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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가는 뚜벅이

스위스-다섯째날; 융프라우에서 ( 유럽 스위스 )

[ 유럽배낭 여행기 ] 스위스-다섯째날; 융프라우에서 ( 유럽 스위스 ) 이종원

융프라우 등산열차

샌드위치 한 조각 씹어먹고 , 큰 짐은 보관대에 맡기고, 과일, 음료, 빵 등을 챙겨야만 한다. 산으로 올라갈수록 물가도 오르기 때문이다. 주섬주섬 챙기고 9시 30분 기차를 탔다. 정상까지 요금은 무려 13만원이나 한다. 그러나 한국 모여행사에서 제공한 쿠폰을 가져가면 30% 할인 받을 수 있다. (9만원)
기차 삯이 이렇게 비싼 것 관광열차이기도 하지만 산에 철도를 놓는 것이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마지막 10킬로 구간을 연결하는 데만 16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그 대가를 우리가 지금 치르고 있다. 실제 철도로 정상까지 오르는 사람의 70%가 동양인이다. 짧은 일정에 여러 곳을 봐야하는 중압감 때문일까? 유럽인들은 산 중턱까지 가서 하이킹 하거나 곤돌라를 타고 간다. 이런 식으로 하면 차비를 많이 절약 할 수 있슴.. 프랑스에서 오르는 샤모니 몽블랑구간은 3만 4천원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배낭객은 거의 그 쪽을 이용하고 이곳은 주로 단체객이 많다.

그래도 알프스의 최고는 융프라우인 것이다.
인터라켄역에서 총 4량이 출발하는데 앞의 2량은 '그린델발트'로 가고 뒤의 2량은 '라우터부르넨'으로 간다.(이산의 아픔)...그러나 크라이네 샤이데크에서 거의 같이 만나 정상으로 향하는 열차로 갈아 타고 융프라우 정상으로 오른다. (통일의 기쁨)
기차여행의 백미는 가장 가까이 알프스의 목가적 풍경을 접할 수 있다는데 있다. 소들이 지나 가면 기차는 쉬고, 뭐 하나 급할 것이 없다. 그린델발트에 내려 톱니 달린 산악열차로 갈아타야 한다. 꽃들로 가득한 알프스의 작은 마을이다. . 기차를 갈아타고 가파른 경사도 쉽게 오른다. 좌석도 일자로 배열되어있어 호젓하게 관람 할 수 있다. 곤돌라도 오르는 사람, 하이킹하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잘 태어난 소, 에델바이스...
아니 저 것이 그 유명한 '아이거 북벽' 이 아닌가.

저기를 오르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됐던가? 풍경에 도취되어 있는 가운데, 어느덧 '클라이네 사이데크'에 도착했다. 이곳의 쏘세지가 일품이라던데..
아내보고
"우리 하나 사먹자."
"살쪄."
다시 이곳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열차로 갈아탔다. 벌써 귀가 멍멍하다. 이 노선의 4분의 3이 터널이며, 단순히 땅을 뚫은 것이 아니라 암벽을 뚫은 것이다. 이 구간이 16년 걸렸다는데 ......
옆에 도요다에 근무한다는 일본인 부부가 옆에 앉았다. 우린 유스호스텔. 저들은 특급호텔에서 머물었다고 하더군.. "오메 기죽어.."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었다. 무슨 얘기?
"2002년 우리 월드컵 잘 치르자."
중간에 빙하계곡 전망대에 내려 끝없이 펼쳐진 빙하계곡을 보았다. 사진으로 담으려 했더니 카메라가 고장났다. 캠코더도 잃어버린 마당에, 다행히 가방을 뒤졌더니 밧데리가 나온다.... 휴- 안도의 한 숨

스핑크스 전망대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스핑크스 전망대에 올랐다. 사방이 만년설로 가득 차 있으며, 칼바람이 세차게 머리를 때린다.. 갑자기 검은 구름이 지나가고 드러나는 알프스의 영봉들..
거대한 협곡, 구름 한 점 없는 코발트의 하늘, 깍아지는 거대한 바위....
일년은 4분의 3은 눈보라 때문에 이런 완전한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하던데...

나는 정말 운이 좋다.....어떤 사람은 백두산에 7번이나 올랐는데 천지의 웅장함을 보지 못했다고 하던데... 나는 천지나 융프라우를 단 한 번에 보았으니 말이다. 전망대는 6층 건물로서 최신 시설을 자랑하고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높은 우체국이 바로 여기에 자리잡고 있다.

역시 제일 먼저 화장실로 달려가서 '응가'를 했다. 높은데 오니까 창자의 압력도 올라가나 보다. 유럽 제일 높은 곳에서 배설한 기쁨, 그리고 시원함.....
전망대에 한 무더기의 중국인들이 몰려온다. 역시 세계 제일의 인구답게 떼지어 다닌다.

경치를 보는데 내가 사진 찍는데 방해 되었나보다. 비켜 달라고 하길래
"미안하다. 당신의 사진 찍는데 방해되어..." 라고 중국어로 대답 했더니..
"우리나라 사람이군."
흐흐 ..아직도 나의 중국어가 녹슬지 않았구나...

개썰매

스핑크스를 나와 만년설로 가득 찬 야외로 나왔다. 여름철이라 옷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지하철에서 산 2천원짜리 우비를 걸칠 수밖에 없었다. 창피하지만 추운데 어쩌랴... 남들은 스키잠바에 고글까지 준비했는데... 조금 나와보니 눈썰매를 무료로 빌려준다. 길이도 길고 경사도 심하고 굴곡도 있어 재미가 있었다.. 3번 정도 탔는데....내려오는 것은 재미있는데 썰매들고 다시 오르기가 힘들어서...더구나 고산대라 무지 힘들다.
조금 언덕을 오르니 개 썰매장이 나왔다. 우리가 언제 북극에 갈 일이 있겠니.. 여기서 타자.. 아내와 난 6마리가 끄는 썰매에 각각 올라탔다.
눈과 구름위로 달리는 기분 ..산타클로스가 된 기분이다. 한바퀴 돌고서 개가 헉헉거린다. 입에서 침까지 흘러 나온다.
얼마나 힘들었으면.....아내를 끈 개보다 나를 끈 썰매 개가 더 지쳐 보인다.
그리고 나를 빤히 쳐다본다.

산장까지의 눈꽃여행

안내서에는 산장까지 20분이면 간다고 되어 있는데 1시간을 걸어도 나오지 않는다. 하얀 백설을 저벅저벅 밟아 자취를 남긴다. 까만 구름이 몰아치니 금새 칠흑처럼 어두워지고 그리고 다시 코발트의 순결한 하늘이 나타나고....경외스런 자연을 보면서 관광객이기 보다 순례자가 된 기분이다.

하산하는 사람에게
"산장이 어디예요?" "요기" 또 다른 사람도 "요기"라고 말한단. "저-기" 라고 했었어도 포기 했할텐데..... 우리나라 사람이나 서양사람이나 거리 가지고 사기 치는 것은 마찬가지다. 중간중간에 스키 타는 사람, 암벽 타는 사람 등이 보인다. 한시간을 걸었을까 아담한 통나무집이 눈에 들어왔다.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멋진 집이다. 2층 식당엔 우리 말고도 1팀이 더 있었다. 이태리 파스타 요리와 야채스프를 주문했다. 값도 싸고 정말 맛있었다. 창 밖을 내다보니까 눈 덮인 사방에 구름이 둥둥 떠 다닌다. 신선이 사는 곳이 이런 곳이구나.
이번 여행을 통해 가장 낭만적이고 멋있었던 순간이다. 아내의 얼굴도 감동에 상기된 표정을 하고 있다.. 산장에 가길 잘했어..

하산 길에 우비를 벗어 아내를 태우고 내려왔다.
한국인이 유럽 최초로 선보인 '우비썰매'이다. 무진장 힘들었다. 아까 개들이 왜 나를 그렇게 쳐다보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얼음 궁전

다시 스핑크스로 돌아와 얼음 궁전을 둘러보았다. 사자, 곰 등 여러 얼음 조각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얼음 까페'도 있어 칵테일도 즐길 수 있다. 시내 암벽 등반하는 프로그램도 있고, 얼음 동굴도 무진장 길어 조금만 방심하면 마누라를 잃기 쉽다.

하산길

이제부터 귀가 멍멍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화장실 들어간 사이 그 입구에서 푹 주저 앉았다. 하긴 5시간을 고지대에서 돌아다녔으니.....
지금이 4시반인가? 더 머물고 싶지만 하산하기로 했다. 산소 부족엔 잠이 최고라서 샤이데크까지 쿨쿨 잤다. 샤이데크에서 기차를 갈아 타고 이번엔 '라우터부르넨'행 기차를 탔다. 거대한 V자 협곡이 계속 이어져 눈을 붙이려 해도 잘 수가 없다. 신이 만든 거대한 예술품을 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저쪽에 쉴트호른으로 오르는 곤돌라가 보인다. 007시리즈인 '여황폐하'가 촬영된 곳이다. 거기도 그렇게 멋지다는데......,산골마을 '벤겐'을 거쳐 아랫마을 '라우터부르넨'에 도착해서 열차를 갈아탔다. 저 멀리 유럽 최고의 낙차를 자랑하는 '슈타우프바흐 폭포'가 보인다. 수백 미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잊지 말자. 이 마을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내려서 마을을 둘러 보고 싶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슈퍼맨의 비애

인터라켄역에 도착하여 역 앞에 있는 슈퍼에 달려갔다. 막 셔터를 내리는 순간 아내는 못 들어가고 나만 들어갔다.( 나처럼 동작이 빨라야지...ㅋㅋㅋ)
아내가 바깥 유리창에서
"신라면 꼭 사야해.."라며 절규 한다.
빨리 신 라면을 찾아야 하는데... 이리저리 헤메다가.... 무전기 든 직원이 영업종료라고 나가라고 한다. 2번씩이나 쫓겨나다니... 잊지말자 'COOP'.
신라면에 대한 이 정성,,,

한국에 돌아와 라면 먹을 때 아내에게 물었다.
"라면 먹을 때 뭐 생각나니?"
"응..COOP."

스위스 전통음식 치즈-퐁뒤

우리의 휴식처 '발머하우스'에 갔다. 마침 저녁 메뉴가 프랑스 고유 음식인 퐁뒤 였다. 그러나 여행잡지에서 그렇게 맛있다는 '비프-퐁뒤'가 아니라 그 반대인 '치즈-퐁뒤'다. 좋건 싫건간 먹을 것은 저것 밖에 없으니,..빵 몇 조각과 걸쭉하게 녹인 치즈가 나왔다. 이걸 찍어 먹는데 정말 참을 수 없는 느끼함이 목구멍에 올라왔다. 바로 발꼬랑 내 그 자체다. 눈물을 머금고 입에 쑤셔 넣었다. 아까 그 신라면을 사왔어도...
시간이 조금 남아 정원에 놓여진 해먹에 누우려고 올라가다가 그만 뒤로 훌러덩 자빠졌다.
테라스에 나와 있는 전 세계인이 박장대소한다. 정말 창피하다. 모든 사람이 웃고 있는 가운데 아내만은 웃지 않고 내게 다가와 나를 부축한다. 그렇다. 믿을 사람은 오직 한사람. "나의 마누라다..."
그런데 그 날밤 이태리행 기차 안에서 마누라가 갑자기 피식 웃는다.
"왜 웃어?"
"아까 자기 넘어 졌을 때, 정말 웃겨서 그래"
나의 마지막 희망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아듀 스위스

밤11시 50분 물의도시 이태리 베네치아를 향해 열차에 올라탔다. 거길 가기 위해서는 '스피즈'와 '브릭'에서 갈아타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평일이고 야간열차 라지만 열차 5량중 집사람과 나 그리고 다른 한 사람만이 탔다. 총 3명이 탔다. 택시도 5명이 타는데...
스위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 한 채 알프스산맥을 넘어 이태리를 향해 달려간다.
스위스의 꿈같은 여행은 잊지 못할 것이다.
"사랑 때문에 갈 길이 바빴다.
이별의 시간을 안고 떠나야 했다."
(쓰다보니 유행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