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 아닌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우리는 ‘비영리법인(nonprofit making
cooperation)’이라 한다. ‘비영리’란 이윤을 추구해 그 이익을 구성원에게 분배하고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영리’의 반대 개념이다.
비영리 법인 가운데 공익적, 사회적 목적을 위해 출연된 재산으로 목적달성을 위한 업무를 하는 곳을 ‘재단’이라 한다. 이는 실질적으로 탈개인소유
재산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기금을 조성하고, 그들을 위해 일하는 단체와 사람들. 그들의 따뜻한 정과 사랑을
느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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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부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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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 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도울 목적으로 재물 등을 내놓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사회에는 이러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각지대 또한 많다. 이들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 ‘기부재단’이다. 꼭 돈이 기부의 전부는 아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이웃사랑 실천의
징검다리가 되고 있는 한국의 기부재단을 소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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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생명에게 온기를,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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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1월 백혈병어린이후원회의 설립으로 출발한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재단)은 백혈병 등 소아암 진단을 받은 1200여명의 아이들을 위해 체계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다. 특히 경제적 인 어려움으로
치료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치료비 지원과 각종 교육 기회 제공에 초점을 두고 있다. 주로 환자 치료비 지원에 쓰이는 ‘새생명통장’은
매달 1인당 10만~15만원씩 입금하는 기부금으로 구성된다. 약 8000여명의 후원자가 1구좌에 1400원씩 지원하는 ‘천사백지원’과
헌혈증기부를 통한 간접지원도 활발히 실시되고 있다. 재단은 또 ‘쉼터’를 운영하면서 지방에 거주하는 환자 가족들을 위한 사업에도 앞장서고 있다.
혈액종양 전문의가 있는 종합병원이 대도시에 집중돼 있어 이들을 위한 교통비 지원, 숙식 제공 등의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 것. 이는
우정사업본부로부터 ‘우체국 한사랑의 집’을 위탁받아 서울 3개소, 대구, 부산, 전남 3개소 등 총 6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 항암치료에
의한 탈모로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가발 지원 사업을,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에 일정 연구비 지원 등의 활동도 벌이고 있다. 기부를 원하는 사람은 이
재단을 통해 한 명의 어린이를 지속적으로 후원할 수 있으며, 일시적인 후원금 납부도 가능하다. 쉼터 자원봉사 기부에도 참여할 수 있다.
후원신청 www.kclf.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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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사랑의 리퀘스트,
한국복지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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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복지재단(재단)은 1948년 미국 ‘기독교아동복리회(CCF)’ 한국지부의 지원으로 아동복지사업을 시작해 현재 국내 최대의 민간
사회복지기관으로 발전했다. 전국 16개 시·도지부와 19개 지역사회복지관, 8개 아동학대예방센터, 중증장애아동 요양시설 한사랑 마을,
구로노인종합복지관 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 KBS와 함께 ‘사랑의 리퀘스트’라는 프로그램을 진행, 97년 10월 24일 첫 방송 이후 지금까지
꾸준한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재단에서는 5개의 후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소년소녀가장, 저소득 모자세대, 시설아동, 빈곤
장애인, 무의탁노인 등 상처받고 소외된 이웃과 결연해 매월 1만 원 이상의 경제적 후원이 가장 대표적 활동이다. 또 정서적 나눔을 함께 하는
‘결연후원’과 아동학대예방, 미아 찾기, 장애아동복지 등의 복지사업을 후원하는 ‘기금후원’ 방법도 있다. 이 밖에 일정기금을 재단에 기탁,
예치하고 원금은 보존하면서 이자수익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지원하는 ‘평생후원’프로그램도 생겨났다. 이는 일회성 기부문화를 탈피하고자 기획된 것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재산의 전부나 일부, 소장품 등 유산을 기탁하는 ‘유산후원’과 생필품, 사무용품 등을 기부하는 ‘물품후원’도
진행한다. ‘사랑의 리퀘스트’ 방송을 통한 ARS 후원(060-700-0600)은 한 통화 당 1000원씩 다음 달 전화요금에
청구된다. 재단은 북한아동지원 및 해외지원사업도 펼치고 있다. 평양아동병원에 의료장비를 지원하고, 부모가 없는 아동 1400명에게 1인당
연간 200달러(월 2만원) 상당의 분유, 의류 등을 전달한다. 연변,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의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교육지원과 식수,
농업용수 마련을 위한 우물 지원 사업 등 특별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재단은 오는 3월 1일까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너두(DO)! 나두(DO)!
우리두(DO)! 동전기부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홈페이지 www.kwf.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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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복 목사. 밥상공동체 대표 | 허름한
점퍼차림의 한 노인이 찬바람과 함께 사무실 문을 열어젖혔다. “연탄 가지러 왔습니다.” 유난히도 추운 올 겨울, 요즘 누가 연탄을 쓸까 싶기도
하지만, 영하를 밑도는 매서운 날씨에 아직도 연탄이 필요한 서민들이 많단다. 이곳에 들러 연탄을 가져갈 때면 방명록에 간단한 신상을 적는다.
“전화번호? 우리 집엔 그런 거 없는데….” 이틀에 한 번씩 재단 사무실을 찾는 한 노인은 준비해온 포대 자루에 연탄 5개를 조심스레 담고
든든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유독 눈에 띄는 주황색 지붕과 ‘밥훈’이 적힌 표지판, 이 곳이 바로 밥상공동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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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는 나의 인생, 재단 대표를
만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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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내 것’ 챙기기에도 바쁜 세상이다. 나에게도 없는 것을 남에게 선뜻 내어주기가 어디 말처럼 쉬우랴. 하지만
이런 작은 사랑을 통해 남부럽지 않게 사는 부자가 있다. “피를 뽑아 팔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적십자사 혈액원 차에 올랐던 가난한 신학생이
이제 무료로 피 같은 사랑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강원도 원주시에서 허기진 이웃에게 밥을 나누는 ‘밥상공동체’ 대표 허기복 목사를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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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서 발견한
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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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허기복 목사는 모질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소작농이었던 아버지는
날마다 술과 노름으로 지냈고, 어머니가 콩, 팥, 옥수수 등을 팔아 집안 살림을 꾸려나갔다. 당시 밥 한 그릇과 연탄 한 장이 그에겐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겨울마다 옷을 겹겹이 껴입으며 연탄이 없는 차가운 냉골에서 새우잠을 청했고, 아침에 일어나면 주전자 끝에 매달린 고드름을
간식처럼 떼어먹었다고. “도시락을 못 싸가서 친구들 밥을 얻어먹기도 하고 수업료를 못 내서 선생님한테도 참 많이 불려갔죠. 하지만 어머님이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며 내가 처한 환경이나 다른 사람을 원망해 본적은 없습니다." 가난을 비관한 누나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도 어머니가
신앙생활로 힘겹게 이겨내는 모습을 보며 ‘절망’대신 ‘희망’을 가슴 속에 새겼다. “어머니가 오늘날 나를 만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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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부터 마음속에 새긴
‘밥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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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잔병치레가 잦았던 허 목사는 어릴적 어머니 등에 업혀 교회에 나갔다. 어머니의 기도를 들으며 그는 목사를 꿈꾸기 시작했다. “신학생
시절엔 매일 자정 무렵, 예배가 끝나면 신발을 들고 걸어서 집에 왔어요.” 서울장로회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한 그는 밑창이 떨어져 나간 낡은
구두를 아껴 신기 위해 잘 안보이는 깜깜한 밤마다 맨발로 다녔던 것. 전도사 시절 별명도 ‘허기져 허기진 허기복’이었다. 서울 망우동에
있는 교회에서 처음 담임목사를 시작한 그는 4년간 타성에 젖은 자신을 발견하곤 전국에서 가장 오지에 있는 교회를 자청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목사가 되기로 한 처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밥은 단지 먹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삶을 지탱해주는 나눔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0년 전부터 항상 ‘밥상’과 ‘나눔’을 머릿속에 담고 있던 그는 마흔 세 살의 나이로 98년 원주에서
밥상공동체를 설립했다. 원주천 쌍다리 밑에서 하루 200~300명의 노숙자와 독거노인들에게 무료급식을 시작한 그에겐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신도들이 헌금한 교회돈은 절대 쓰지 않고, 재단 운영도 교회 밖에서 하기로 제 자신과 약속했죠. 아마 교회 돈으로 재단을 시작했다면 이렇게
성장 하지 못했을 겁니다. 요즘 유행하는 블루오션전략이 그때 통했나 봅니다(웃음).” 이후 밥상공동체는 다양한 사업을 펼치며 사람들
귓가에 친숙한 이름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서울, 부산, 춘천 등 전국 16곳에 달하는 ‘연탄은행’은 밥상공동체의 나눔을 실천하는 또 다른
촉매제다. 은행에 돈이 비치돼 있듯 연탄을 늘 준비해서 필요한 사람들이 무료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원주에서 시작했는데 입소문을 타고
타 지역까지 퍼지더니 서울에서도 연탄을 보내달라고 연락이 오더군요. 이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연탄은행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연탄은행의 실질적인 운영은 각 지역의 교회나 시민단체가 맡고 있으며 연탄조달은 해당 지역 사업장에서만 조달한다. 각 지역의 연탄
사업장을 위한 배려다. 현재 서울 중계동에서만 하루 70~80명이 연탄을 찾고 있으며, 포털사이트 엠파스와 함께 북한 온정리 마을에 연탄 5만장
보내기 메일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인기 배우 문근영씨와 정애리씨가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주거마련이나 소규모 창업자를 위해
‘신나는 은행 100만원 대출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해 10월부터 노숙자, 신용불량자 등 은행문턱이 높기만 한 이 지역 서민들의 은행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대출자는 1년 후 대출금의 20%만 상환하면 된다. 앞으로 1억을 목표로 은행기금을 조성중이라는 허 목사는 선뜻 기부금을
내어주는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최근에는 방송인 김미화씨가 창업자 30명을 위해 써달라며 3000만원을 기부했다고.
지난해에는 강원도 삼척 산불화재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노숙자들과 함께 무료 집수리 사업을 펼치기도 했다. 노숙자에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처음엔 술 취한 그들한테 얻어맞아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이젠 원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왕초’로 통한다. 최근 허 목사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상’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의 나눔 철학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고. “노숙자들은 결코 사회를 망치는 존재는 아닙니다. 오히려 순박한 삶을 살고 있는 그 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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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부자는 따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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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통령도 부럽지 않을 만큼 목사라는 직업을 좋아한다. 가끔은 예배시간,
신도들에게 설교하는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고. 하지만 지금은 교회의 목사님이 아닌 밥상 차리는 아저씨다. “아마 60세까진 밥상을 차리지
않을까요? 한 사람이 너무 오랫동안 몸담고 있는 건 공동체 발전을 위해 좋지 않을 것 같아요. 설립은 제가 했지만, 앞으로는 더 훌륭하신 분들이
이끌어 주셨으면 합니다.” 훗날 작은 고물상을 차려 찾아오는 이들에게 막걸리 한잔 대접할 수 있는 소박한 여유를 즐기고 싶다는 그는
“기부는 내가 가진 것을 잃는 게 아니라 기분 좋게 나눠주면서 더 큰 부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맛을 알게 된다면 중독처럼 기부를 하게
된다고. 올 한해도 많은 사람들이 기부중독에 걸려 진짜 부자가 됐으면 좋겠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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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실 박준호 학생리포터
silsil0201@hanmail.ne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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