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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명소

아름답지만 가슴 시린 중국 농촌 기행 사진·글 이상엽


사진·글 이상엽 / 이미지프레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5시. 나는 위안양현(元陽縣) 신제진(新街鎭)에서 마을 버스인 빵차(面包車, 식빵처럼 생겼다해서 붙은 이름)를 타고 둬이춘(多依村)마을로 향했다. 비포장 포도를 타고 이 작은 미니밴은 끊임없이 헉떡이며 가쁜 고개를 넘어간다. 지금 이 차가 향하고 있는 곳은 중국 윈난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랑논(일명 라이스테라스)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마침 이곳을 찾은 때는 논농사를 위해 물을 대놓았기에 환상(!)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나? 하여간 한번 믿어보기로 하고 흔들리는 차 안에서 단잠에 들었다. 한참 후 차가 멈추고 내리라 한다. 아침 6시. 아직도 밖은 깜깜하지만 주변을 둘러보고는 깜짝 놀랐다. 수십대의 자동차가 길을 메우고 저마다 최신형의 고가 카메라를 맨 사람들로 붐빈다.
나도 카메라 장비를 둘러매고 벼랑가 사람들 옆으로 위태하게 섰다. 그리고는 이윽고 숨이 멎을 뻔 했다. 와! 인간이 만든 거대한 풍경에 압도됐다. 아직 일출 전인데도 어렴풋하게나마 이곳을 왜 그 유명한 필리핀 바기오의 다랑논과 비교되는지 알 수 있었다. 상하이에서 왔다는 진씨는 "곧 이 곳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될 겁니다. 그 전에 꼭 한번 와서 사진을 찍고 싶었죠." 비단 진씨 뿐 아니라 중국 전역의 사진애호가들이 이곳을 찾는 듯 했다. 7시가 다가오자 산위로 태양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천천히 논은 붉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서 셔터 소리가 요란하다. 고산지대의 협곡에 위치한 다랑논은 빛과 구름이 어우러져 기가막힌 풍경을 연출한다. 그러길 30분. 해가 산 위로 10도 정도 오르자 사람들은 분주하게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일출의 드라마가 사라지자마자 차에 몸을 싣고 사라지기 시작했다. 정말 거짓말같이 그 길 위에는 간식� 달걀을 파는 동네 소녀애들을 빼고는 나만 남았다.
 



나는 올해로 11년 째 중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어떤 때는 실크로드를 여행하기 위해 시안을 출발해 모래폭풍이 휘날리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해 서쪽 끝 도시 카슈가르를 방문하기도 했고, 중국의 개방개혁 이후 변화하는 도시를 보기 위해 단둥에서부터 마카오까지 동부연안 도시들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최근에는 운남성의 푸얼차에 반해 차마고도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나의 중국 여행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대학시절 읽었던 마오의 '물과 물고기' 중 바로 물이었던 농민들이었다. 과연 오늘의 중국을 만들어줬던 농민들의 삶은 어떠한지.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내 나라 농민도 죽겠는데 웬 중국 농민 걱정이냐?"고 할 듯 하다. 그에 대한 대답은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 안에 있다. 그는 인도의 '거룩한 어머니 암소' 편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암소가 사실은 인도라는 경제를 지탱하는 원천임을 증명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암소를 이용한 노동집약적 소농이 인도 농촌의 괴멸을 막아주는 장치라고 역설했다. 사실 중국의 농민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FTA가 횡횡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중국의 9억 농민은 어떤 위치에 있을까? 9억의 농민 중 2억은 이미 민공이라는 이름의 도시 일용직이 되었다. 그리고 1억 5천만이 또 도시로 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중국 농촌의 파산은 중국이라는 국가적 재앙에서 그치지 않고 주변 국가와 전 세계의 심각한 타격을 줄만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혁명의 '물'이 되어주었던 농민이 도시 중산층의 '봉'이 되어버린 오늘, 그들이 갖고 있는 생각과 문화, 땅과 노동이 궁금해 졌다. 그래서 그 압도적인 풍광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들의 마을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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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일 나가는 여성들. 물을 댔으니 조만간 모내기가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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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양현 신제진 주변에는 약 30여개 부락에 이런 다랑논들이 있다.
이곳들은 곧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될 예정이라는데, 내 보기에는 '세계문화유산'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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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광 좋은 곳에서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춤 한번 춰주고 팁을 받는 소녀. 이곳 농촌 아이들의 새로운 일거리이다.

 


둬이춘은 하니족(哈尼族)의 마을이다. 하니족은 청남색을 선호하며, 부녀자들은 가슴 장식과 귀고리를 특히 좋아한다. 산지 농경민족으로 논농사와 차를 재배하는데 워낙 고산지에서 집거하기에 기계농사하고는 거리가 멀다. 모두 인력에 의해 저 거대한 다랑논을 천년가까이 만들어 온 것이다. 멀리서 그 풍광을 감상하는 이들에게는 아름다움일지 몰라도 그들에게 이 다랑논은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세계자연유산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이 일군 '문화유산'이 맞다. 청바지 입은 낯선 이방인을 반갑게 맞이하는 왕현달(75) 노인은 "전기도 작년에 들어왔어. 덕분에 TV도 보고, 한국 드라마도 봤지"라고 한다. 하지만 이 동네에서 청년을 보기란 힘들다. 모두 도회지로 돈벌러 나갔기 때문이다. 노인들과 여성이 지키고 있는 이 마을의 한달 평균 수입은 우리 돈으로 채 5만원이 되지 않는다. 농약을 살 돈도 없으니 눈물나는 '유기농 농산물'을 생산하는 셈이다.
그러나 중국 농촌의 현실이 모두 구차한 것만은 아니다. 윈난의 소계림이 불리는 푸저헤이(普者黑)는 자연이 준 혜택과 주민들의 적극성으로 성공적인 마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소매점과 관광객용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황씨(62)는 "우리 마을에는 소학교만 둘이 있어요. 그 만큼 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죠"라고 한다. 이곳에 젊은이가 많은 것은 일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관광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빼어난 풍광과 전통적인 농촌 가옥들 자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마침 결혼식이 있다기에 취재차 들렀다가 전통 화주 3컵을 마시는 신고식을 거쳐야 했다. 넓직한 마당에는 백여 명의 하객들이 들어차 있고 흥겨운 이족(彛族)들의 음악이 넘쳐났다. 가난하지만 행복함이 넘쳤다.
 



 


하지만 푸저헤이의 예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지방의 당간부들과 공무원들이 지역 투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평범했던 농촌 곳곳에 수많은 '문화보호구'를 만들어 내지만 관광객 한명 보이지 않는 곳이 허다하다. 오히려 주민들은 생활만 불편해 졌다고 투덜댄다. 푸저헤이를 떠나 도착한 곳은 장예모감독의 <귀주이야기>로 유명해진 귀저우(貴州). 주인공의 이름이 '귀주'일 뿐 '귀저우'와는 상관없지만 그래도 지지리도 못사는 전형적인 중국 농촌지역임에는 맞는 곳이다. 태양이 귀해서 논농사도 안돼 곳곳에 유채꽃만 흐드러진 윈산툰(云山屯)은 명나라 때 이 지역 소수민족을 관리하기 위해 파견됐던 한족 병사와 가족이 머물던 곳이라고 한다. 성채가 고스란히 남아 운치는 있지만 이 깡촌까지 누가 찾아올꼬. 외지인이 너무 반갑다고 눈가에 눈물이 맺힐 때가지 대나무 나팔을 불던 노인의 등 뒤로 마오저뚱의 초상과 붉은 십자가가 보였다. 혁명전처럼 그들은 이제 땅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았으나, 잉여로부터 여전히 소외되어 있었다. 이제 그들에게 기독교는 들불처럼 번져 나가고 있었다. 비공식적으로 1억인 인구가 기독교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과연 중국의 농촌의 지난 50년처럼 중국정부의 든든한 배경이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중국을 여행하면 자금성을 보고, 상하이의 와이탄을 봐야만 중국을 안다고 할 수 없다. '날아오르는 중국'의 발판은 '저 낮은 중국'이다. 저 낮은 중국에 9억의 농민들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내 여행은 이제 시작됐다. 그 이야기가 아직 소곤거림인지 벌써 고함인지 알 수 없지만 낯선 이방인을 맞는 그들의 표정은 아직도 소박하고 따듯했다. [Edition 68, 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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