집 여급의 로맨스는 통속적이기까지 했다. 또 MBC의 구조는 작은 영화 한 편을 알맞게 요리하기에는 너무 크고 비효율적이었다. 통속적일 수밖에 없는 드라마에서조차 끝끝내 자기 색깔을 드러냈던 황인뢰 PD는 뜻밖에도 영화에서 개성을 잃었다.

“개피 봤죠.” 그 후로는 계속 내리막길이었다. 그의 잘못도 아니었다. 황인뢰의 전성기는 지나간 것처럼 보였다. 황인뢰 PD는 이전처럼 자기 색깔이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동안 드라마의 주류도 바뀌었다. 트렌디한 드라마 일색이었다. 그와 함께 TV드라마는 한때 영상 문화를 선도했던 기운을 잃고 퇴보했다. 김종학 PD 등 몇몇 프로듀서들이 영화에 도전했지만 선발 주자였던 황인뢰 PD와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9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작가 프로듀서들은 급격하게 설 자리를 잃었다. 그들은 영상 문화의 기운이 함께 TV에서 극장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단 한 사람도 자리를 옮기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대신 순수 혈통의 씨네 키드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하지만 황인뢰 PD는 그 와중에도 영화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97년 <꽃을 든 남자>를 만들었던 때는 개인적으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던 때였어요. MBC에서는 드라마 편성을 맡을 건지 아니면 현장에서 연출을 계속 할 건지를 놓고 내게 선택을 요구하고 있었죠. MBC는 내게 편성 데스크를 맡으라고 하는 쪽이었는데,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그게 수순이었죠. 그런데 그 땐 왜 그렇게 연출 아니면 죽을 것 같았던지. 그래서 영화에 욕심을 내고 있었던 차에 MBC에서 기회가 왔어요. 덥석 잡은 거죠. 연출 욕심 때문에.” 사그러들지 않는 연출 욕심 탓에 좌절 이후에도 그는 절치부심 했다. 간간히 베스트극장을 찍기는 했지만 그러면서도 충무로에서 영화 찍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애를 썼다. 더러 영화 연출의 기회가 왔지만 막판에 자꾸만 엎어졌다. 시간은 참으로 덧없이 흘러갔다. 지난 5년은 영화에 대한 열정과 조바심으로 지나갔다. “후배들이 자꾸만 치고 올라오니까 긴장되더군요. 영화 쪽에서도 아직 여지가 없고 또 드라마에서도 경쟁이 치열해졌죠.” 그는 요즘의 한국영화의 전성 시대가 신인 감독들 때문이라고 말한다. 황인뢰 PD가 말하는 ‘신인’ 감독이란, 강제규 감독이다. 그만큼 황인뢰는 노장이다. 그의 나이 벌써 오십이다.

닮은꼴 드라마와 영화

“10년 전 한창 드라마가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 한 일본 프로듀서가 그러더군요. 일본도 역시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 전공투 열기가 일본을 뒤덮은 직후 그 문화적인 욕구 불만이 TV드라마로 쏠렸었다고. 하지만 그런 문화적인 욕망은 시간이 가면 소멸되는 것이라고요. 그 얘길 들었던 게 벌써 10년 전인데 지나고 보니 틀린 얘긴 아니더군요.” 황인뢰 PD는 요즘 영화에서 10년 전의 드라마를 본다. 영상 문화란 대중의 욕구와 그걸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창의력이 마주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지금의 영화가 그렇고, 10년 전의 드라마가 그랬다. “지금 능력 있는 감독들이 충무로에 대거 등장하고 있는 것처럼 당시에도 재능 있는 드라마 프로듀서들이 한꺼번에 등장했었죠. 김종학 감독이 그랬고, 고석만 감독도 그랬죠.” 정말 그랬다. <제4공화국> 등의 정치 드라마를 단골로 연출했던 장수봉 프로듀서나 <전쟁과 사랑> 등을 연출했던 신호균, 김지일, 이진석 등은 지금의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감독 같은 이들이었다.

90년대 후반이 되자 드라마들은 힘을 잃기 시작했다. 방송국들이 시청률 경쟁에 쫓겨 드라마를 대형화 시켰고, 시청자들의 입맛도 빠르게 바뀌어갔던 탓이었다. 한때 새로운 영상미의 산실로 꼽혔던 MBC 베스트극장은 시청률 사각 지대로 찍혀 방송 시간도 90분에서 70분으로 줄었다. 황인뢰처럼 과감하게 영화에 도전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렇게 사그러들었다. 비대해진 방송국은 더 이상 신선한 창작의 좋은 토양이 돼주지 못했다. 황인뢰 PD가 시들해진 원인을 새로운 출구를 발견하지 못한 것에서 찾는다. “그때 그냥 떠밀려 갔던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었던 거죠.” 그 옛날의 MBC 드라마처럼 충무로도 이제 비대해졌고 산업화됐다. 90년대 후반 작가 프로듀서들의 설 땅을 빼앗았던 트렌디 드라마처럼 저급한 코미디영화가 득세하고, 대책 없는 대작 미니시리즈들 마냥 황당한 블록버스터들이 잇따라 시장에서 패배하고 있다. 하지만 황인뢰 PD는 영화의 미래에 대해서만큼은 낙관적이다. “드라마는 퇴화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었죠. 한 조직이 너무 많은 걸 갖고 있었어요. 하지만 충무로는 자본만 충분하다면 영원히 갈 것 같아요. 영화는 아직 자유로우니까요.”

아직 못다한 한 뼘의 이야기

<한뼘 드라마>의 열한 번째 이야기 <내 생애 마지막 날>에는 두 명의 가수가 출연했다. 어어부 밴드의 백현진과 가수 김원준이다. 연기는 어색하지만 풋풋한 매력이 있다. 현장에서 조용조용하게 지켜보는 걸 좋아하는 황PD도 이날 촬영장에서만큼은 백현진 덕분에 크게 웃었다. “힘든 일이거든요. 누군가에게 그날이 생애 마지막 날이라고 이야기해 주는 일은”이라고 말하는 백현진의 대사 치는 품새가 우스꽝스럽다.

황인뢰의 드라마에는 종종 뮤지션들이 배우로 출연한다. 그는 오랫동안 TV드라마의 정형화된 연기를 탈피하고자 애써왔고 의외로 캐스팅도 한몫했다. 지금은 배우로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산울림 밴드의 리더 김창완에게 처음 연기를 권했던 것도 황인뢰였다. 영화 <꽃을 든 남자>를 찍을 때는 홍대 앞 클럽에서 연주하고 있던 무명 밴드 자우림을 즉석에서 캐스팅하기도 했다. 지금 한창 스크린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미연, 김혜수, 심혜진, 김승우 등은 황인뢰의 드라마에서 연기의 기초를 다졌다. 베스트극장에서 황인뢰 PD는 이들 연기자들을 데리고 수많은 영상 실험을 했다. 그의 드라마들이 색다를 수 있었던 이유였다. 지금도 그의 남다른 연기 철학을 아는 배우들이 <한뼘 드라마>의 출연을 자청하고 있다. 촬영 시간이 짧고 간결한 것도 큰 이유다.

<한뼘 드라마>도 새로운 실험이다. 극장에서의 진지함만큼은 아니더라도 영상 문화의 한 축으로 드라마에는 그만의 장점이 있다. 친밀성과 우연성이다. <한뼘 드라마>는 그걸 극대화시킨다. 10여 년 전 베스트극장으로 온갖 실험을 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색다른 시도를 하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영화가 이제 더 이상의 실험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충무로는 위험한 실험을 하기엔 너무 비대해졌다. 황인뢰는 <한뼘 드라마> 작업을 한국예술종합대학교 영상원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다. 그는 “산학 협동”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이미 실험에 소극적이 된 충무로에서는 여지가 없는 일이다. 게다가 <한뼘 드라마>와 같은 단편의 토양은 충무로엔 없다. 그건 영상 문화라는 토양을 위해 드라마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90년대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처음으로 대중을 사로잡던 시절 황인뢰의 드라마들은 섬세하고 고급스러운 감수성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었다. 그의 캐릭터는 대개 상처받은 인물들이었다. 그 상처 속에는 얼마간의 달콤함도 녹아 있었다. 그것이 90년대를 관통하는 정서였다. 황인뢰의 드라마가 시대를 앞서갔던 것도 그러한 90년대의 정서를 읽어 내렸기 때문이었다.

황인뢰와 10여 년째 함께 일하고 있는 한 스탭은 말한다. “황인뢰 감독은 너무 바쁜 사람이죠. 30년 동안 방송과 영화를 했지만 한번도 다른 일에 신경 쓰는 걸 못 봤어요. 연출하느라 바쁜 사람이거든요.” 정말 그는 한때 바쁘게 살았다. 그는 부단히 노력한 끝에 일가를 이뤘었고, 지금도 부단히 애쓰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갈 길을 찾지 못했었다. 그는 자신에게 아직 못다한 ‘한 뼘’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이야기라기보다는 영상의 형식과 미에 관한 것이다. 그가 짧은 호흡의 드라마로 가쁜 호흡의 시청자들에게 다가서려는 이유가 그것이다.

다시 촬영이 시작된다. 이번에는 백현진의 표정이 더욱 진지해졌다. 그는 진지해질수록 재미있어지는 사람이다. 황인뢰도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안다. 진지한 표정으로 백현진의 연기를 관찰한다. 어정쩡하지만 그래서 이야기와 더 잘 어울리는 대사가 시작된다. “누군가에게 그날이 생애 마지막 날이라고 이야기해 주는…” 아니다. 황인뢰 PD는 <한뼘 드라마>가 생애 새로운 실험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해 주고 있다.

사진 김춘호 기자


한뼘의 이야기들

10화 <마지막 춤을 나와 함께>
출연 ㅣ 여현수, 한지민
은은한 조명의 카페에서 한 쌍의 연인이 함께 춤을 추고 있다. 웨이터 현수는 그들의 춤을 부러운 듯 바라보고 있다. 연인들은 매일 같이 카페에 찾아와 함께 춤을 춘다. 현수는 쓸쓸해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때 문이 열리는 현수의 초등학교 때 첫사랑 지민이 나타난다.

9화 <꽃을 잡고>
출연 ㅣ 이재은, 김인권
술에 취해 골목길을 헤매던 남자는 우연히 ‘유화’라는 기방에 들어간다. 그곳에는 한 여인네가 앉아있다. 그녀는 자신이 조선조 때부터 대물림 돼 온 최고의 기생 ‘유화’의 이름을 전수 받은 마지막 기생이라고 말한다. 남자는 유화에게 다시 찾아와도 되는지 묻지만 그녀는 알 수 없는 대답만을 남긴다.

8화 <크리스마스의 연인>
출연 ㅣ 류승범, 윤진서
가난한 연인이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갈 곳 없는 연인은 거리에서 폐타이어와 몽땅한 크레파스 몇 개를 주워 들고는 허름한 빈 아파트로 숨어 든다. 두 사람은 크레파스로 벽에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은 선물을 그려넣은 뒤 폐타이어에 함께 앉아 얻어온 케익을 먹는다. 그리곤 잠이 든다.

7화 <물품회수 관리공단>
출연 ㅣ 박지아, 양정현
한 여자가 ‘물품회수 관리 공단’에 찾아온다. 그녀는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인에게 남자친구에게 빌려줬던 카메라를 돌려 받고 싶다고 말한다. 노인이 이유를 묻자 여자는 ‘잊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그러나 서류 뭉치 속에서 여자는 그녀의 남자 친구가 작성한 서류를 발견한다. 이유는 ‘기억하기 위해서’.

6화 <고도를 기다리며>
출연 ㅣ 김창완, 이석호, 이종혁
와인바에 손님이 찾아온다. 웨이트 창완은 손님에게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인공 사무엘의 이름을 딴 와인을 대접한다. 또 다른 손님이 찾아온다. 창완은 또 다른 주인공 에스트라공의 이름을 딴 와인을 대접한다. 잠시 뒤 창완은 그들에게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이름의 와인을 대접할 지 고민한다.

5화 <나에게 남겨진 동전하나>
출연 ㅣ 강혜정, 박민정, 이규화
소녀가 우연히 한 사내가 떨어뜨린 100원짜리 동전을 줍게 된다. 곧 이어 소녀는 가방을 날치기 당한다. 사내는 소녀에게 100원짜리 동전은 불행과 행운을 전해주지만 행운을 얻기 위해서는 불행을 견뎌야 한다며 선택을 강요한다. 곧 소녀에겐 큰 행운이 찾아오고, 소녀는 고민 끝에 동전을 버린다.

4화 <런치박스세트>
출연 ㅣ 용이 감독, 빈
배가 고팠던 남자에게 갑자기 여자가 점심 도시락을 건낸다. 두 사람은 그렇게 데이트를 시작한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의 연락처도 모른다. 매일 점심 때마다 그녀는 남자에게 찾아와 도시락을 건낼 뿐이다. 남자는 여자가 좋아진다. 그러나 여자는 점심 도시락 시식 아르바이트생이다.

3화 <나는 뱀파이어다>
출연 ㅣ 홍은철, 김원, 한대수
기괴한 차림을 한 남자가 팝콘을 주문한다. 그는 팝콘에 피빛 캐첩을 뿌려 먹는다. 술집에서 그는 낯선 두 사람과 합석해 밤새도록 거나하게 술을 마신다. 남자는 자신이 뱀파이어라고 소개한다. 두 사람은 믿지 않지만 믿는 척 한다. 뱀파이어 사나이도 그걸 안다. 그는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2화 <택시 드라이버>
출연 ㅣ 장진, 김혜나
매일 같은 시간마다 지하철 입구에 나타나 택시를 기다리는 여인이 있다. 택시 운전사는 어느새 그녀를 연모한다. 택시 운전사는 자신의 택시에 탄 그녀에게 사랑 고백을 하고자 라디오 프로그램에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방송을 듣고도 그녀는 반응이 없다. 택시 운전사는 절망에 빠진다.

1화 <그녀의 냉장고 안에 머물러 있는 것>
출연 ㅣ 지진희, 김혜나
연인이 떠나간 빈집에 남자가 찾아온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냉장고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오래 된 먹거리들과 음료수를 하나하나 바닥에 늘어놓는다. 남자는 갑자기 그 음식들을 맛보기 시작한다. 달걀, 쥐포, 식빵을 씹어대던 남자는 젖은 물오징어를 보고는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출처: http://www.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