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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와 나

[헬로! 티베트 16편] '용왕이 사는 골짜기' 루랑(魯郞)

'티베트의 스위스'라 불리는 강샹자연보호구(岗乡自然保护区)의 마지막 마을 뽀미(波密, 또는 Pome)를 지나자 도로는 한층 위험해진다.

잦은 비와 안개로 전방의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절벽 위의 도로에서는 늘 긴장감이 돈다. 교행차량이 있을 때는 암벽등반이라도 하듯 절벽 쪽에 최대한 차를 붙이느라 여간 애를 먹는 것이 아니다.  

특히 318번 국도 구간 중 통마이(通麥)일대는 빙하지대가 많아서 크고 작은 산사태는 흔히 발생한다. 우기인 여름철에는 갑작스런 폭우로 인해 도로가 토사에 묻히거나 유실되는 것이 다반사다. 가끔은 다리가 훼손되어 발이 묶이기도 한다. 정말 전쟁터 같은 지역이 아닐 수 없다. 그럴수록 도로 옆으로 펼쳐진 풍경은 더욱 신비스럽다.

생사를 다투는 길에서 신비스런 풍경과 함께 노닐다보면, 이꽁장뿌(易貢藏布)와 파롱장뿌(帊隆藏布)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인 통마이대교(通麦大桥)에 도착한다.

舊통마이대교
2015년 11월에 개통된 新통마이대교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그 와중에 다리를 건너기 위해 기다리는 차량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다. 감독관이 군사보호지역이니 일절 촬영을 금지하라는 주의를 잊지 않는다. 라싸로 가는 유일한 통로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 그래서 다리 양쪽으로 무장경찰들이 통행자와 차량을 일일이 검색한다. 이 길은 라싸로 가는 길이면서, 칭하이(靑海)성과 쓰촨(四川)성, 윈난(雲南)성을 잇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에 검문하기에 맞춤한 곳이다. 한쪽은 중국 군인이 또 다른 쪽은 티베트출신 무장경찰이 각각 경비를 서는 것이 이채롭다.

다리 건너편 파이롱 방향 도로에 낙석이 쏟아져 군인들이 치우고 있다. 작업 중인 군인과 장비가 건너와야 통행이 가능하다. 해발 3000m가 넘는 고지대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오는 바람이 푄현상을 일으켜 내리는 비 때문에 도로유실이 잦다고 한다. 오도 가도 못하는 외길에서 쫄쫄 굶으면서 기다리기를 한 시간여. 군인들의 수신호를 따라 차 한 대 정도가 겨우 지날 수 있는 나무다리를 살금살금 건넌다.

다리 상판 틈새로 노도와 같은 흙탕물이 거세게 흐르고 있어 긴장을 느낀다.

다리를 건너서 우측으로 가면 이꽁(易貢, 티베트어로 '아름답다'는 뜻)호수로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 가면 먼빠족(门巴族)이 사는 파이롱(排龍)마을로 가는 길.

건너자마자 좌측으로 길을 잡는다. 오른쪽은 깎아지른 절벽이요 왼편은 낭떠러지. 비탈진 좁은 도로는 자칫하면 황천행이다.

물과 길은 자연스레 산을 감고 돌아간다. 우리도 그들처럼 자연이 만든 리듬을 타고 달려간다.

파롱장뿌(帊隆藏布)강과 318번 도로

뽀미에서 린즈(林芝), 빠이(八一)까지 이어지는 318번 국도는 계곡에 매달린 도로를 달리는 위험천만한 모험의 연속이다.

티베트 고원에 이런 위험하고 매력적인 풍경이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촨짱꽁루 상의 이 위험한 구간을 약 16킬로미터 쯤 지나 파이롱(排龍)마을을 빠져나오면 루랑(魯郞)이다.

해발 3700m에 위치한 루랑은 동티베트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마을중 하나다.

가문비나무와 소나무가 무성한 원시림지역으로 운무와 설산, 빙하를 배경으로 자리한 루랑린하이(魯郞林海)는 이름처럼 침엽수들이 모여 만든 ‘숲의 바다’로 천여 명의 티베트사람들이 살고 있다.

티베트어 의미는 용왕곡(龍王谷) 즉 '용왕이 사는 골짜기', '집 생각을 잃게 만드는 곳'이라는 뜻이 있다는데, 용왕곡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연유를 유추하기 힘들다. 그만큼 아름답고 신비롭다는 뜻이 아닐까?

마을 앞으로 흐르는 시냇물, 들꽃이 만발한 초원과 통나무집들이 어울려 유유자적하다.

봄과 가을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나고 한 겨울에는 거대한 빙하와 가문비나무, 소나무 군락이 빽빽한 수림에는 수많은 전설이 숨겨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루랑풍경대에서 본 루랑마을

통마이에서 파이롱까지의 아슬아슬한 구간을 통과한 대부분의 운전기사들이 이 루랑마을(魯郞鎭)에서 식사를 한다. 사람들의 삶은 얄룽장뿌강과 지류가 만든 기름진 토지를 가진 마을답게 비교적 여유롭다. 비가 잦고 바람이 많아 대부분 지붕이 A자 모양인 것이 그럴싸하다. 초원과 삼림이 잘 어우러져서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준다. 휴게소 역할을 하는 마을답게 도로변에 음식점이 많다. 주로 쓰촨요리를 하는 식당들이다.

루랑에는 한번쯤 먹어 볼만한 요리가 있다. 이름처럼 돌솥에 푹 곤 닭고기 요리인 쉬궈지(石锅鸡, 석과계)다. 이곳 주민들이 영계에 인삼과 천마, 동충하초 등 약재를 넣고 푹 고아 먹던 음식으로 우리로 치면 삼계탕이다. 루랑에서 27년을 살았던 충칭(重庆)출신의 허다이윈(何代云)이 1999년 상품화했다. 루랑 사람들이 즐겨 먹던 요리를 충칭에서 개업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단다. 당연히 원조 격인 루랑마을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닭고기를 먼저 먹고 국물에 채소와 버섯 등을 넣어 샤브샤브처럼 먹은 후에 면을 넣어서 먹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입맛이 맞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이는 비싸다하고 어떤 이는 냄새가 심하다하고. 입 짧은 여행객들은 한번 쯤 생각하고 시도할 일이다.

루랑(魯郞)마을을 빠져나오면 곧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써지라산 정상부위를 관통하는 세킴라고개(Sekhym la)로 오르기 시작한다.

2004년 9월에 완공되었다는 아스팔트 도로는 ‘이 구간을 밤중에 넘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는 안내서의 문구가 무색하게 한결 편안하다.

정상 부위에 룽다와 타루초가 있는 제단을 지날 때였다. 반대편 차선을 지나는 자동차에서 종잇조각을 연신 차창 밖으로 날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룽다(風馬)라는 오색종이를 뿌리는 것으로 신을 경배하고 액운을 없애려는 종교행위의 하나라고 한다. 티베트사람들의 신심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달려 온 촨짱꽁루(川藏公路)에서 문득 드는 생각.

평탄한 길도 있고, 고개도 있고, 끝없는 협곡도 만나게 된다.

그러다가 천애(天涯)같은 황량한 곳을 지나다가도 어느새 울창한 산림지대를 지나기도 한다. 길이 험하지만 이런 천변만화를 어디서 볼 수 있겠는가?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채우려 길을 나선 여행자에게는 더 없이 행복한 시련 아니겠는가!

어느덧 촨짱꽁루(川藏公路의 南路)서쪽의 마지막 고개 세킴라를 넘어선다. 운해(雲海)는 새신랑을 맞는 신부의 드레스처럼 다소곳이 산중턱을 감싸고, 끝없이 이어지는 삼림바다(林海)는 카펫처럼 폭신하다. 산들은 첩첩이 그리메를 만들며 신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써지라산(色季拉山)이 특히 유명한 것은 봄이면 온 산을 물들이는 철쭉과 진달래(杜絹花, 두견화)군락이다. 써지라산(色季拉山) 일대에 광활하게 분포되어 있고,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6월이 절정인데, 흰색, 노란색, 붉은색, 분홍색 등 갖가지 색으로 물들어 마치 불이 타오르듯 하는 맹렬한 기세가 장관이라고 한다. 제때 지나지 못하는 여행객들에게는 한이 된다. 티베트는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써지라산의 홍철쭉과 백철쭉

운무 사이 산 밑으로 린즈(林芝)가 보인다. 멀리 산 능선이 아스라이 춤을 추며 여행자를 반기고 있다. 우리는 그 모습을 한눈에 담고 긴 내리막을 쏜살같이 달려서 동부티베트의 관문 린즈시(林芝市)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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