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인TV방송

OBS경인TV<대한민국희나리, 내가 선택한 길>-허영호대장을 만나러 가는 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새벽 6시30분 쯤에 본 회사.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유령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는 승합차.
어제 프로듀서협회 회식의 여독이 풀리지 않은 몸을 꾸겨넣듯 차에 던졌다.
충북 제천으로 산악인 허영호대장을 만나러 가는 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
2시간 여 만에 허영호대장을 만났다.
다름이 아니고 <대한민국희나리, 내가 선택한 길>이라는 대담프로그램의 인터뷰어로 나선 것이다.
허영호대장과의 개인적인 친분 등을 고려해 내가 적임자라는 담당PD 전동철의 억지 요청에
끌려 온 것이다.
숙취가 골을 때리는 시간,
물안개 피어오르는 청풍호를 배경으로 자리를 잡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프닝을 녹화한 다음 제작팀은 금수산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금수산은 허영호대장이 처음 산을 배운 母山이다.
그래서 특별하다.
다행히 고향후배 산악인인 김승환씨가 능선 가까이까지 최대한 차량이
올라갈 수 있도록 배려한 덕에 사진처럼 그리 힘든 산행은 아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0분 쯤 산행끝에 청풍호가 훤히 보이고 멀리 월악산을 위시한 첩첩산중의 능선이
산수화 같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리잡자마자 까칠한 질문부터 해댔다.

“내가 산악계 외톨이라고요? 뭐, 그럴 수 있죠. 산악계 쪽에는 관여를 안 하니까. 행사도 안 나가고 산악인도 잘 안 만나죠. 등반이란 본인이 하는 거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후배도 많고 선배도
많아요(웃음)”한다.

오랜만에 마주 앉은 허영호라는 이름이 내겐 익숙하다.
어느덧 인연이 15년 쯤 되니까 허영호대장이란 사람과 허영호를 둘러 싼 세상사까지도
아는 터이니 나의 까칠한 질문도 부드럽게 받을 줄 안다.

그의 등반 인생에서 결정적 시점은 1999년 한국산악회 원정대장을 맡아 에베레스트의 북벽 루트로 갔을 때다. 그 원정대는 고난도 벽(壁) 앞에서 실패하고 되돌아왔다. 문제는 결산 과정에서 일어났다. 그가 원정비용의 일부를 빼돌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세상에 그로인한 시시비비는 정확히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허영호대장이 산악회에서 제명되면서 그의 ‘자리’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나는 그때의 상황을 너무 잘 알기때문에 재론하지 않는다. 다만 허영호라는 사람은 그저 남 피해
안주고 자기등반을 하는 산악인이라는 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개인적으로도 오랜만에 만난터라 때론 인터뷰어라는 사실도 잊고 이런저런 얘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워낙 호기심이 많고 바지런한 사람이라 잠시도 노는 틈이 없다.
그런그도 자기의 꿈을 키웠던 금수산자락에서는 조금 흥분 되는 모양이었다.
어렸을 때 금수산을 넘어 학교다니던 일, 그러다가 고구마, 수박 서리하던 일.
청풍호에서 발가벗고 멱감던 일과 같은 아련한 추억들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메라 앵글때문에 아주 불편한 자세로 1시간 여를 비스듬한 바위에
매달린 나의 엉덩이는 짝궁뎅이가 될 지경이었지만, 산사나이와 산에서 산을 얘기한다는 것은
신선한 감동이다.

“1982년 마칼루봉 원정 때는 정상에서 추락해서 죽을 뻔했고, 83년 마나슬루봉 가을 등반에서는 눈사태에 파묻혀 셰르파들의 구조로 살아났고, 87년 에베레스트 원정 때는 내려오면서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진 틈)에 빠진 적도 있었지요. 거기서 죽을 수도 있었지요. 그런 사고를 겪으면 이제 그만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죠. 그런데 그게, 세상으로 돌아오면 또 산에 가고 싶어지니까.”

그런 사선을 넘나든 사람이라 그런지 산에 대한 철학도 남다른 것이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것에
특별함을 느끼기도 한다.

“산악인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돈은 중요하죠. 그것을 등한시 하면 나이가 들어 자연스럽게 도태될 뿐이죠.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가난해요. 손가락·발가락을 잘린 산악인들이 솔직히 뭐 영웅이야? 가족도 제대로 부양하지 못하면서 등반을 계속 해서 뭐해요. 그런 친구들이 사회에서 성공하나요? 성공 못하지. 저는 등산보다는 먹고 사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

정상을 눈 앞에 두고도 몇번이나 철수의 결정을 했다는 허영호대장의 손은 보통여자 손보다도
보드랍고 동상의 흔적도 없다. 아주 고독하고 어려운 결정을 수도 없이 했지만
자기 몸에 맞는 등반,  준비된 만큼의 등반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지론이
그의 몸을 지켜주었고 그를 가족 곁에 둔 것이리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전히 또다른 도전을 준비한다는 허대장.
수북히 싸인 겨울낙엽과 하늘거리는 갈대와 아주 잘 어울린다.
그리고 50대 초반에도 꿈을 잃지않은 소년 같은 미소로 그 도전이 머지않았음을 암시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상사람들은 허영호를 잊거나, 또는 알피니즘을 상업적으로 이용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었었다.
우리가 영웅시하는 엄홍길대장과 박영석대장 심지어 깔끔한 산쟁이 한왕용대장도
허영호가 갔던 길과 방법을 따라했다.
그것은 모험과 도전이라는 것에 대한 환상만큼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던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의 인심에 그닥 신경쓰지 않았다.
'남 피해 주지않고 내 등반을 하기'때문이었다.

"백PD. 제천 정말 아름답지? 금수산은 어떻고... 나 여기서 뛰어놀면서 산을 배웠지.
나의 정신적인 본령인 母山이야.
자~ 저 밑을 봐. 청풍호야. 저 다리건너면 단양으로 가지.
정말 아름답지 않아? 그야말로 淸風明月의 고장이지..."

하산길에 허영호대장은 내내 당신의 고향 충북제천을 세뇌시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