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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a trekking

[스크랩] [해외트래킹] 네팔 안나푸르나

 
[해외트래킹] 네팔 안나푸르나
 
즐거움 뒤에 오는 이 씁쓸함은?
여자가 겪어야할 온갖 불편사항 예상 빗나가

2005년 12월, 우아한 해변가 산책을 기대하며 따라 나섰다가 너무나 황당하고 힘들었던 홍콩 산행(월간山 2006년 2월호 참조) 이후 2년여만에 두 번째로 하게 된 해외 산행!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책에서나 접할 수 있던, 내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어들이었는데, 현실이 되어 내가 그곳에 다녀왔다. 그것도 그다지 힘든 기억 없이 말이다. 물론 내가 밟은 가장 높은 곳은 3,210m밖에 안 되는 푼힐 전망대지만, 내가 가볼 수 있는 최고가 아닐까 싶다.


2008년 3월6일, 그토록 함께 가길 원하는 남편의 소원을 들어 주려 네팔 행 비행기에 올랐다. 사실 난 고산병이 무섭고, 식사와 화장실이 걱정되어 한 마디로 안 간다고 거절했었다. 물론 그건 기우였고, 무척 놀랍고도 행복한 경험으로 남아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 간드룽(1,900m)에서 본 안나푸르나 남봉. 마을 끝으로 트레커들의 캠프촌이 보인다.

그간 안나푸르나 산행기는 여러 곳에서 많이 봐왔던 바 어떤 감상을 여기 다시 풀어 놓는다 해도 인간인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다 비슷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래서 난 그간 만났고, 보았고, 느꼈던 것 중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채우고 있는 요소들을 나열해 보고자 한다.


설산, 계단, 똥, 랄리그라스(Laligrass), 포터·요리사·셰르파 등 스태프, 한국인 아줌마 아저씨들, 별, 스위트(초콜렛과 캔디) 달라고 애원하는 눈망울들, 에베레스트, 로지, 노점상 등등.



설산


그 어떤 말로도 안나푸르나의 설산들을 묘사할 수는 없으리라. 다울라기리의 핸섬한 외모와 안나푸르나 남봉의 도도함, 나에겐 붕어의 입 모양으로 보이는데 굳이 물고기 꼬리라 불리는 마차푸차레의 샤프함(그들에게 신성한 산으로 대접받고 있는 산이며 입산도 금지된 산이라 한다), 그 외도 다 외우지 못한 이름들을 가진 미안한 설산들. 감동의 이 산들을 그저 가까이서 바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동의 물결이다.


보다 가깝게 보기 위해 푼힐 전망대에 올랐다. 일출과 함께 어우러진 설산들을 보기 위해서 새벽에 올라갔다. 별들과 함께 어둠이 사라지고 감춰졌던 해의 빛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 그 가슴 벅참(이는 고소증 때문이 아님이 확실하다). 설산들이 인간을 위해 쇼를 한다, 쇼를. 서서히 햇빛을 받으면서 금빛 옷으로 갈아입고 신비감을 연출한다. 자연의 위대함과 함께 인간의 왜소함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한 번 더, 이젠 주홍빛 옷이다. 불이 나고 있다.  해가 본격적으로 떠올랐다는 얘기다.


▲ 1 달리그라스가 흐드러지게 핀 사면길(고라파니 직전). / 2 비레탄티 체크포스트. / 3 란드룽의 학교 시설 개선금을 모으려는 후원금 모금통.

설산들이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내가 와서 그런가(또 잘난 척). 구름도 감히 접근하지 못하는 위용이다. 우릴 대환영하고 하고 있는 것이다. 잘난 척 빼면 시체인 내가 기가 죽어 어깨도 펴지 못 한 채 설산을 뒤로하고 내려 와야만 했다. 그냥 두고 오기엔 정말 너무도 잘 생긴 설산들, 고백 한 번 못하고 돌아서야 했던 설산들이여….



계단


엄청 많다. 난 이걸 천국으로 향한 계단이라 부르고 싶다. 천국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힘들여 오를 필요가 없을 테니 말이다. 끝도 없이 계속되는 계단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다 했던가. 결국 끝나는 곳이 있었다. 한숨 쉬며 아득하게 오르고 또 올라 도착하니 천국처럼 쉴 수 있는 곳이 나오고야 만다(사실은 우리가 쉬던 곳들은 천국이 아니었다. 거의 지옥까진 아니더라도 그런 수준이다). 여하튼 종일 걸어 올라와서 발 뻗고 쉴 수 있는 곳은 우리의 천국이다.


▲ 온통 계곡과 사면을 뒤덮은 랄리그라스숲(고라파니 직전).

난 사실 그렇게 많은 계단은 첨 본다. 셀 수도 없다. 108계단도 많다고 오르지 않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난 계단을 엄청 싫어하는 초보 트레커다), 그것의 50배 아니 100배는 될 것 같은 계단들. 이 많은 계단을 만드느라 네팔의 가난한 국민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아니라고? 그들에겐 삶의 조그만 일부라고? 그리고 그들은 우리들이 천국에 들 수 있도록 그렇게 많은 계단을 만들어 주었으니 그들의 천국행은 예약이 되어 있다고 봐야겠지) 그렇게 계단만 오르고 천국에 들 수 있다면 얼마든지 더 오를 수 있는데, 나도.




남들이 보는 지면 위에 이런 깨끗하지 않은 단어를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똥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똥을 똥님이라 할 수도 없고 ‘변’이라 쓰는 건 그 느낌이 너무 약하다. 산에 오르는 동안 길이라고 나 있는 곳은(사실 길은 굉장히 잘 나 있다. 네팔인들의 주거환경 상 길은 아주 중요하다. 그들은 산에 사는 사람들이라 자급자족이 안 되는 모든 것들을 조달하기 위해선 그 높은 산을 그냥 속절없이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남녀노소 불문) 전부 똥으로 뒤덮여 있다고 과언이 아니다. 2년도 더 되었을 똥들과 2분 전에 저질러진 똥들까지.


▲ 트레킹 코스 내내 볼 수 있는 소의 똥. 이외에 야크나 말의 똥도 수없이 만난다.

물건을 실어 나르고 사람들을 태우고 다녀야 하는 당나귀들의 힘든 똥, 그리고 소들의 어마어마한 똥(세상에 그렇게 큰 똥은 상상도…), 팔자가 늘어진 개똥, 열심히 자라서 사람들에게 몸보신 시켜줘야 하는 염소 똥, 그리고 아마 애들 똥도 있겠지. 온통 똥 천지다. 그 똥들을 피해서 걷느라 내 다리와, 똥 밟지 않으려고 빠르게 회전시켜야 했던 내 머리는 남들보다 2배는 더 피곤했다. 난 끝까지 한번도 똥을 밟지 않는데 성공하느라 피곤했고 누가 밟는지 지켜보면서 걷느라 더 피곤했다. 똥 밟은 사람하고 안 놀려고. 냄새 날 거니까(실제로 모씨가 똥 밟아서 숙소에 향수 한 병을 다 들이부었다는 설도 있다). 아마도 앞으로 한 달 정도는 내 친구들이 이 똥 얘기를 듣느라 피곤할 걸.

 

랄리그라스


해발 2,000m부터 3,500m까지 주로 피는 꽃으로 네팔의 국화이며, 그 종류가 무려 75가지나 된다고 한다. 잎은 독성이 있어서 약으로도 쓰인다 한다. 색은 우리나라의 동백꽃과 같은 붉은 색이며(좀 더 화려), 큰 나무에 피는 꽃들이다. 규모도 크고 굉장히 아름답다. 정말 아름답다. 네팔에서 가장 화려한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주로 걷던 길이 2,000m에서 3,000m 사이의 고도여서 걷는 내내 랄리그라스와 우린 난리 브루스를 추었다고나 할까. 하산길이던 고라파니에서 데우랄리, 반탄디, 타토파니로 이르는 길은 거의 이 꽃으로 덮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 난리 브루스로 지천으로 피었다. 4월이 절정이라 하지만 우리가 갔던 때도 난리 브루스였다. 우린 이 꽃을 난리 브루스라 부르며 그 이름을 쉽게 기억할 수 있었다. 아마 이 다음에도 우리에게 이 꽃 이름은 랄리그라스가 아닌 난리 브루스로 기억될 듯싶다.



고마운 스태프들


우리 팀은 19명인데 스태프는 40명이다(셰르파 6명, 쿡 1명, 키친보이 5명, 포터 28명). 이들 덕분에 우린 무거운 짐을 들지 않아도 되었고, 낯선 이국 땅 산꼭대기에서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었고, 코를 막으며 이상한 향이 나는 음식을 먹느라 인내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내가 가지고 간 온갖 인스턴트 음식과 캔 음식을 무거운 애물단지로 만들어 버렸으니(혹시라도 다음에 안나푸르나 산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먹을 것을 가져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상기하세요. 심지어는 고추장도 필요 없다는 사실을) 이처럼 편한 여행은 없으리라. 그런데 몸은 편했지만 이것이 내 마음을 너무도 우울하게 만들었다.


▲ 1 울레리의 단 하나뿐인 교회. / 2 푼힐 전망대 입구. 약 40분 거리에 전망대가 있다. / 3 트레커들을 먹여 살리는 키친보이들.

밥을 먹고 나면 일사불란하게 그릇과 모든 재료와 장비들을 챙겨서, 심지어는 가스와 버너(등산용 사이즈가 아닌 생활용)까지 다 자신의 몸보다도 더 크고 자신의 몸무게보다도 더 무거워 보이는 바구니에 담아서 이마에 걸어서 메고 우리가 도착할 다음 목적지까지 한 달음으로 달려가 우리보다 먼저 도착하여 후에 도착할 우리들이 먹을 음식들을 준비한다. 아마도 쥐꼬리만할 인건비에도 그들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해줄 것이 있을까? 맛있게 먹어 주는 거? 우리가 먹어주지 않으면 그들은 직업을 잃게 되고 가족을 부양할 수 없단다.


그리고 포터들. 그들은 보통 1인당 30~40kg의 짐을 이마에 걸고 걷는다. 그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출발하기 전에 먼저 출발하여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우리가 묵을 로지의 각자 방에다 짐을 갖다 놓아 준다. 여자 포터도 있다. 그들도 무게의 예외는 없다. 그리고서 그들은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1시간 아르바이트 임금 정도 받는다고 한다. 그렇게 무거운 짐들을 매일 지어 나르니 다들 제대로 자라지 않을 수밖에. 키 큰, 아니 작지 않은 포터는 하나도 없다. 내가 네팔에 태어나지 않았다고 안도해 버리기엔 너무 슬픈 그들의 현실.



한국 아줌마 아저씨들


내가 오른 산이 히말라야인지 북한산인지 똥만 아니면 구별이 안 갈 정도로 한국인이 많다. 아니 등산객은 거의 한국인이다. 내가 간 날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긴 나 같은 산행 초보도 갔으니. 나도 홍콩 이후 친구들과, 남편의 권유가 아닌, 내 자의로 등산을 하고 싶어하는 수준까지 왔다. “등산은 몸에 좋다 카더라”족이 되어 우리나라에 불어온 등산 광풍에 휩싸이게 되었다는 말이다. 물론 청계산, 우면산 정도이지만 꾸준히 2년 정도의 산행으로 단련되었으니(?) ‘등산’이란 단어가 이젠 낯설지도, 싫지도 않다. 이젠 히말라야까지 갔으니 등산은 나의 생활이, 아니 운명이 될 것 같은 예감이, 훗훗.


사실 히말라야란 단어는 책에서나 나오는 단어이지 내 현실 속에 등장할 수 있는 단어는 아니었다. 더구나 나 같은 50대 아줌마에게는. 그러나 나도 대한민국의 아줌마! 그것도 유행에 민감한 아줌마! 못 할 것도 없고 무서울 것도 없는 아줌마란 말이다(사실 난 엄청 겁도 많고 못하는 것도 굉장히 많다. 밤에 화장실도 혼자 못 간다. 남편을 깨워서 함께 가느라 남편을 친구들 사이에서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 멤버들은 대부분 남편의 고교 동창생과 선배님들, 그리고 그 부인들로 짜여져 있었다).


▲ 푼힐전망대에서 펼쳐지는 설산들. 가운데 다울라기리가 우람하게 솟아있다.

여하튼 우리나라 사람들 유행엔 정말 민감하다. 가히 광풍 수준이다. 지금은 등산이 유행이다. 그것도 해외산행이, 히말라야가 유행이다. 북한산, 도봉산은 등산객으로 폭발 직전이다. 어쩔 수 없다. 우리나라 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앞으론 남에게 봉사하고 기부하는 문화 유행의 광풍이 좀 불었으면 하고 희망해본다.




밤마다 별이 쏟아진다. 보석이 쏟아진다. 운이 좋아 거의 날씨가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푼힐 전망대에선 거의 폭발 수준이다. 오른 곳 중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이니 그렇겠지. 북두칠성도 노력하지 않아도 금방 찾아진다. 카시오피아도 있고. 그 외엔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름(아! 창피). 은하수도 보인다. 얼마만에 보는 푸른 하늘 은하수인가.


사이즈도 크다. 저기 저 빛은 로지에 켜져 있는 불빛인가 보다 했다가 가이드의 웃음을 샀다. 그렇게 큰 것도 다 별이란다. 우릴 그저 동심으로 데려다 주는 저 별들이 영원히 빛날 수 있도록 이곳이 오염되지 말아야 할텐데….



눈망울이 까만 가난한 아이들


깨끗하고 깔끔한 아이는 하나도 없다. 그런 아이들은 이런 산꼭대기에서 살 이유가 없겠지. 길거리에 죽 늘어서서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스위트를 달라고 하면서 초콜릿보다 더 시커먼 손을 내민다. 달란다고 너무 주면 아이들 치아가 다 썩을 것 같아 줄 수도 안 줄 수도 없다.


저 까만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이 내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해 보지만 가슴은 답답하다. 갑자기 안나푸르나가 싫어진다.


 

에베레스트


맥주 이름이다. 대한민국 아저씨들 가는 곳마다 맥주를 마신다. 술이 아니라 음료수이기 때문이란다. 지역 경제에 도움을 주고 있단다. 그래도 낮엔 살짝 한 잔씩만 마시니 그건 애교다. 산행은 주로 이른 아침부터 낮까지 하고 오후부턴 휴식이다. 한국인 아저씨들 휴식에 할 수 있는 건 음주와 노래. 하지만 여긴 노래방이 없어 노래 가사를 기억해낼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노래는 시시해지고(여기서 노래방 사업을 하면 대박일거라는 의견도 나왔다. 일명 당나귀 노래방. 이곳에서 가장 빠른 운반책인 당나귀로 노래방 시스템을 신속 배달하고 방울소리 울리면서 노래방이 지나가고 있다는 광고도 하고) 오로지 마셔라 문화로 휴식하고 있다.


술이 고산병을 불러올 수 있다 하여 우리에게 가장 고산이었던 푼힐 전망대에 가기 전 날 저녁만 술 없이 차와 함께 수다를 떨었다(남자들도 정말 수다 강하다. 여자들 셋이 모이면 접시 3개지만 남자들도 50대 아저씨가 되면 접시 5개는 거뜬히 깨뜨릴 수준이다. 옆에서 듣고 있으니 코메디가 따로 없다. 친구들과 만나면 뿌리치지 못하고 끝까지 앉아서 수다를 경청하다 늦게 들어오는 남편이 이해되려고 한다. 너무 재밌다. 정말로).


그 외 나머지 밤들은 맥주와 함께 담소(?)를. 맥주는 애교다. 맥주와 럼주를 섞은 폭탄주다. 의식을 잃거나 토하는 사람도 없다. 그렇다고 적게 마신다는 얘기가 아니다. 정말 한국 아저씨들 술 강하다. 쌓이는 사회생활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오로지 음주밖에 없는 우리의 남편들 안됐기도 하다. 국가 차원에서 뭔가 방법을 모색해야 되는 건 아닌지.


▲ 1 난게탄티의 게스트하우스. / 2 민가의 부뚜막. / 3 민가 현관의 빗장.

여하튼 술이 들어가서 기분들은 즐겁다. 낮에 힘든 산행으로 이뤄낸 성취감에 더 즐겁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꼭 지켜야 했던 음주의 한계점은 있었다. 남편 친구 박상일(가명)씨가 ‘목화밭’이라는 노래를 부르기 전까지만 마시는 것이 우리들 무언의 약속이었다. 전날 목화밭으로 무슨 사단이 났는지 아무도 얘기를 안 한다. 몹시 궁금했지만 모두 침묵이었고, 그 약속이 너무 잘 지켜져서 끝내 그 노래를 들어 볼 수 없었다. 못내 아쉬웠다. 그 외에도 음주에 관해 쓸 말은 너무 많지만 남편이 자꾸 말린다.



로지


여인숙 수준에 비교하면 될라나. 가보지 않아 정확한 비교는 안 되지만. 로지! 정말 많다. 좋은 이름은 다 갖고 있다. Grand View Lodge, Mountain View, Lali Grans View, Green View, Fish Tail View 등등. 붙일 이름도 많고 로지도 정말 많다. 아무리 높은 곳이라 해도 가는 곳곳마다 로지들이 있어 화장실 걱정은 안 해도 되고 물 많이 안 가지고 다녀도 된다. 수시로 로지에서 조달되기 때문이다.


난 사실 우리나라에서 산행 중 화장실이 가장 불편사항이어서 이번 산행을 위해 초간편 1인용 텐트를 사서 가져갔다. 하지만 한번도 사용하지 못했다. 중간 중간에 로지가 없는 곳이 없었다. 괜히 포터 짐만 더 무겁게 했을 뿐이다.


그러나 로지! 숙박시설로는 최악이다(하지만 이것도 감사할 따름이다. 이렇게 높은 산중에서 비, 바람, 동물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어딘가). 얼기설기 짚으로 또는 엉성한 나무로 칸막이만 대충 해놓았으며, 일인용 나무침대는 좁아서 돌아눕다 떨어진다. 물론 난방도 제로. 물론 한여름에도 슬리핑백을 사용해야 한다. 각자가 가지고 와야 한다. 안 가져온 사람들은 로지에서 빌려 주기도 하는데, 글쎄 이거 몇 년동안 세탁 안 한 걸까?


그래도 춥진 않다. 기온이 그렇게 낮지 않은 데다 날진 물통에 끓는 물을 부어서 슬리핑백 안에 넣고 자면 아침까지 온기가 남아 있다. 그럼 그 물로 아침에 고양이 세수와 양치를 하면 된다. 물론 아침엔 로지에 온수가 없다. 저녁엔 온수가 나오긴 하지만 오로지 처음 샤워하는 사람을 위해서만 나올 뿐이다(이것도 좋은 로지 얘기지만). 할 수 없이 난 처음 샤워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욕심 좀 부렸었지. 얄미운 행동이었지만 안 씻고는 잠이 잘 안 온다. 안 그래도 방음 안 되는 옆방들에서 들려오는 코고는 소리(오케스트라 수준이다)에 잠 못 드는 밤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전기는 발전기 덕분에 희미하게나마 들어온다. 정전될 때가 더 많지만. 그래서 책은 못 본다. 그래서 휴식시간에 더 술을 먹게 된다고나 할까. 거기다 숙면을 위해서 더욱 더.



노점상


▲ 트레킹 코스 도중 만나는 마을마다 노점상들이 도열해 있다. 물건들은 대부분 티벳의 것들이다.

어떤 로지에든 그 옆엔 노점상들이 있다. 물론 작은 토속 기념품들을 팔고 있다. 처음엔 독특하고 싼 맛에 사기도 하지만 계속 똑같은 물건들을 보다 보니 나중엔 시들해진다. 하지만 이것도 자꾸 사줘야만 네팔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직도 안나푸르나를 채우고 있는 요소들은 더 있지만, 그다지 내겐 인상적이지 않았던 것들이라 이 정도만 나열해 보기로 하고, 그만 안나푸르나 산행기를 이걸로 대신하고자 한다. 우린 모든 산행을 끝내고 내려와서 그간 고생했던 멤버들과 우릴 도와주었던 스태프들과 그야말로 에베레스트 맥주로 기쁨을 함께 나누었으며, 우릴 육체적으로 전혀 힘들지 않게 도와준 그들과의 이별을 아쉬워해야 했다.


산행 증명서까지 받아든 내게 안나푸르나는 감격 그 자체였다. 내 생애 처음으로 맛보는 성취감이라고나 할까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그 즐거움 뒤에 오는 이 씁쓸함. 우리가 정녕 글로벌한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같은 인간이라는 종족이라 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드는 건 아마도 나만의 감상은 아니리라.


월간산/ 글·사진 이동숙 주부 등산인



 

출처 : silkroad
글쓴이 : ♧실크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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