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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와 나

[헬로! 티베트 11편] 촉(蜀)으로 가는 길

아직 사위는 캄캄하고 적막한 밤이지만,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서둘러 길을 떠난다. 징그럽던 위수(玉樹)도 멀어진다. 비가 오면 고원지대는 눈으로 변할 것이고 도로 또한 빙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걱정이 커져 간다.

위수에서 참도를 거쳐 라싸로 갈 수 있지만 쓰촨성(四川省)으로 우회하기로 한다. 비경이 숨겨진 촨짱꽁루(川藏公路-쓰촨성 청뚜(成都)에서 티베트 라싸까지 연결되는 국도)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무수한 대설산(大雪山)을 넘고 강을 가로 지르고, 수시로 흘러내리는 토사와 빙하, 그리고 늪지대를 통과해서 만든 도로라 험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곳. 그만큼 기이한 풍경은 티베트로 가는 길 중 으뜸이다. 동시에 험준한 산세만큼 깎아지른 절벽과 예측할 수 없는 산사태는 탐사 길이 결코 희희낙락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쓰촨성 가는 217번 국도

이처럼 티베트로의 탐사는 까마득한 협곡과 그 사이로 형성된 좁은 길을 따라 무수히 많은 고개들을 돌고 넘는 생사를 건 여정의 반복이다.

차와 소금을 말에 싣고 윈난성(云南省)과 쓰촨성(四川省)을 거쳐 티베트로 교역을 위해 다니던 길, 차마고도(茶馬古道). 그 길의 일부를 따라가다 보면 가끔은 식은땀이 흐를법한 낭떠러지 길을 피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세계에서 5번째로 위험한 도로라는 말이 허언은 아니다.

한 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오기 어렵다는 타클라마칸사막을 넘나드는 실크로드보다 더 오래된 교역로이며 총길이가 무려 6,400km 이상이다. 해발고도는 평균 3~4,000미터 이상이고 진샤강(金沙江)과 란창강(瀾滄江)과 어우러져 고산 협곡을 이루는 좁고도 험난한 길이다. 위험한 만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감동을 선사하는 것도 사실이다.

'촉도지난(蜀道之亂) 난어상청천(亂於上靑天) !'

그랬다. 이곳은 곧 당나라 대시인 이백(李白)이 노래한 촉도(蜀道)가 아니겠는가?
‘촉(蜀)으로 가는 길이, 푸른 하늘 가기보다 더 어렵다’고 노래한 길이 바로 촨짱꽁루(川藏公路)다. 촉도야말로 촉나라 쓰촨(四川)으로 가는 길. 학이 날아도 지날 수 없고, 원숭이조차 매달릴 것을 걱정한다고 노래했던 곳. 한 사람이 관문을 지키면 만 사람도 열지 못하는 모질고도 험난한 길, 촉도를 노래하면서 이백은 세상살이의 어려움과 박한 인심을 풍자했다.

청뚜(成都) 방향에서 올라오는 여행자라면, 촉도였던 리탕지역 동쪽 끝에서 촨짱남로(川藏南路)와 촨짱북로(川藏北路)의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리탕, 망캉을 지나는 남로보다는 따오푸(道孚), 깐쯔, 더꺼(德格)를 거쳐 참도(昌都)로 가는 북도(317번 국도:청뚜⇨깐쯔⇨참도⇨나취⇨라싸)로 가는 것이 여행자의 눈 호강에 좋다.

리탕(理塘, 티베트어로 '평편한 초원'을 뜻함)지역의 특징은, 해발 4,000미터 이상의 대초원 위에 자리한 고지대로 일조량이 풍부한 편이나, 연중 일교차가 심해 여름철에는 낮으로는 햇살이 뜨겁고 밤이 되면 기온이 뚝 떨어지는 전형적인 산악지대다. 이 지역을 여행할 경우는 하절기라도 보온할 수 있는 여분의 의류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지대에서의 활동은 저산소로 인해 쉽게 피곤해지고 특히 졸음증이 유별나다.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으로 몸은 피곤해지고 졸음은 바이러스처럼 밀려온다.

주로 해바라기 씨를 까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졸음을 쫓으며 대장정을 이어간다.

위수에서 217번 지방도로를 타고 쓰촨성의 북부 지역인 더꺼(德格)로 쏜살처럼 내려간다. (쳥뚜(成都)에서 라싸까지 이어진 촨장북로(317번 국도)로 연결된다) 해발 4천m 이상인 구릉지대가 마니깐꺼(馬尼干戈)까지 약 200㎞가 이어진다.

트럭 한 대가 부리나케 달려 우리 일행을 추월해서 간다. 학교길이 늦은 등교차량인 모양이다. 트럭 짐칸을 가득 채운 초등학생들이 우리 차량을 보더니 느닷없이 거수경례를 한다. 전조등과 비상등, 그리고 스티커로 화려하게 장식한 채 달리는 외지인들의 모습이 호기심을 넘어 조금은 부담스러웠을까? 파란색 트레이닝복 유니폼에 빨간색 머플러를 두른 꼬마들이 한참동안 우리 일행을 주시하고 있는 모습이 사이드 미러에 박혀있다.

하긴 우리는 달리고 달려야 목적지에 갈 수 있으니 정신없이 달려가지만 우리를 보는 티베트인들에게 외지인들의 차량대열을 보는 느낌은 제각각일 것이다. 기분 나쁠 수도 있고 위압적일 수도 있으며, 한편으로는 낯설음으로부터 오는 신기함일 수도 있다. 표현방법은 다르지만 대부분 수줍게 손을 흔들어 주거나 미소를 보내 주었다.

 

안바라산 고개
안바라산(安巴拉山)에서 본 풍경

 

해발 4700미터인 안바라산(安巴拉山)의 허리를 한참이나 돌아 고갯마루에 서니 ‘四川界’와 ‘靑海界’라는 글씨가 한 표지판에 쓰여 있다. 이곳이 쓰촨성과 칭하이성의 경계. 올라 온 만큼 내려 갈 생각을 하니 머리가 어찔하다.
티베트 속담에 ‘험준한 산을 넘지 않으면 광활한 평원에 이를 수 없다’고 했다.
광활한 평원에서 만나게 될 티베트의 속살을 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칭하성界에서 쓰촨성界로 넘어오자 티베트의 냄새가 물씬하다.
중국의 침략으로 식민지가 된지도 어느덧 70년. 원래 티베트 땅이었던 이 동부지역이
쓰촨성으로 편입이 된지도 꽤나 오래됐지만 여전히 티베트의 냄새가 자욱하다.
한참을 달린 끝에 닿은 곳은 써쉬(色須-쓰촨성 깐쯔(甘孜) 티베트족 자치주 시취(石渠)현에 속한 마을)라는 마을.

 

써쉬(色須)마을 전경
순찰을 도는 써쉬마을 주민

도로주변 공사가 한창인 마을 어귀를 들어서자 말끔하게 정리된 시내 한 복판이 반긴다.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식당이지만 미장원, 잡화점, 화장품가게, 은행, 전화국을 골고루 갖춘 동네다. 물론 송아지만한 개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헤진 장삼을 걸친 라마승, 옆구리에 칼을 차고 오토바이를 탄 티베트인이 눈길을 끌고, 쉴 새 없이 오가는 트럭과 경운기는 사뭇 활기를 띈다.

이곳 역시 티베트인들이 대부분으로 다른 마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처음 보는 우리에게도 눈이 마주치면 눈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어 준다. 남루하지만 순박한 티베트 사람들의 심성이 해맑다.

 

마실 나온 승려들과 쓰촨성 변경도시에 걸린 가수 '비' 포스터

고원지대에 덩그러니 이런 마을이 있다는 것에 갸우뚱하자 동행했던 칭하이성 안내인이 "소수민족은 아주 구차하게 살기 때문에 스스로 발전하기는 어려워 중앙정부에서 투자를 했다. 1985년 볼품없던 시골마을이 지금은 아스팔트도로가 나고 아파트도 지어주는 등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고 일러준다. 그 길을 통해 이 지역 농축산물이 900km나 떨어진 쓰촨성 성도 청뚜까지 간다.

예전보다 좋아진 도로는 이 지역에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 주고 있는 셈이다. 중국정부의 정책도 있지만 환경 변화와 도시화는 실제로 티베트인들의 실제 삶에도 적잖은 변화를 촉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써쉬(色須)만 해도 쓰촨성에서 이주해 온 한족들이 상권을 장악했지만 티베트인 역시 전통적인 유목생활을 포기하고 장사를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유목민에게 억지로 도시의 삶을 강요하는 것은 마치 발톱을 뽑은 야생 호랑이를 집에서 키우는 것과 다르지 않을 터.

거칠고 아름다운 땅에서 자유롭게 살던 이들이 울타리 속 같은 도시에서 또 다른 평화를 찾을지는 의문이다. 어찌됐든 아스팔트도로라는 문명의 이기는 예기치 않게 티베트인들의 변화를 견인하고 있다.

동티베트의 산골짜기 마을 스취의 한 문구점에 붙은 우리나라 가수 '비'의 빛바랜 사진이 그것을 웅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