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MBC TV 「도시의 생명선, 하천」
도시와 하천의 공존을 꿈꾸며
최 영 규 대전MBC TV제작부 PD
“우리 아이들이 집 앞을 흐르는 하천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멱을 감을 수 있다면…. 또, 물고기를 잡으면서 자연을 배워나갈 수 있다면….”
1년에 가까운 제작을 마치면서 개인에게 남은 작은 소망 하나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의 입장에서 바라보건대 정말 우리 아이들이 집 앞을 흐르는 개울가에서 뛰어 놀고 물고기 잡고, 그렇게 자연을 배울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한 편의 그림인가.
3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동네 앞 하천에서 물고기를 잡고 멱을 감았던 기억이 남아있을 것이다. 농촌의 하천이든, 도시의 하천이든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산업화가 진행되고 도시가 발달하면서 도시의 하천은 말 그대로 오염의 대명사가 되었고, 집 앞을 흘러가던 실개천은 모두 복개되어 주차장과 도로로 변해버렸다. 도시를 관통한다는 공간의 성격 자체가 하천에게는 힘겨운 조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도심 하천변에 길게 만들어진 ‘하상 도로’와 콘크리트로 예쁘게 포장되어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하천 둔치에서 우리는 도심 하천의 어두운 현재를 만났다.
도심 하천의 생태계, 가능성을 엿보다
그러나 여전히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도심 하천의 생태계를 보면서 미래의 가능성도 동시에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도시의 하천에 비해 비교적 자연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평가받는 대전의 도심 하천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생태계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과 함께 잊혀졌던 하천의 존재를 재확인하고자 했다.
대전 도심 한국과학기술원 소나무 숲의 백로 집단 서식처. 백로 새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죽고 죽이는 치열한 약육강식의 생존 경쟁은 자연의 오묘한 질서를 유감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짧지만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는 피라미의 산란 과정, 하천의 범람으로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물살에 쓸려가 버린 개개비의 새끼들, 도심 한 복판 하천 자갈밭에서 알을 낳고 새끼들을 키우는 꼬마물떼새에 이르기까지 도심의 하천에도 가늘지만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하천 파괴의 결정판, 복개
대전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부르는 교가에 ‘홈내천’이 등장한다. 하지만 정작 교가를 부르는 아이들은 홈내천의 존재도, 그 하천이 어디로 흘러가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다. 학교 바로 앞을 흘러가던 홈내천의 물길은 복개되어 자동차 도로로 바뀐 지 오래다.
도시를 거미줄처럼 흐르던 하천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손쉽게 도로로, 주차장으로 전락해 있다. 대전 도심에서 복개되어 사라진 지방 2급 하천은 4개. 집 앞을, 동네 앞을 흐르던 실개천의 복개는 그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바지 장화를 입고, 때로는 CCTV를 동원해 들여다본 복개 하천은 더 이상 하천의 모습이 아니었다. 시커먼 오물과 온갖 오염물질의 집합지로 변해버린 복개 하천은 더 이상 하천의 지위가 아니라 도시 계획 시설, 거대한 하수구로 관리되고 있었다. 하천의 복개는 하천을 이용의 대상으로만 여겨온 인간들의 야만성을 유감 없이 보여주는 사례로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도시와 하천의 공존, 그 시작에 서서
일찍이 하천 파괴의 실책을 반성하고 도심 하천의 복원에 나선 독일과 일본. 일본 요코하마의 ‘이타치천’과 독일의 프라이부르크의 ‘드라이잠강’에서 만난 인간과 하천의 공존 방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독일과 일본의 경우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도시화와 산업화의 과정에서 하천은 파괴되었고 사람들은 하천을 떠났다. 하지만 20~30년의 노력을 통해 하천은 복원되었고 자연이 돌아온 하천에 사람들이 돌아왔다. 도시의 한 가운데서 물고기를 잡으며 노는 아이들이 물가에서 휴식을 즐기고,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몸을 담그는 모습은 정말 부러운 꿈같은 이야기로 다가왔다.
하지만 마냥 부러워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 아닌가? 도시의 하천은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자연에서 삶의 풍요를 찾고 인간이 자연에서 누리는 이익은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려주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자리잡을 때 이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도시의 하천은 ‘도시의 생명선’으로 다시 인간에게 돌아올 것이다. 도시와 하천이 공존하는 그러한 모습은 먼 나라의 부러운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미래의 모습이다.
소중한 자산으로 남을 프로그램
TV 다큐멘터리 제작에 대한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3부작을 맡아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했고, 엄청난 작업량에 허덕이기도 했다. 무더운 여름에 가슴까지 오는 바지 장화를 입고 개개비의 둥지를 찾아 하천변 갈대밭을 헤매고, 복개 하천의 내부를 촬영하기 위해 냄새나는 하수도를 걸어다녔던 기억들이 새삼 떠오른다.
비록 덜 자라나 핏기가 남아있지만 어쨌든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의 결과물을 생산해낸 경험은 PD로 살아가는 나에게 소중한 자산으로 남으리라 생각한다.
때로는 수중 카메라를 들고 물 속으로 뛰어들고, 백로 둥지를 촬영하기 위해 소나무 오르내리기를 수없이 반복한 카메라맨 이선주 선배의 고생에 경의를 표한다. 또한 열악한 제작 현실을 안고 특집제작에 나선 후배를 위해 더 많은 고생을 짊어져야만 했던 선배와 동료 PD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ykchoi@tj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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