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광장을 보지 않고 베이징을 다녀왔다고 할 수 없듯, 와이탄을 보지 않고는 상하이를 보고 왔다고 할 수 없다. 그만큼 와이탄은 상하이를 대표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와이탄에 서면 거대한 물줄기인 황포강이 흐르고 그 앞에 비현실적이라고 밖에는 표현하기 힘든 거대한 고층 건물군들이 서있다. 바로 이곳이 21세기 중국의 야심찬 프로젝트인 푸둥(浦東)개발현장이다.
그 개발현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강 아래로 난 지하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과거에는 구시가지에서 푸둥으로 가기 위해 다리를 건너거나 터널을 통과할 때 15위안(우리돈 2250원)을 내야했는데 지금은 통행료 없이 지날 수 있다. 구도시와 푸둥을 한 도심권으로 엮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최근 상하이시는 터널 한 개를 개조해 유료 관광용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와이탄 중앙에 설치된 이 관광용 터널로 들어서자 최첨단의 괘도차량이 보였다. 무인 원격 조종되는 미니 열차를 타고 터널에 들어서면 사방에서 화려한 조명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현대 설치미술가들의 도움을 받은 이 관광용 터널은 약 10개의 테마로 각종 레이져 조명과 멀티미디어 영상을 동원해 푸둥으로 가는 관광객들을 5분간 즐겁게 해준다. 함께 타고 있었던 독일인 의사는 연신 "뷰티풀"을 외치고 있었다.
터널을 빠져 나와 푸둥의 거리를 걸었다. 시원하게 뚫린 도로와 하늘을 향해 찌른 듯이 솟아있는 동방명주탑이 현기증을 일으킨다. 이곳이 과단지 10여 년 전에 논밭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상전벽해는 확실히 이곳을 두고 쓰이는 말이리라. 대로를 다라 걷다보니 수십 층의 고층 건물들 사이로 공원이 들어왔다. 푸른 잔디밭에 적당한 수목이 꾸며져 있고 그 중앙에 호수가 있다. 언뜻 보아도 이곳은 맨해튼의 센트럴파크를 모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 더 가깝게는 우리의 여의도하고 너무도 비슷하다.
상하이가 중국 동해안을 대표하는 금융과 무역의 중심지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구상한 것이 '푸둥개발'이다. 1989년 장쩌민과 주룽지가 주축이되 개최한 '푸둥개발 국제 심포지엄'은 당과 개방개혁론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중국 개방개혁의 총 설계자인 고 덩샤오핑의 강력한 후원이 있었다. 1991년부터 시작된 1단계 개발에는 약 250억 위안(한국 돈 3조7천5백억)을 투자해 남푸, 양푸대교와 발전소, 통신, 에너지 인푸라를 구축했다. 96년에는 2단계로 1천억위안(약 15조)를 투자해 항만, 지하철과 최근 개항한 푸둥국제신공항 등을 건설했다.
이곳에서 만난 중년의 주(45)씨는 "푸둥은 상해인의 미래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아파트나 주택가가 주변에 없는데다 차림새도 셀러리맨 같이 보이지 않아 직업을 물었다. "아! 나는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상해를 찾는 중국인들은 이곳에 꼭 들러 사진을 찍고 가야하는 것이 관행이 됐다. 직원들이 관광단을 데리러 간 사이에 산책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거대한 빌딩 숲에서 직장인들을 많이 볼 수 없다. 주씨는 "아직 여기의 건물들은 빈곳이 많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관광오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라고 귀뜸 한다. 그런데도 지금도 새로운 건물들이 올라가고 있다. 이는 장쩌민과 후진타오로 이어지는 상해방(상하이출신 정치인들의 세력을 지칭)의 강력한 추진력 때문이라는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푸둥은 이미 상하이의 외자 유치의 33%를 차지하고 있으며 수출의 25%를 점하고 있다. 또한 GM, IBM, GE 등의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이 진출했고 중국 내 대기업의 본사를 이곳으로 이전하는 곳도 많아 졌다. 이 같은 기업들의 거점화는 단지 푸둥이 새로운 비지니즈 센터로 건설됐기 때문만이 아니라 동북아의 핵심적인 물류기지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막대한 인프라를 채울 소프트웨어인 상인들은 어떤가? 물론 두말할 필요 없이 '깍쟁이', '수전노' 등으로 불리는 상하이 사람들의 상인기질은 중국 내에서도 유명하다. 그 상인들의 보습을 보기 위해 7백년간 상하이의 살림을 꾸려왔다는 예원상장으로 갔다.
상하이의 유일한 전통 정원인 예원의 서쪽에서 감싸듯 펼쳐진 상가들은 오랜 옛날부터 옷과 먹거리를 팔던 대형시장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이곳이 외지인에게 특히 유명한 것은 예 상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규모의 점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형 상점들도 옛 건축물의 모습을 고대로 보존하고 있다. 거리는 붉은 등으로 장식되어 있어 명나라부터 이어온 상하이 상인들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마침 취재 중이던 대는 중국 최대의 명절 '춘절'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라 부적 등의 춘절 장식물을 파는 전문점들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예원상장의 특징은 한 상점에서 여러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품목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상점들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이곳에 집중적으로 모여있는 것은 금 장신구와 가방, 차주전자, 옥상품 등이 많은데 이런 특징을 중국인들은 '소(小)ㆍ토(土)ㆍ특(特)ㆍ다(多)'라고 표현해 왔다. '소'는 작은 상품, '토'는 지방 토산품, '특'은 우수한 상품, '다'는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의미한다. 즉 예원상장에는 '작고 특이하며 우수하고 다양한 상품'이 모여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예원상장이 기반이 된 상하이는 1843년 개항 전까지 그리 크지 않았던 항구도시에서 불과 20년만에 광조우를 능가하는 대외무역수출액을 기록한다. 1864년에는 중국총무역액의 반을 차지하게 되고, 홍콩에는 '작은 상해'라는 이름이 붙게된다. 1876년 갈원후는 『상해여행잡기』에서 "천하에 번화한 4대 진이 주선, 불산, 한구, 경덕인데 홍콩이 흥기하자 네 진이 뒤쳐졌고, 상해가 흥기하자 홍콩이 다시 뒤처지게 되었다"라고 했다.
상하이의 구시가지 한복판에 자리잡은 남경로는 한국의 쇼핑족들에게는 '상하이의 명동'으로 불리는 곳이다. 상하이 최대의 번화가였던 이곳은 최근 차량의 운행을 전면 중단하고 완전한 보행자 거리로 만들었다. 약 3km에 걸쳐 동서로 이어져있다. 이곳은 낮에는 온갖 비즈니스가 펼쳐지고, 밤이면 불야성의 쇼핑가를 이루는 곳이다.
남경로의 최대 유통센터는 1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제일백화점이다. 유럽식 건물의 고색창연함과 화려한 네온이 어우러진 이곳에 들어가면 세계 어떤 일류 백화점도 부럽지 않을 지경이다. 이들의 디스플레이나 상품 수준은 여타의 중국 도시와 확연히 다름을 느낄 수 있다. 1층 완전 점령한 외국인 유명 브랜드의 화장품들은 엄청난 가격(중국인 봉급에 비해)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있다. 웬만한 상품에는 모두 천단위의 가격표가 붙어있다. 상하이에서 고소득층을 월수 5000위안(약 75만원)으로 볼 때도 상당히 부담스런 가격일텐데 상하이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은 듯 하다. 백화점 앞에서 만난 칭(24)이라는 사무직 여성은 "실제 소득 수준은 그 보다 높아요. 아마도 서울의 한 반쯤 될까?"라고 이야기한다.
남경로를 걷다보면 상가의 반쯤은 음식점으로 보인다. 워낙 외식이 생활화되어있는 중국인들이기에 그리 신기할 것은 없지만 놀라운 것은 전통 중국요리점이 아니라 세계적인 음식 체인점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돈까스체인점, 미국의 패스트푸드와 패밀리 레스토랑, 요즘 한창 뜨는 태국 요리와 베트남 쌀국수 등 다양한 먹거리가 무한정 늘어서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 가격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오후 상하이의 뒷골목에서 푸짐한 오뎅과 쌀국수를 곁들이면 단돈 5위안. 그런데 이 남경로의 레스토랑들에서는 한끼 식사 값이 최소 20위안에서 40위안까지 든다. 밥값이 비싸다는 서울도 머지않아 상하이의 밥값에 추월 당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이 같은 소비 폭발 현상을 중국현지 언론은 '서구식 소비혁명'이라고 진단한다. 90년대 초 개방개혁과 맞물려 일어났던 1차 소비혁명이 '일단 쓰고 보자'였다면 이번 2차 소비혁명은 그야말로 고품질, 고가의 소비를 하는 질적인 변화라고 한다.
중국에는 상하이와 관련된 두가지 이론이 있다. 하나는 화살론으로 '동부연안이 활이라면 양쯔강은 활이요, 상하이는 바로 그 화살의 촉이다'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그 화살촉은 태평양 넘어 미국과 유럽을 향하고 있다. 또 하나는 용두론으로 '용의 머리를 자극해 그 힘이 용의 몸통을 통해 꼬리까지 미치게 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용두란 상하이를 지칭하며 몸통은 양쯔강을, 꼬리는 중국의 서부를 이야기한다. 그야말로 상하이를 발전시켜 그 발전의 힘이 변방인 서부까지 미치게 하겠다는 것이다. 두 이론 모두 상하이가 중심에 있다는 것은 현재 중국에서 상하이의 위상을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상징인 것이다.
이제 국가간의 경쟁은 사라지고 도시간의 전쟁이 시작됐다고 한다. 그야말로 동아시아에서는 서울, 도쿄, 상하이, 홍콩, 싱가포로 등 경제력과 인구가 막강한 도시간의 싸움으로 변모하고 있다. 과연 누가 경쟁력이 있는가? 상하이 사람들은 당연히 21세기는 자신들의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Edition 40, 2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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