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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와 나

중국 서부 극지를 가다-14 갼체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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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출고시간 :2006-01-31 오후 8:44:31
URL : http://www.itimes.co.kr/News/Default.aspx?id=view&classCode=407&seq=239696
도시 한복판에 우뚝 솟은 宗山
중국 서부 극지를 가다 - 14.갼체종
도시 한복판에 우뚝 솟은 쭝산(宗山)의 ‘갼체종’이다. 갼체의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한 이 성은 14세기에 축조된 요새로 티베트에서는 흔치않은 비종교적 유적지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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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드록쵸를 휘돌아 작은 언덕을 넘어서면 바로 오른쪽에 깎아지른 듯한 흰 산벽이 시야를 가린다. 바로 카로라 빙하다. 늦가을 햇살에 녹은 빙하는 여기저기 폭포를 이루고 흰 눈을 뒤집어 쓴 산마루는 뭉게구름과 엉크러져 어디가 정상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타르쵸가 펄럭이는 길 옆에는 울긋불긋하게 치장한 야크가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 탐험대가 열심히 기념사진을 찍자 동네 아줌마들이 갑자기 끌고 가던 새끼 양을 한 마리씩 들어 안는다. 사진을 찍고 돈을 요구하는 줄 알았는데 이방인들을 위한 순수한 호의와 함께 어린양들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끌어 안은 것이었다.
 700번 국도도 랑카 마을을 지나자 비포장 도로로 바뀐다. 티베트의 제 3의 도시 갼체(江孜)까지 또 다시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야 한다. 그러나 세계의 지붕이라는 티베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아니던가. 좌측으로는 커다란 산맥이 따라오고 우측으로는 어지러울 정도로 까마득한 계곡이 바짝 붙어 있다. 바로 절경을 자랑하는 냥추계곡이다. 폴폴폴 먼지를 날리며 냥추계곡 내리막 길을 달려내려가자 멀리 갼체가 눈에 든다.
 토번왕조(吐蕃王朝)가 망하자 티베트는 분열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갼체지역의 군주였던 팍파 팔 상포(白闊贊普)가 갼체에 궁을 짓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샤카파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 영지의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현재까지 남아 있는 대표적 건축물인 펠코르 최데사원이나 쿰붐 스투파도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냥추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 갼체는 중국의 침략이 있기 전까지는 티베트의 제 3의 도시로 육백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도시였다.
 시가체가 발전하기 전에는 티베트의 정치,경제,교통의 중심이자 가장 번영했던 지역으로 라싸와 야뚱,시가체 지역교통의 중심이었다. 역사적으로 갼체는 중국의 영향이 가장 적은 도시 중 하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가볼 만한 도시라고 알려져 있다. 작은 마을 같지만 여전히 남부 티베트의 중심지 중 하나다. 갼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은 도시 한복판에 우뚝 솟은 쭝산(宗山)의 ‘갼체종’이다. 갼체의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한 이 성은 14세기에 축조된 요새로 티베트에서는 흔치않은 비종교적 유적지의 하나다. 원래는 얄룽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팔코르찬’의 궁이었는데 나중에 이 지방의 군주였던 ‘팍파 팔 상포’가 요새로 개조하여 갼체종이 되었다.
 이 요새는 네팔의 쿠르카왕국과 라닥왕국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고 한다. 하긴 깎아지른 언덕에 왕관처럼 자리한 성은 보기에도 위압적이고 빈틈이 없어 보인다. 해가 뉘엿뉘엿할 때쯤이라 관람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탐험대 차량이 곧바로 성으로 올라간다. 1997년에 만들었다는 기념광장을 지나자 얕지만 유유히 흐르는 녠추하(年楚河) 물줄기, 그 위에 드리워진 소박한 다리가 멀리 갼체종의 웅장함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광장을 가로지르자 이내 난민촌 같은 마을이 나타나는데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골목길로 진입하게 된다.
 꼬불꼬불 골목길을 곡예하듯 지나 갼체종으로 향한다. 가파른 경사길을 가쁘게 오르는 사이 멀리 갼체의 전경이 지는 태양에 반짝인다. 추수가 끝난 누런 들판과 한껏 단풍이 든 백양나무에 뒤덮힌 마을은 평화롭기만 하다. 입구에 도착하니 인부 십 수명이 일을 하고 있다. 갼체종은 밖에서 볼 때는 흠잡을 때가 없이 훌륭한 요새지만 안에서 보면 허술하기 그지 없다. 깨지고 부서지고... 1904년 영국군과의 격전, 그리고 문화혁명기 홍위병에 의해 파괴된 후유증이 곳곳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복원공사 중이라고 하지만 사람 몇이서 조그마한 집수리하듯 하는 복원공사라면 꽤 오랬동안 현재와 같은 초라한 모습을 유지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가파른 계단을 통해 꼭대기에 오른다. 여기저기 역사의 흔적을 보여주듯 상흔이 아직도 아물지 않은 채 그 허물을 드러내고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곳은 대 영국군과의 항전을 기념하는 기념비 앞. 어느새 1904년 그 치열했던 전쟁 속으로 빠져든다. 1903년 겨울, 러시아의 남진을 우려한 영국군이 갼체를 침공하자 이 지역의 군인과 민간인들이 이에 맞서 강력한 저항을 한다. 이로 인해 영국군은 막대한 사상자를 내고 후퇴하였다. 그러나 1904년, 허즈번드 대령이 이끄는 영국군이 다시 갼체를 침공한다. 이번에는 티베트의 일방적인 참패로 끝난다. 영국군의 근대식 무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럼에도 티베트 군인과 민간인들은 쭝산에서 흙으로 무기를 만들어 싸우는 등 두 달이 넘게 결사항전을 한다. 결국 패배하게 되자 모두 절벽으로 뛰어내려 순국했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갼체종을 ‘영웅성’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영국군에 굴복을 하느니 차라리 목숨을 버리겠다는 각오로 티베트 사람들이 뛰어내렸다는 절벽을 보니 50여 미터가 넘는 직벽으로 섬뜩함과 함께 비감함을 느끼게 된다. 갼체종은 현재 중국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티베트 자치구에서도 애국주의 교육장으로 보존하고 있어 추모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갼체종은 현재와 과거를 있는 관문이다. 폐허의 황량함 속에서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누구보다 용감했던 티베트 사람들의 지조와 용맹함이 오늘날 티베트의 현재와 미래를 추측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산 정상에서 사방을 내려다보면 동쪽으로는 갼체고읍이, 북쪽으로는 펠코르 최데(白居寺)가, 남쪽으로는 넨추하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다. 펠코르 최데는 갼체성 서쪽 뒤 코앞에 위치해 있다.   사원을 중심으로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탑과 건축물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티베트 불교사원이다. 그 중 펠코르 최데는 건축양식이 독특하고 조형물과 회화의 예술성이 뛰어나 수많은 예술가와 여행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탑이다. 크고 작은 불상을 10만존이나 모셔 놓았기 때문에 ‘십만불탑’이라고도 한다. 1436년에 지어져 10년만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탑이 바로 사찰이며 티베트의 탑 중 최고로 알려져 있다. 탑은 총 9층인데 4층까지는 4면8각형이며, 5층부터 탑 꼬대기까지는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층층이 모두 108개의 전당이 있으며, 전당내에는 벽화와 불상이 있는데 모두 중국, 네팔, 인도의 특색이 융합되어 펠코르 최데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그러한 예술적 품격이 잘 보존되어 티베트 예술의 기념비적인 지위를 얻은 것이리라. 이처럼 갼체는 가장 티베트적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어쩌면 가장 비운의 도시였는지도 모른다. 네팔이 수 백년 동안 침입을 해도 거뜬히 막아주었던 갼체 종이 영국의 근대식 무기 앞에 무릎 꿇으면서 ‘라싸조약“이 체결되고, 이후 근 반세기에 이르는 영국제국주의 영향하에 있게 된다. 이때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 티베트는 결국 1951년 중국의 침략을 당하고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중국의 영향을 덜 받았다는 갼체의 자부심도 이젠 갼체종의 ’중국 중요 문화재‘지정과 홍위병의 서슬에서 빗겨 난 펠코르 최데의 아름다움으로만 남게 된 것이다.
/백민섭 경인지역 새방송 창준위 지원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