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여 년 전만 해도 호수였던 이 곳을 메워 인민광장을 만들었다. 펄럭이는 오성홍기와 함께 오늘날 티베트의 현실을 웅변하고 있다.
|
|
|
|
포탈라 궁.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성이자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성(城)은 라싸 어디에서도 그 장대함을 느낄 수 있다. 역대 달라이 라마가 거주하기도 했고 14대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정치적 망명을 떠나기 전까지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사원으로 알기 쉽지만 분명히 왕궁이라 할 수 있다.
라싸에는 티베트
사람보다 더 많은 인민해방군이 주둔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와 같은 대규모 소요사태는 감히 엄두를 못낼 지경이 된 것이다. 더구나 50여 년간
식민지시대를 겪고 있는 티베트 사람들은 지친 것인지 아니면 잊어 버린 것인지 자주독립의 의지를 상실한 듯 보인다. 달라이 라마가 있는 인도
북부의 다람살라는 몰라도 적어도 티베트에서 그런 상서로운 기운을 느끼기 어려웠다.
정작 티베트 본토에서 내부의 동력을 모으고 저항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줄 리더가 부재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라고 한다. 그사이 중국 정부는 사방팔방으로 포장도로 공사를 하고 최근에는 불가능하다는
칭하이성과 라싸를 잇는 고원철도공사도 마무리 짓고 시험 운행을 하는 등 착실히 티베트를 통치하기 위한 기간사업들을 꾸준히 해왔다. 그 결과
티베트에 있는 부존자원은 어마어마하게 동부로 갈취하고 있고, 유사시에는 언제든지 인민해방군이 입성해서 진압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 놓은
것이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중국의 통치술이 날로 정교해지고 지능적이라는 점일 것이다.
티베트의 통치를 중국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티베트 사람들을 교육하고 양성해서 이용한다는 점이다. 개방이 안 될 것 같았던 군대도 1990년대 초부터 문호를 개방하여, 인민해방군에 친중국계
티베트인 장교 양성을 대폭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최근 티베트군구 소속 인민해방군 장교의 3분의 2가 소위 붉은 티베탄(친중국계
티베트인)들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티베트 사람을 효율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것은 같은 동포 출신이라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티베트 어느
곳에서도 독립저항의 움직임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티베트 내부에는 리더가 부재하고, 중국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강력한 통치기반을 구축하고, 이미 많은 티베트 사람들은 그사이 변절하여 붉은 티베탄이라는 친중국계 세력이 되어 중국의 주구가 되어 버렸다.
그들에게 독립이라는 것은 이미 쟁취한 기득권을 포기해야함을 뜻한다. 점점 독립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이 되고 있는 셈이다.
우린 중국
감독관의 눈을 피해 티베트대학을 찾아 보기로 했다. 라싸의 대학생들은 아무 생각없고,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대학에 다닌다는 비판이 있었기
때문에 확인하고 싶었다. 라싸시 서쪽에 위치한 티베트대학은 정문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우리에게는 오히려 기회였다. 혼란스러움을 틈타 옆문을 통해
캠퍼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가능하면 빠른 시간내에 원하는 바를 확인하고 나가려고 몇 번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모두가 손사래를 치며 사양을 한다.
마침내 한적한 캠퍼스 뒤쪽에서 점심식사 하러 가는 남녀학생 4명과 인터뷰할 수 있었다. 아무리 요리조리 돌려서 얘기를 이끌어내려 해도 약속이나
한 듯이 주로 졸업 후 취업문제가 가장 관심사라는 얘기 밖에 안한다.
건축을 전공한다는 남학생은 라싸에서 태어나 한번도 라싸를 떠나
본적이 없을 뿐 아니라 외지에 나가봐야 경쟁력이 떨어질 것 같아 라싸에서 건축 관련 일을 하고자 했을 뿐 나머지는 대부분 관광 가이드를 하고
싶어 했다. 대기업이나 외국계 회사를 가야 중산층의 삶이 가능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이다. 관광 가이드가 상대적으로 고소득에 비교적 대기업
취직보다 용이하다고 한다. 더구나 여러 곳을 구경하고 다른 문화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선호한다고 했다. 여학생들은 “요즘 가장 관심있는 것은
패션”이라며 최근에는 화장을 하는 여학생들도 많이 늘었다고 한다.
한참 한국의 가수와 드라마를 얘기하던 중 갑자기 우리 앞을 지나던
승합차에서 몸을 반쯤 내놓은 중년의 남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우리들 앞에 와서 손을 내민다. 허가증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순간 아연실색한
것은 학생들이었다. 마치 고양이 앞에 쥐 모양 한껏 움추린 그들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우리도 문제였지만 잘못하면 티베트 출신 학생들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든다. 학교 교직원인 듯한 그 중년의 남자가 공안을 부르겠다고 전화를 찾는 사이 우리는 부리나케 줄행랑을
놓았다. 덩달아 티베트 대학생들도 힐끔힐끔 뒤를 보면서 같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정작 그들이 티베트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하나도 물어
보지 못한 체 였다. 그렇게 그들과 헤어진 후 우리 일행은 티베트 대학이 보이는 2층 식당에 자리 잡고 동정을 살피면서 한 숨을 쉬었다.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불행히도 공안에 끌려가면 탐험대 일정 전체에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한동안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요즘의 티베트의 정치 사회 분위기라는 것인가? 뭐라 표현할 수 없지만 가슴이 벌렁대고 잘못하면 큰 일 날 뻔했구나 하는 불안감이
한동안 내 가슴을 짖눌렀다.
파괴된 사원을 복구함으로써 종교적 자유를 인정하는 것처럼 선전을 하고 인상적인 구호를 사용하여 티베트 사람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하는 것이 단지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해본다. 종교의 자유는 주었지만 정작 승려들에게 사원을
관리하는 청지기 역할이나 하는 관리인으로 만들었듯이 중국의 경제자유화정책도 종교집회의 자유도 티베트 사람들이 자유롭게 말하는 자유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동안 정치 활동을 하거나 중국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체포되거나 구금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의 철권통치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를 향한 불길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티베트의 시위자들은 결속하였고, 중국정부의 탄압에 강하게 맞서 왔던 것이 역사였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의 부재가 길어지면서 점점 상황이 나빠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정부는 티베트 독립이라는 예민한 문제를 강력한 정치 군사적인
억압으로 통제하고 관리해 오면서 축적된 노하우가 보다 정교하고 지능적으로 대처하는 반면, 정작 독립을 외쳐야 할 티베트 사람들은 1993년 이후
10여 년 간을 이렇다할 움직임이 없이 침묵하고 있다. 언감생심 티베트에서의 정치적 자유는 아직 요원하고, 내부에 리더가 없는 상황에서 티베트의
독립은 공허한 메아리는 아닐런지.
오늘도 주인 잃은 신비의 성,포탈라 궁은 석양의 검붉은 노을에 젖어 고즈녁하게 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