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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TV방송

[스크랩] [중앙일보]브랜드 떼고 콘텐트로 승부 … 따라가는 아류 되지 않을 것

“경쾌하고 도회적인 방송 추구” [마이프라이테이]
브랜드 떼고 콘텐트로 승부 … 따라가는 아류 되지 않을 것

2000년 3월, iTV(인천방송)의 토크쇼 ‘3일 간의 사랑’ 녹화 현장. 진행자인 탤런트 김원희·손창민 앞에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동안(童顔)의 남자가 앉아 있다. MBC 예능 PD, 그것도 ‘스타 PD’ 자리 대신 이화여대 강단을 택한 주철환(52) 교수였다.

7년 후, 주 교수는 ‘모자 왕’이라 불리는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과 마주 앉았다.

“주 교수의 방송 철학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백 회장이 대주주인 OBS경인방송(이하 OBS)은 신임 사장을 찾고 있었고, OBS의 슬로건인 ‘희망과 나눔의 빛’은 주 교수가 항상 강조해 온 가치였다.

주 사장은 지난 5일 사장공모추천제를 통해 OBS(O-One·Our·Open·Orie-nt Broadcasting System)의 초대 사장이 됐다. 취임식 하루 전인 19일, 주 사장을 만나기 위해 경인방송국을 찾았다.

“제 인생 3막을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1막은 PD, 2막은 교수였지요. 잘못하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까 부담스럽지만 낯선 모험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주 사장은 몇몇 지인의 권유와 두 달여 동안의 고민 끝에 OBS 사장 자리에 앉게 됐다. 주 사장 개인으로서는 3막이지만, OBS로서는 2막을 맞는 셈이다. OBS는 1997년 10월 개국한 이래 박찬호 경기 중계, 리얼TV 프로그램 등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방송 송출 범위가 경인지역으로 제한되면서 내리막길에 들어섰고, 결국 경영난으로 2004년 12월 문을 닫았다. 2006년 새 사업자 공모를 실시해 현재 11월 1일 개국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기다린다기보다 준비 중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준비의 첫걸음이 새 수장을 맞은 일.

“희망은 강요할 수 없습니다. 재료를 모아 우리가 만들어야 할 제품이지요. 그 재료는 웃음이 될 수도 있고 고난, 시련이 될 수도 있어요.”

주 사장은 한 번 좌절을 겪은 직원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사장의 역할이라 했다. 전 iTV 직원들로 구성된 OBS희망조합원 180여 명은 6월 옛 직장에 돌아왔다. 주 사장은 올 8월에는 신입사원도 뽑을 계획이다. 그는 직원들과 ‘소통’하기 위한 방법으로 MT를 계획, 아니 기획하고 있다.

“부서별로 날짜를 정해 MT를 가고 저는 부서마다 모두 참석하는 것입니다. 밤새 술도 마시면서 직원들의 속내를 들어볼 생각입니다.”

생각만 해도 체력이 달리는 ‘프로젝트’임에도 그의 얼굴은 웃고만 있었다.

커뮤니케이션에 능통하고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 천성 덕분인 듯했다.

“방송사 사장은 방송과 경영 두 가지 모두 잘 알아야 합니다. 저는 방송은 잘 알지만 경영은 서툴러요. 하지만 경영이란 게 뭡니까. 결국 이해관계 때문에 서로 부딪치는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설득하는 게 경영 아닙니까.”

주 사장은 자신의 경영 능력을 문제 삼는 시선이 서운하기는커녕 당연한 일이라 했다.

“인간미 넘치는 ‘주철환식’ 경영을 이제부터 보여줄 겁니다. 사실 ‘조금’ 자신도 있어요.”

그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매스컴에서 인기를 얻고, 제자들에게 존경 받는 것만으로 처음 가는 길에 저토록 밝게 웃을 수 있을까.

“리더는 겁을 주는 존재여서는 안 됩니다. 봉숭아학당 아시지요? 거기 나오는 선생님은 모두에게 발표할 기회를 주고 친구처럼 같이 놀아주잖아요. 무게 잡지 않고 회사 전체에 명랑쾌활 바이러스를 퍼뜨릴 거예요.”

봉숭아학당을 예로 드는 것을 보니 역시 예능 PD 출신이다.

“과거 경력 때문에 OBS의 이미지가 오락성으로 굳어질 수도 있겠다”는 질문에 “MBC에서 ‘우정의 무대’ ‘일요일 일요일밤에’를 연출할 때도 무조건 웃기려고만 하지는 않았다”며 “웃음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밝고, 경쾌하고, 도회적인 방송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기존의 스타를 활용하기보다 신예 스타를 배출하고, 현재 주어진 여건을 슬기롭게 이용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시청자들이 OBS의 O를 생각하면 영어 감탄사, Oh!(오우) 를 떠올릴 겁니다. 세상이 우리를 보고 놀라는 것이지요.”

주 사장의 현재 목표는 1등이 아닌 1등급 방송을 만드는 것이지만 MBC, KBS를 뛰어넘겠다는 욕심도 갖고 있다.

“케이블방송, 인터넷 동영상이 인기를 얻으면서 지상파 방송이 위기잖아요.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딱 맞아요. 브랜드 떼고 콘텐트로 승부하는 것이지요. 따라가는 아류는 되지 않을 겁니다. 강호동을 출연시켜도 무릎팍도사와 비슷한 프로그램은 절대 만들지 않아요.”

‘승부’라는 말에 MBC PD시절 선후배 사이였던 송창의 tvN 대표와의 관계가 궁금했다. 그는 “tvN과 공동 제작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 사장은 “먼저 방송사 사장을 맡은 형(송창의 대표)이 많은 조언을 해줬다”며 “형을 마음속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는데 즐거운 경쟁이 시작됐다”며 웃었다.

치열한 경쟁을 눈앞에 두고서도 설렌다는 주 사장은 “여유 부릴 때는 아니지만 안달할 때도 아니다” 며 “본격적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되면 아이디어 회의에도 참석하고, 섭외도 돕고, 밤에 맥주도 한잔 살 것”이라고 말했다.

“예전 인맥으로 유능한 PD들을 끌어오는 것 아니냐”고 묻자 주 사장은 드물게 심각한 표정을 하고 “그럴 생각 없다”고 대답했다. 무리한 조건으로 사람을 데려오기보다 OBS희망조합 식구들과 살림을 꾸리겠다는 뜻이다.

“OBS는 iTV가 겪은 고난으로 열린 열매입니다. 그들의 피와 땀이 없었다면 지금 OBS도 없겠지요. 제가 그 아픔을 위로하는 역할을 해야지요. 비싼 수업료를 냈으니 이제 공부를 잘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주철환 사장은…

1955년 태어나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다 우연히 PD 시험에 응시했다. ‘우정의 무대’ ‘일요일 일요일밤에’ 같은 프로그램을 연출하면서 ‘스타 PD’로 이름을 날렸고 2000년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가 되면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는다.

지난 5일 OBS경인방송 신임사장이 된 그는 20일 이화여대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학교 규정과 상관없이 ‘양다리를 걸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결정이다. 생각한 것을 말이나 글로 잘 표현해 지금까지 출간한 책만 10권이다.

그는 오후 6시면 퇴근한다. 직원들에게 늦게까지 일하게 하는 것이 미안해서다. 분위기를 자유롭게 해준다는 이유로 폭탄주를 즐기고, 폭력만 없다면 타인의 웬만한 술버릇은 다 이해한다.

주 사장은 스스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하면 도달하지 못할 결론이 없다는 낙관주의자이기도 하다. 박경림·김창렬 등의 결혼식에서 독특한 주례사를 읊기도 했던 그는 방송인 손석희씨와 처남 매부 사이다. 어릴 때는 대인기피증일 정도로 내성적이었던 그는 지금 몇 천 명 앞에서 강의를 해도 해맑은 ‘웃음’을 짓는다.

2007.07.25 14:30 입력 / 2007.07.25 14:33 수정
출처 : 희망의 새 방송을 준비하는 사람들
글쓴이 : 와이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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