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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가는 뚜벅이

이태리-여덟째날; 나폴리,폼페이,베네치아 광장 ( 유럽 이태리 )

[ 유럽배낭 여행기 ] 이태리-여덟째날; 나폴리,폼페이,베네치아 광장 ( 유럽 이태리 ) 이종원

(여덟 번째 날 : 나폴리-폼페이-베네치아 광장)

1. 나폴리

아침 일찍 일어나 테르미니역에서 나폴리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로마에서 기차로 2시간 반. 피곤해 기차에서 내내 잠만 잤다. 해안선을 따라 내려가는 열차는 너무나 아름다운 차창 풍경을 보여 주었다. 우리네 동해선을 달리는 해변의 모습이랄까.
나폴리는 '세계 3대 미항'중에 하나라는데..실망이다. 그다지 깨끗해 보이지는 않는다. 같은 미항인 시드니의 모습과는 구별이 된다. 시드니는 정말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였거든.... . 그러나 나폴리는 그런 느낌이 별로..

2. 폼페이시

나폴리 역에서 열차를 갈아타고 폼베이에 도착했다. 생각 같아서는 나폴리, 폼페이, 쏘렌토, 카프리섬(가곡에 나오는 지명)까지 돌고 싶지만 그 놈의 시간 때문에... 노년엔 여유 있게 봐야지...폼페이는 조그만 마을이다. 시골 구멍가게에 들러 빵이랑 콜라를 샀다. 확실히 물가가 싸다. 그런데 조그만 구멍가게도 꼭 영수증을 내준다. 유럽이 모두 그렇다. 노점상도 영수증을 발급한다. 세금 누수가 없으리라.

3. 폼페이 유적지

폼페이는 한때 인구가 2만명에 이르렀던 로마귀족들의 휴양도시다. 완벽한 수도 시설과 잘 포장된 도로 그리고 벽화, 조각, 모자이크등이 완벽하게 꾸며져 있다. 그러던 어느날 (AD 79)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이 도시는 하루 아침에 사라진 잊혀진 도시가 되었다. 1784년 우연히 발견되지 않았으면 아직까지 전설로 남아있으리라.

바둑판처럼 짜여진 도시구조, 길 곳곳이 설치된 수도꼭지, 연극과 시 낭송, 검투사 경기시합장, 야외극장이 그 규모를 말해줄다. 집집마다 현관바닥에 새겨진 '개조심' 이란 글자. 풍부한 프레스코화, 모자이크그림들...어찌 2천년전의 문명이 이렇게 발달되었는지 의문이 간다.
이러한 화려함이 베수비오산의 대화산 폭발로 뒤덮여(6미터) 모든 영화가 한순간에 없어진 것이다.

4. 제분기

베티의 집 근처에서 검은 돌을 우리의 장구처럼 다듬어서 옆으로 세워놓은 것을 발견했다. 그 것은 제분기다. 빵을 주식으로 삼았던 것이다. 식량을 일정한 공간내에서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게 되면서 인류가 비로소 문명을 창조할 수 있게 되었다. 빵은 문명을 잉태한 최대 공로자다. 빵의 원료인 밀이나 보리는 벼보다 단단하여 가루로 내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로마는 이런 제분기를 확보하여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비로소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원형극장은 1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다. 수 백개의 집들이 복원되었는데 부엌과 아궁이는 우리네 시골의 모습과 비슷했다.

5. 베티의 집

선정적인 그림이 눈길을 끈다. 이곳은 창녀의 집답게 온갖 음화로 가득 찼다. 아내는 몸둘바를 모른다. 입구에 무지무지 큰 남성 성기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영국할머니가 얼마나 좋아 하던지..."쏘세지 같다"라고 웃음보를 터뜨린다. 오히려 할아버지가 창피해한다.

6. 그밖에

아폴로신전에는 우뚝 솟은 베수비오 산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려다보고 있다. 글레디에디터의 병영도 보이고, 공중 목욕탕도 있고, 도리아식 기둥이 둘러선 바시리카에는 시정을 논의했을 것이다. 비너스 집에는 '조개껍질 위의 여인'의 모자이크도 보인다.

곳곳이 수도 파이프를 볼 수 있는데 2000년 전에 어찌 이런 것이 만들었는지 믿기지 않는다. 수도관에는 납 성분이 많아 납중독이 되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물론 하수로도 있다. 차도와 보도가 분리되어 있고 화산에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사람들의 모형이 보인다. 고통 속에서 아이들을 부둥켜안은 어머니의 모습, 울부짖는 군상들... 말세의 모습이 이런 거구나..

나폴리까지 국철이 통용되지 않아 사철을 이용했다. 나폴리 시내를 관통하며 주변 경관을 보았다. 피자의 원조인 나폴리 피자를 먹어야하는데... 로마행 4시 기차를 놓칠까봐 서둘렀다. 간신히 시간 맞혀 기차를 났다.
승무원에게 로마행이 맞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했다. 그러나 바로 해안선을 타고 사는 철로가 아니라 무지 돌는 코스다.. 2시간반 거리를 무려 4시간이나 걸린 것이다. 덕분에 베수비오산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모든 사치와 욕망을 한순간에 삼킨 베수비오 산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허망한 존재 인지 새삼 느꼈다.
이태리 기차에는 우리네 기차처럼 맥주, 오징어, 땅콩을 파는 구루마 아저씨가 없어 서운했다. 아이고 배고파.

테르미니 역에서 내려 아내와 난 다시 꼬르소 거리를 활보했다. 어제 구입하지 못한 기념품 몇 가지를 구입하고 베네치아 광장에 달려갔다.

7. 베네치아 광장

1885년 이태리 초대 왕인 엠마누엘레 2세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조각상은 크기가 12미터나 되면 동으로 도금되어있다. 뒷편의 기념관은 마치 타자기와 닮았다. 현재 이 기념관은 무명용사의 묘지로 쓰이며 기념관 앞의 베네치아 광장은 뭇솔리니가 파시즘을 주창하며 군중을 선동하는 집회를 가졌던 장소다. 눈을 감아보니 군중의 함성이 들려온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주요도로가 사방으로 뻗어 있으며 배낭족의 약속장소이며 로마여행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근처 식당에서 해물피자를 시켜 먹었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맛이 일품이다. 한국피자보다 맛있었던 것 같다.

텔르미니역 근처에서 기념 티셔스 몇 장 구입하고 있는데 뒤에서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억' 하고 달려든 것이다. 얼마나 놀랬는지...간 떨어질 뻔했다. 아내는 놀래서 뒤로 자빠졌다. 누군가 했더니 민박집에서 같이 묵는 학생이다.

이스라엘, 터키, 이집트를 거쳐 이곳에 온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것이다. 내일이면 서울로 떠나야 했기에 남은 열쇠고리를 주었다. 어사또의 마패와 같은 구실을 하니 잘 사용하라고 주었다.
젊음이 부러웠다. 내 학창시절엔 이런 배낭여행이 없었다. 그땐 돈이 없었슴. 만약 3주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유럽의 구석구석을 돌아보았을 텐데.... 그러나 이 10일간의 여행도 얼마나 소중하고 선택 받았던가? 그저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민박집에서 밥을 먹으며 지금까지 여행을 정리해 보았다. 모두들 부부가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에 부러운 시샘을 보낸다. 내일이면 평생 잊지 못할 유럽여행을 마쳐야 된다.
아이고 아쉬어....