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큐멘터리 개론

제작현장에서 본 자연다큐멘터리 -윤동혁

 제작현장에서 본 자연다큐멘터리


윤  동  혁

푸른별영상 대표



이 모임은 한국자연다큐멘터리제작자 협회가 주관하는 것이고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뿔뿔이 흩어져서 자연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오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말이고 또 하나는 EBS를 포함한 4대 지상파 방송의 울타리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친목도모와 함께 그들의 권익을 증대시키기 위한 일종의 파워그룹을 형성시키려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동안 일정한 수준의 자연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감내해왔던 제반 상황들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1. 제작비가 터무니없다


현재의 제작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포스트작업을 방송국에서 챙겨주고 5천만 원을 받는 것이 최고 액수다. 한 사람이 1년에 1편 또는 2편을(한 소재를 두 편으로 나눌 때는 가능하나 별개의 소재 2편을 1년에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제작하는데 그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5천만 원에서 1억원이라는 이야기다.


설령 1억원을 받는다 해도 거기에는 취재비(해외 촬영까지 포함해서)와 인건비, 테이프 구입비 등등이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므로 한 사람의 가장이 이 시대 중산층이 누릴 수 있는 최저수준의 문화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모든 장비를 디지털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빚을 내어서라도 카메라와 편집 장비를 교체하지 않으면 안된다.



2. 수준향상이 어렵다


제작비가 크게 모자라는 부분을 몸으로 때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3~4년 전만해도 절벽에 매달리거나 해서 고생 많이 하면, 그것으로 칭찬을 들을 수 있었으나 National Geographic, Discovery, Animal Planet 같은 채널들이 누구나의 안방으로 전달되고 있는 요즘 기존의 자연다큐멘터리 수준으로는 도저히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 없게 되었다.


카메라기종 뿐만 아니라 산 속 깊은 곳까지 지미집이나 크레인을 끌고 들어가야 하며 고해상도의 내시경 카메라도 이제는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게 되었다. 그뿐인가, 카메라를 장착한 무인 경비행기도 필요하고 포스트작업에 고비용의 3D 그래픽도 언제든지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가능한가? 우리는 누군가가 설령 F900 카메라를 그냥 빌려 준다고 해도 40분짜리 1권에 5만원이 넘는 테이프 값을 감당할 수 없어서 머뭇거려야 하는 입장이다.



3. 방송국의 감독 대접


아직까지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잊혀지지는 않을 만큼’의 자연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고 그 상당 부분을 외부에서 일하는 독립군 감독들이 맡고 있다. 진심으로 ‘그나마라도’고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국에서 바깥의 자연다큐멘터리 제작자를 바라보는 눈길은 ‘동료 협업자’가 아니라 수많은 하청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보는 것이 아닌가


회의와 모멸감을 느낄 때가 많다. 다른 프로그램보다 제작비를 많이 지출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고 또 자연다큐멘터리 방송시간대가 별로 좋지 않아 광고 수입이 신통찮지만 경비가 시간이 몇 배 더 들어가는 특수성은 그다지 감안해주는 것 같지 않다.


실제로 자연다큐멘터리 한 편 제작에 들어가는 경비와 방송국을 100으로 잡았을 때 외주제작의 경우 30~40%에 불과하다는 사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4. 어떻게 할 것인가


‘그나마’ 이 정도라도 외부의 자연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이 연명하고 성장(?)해 온 데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도움이 컸다는 사실을 절대로 부인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때로 15일 오후에 가졌던 National Geographic 본사의 사업설명회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금액이나 제안서 작성의 까탈스러움 같은 것들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감수해야만 했던 수 많은 고통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


또 하이비젼 카메라로 촬영한 진귀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은 CF소재로 변모시킬 수 있을 것이고 자연학습교재 등으로 활용할 범위도 점점 넓어질 터이니까 이 고비를 잘 넘기자고...  어렵게 함께 모인 우리 모두가 서로를 격려하며 다시 한번 신발끈을 고쳐 매고 새 출발의 발걸음을 내디뎠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