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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티베트 거주지역의 머리 꼭대기에서 펄럭이는 오성홍기. 티베트의 오늘을 잘 보여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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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는 중국 침략 이후 많은
것들이 훼손되고 바뀌었지만 여전히 티베트의 중심이고 정신적인 고향이다. 여전히 라싸를 제외한 티베트는 생각하기 힘들다.티베트 제국의 수도였던
태양의 도시 라싸는 포탈라 궁이 솟아 있는 말보리 언덕을 중심으로 키츄강을 따라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다. 그럼에도 어스름
저녁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을 때의 라싸는 포탈라 궁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보는 이들을 압도하는 규모와 위엄은 거의 압도적이다.
그러나 이내 짜증이 난다. 가로수만한 가로등이 포탈라 궁 앞 어둠을 걷어 주고 있지만 크기나 생김새가 흉물스러워 여간 눈에 거슬리는 것이
아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문화재와는 격이 맞지 않는 장식이다. 하긴 포탈라 궁 앞에 있던 연못을 메워 인민광장이라는 공룡을 만들어 놓은
터에 더 문제 삼을 일도 아니긴 하다. 이처럼 라싸는 점령국 중국에 의해 너무빨리 현대화가 진행되어 온 탓에 전통과 멋이라는 예스러움을 빼앗긴
것처럼 보였다.
이미 티베트 원주민보다 중국의 한족이 더 많다고 알려진 라싸는 어둠이 깊어지면, 하나 둘 켜지는 네온사인 불빛 속에서
중국이라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느낀다. “시짱자치구(西藏自治區)‘라는 이름하에 자치도 보장되고 출가도 되고, 무너진 사원은 중국정부의
지원하에 계속 복원 중이라고는 하지만 천년 불교왕국의 정점 라싸는 이미 그 본 모습을 잃어 버리고 만 셈이다.
다음날 새벽. 조금 늦었다
싶어 택시를 타고 조캉사원 북쪽 진입구 근처에 도착하니 벌써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 든다. 조캉사원을 중심으로 거미줄 같이 뚫는 길마다
순례자들의 발 길로 부산하다. 대부분은 작은 마니차를 돌리며 ‘옴마니반메훔’을 반복적으로 읊조리며 조캉사원을 향하고 있다. 가끔은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도 보인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여명도 트지 않았는데 바코르 광장은 순식간에 인산인해를 이룬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이 새벽에
몰려든 것은 그들의 신심을 확인하고자 였을 것이다. 신심 깊은 티베트 사람들은 평생에 한번은 성지순례를 하는 것을 필생의 업으로 생각하는데
가능하면 성지 중의 성지인 카일라스를 하고 싶어하지만 너무 멀고 험난해서 대부분은 조캉사원을 대신한다. 그러니 조캉사원은 항상
만원이다.
어둠의 장막을 걷어 내듯이 사원 앞에 있는 쥬니퍼 향로에서 향이 피어 오르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집집마다
피워대는 향까지 합쳐져 조캉 일대는 짙은 안개에 젖은 것처럼 뿌옇게 되는데 처음으로 경험하는 나는 코 끝이 퀭하고 냄새도 썩 기분 좋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마치 정지했던 필름이 돌아 가듯 갑자기 만물이 꿈틀거리며 거대한 움직임이 시작되는 느낌을 받는다.
대법당 앞에는 벌써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로 빼곡하다.그 뒤를 이어 오는 순서대로 자리를 잡고 경배를 한다. 마치 애벌레의 굴신운동을 하듯
쉴새없이 일어섰다 엎드렸다하며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티베트의 심장이라는 바코르 광장이 거친 숨쉬기를 시작한 것이다.
오체투지란 인간이
가장 낮은 자세로 부처에게 다가서는 모습이라고 했듯이 머리와 양 팔꿈치, 양 무릎의 다섯 부위가 땅에 닿도록 납작하게 엎드려 신심을 봉양하는
티베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새삼 티베트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오체투지를 어느 정도하고 나면 코라(탑돌이처럼 성지를 도는 것)를 하게
된다. 코라는 조캉사원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도는데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서있으면 인파에 밀려 저절로 돌 정도다. 한 바퀴 돌면 사소한 죄가,
세 바퀴 돌면 이번 생의 업 (業 )이 소멸된다고 한다.
이생에서의 죄업을 정화한 다음에 깨끗해진 몸과 마음으로 다시 조캉사원으로
돌아와 오체투지를 하려는 것이다. 탐험대원들도 서로의 죄가 없어지길 기대하며 티베트 사람과 함께 코라를 돌아 본다. 바코르 광장 좌우로는
규격화된 노점상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마니차와 경전 등 불교용품과 티베트 사람의 전통옷,악세서리,보석, 그리고 청바지 등 없는 것이 없다.
티베트 사람은 죄업을 씻기 위해 돌고 관광객은 도대체 뭘 사야 좋을지 몰라 흥정하느라 돌고. 바코르 순례길은 그렇게 야단법석이다. 그 중 눈에
띠는 오체투지자가 있다. 늦가을 날씨에도 반소매 차림으로 오체투지를 하는 소년은 어제 조캉사원 대법당 앞에서 한줌의 돈을 세던 그 친구였다.
하긴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저마다의 사연이 다를 터였다. 인터뷰 요청을 했더니 흔쾌히 응해 준다.
라싸에 온지 벌써 8년이 됐다는
짜시쯔던은 열여섯살의 소년이었다. “조캉사원에 참배하러 왔던 가족이 자동차 사고를 당해 어머니는 죽고 아버지는 지금까지 병원에 입원해있다”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매일 조캉사원을 돌며 관광객이나 신자들이 시주하는 돈으로 아버지 병원비뿐 아니라 생계를 이어 가고 있다고 했다.
어제부터 내내 가지고 있었던 ‘오체투지를 하며 돈벌이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선입견이 부끄러워 기념사진을 찍었다. 짜시쯔던의 이마 가운데 생긴
굳은 살에서 새삼 그의 신심을 느껴본다. 아버지 병원비에 보태라는 심정으로 약간의 돈을 시주했더니 조금은 주춤하더니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준다.
몇 번이고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나눈 소년은 다시 시끌벅적한 바코르 광장으로 오체투지를 하며 사라진다. 예의 바코르의 여기저기에서도 애벌레처럼
연신 오체투지를 하며 아름다운 윤회를 준비하는 이들이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느것 하나 똑같은 이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각양각색이지만 오직 하나, 부처를 향한 신심만큼은 어느 티베트 사람이든 모두 똑같아 보였다.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서도 부처를 향한 불심이
함께하고, ‘옴마니반메훔’속에 나의 건강과 가족의 건강과 이웃의 사랑과 세상에 널리 불법이 퍼져 평온하기를 바라는 그들의 순박하고 순수한 열정이
마음을 울리는 곳. 그것이 티베트였다./글·사진=백민섭 경인지역 새방송 창사준비위원회
지원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