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프스 융프라우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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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40주년 기념 독자 선물인 트레킹 대상지를 유럽 알프스로 택한 건 지극히 당연했다. <월간山>을 40년간 끌어온 건 알피니즘이란 말로 대변되는, 산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었기 때문이다.
19시간을 이동해 잠시 눈을 붙였지만 우리 일행은 인터라켄의 아침에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달력에서 본 사진 그대로의 풍경이 눈앞에 떡 하고 펼쳐져 있으니 말이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건 융프라우(Jungfrau·4,158m)였다. 만년설을 뒤집어쓴 4,000m가 넘는 산이지만 사람을 위압하지 않는다. 힘차지만 날카롭지 않고 높으나 품이 넓고, 산세가 안정적인 대칭을 이루며 화려한 치마를 펼친 것처럼 우아하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자태가 융프라우다.
- ▲ 맨리헨에서 본 융프라우와 묀히, 아이거. 7월이면 이 넓은 초원이 야생화로 가득 차 더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 ▲ 쉬니게 플라테에서 본 툰 호수. 한반도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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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켄 동역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벵엔(Wengen)에 도착, 케이블카를 타고 맨리헨(M··annlichen·2,230m)으로 가는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는 가파른 사면으로 올라갔고 10분 정도 이동하는 동안 별로 볼 건 없었다. 그러나 맨리헨에 닿자 눈과 가슴이 쩍 벌어졌다. 맨리헨 정상부의 산뜻한 잔디밭 뒤로 알프스 연봉들이 그림처럼 늘어서 있었다. 산을 빛내기 위해 사용된 특수효과처럼 구름은 순식간에 흘러왔다 간다.
- ▲ 융프라우로 가는 산악열차. 완공된지 100여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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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거(Eiger·3,970m), 묀히(Mo··nch·4,107m), 융프라우가 한눈에 든다. 토종 산꾼에겐 너무 호사스런 풍경이라 감당이 안 된다. 낮에 모내기하다 저녁에 특급호텔 연회에 온 것 같다고나 할까. 아름다움이 지나쳐 그저 다른 세상의 것들로 보였다. 이 환상적인 풍경을 거니는 행운을 차지한 정기구독자는 조상록(60)·김용재(56)·전대현(56)·이석주(52)·조선미(40)씨다. 다들 셔터 누르고 포즈 잡느라 바쁘지만 즐거운 표정이다.
- ▲ 2061m 높이에 위치한 클라이네샤이텍. 융프라우요흐로 가는 길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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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여기서 트레킹할 예정이었지만 날씨 탓에 등산로가 막혀 벵엔으로 내려가 클라이네 샤이데그(Kleine Scheidegg)로 가는 열차를 탔다. 점점 묀히와 아이거가 가까워졌다. 이미 그 산자락에 들어와 있지만 눈을 쓴 모습이 꽃이 핀 이곳과 너무도 달라 마치 다른 산 같다. 햇살에 빛나는 만년설이 산을 더욱 아름답게 했다. 막상 등반하면 험봉일 텐데 여기선 예쁘게만 보인다.
- ▲ 3629m의 묀히요흐산장에 선 트레킹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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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프라우 철도는 1896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1912년 완공했으며, 2012년이면 100주년이 된다. 유럽의 지붕이라는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3,454m)로 가는 길. 열차는 터널을 지난다. 융프라우요흐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철도역이다. 터널 속에도 아이거반트(Eigerwand), 아이스메르(Eismeer) 같은 역이 있다. 전망대 역할을 하는 간이역으로 유리창을 통해 산 사면 밖을 볼 수 있다.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산을 걸어 오르지 않고 열차를 타고 올라 날로 먹는다는 생각에 뭔가 찜찜했다. 땀 흘린 풍경이었다면 달랐을 텐데……. 그러나 짧은 일정을 감안하면 이렇듯 열차 타고 올라와 볼 수 있다는 건 산꾼에겐 축복이다.
- ▲ 벵엔에서 맨리헨으로 가는 케이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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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프라우요흐 높이 3,454m에 도착, 1시간 거리에 있는 묀히요흐산장(3,629m)으로 갔다. 비록 한 시간 거리지만 주위는 온통 설산이라 히말라야 전진캠프로 향하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길을 잃지 않도록 줄을 쳐 놓았다. 줄을 넘어 가면 크레바스가 어디 숨어 있을지 모른다고 한다. 살펴보니 멀지 않은 곳에 함정처럼 뻥 뚫린 구멍이 보였다. 관광객들이 대부분 역 주변에 머무는 덕분에 스노샤워의 미세한 소리까지 들으며 조용히 걸을 수 있었다. 스노샤워는 살아 있는 뱀처럼 바닥을 빠르게 기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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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산들, 한국으로 수입했으면…
머리가 약간 띵 하거나 맥박이 빨라질 때는 30초 정도만 가만히 서 있어도 금방 몸 상태가 좋아진다. 독자들은 녹록치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베테랑 산꾼답게 훌쩍 앞서갔다.
산장에서 따뜻한 커피와 스프, 빵으로 요기를 했다. 음식을 내어주는 주인장은 하얀 수염을 기른 노인으로 헤밍웨이를 닮았다. 왠지 인간적일 것 같다는 인상을 받으며 음식을 먹었다. 몸이 따뜻해지며 기분이 상쾌해졌다. 스위스인 노부부가 권하는 와인을 일행이 원샷으로 해치우자 부부는 무척 즐거워했다. 함께 익살스런 사진도 찍고 3,600m에서의 추억을 만들었다.
- ▲ 쉬니게 플라테의 알파인 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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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프라우요흐역에 되돌아와 스핑스전망대(3,571m)에 올랐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닿는다. 좋았던 날씨가 어느새 구름 속이다. 열차로 내려와 클라이네 샤이데그에서 밤을 보냈다.
열차로 그린델발트(Grindelwald)로 내려가 곤돌라를 타고 피리스트(Firist)로 갔다. 곤돌라 아래로 보기 좋은 잔디와 쭉쭉 뻗은 침엽수, 풀을 뜯는 소 떼와 트레커들이 보였다. 야생화가 핀 잔디밭, 아버지가 아이를 무등 태워 걸어가는 모습에 슬며시 미소가 고였다. 평화롭다.
- ▲ 트로티바이크를 타고 야생화 천국을 가르는 재미는 말로 설명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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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8m인 피리스트에 도착, 바흐알프제(Bachalpsee) 호수 트레킹에 나섰다. 초원이라 햇살이 따갑지만 조망은 기가 막히다. 쉬레크호른(Schreckhorn)과 아이거가 가깝게 솟아 산꾼의 발길을 유혹한다. 그러나 아이거 북벽의 위용은 힘에서 다른 알프스 미봉(美峯)들을 압도해 버린다. 저 검고 찬란한 북벽, 얼마나 많은 클라이머의 땀이 밴 벽인가.
- ▲ 아이거 북벽을 곁에 두고 피리스트에서 바흐알프제 호수로 향하는 트레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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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알프제 호수는 얼음과 잔설이 남아 아직 겨울 분위기다. 샘이 날 정도로 투명하고 맑아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분위기다. 원래 계획은 호수를 지나 능선을 종주해 쉬니게 플라테(Schynige Platte)로 갈 예정이었으나 역시 등산로가 통제되어 되돌아갔다. 계곡을 따라 내려서는 길, 초원에 꽃이 가지각색으로 피었다. 유럽 영화처럼 어디선가 숲속의 요정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이국적인 그림이다.
- ▲ 소시지와 감자볶음. 이곳 음식은 간이 짠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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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꽃밭을 트로티바이크(TrottiBike)를 타고 내달렸다. 트로티바이크는 안장 없이 서서 타는 자전거로 스릴과 경치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생소한 형태의 자전거에 조심스러워하던 독자들도 익숙해지자 신나게 내려갔다. 다이내믹한 재미와 정적인 즐거움이 섞여 다들 함박웃음을 지었다. 열차를 갈아타고 쉬니게 플라테에서 저녁을 맞았다.
아침부터 비가 왔다. 그래도 귀한 시간을 흘려보낼 수 없어 트레킹을 강행했다. 능선(알파인 가든)을 향해 올랐다. 가는 길에 화원을 조성해 일일이 꽃 이름을 적어 놓았다. 여름이면 500~600종의 꽃이 핀단다. 능선은 계룡산 자연성릉을 닮았다. 남쪽 아래에 인터라켄과 두 개의 호수가 환상이다. 어딜 둘러봐도 달력 사진이 된다. 구름이 밀려와 앞 사람의 뒷모습을 지웠다 말았다 한다. 뒤로는 능선의 검은 봉우리들이 있고 주위는 정원사가 꾸민 것처럼 아기자기한 꽃초원이다. 구름 때문에 산은 파스텔톤으로 부드럽다. 이 산을 한국에 수입하고 싶다.
열차를 타고 인터라켄으로 갔다. 열차를 타고 갈 때는 온통 달콤한 비경 천국이라 모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융프라우의 비경을 제대로 보려면 이렇듯 산악철도와 케이블카를 이용해야 한다. 융프라우 철도는 국내에 ‘동신항운’이라는 지사가 있다. 현지에서 소통 문제로 골머리 앓을 필요 없이 현지가 보다 할인된 가격에 편하게 이용 가능하다. 예약은 동신항운 홈페이지(www.jungfrau.co.krㆍ02-756-7560)에서 가능하며 융프라우 관련 정보가 가득해 여행 예정자라면 참고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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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프스의 비경을 만끽하는 독자들. 뒤로 베터호른이 우뚝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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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하더 쿨름(Harder Kulm)으로 갔다. 푸니쿨라(Funicula)라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레스토랑 앞 전망대에 서면 왜 이곳이 마지막 여행지인지 이해하게 된다. 융프라우를 비롯한 알프스 연봉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천혜의 전망대다. 한국에서 본 적 없는 설명하기 어려운 순수한 파란색 하늘과 하얀 능선, 초록 능선, 인터라켄과 두 개의 호수가 어찌 그리 잘 어울릴 수 있는지 신기하다. 달력 속 사진에서 빠져 나와 서울로 가는 길, 김치찌개가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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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소감
조상록(60·서울)
마사회에서 20년을 근무하고 지난해 퇴임했다. 산행에 빠진 건 3년 전부터이며 4050수도권산악회 회원으로 백두대간을 종주 한 바 있다. 현재 일주일에 2~3일은 산에 간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 여행하는데 이렇게 완벽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독자 참여산행 같은 것이 늘어났으면 합니다. 욕심 같아서는 <월간山>에서 항공료도 부담해서 화끈하게 지원해 줬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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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재(56·광주)
학교 교감 선생님으로 근무했으며 현재 녹차밭을 하고 있다. 30여 년 간 본지를 구독한 열혈 山 독자다.
“이번 여행은 <山>지를 30년 동안 정기구독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습니다. 산악문화 발전을 위해 광주전남 지역에서 <山>지 서포터즈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구독하며 <山>지를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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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현(56·부산)
백두대간을 완주한 부산의 산꾼이며 은행 지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퇴직 후에는 배워둔 이발 기술로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계획이 있다.
“좋았어요. 올해 말에 퇴직하는데 거기에 대한 선물이 됐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이곳 스위스는 지상의 천국이고 너무 아름다워요. 이런 행사를 매년 했으면 좋겠습니다. 스위스의 정기를 잔뜩 받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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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주(52·용인)
엠포르산악회 회원으로 오랫동안 등반을 한 바위꾼이다. 현재 (주)아펙스 이사로 근무하고 있다.
“아이거를 찾는 것은 산악인의 꿈이 아닙니까. 제 꿈을 이루게 해준 <山>지에 감사드립니다. 전문 산악가이드가 해 줘서 좋았고 상업적인 게 없어서 좋았습니다. 여행 내내 가슴 벅차고, 놀랍고, 행복했습니다. 트레킹이 짧았던 건 좀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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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미(40·파주)
유앤미산악회 부회장 겸 총무다. 남편이 회장이고 본인이 부회장인 회원 2명의 알콩달콩한 산악회다. 지난 5월호 감동산행기에 사연이 실린 바 있다.
“일본이나 중국 같은 데와는 스케일이 정말 다르고 진짜 좋아요. 알프스의 좋은 자연을 다른 분들께도 적극 추천합니다. 바람이 있다면 40주년 행사에 그치지 않고 매년 했으면 해요.”
월간산/ 글 신준범 기자
사진 이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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