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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3사의 매너리즘에 빠진 예능프로그램

2006년 10월 25일 (수) 15:41   경향신문

[별을 쏘다]방송3사의 매너리즘에 빠진 예능프로그램

 


방송 3사의 예능프로그램들이 자기복제의 늪에 빠져 있다. 흥행이 보장된 ‘스타들의 중복출연’과 ‘비슷한 소재 우려먹기’라는 중병을 앓으면서도 그동안 지켜온 시청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수술을 망설이고 있다. 거의 같은 구성으로 이름만 바꿔 새 프로그램인양 내놓는 일도 여전하다. 변화를 포기한 예능프로그램들의 매너리즘은 시청자들의 외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연예인들의 짝짓기는 계속된다

SBS는 가을개편에 맞춰 ‘리얼로망스 연애편지’의 후속으로 ‘선택남녀’를 신설한다.


연예인 짝짓기와 게임, 여장남자 찾기 등 비슷한 소재만을 되풀이하고 있는 예능프로그램들. 위부터 SBS ‘선택남녀(신설)’, SBS 강호동의 ‘연애편지’, KBS ‘해피선데이-여걸식스’, SBS ‘진실게임’.
연예인 남성들과 일반인 여성들이 출연해 벌이는 미팅 형식의 프로그램. 첫회 여성출연자로는 연예인 지망생 3명이 나왔다. 연출을 맡은 박성훈 PD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출연자를 모집하고 오디션을 봤지만, 적당한 출연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며 “점차 일반인 출연자들을 섭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성 출연자가 연예인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다수의 남녀가 나와 게임을 하고 짝짓기를 하는 형식은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프로그램 제목을 가리고 내용만 나열하면 어떤 프로그램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특히 연예인 남성과 일반인(사실은 무명연예인이거나 연예인 지망생인) 여성이 미팅을 하고 번갈아 상대를 떨어뜨리는 형식은 2002년부터 2003년까지 방영됐던 KBS ‘산장미팅-장미의 전쟁’과 똑같다. 산장미팅 역시 스타들의 짝짓기 프로그램이었던 MBC ‘강호동의 천생연분’을 본떠 만들었다. 현재 방영중인 연애편지 역시 스타들의 게임과 짝짓기가 주 내용이고, SBS ‘일요일이 좋다’의 ‘X맨을 찾아라’도 X맨 검거보다는 연애놀이에 기운지 오래다. 여성들의 의리와 솔직, 당당함 등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기획됐던 KBS ‘해피 선데이-여걸 식스’의 여걸들 역시 남성출연자들의 구애에 넘어간지 오래다. 남성은 힘 아니면 유머로, 여성은 섹시함으로 이성을 유혹하는 것도 공식처럼 자리잡았다.

시청자 유진희씨(doryrjf1004)는 인터넷 시청자 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도대체 시청자 게시판은 왜 있는지 모르겠다. 선택남녀를 폐지하라고”고 말했다. 김수현씨(jumpboa11)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생긴다고 하더니 또 짝짓기 프로그램”이라며 “한숨밖에 안나온다”고 덧붙였다.

대중문화평론가 정윤수씨는 “킹카 아니면 폭탄으로 구분되는 명확한 캐릭터의 짝짓기 게임은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의 쾌감을 준다”고 말했다. 실제상황에서는 폭탄이라고 해도 면전에서 구박을 할 수 없지만, 연예인들의 게임에서는 누구나 인정하는 폭탄이 있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처럼 취급한다는 것이다. 정씨는 “과장된 이미지에 대한 소모가 심화되면 실제 연예인들의 사생활에까지 폭력적인 모욕을 주는 식으로 자극의 수위가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 당신의 사생활을 씹어드립니다.

연예인들의 사생활 노출과 잡담 역시 가장 흔하게 쓰이는 흥행 코드다. KBS의 ‘상상플러스’는 10대들의 신조어와 옛말, 순우리말 등을 퀴즈를 통해 풀어봄으로써 우리말 바로 알리기에 공을 세웠다는 평을 들어왔다. 그러나 최근 방송들은 전체 90여분 분량 중 1시간 이상을 출연 연예인들의 농담으로 채우고 있다. 새로 영화를 찍었거나 새 앨범을 발표한 연예인들이 초대 손님으로 출연해 자신의 작품을 홍보한다. ‘우리말 맞히기’라는 형식만 갖출 뿐 출연자들의 입담 경쟁에 초점을 맞춘지 오래다. 미리 정답이 노출되고 비속어가 남발되는 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SBS ‘야심만만’은 대표적인 연예인 사생활 노출 프로그램이다. 출연 연예인들의 솔직한 경험담 공개와 방송인 김제동의 유창한 말솜씨로 인기를 끌었다. 경쟁 방송사에 아류작을 낳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얻었지만, 갈수록 자극적인 사생활 공개가 주로 자리잡았다. 여론조사 맞히기를 통한 심리적 공감대 넓히기 따위는 관심 밖이다. 출연자들간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같은 이야기도 더욱 엽기적이고 선정적으로 던지는 게 예사다. 출연자들은 “여기만 나오면 이상하게 줄줄줄 얘기하게 된다”며 웃지만 홍보에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MBC의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도 홍보가 필요한 연예인, 사생활 노출로 시청률을 올리려는 방송사, 욕하면서도 잡담을 즐기는 시청자들의 교집합이 지속적으로 만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여러번 코너의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연예인들의 신변잡기 농담이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광운대 언론정보학부 김현주 교수는 “시청하기 가장 좋은 시간대에 집중 편성되는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이 높은 것은 무의미하다”며 “보다 보편적이고 개운한 웃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잡담 개그, 정통 개그에 밀리나

예능 프로그램들이 별다른 노력없이 자기복제만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들의 꾸준한 노력과 인기는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2003년부터 동시간대 시청률 선두를 고수해 온 야심만만은 최근 MBC ‘개그야’의 도전을 받고 있다.

시청률로는 야심만만이 약간 앞서고 있지만 불과 두세달 전까지만 해도 개그야가 한자릿수의 시청률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는 별과 뜨는 별의 구분은 확실하다. SBS ‘일요일이 좋다’ 역시 X맨만 남기고 2부 시간을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게 내줄 예정이다. 오후 6시부터 2시간 동안 방영됐던 일요일이 좋다는 반전드라마 이후 탁재훈, 박수홍 등 인기 MC들과 연예인들을 내세워 선보인 코너가 모두 신통치 않은 반응을 보이자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KBS의 ‘개그콘서트’ 역시 수년동안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들 코미디 프로그램은 계속해서 새로운 코너와 신인 개그맨들을 발굴하면서 인기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KBS와 SBS는 과거 ‘유머 일번지’나 ‘웃으면 복이와요’ 같은 형식의 정통 코미디쇼 형식의 프로그램 제작을 검토하고 있다.

코미디 프로그램들의 생존법은 지독한 아이디어 싸움에서 나온다. 아무리 인기있는 개그맨이라도 웃기지 못하면 새까만 후배에게 무대를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 ‘그 바닥’의 법칙이다. 개그 무대에는 대학로 무대 등에서 수년동안 갈고 닦으며 “못웃기면 죽는다”는 각오로 뛰어드는 ‘개그꾼’들이 치열한 아이디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소재 고갈, 표절 논란, 일부 스타들의 싹쓸이 출연 등으로 정체되어 있는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 여기에 있다.

〈장은교기자 indi@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