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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르 드 몽블랑

뚜르 드 몽블랑 (TOUR DU MONT BLANC)14- 4일차(떼뜨 노르 드 푸르~샤퓌)

 

 떼뜨 노르 드 푸르에서 내려가기로 마음을 먹자, 나를 뺀 14명(대원 12명, 가이드 2명)의 대원들이 쏜살같이

내빼더니 벌써 사면 중턱 쯤을 내려간다. 야~빠르기도 하고...정말 체력들 좋다...나의 도우미를 자처했던

이재흥선배는 카메라 다리를 메고 제일 먼저 내려가고 있고...카메라 다리는 카메라 옆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한국팀의 능력을 인정한 샤모니가이드들의 배려는 좋은 경관을 구경한만큼 댓가를 지불하게 됐다. 끙~

 뱁새 황새 쫓아 가듯 가랑이가 땡길 정도로 따라갔더니 나도 아찔할 만큼 내려왔다.

 그때쯤 몽블랑의 정상도 환하게 개어 있었다.

샤모니쪽, 즉 북쪽에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르게 몽블랑도 남성적 자태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15명 중 나를 뺀 14명이 벌써 하산을 해버렸으니 나 혼자 사진을 찍을 수 밖에.

가능하면 셀카티를 내지 않으려고 앵글을 잡다보니 사진이 반푼이가 됐다.

그래도 동남쪽에서 몽블랑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남기질 않았는가. 

 급경사면을 내려와 다시 만년설을 타고 능선 하나를 올라선 다음 만나게 되는 미야 호수(Lac de Mya).

그리 크지는 않지만 빙하물이 만든 호수답게 아주 맑고 청아하다.

 능선에서 곧바로 샤퓌로 하산할 수 있었지만 가이드들은 최상의 점심식사 장소로 이 미야 호수(Lac de Mya)를 선사한 이다.

알프스의 정갈한 햇살과 야생화 흐드러진 초원에서 꿈같은 휴식을 한다.

 김종선사장님과 송덕엽선배도  명경같은 미야 호수를 보며 한시름을 풀어내고 있다. 

 차분한 파트리샤는 식사를 챙기고 있고, 열혈 베르나뎃뜨는 일단 벌렁 드러누웠다.

하긴 이 마당에 가장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다.

 멀리서 병풍이 된 그랑드 조라스(Grandes Jorrasses, 4208m 알프스 3대 북벽 중에 하나)를 배경으로

 미야호수는 한폭의 그림이 되었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작은 고개를 올라서자 본격적인 하산을 하게 된다.

 모레인지대를 지나자 어느새 마중나온 샤모니 가이드 룰루가 예의 커피와 차를 준비해서 올라와 있다.

정말 귀신 같은 여자다.

이번 임무는 드라이버가이드이기 때문에 속된 말로 그냥 룰루랄라해도 될터인데도 우리가 꼭 지쳐 쓰러질때 쯤이면 원더우먼처럼 나타나 차배달을 하니...그래서 사람들이 그리 "룰루~"를 애타게 찾는 것이리라.

나는 매번 낙오하는 덕에 보온병을 탁탁 떨어 꼭 반잔 정도만 차나 커피를 마실 수 있다.

그러나 그 반잔의 차나 커피가 생명수와 같음은 굳이 무슨 변이 필요하겠는가.

 정말 이름모를 야생화가 지천이다. 그래서 알프스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 아름다움에 취해 마치 그들이 내 피붙이인양 느껴져 발디딜때마다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이런 느낌은 비단 나만의 배려가 아닐 것이다.

 그들을 밟고 간다는 것이 미안하고 미안한 일이지만, 그들을 밟지 않고 걸음을 옮길 수 없으니 어쩌랴.

 이미 그런 고통에 익숙해진 샤모니 가이드는 내내 수다를 떨며 야생화 위를 천연덕스럽게 걸어가고 있다.

 우리의 목적지는 저 계곡 바닥인 샤퓌.

여기서부터 약 1시간 반 쯤은 족히 걸어야 도착할 거리다.

 나는 우리가 걷는 길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건너편에 난 길 모습을 보니 그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그재그 길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고 돌고 돌고...

급경사면이라 누군가에게 등떠밀려서 내려가듯 아래로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이 이정표에 도착한 것은 아마도 떼뜨 노르 드 푸르(Tete Nord des Fours, 2756m)고개를 출발한지

3시간 쯤 지나서 였을 것이다. 정말 길고 긴 하산 길이었다.

 몽블랑 목장(2523m)에서 승합차를 타고 도착한 샤퓌(Les Chapieux)의 숙소인

노바산장(Refuge de la Nova, 1554m)의 전경. 몽블랑산군의 어느 자락에 그림처럼 녹아든 아름다움만큼

무릎관절의 고통이 엄습한다. 정말 힘든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