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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와 나

[헬로! 티베트 10편] '神들의 땅' 위수

천장대를 나와 문성공주묘(文成公主廟)를 찾아 나섰다. 당나라 태종의 양녀였던 문성공주가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어, 토번(吐蕃, 지금의 티베트)의 왕 송첸감포(松贊干布, Songtsen Gampo)에게 시집가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송첸감포는 티베트에 최초의 강력한 통일왕조를 세우고 세력을 확장했던 인물.

때는 641년. 문성공주는 많은 혼수품과 수백 명의 시녀와 악사, 기술자들 그리고 불상을 들고 토번으로 향한다. 당시 당나라의 도읍이었던 장안(지금의 西安)을 출발, 시닝(西寧), 마둬(瑪多), 위수(玉樹)를 거쳐 라싸(拉薩)로 가던 길에 이 위수에서 2개월을 머물렀다. 그때 이곳 사람들을 긍휼이 여겨 농사기술과 방직, 자수기술 등을 가르쳐 가난을 면하게 해주었다. 유목민이었던 위수사람들이 정착해서 살 수 있는 법을 알려준 것이다. 문성공주묘는 그가 죽은 후 은혜를 잊지 않은 이곳 사람들이 공덕을 기려 세운 사원이다.

2004년도 중국 정부의 보조금으로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한 문성공주묘는 2010년 4월 칭하이성에서 일어났던 진도 7.1의 강진에도 불구하고 훼손되지 않았다.

 

문성공주묘

도로포장이 말끔한 대로변에 위치한 사원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타루초가 길과 주변을 꽉 매우기 시작하면 바로 그곳이다.

도대체 문성공주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들어가려니 젊은 라마승이 가로 막는다. 관람을 허락할 수 있는 노스님이 출타 중이라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러잖아도 문성공주상이 있는 법당 문을 자물통으로 채웠으니 달리 방도도 없었다. 저녁 무렵 선참급 승려들이 삼삼오오 사원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기회다 싶어 그 젊은 라마승과 몇 마디를 나누었다.

근조아랑이라는 이 젊은 라마승은, 집안에 한명씩은 라마승이 되어야 하는 관습 때문에 1년 전에 불교에 귀의했다고 한다. 올해 나이는 이제 16세. ‘사람이 죽으면 어떤 세상에 가게 되고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어서 귀의했다’고 또렷이 말하는 소년의 얼굴에서 그동안 보아왔던 길거리의 어린 라마승이나 티베트인과는 조금 다른 인상을 받았다. 적어도 오늘까지 그처럼 조리 있고 자신 있게 말하는 티베트 사람을 보지 못했으니까. 그런 소년 라마승도 문성공주와 관련해서는 우리가 자료를 통해서 알고 있는 내용과 별반 차이가 없는 도식적인 답변만 한다. 더구나 인터뷰 내내 밖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우리와 동행했던 칭하이성 관리들이 신경이 쓰였나보다. 짐짓 장난기가 발동했다.

"티베트인들이 왜 (한족인) 문성공주를 사랑하느냐?" 했더니 조금은 당황한 듯 "환경도 맞지 않는 이국땅에서 다른 민족인 티베트 사람에게 헌신했기 때문"이라고 얼버무린다.

중국이 해방이라고 말하는 70년 세월 동안 보이지 않게 통제하고 그 통제에 압박당하며 살아 온 티베트 사람들의 일그러진 삶의 비애를 느끼는 순간이다. 실제로 우리 일행이 문성공주묘의 부감을 찍기 위해 맞은 편 언덕에 올라갔을 때 사원 구석에서 두 손을 뒤로하고 고개를 숙인 채 중국 관리 앞에 서있는 소년 라마승의 모습을 목격했다. 아주 심각하고 험악한 취조를 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에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그 곳을 떠나서도 한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가을이 깊어 노랗게 물든 황금빛 초원을 지나 이름도 알 수 없는 산 구비를 어지러울 정도로 뱅뱅 돌아가고 있었다. 워낙 외진 곳이라 인적이라곤 없는 곳. 딱히 가는 사람도 없는 그런 곳을 가고 있다. 위수에서 동쪽으로 214번 국도를 타고 퉁티엔하(通天河) 방향으로 간다. 싼장위엔자연보호구(三江源自然保护区)로 갈라지는 길에서 남쪽으로 강을 건너 칸궈(坎果)방향의 임도로 길을 잡는다. 약 5킬로미터 쯤 퉁티엔하를 왼쪽으로 두고 가다가 우와(五洼) 쯤에서 오른쪽 계곡 산길로 접어들면, 이내 ‘르바궈(勒巴溝)’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산 넘고 물 건너서 어렵게 찾은 계곡에는 현지인들만 겨우 아는 성지가 있다. 다양한 형태의 마니석(嘛呢石)으로 유명한 마니석(勒巴沟岩画)계곡이다.

 

 

마니석계곡(勒巴沟岩画)의 마니석

이 계곡의 전망은 놀랍다. 거친 봉우리와 가파른 계곡사이로 티베트인 정착지가 경사지를 따라 비스듬히 마을을 이루고 있다. 건너편에는 다채롭게 꾸며진 텐트 몇 개가 있는 캠프장도 있다. 여름철에만 운영된다.

르바궈 계곡입구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고 계곡으로 들어서자 이내 형형색색으로 채색 된 수천 개의 바위들이 마중을 한다. 깎아지른 절벽의 바위벽면과 하천을 시작으로 약 3㎞에 이르는 협곡에 수많은 경전과 티베트의 육자진언인 ‘옴마니반메홈(六字大明王眞言)’을 새긴 석각(石刻)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 규모나 수량에도 놀라지만 크고 작은 돌 하나하나에 글씨를 양각한 정성과 신앙심을 생각하면 혀를 내두를 수밖에. 도대체 누가 이러한 불심을 새겨 넣었는지 그저 경이롭기만 하다. 한적하고 척박한 골짜기에서 정말로 신성한 기운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